8년 만에 8백 원대 찍은 ‘엔화’…우리 경제 영향은?

입력 2023.06.20 (16:47) 수정 2023.06.2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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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엔 환율은 어제(19일) 오전 한때 8백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엔화가 8백 원대를 기록한건 2015년 이후 약 8년만입니다.

오늘 오전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소폭 올라 다시 900원 초반대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역대급 엔저'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투자자들이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엔테크' 열풍 …·엔화 예금·환전액↑


'쌀 때 미리 사두자'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엔화 예금에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4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16일 기준 8,320억 엔으로 집계됐습니다. 6월은 한 달 치 집계가 안 됐는데도 올해 들어 최대치입니다.

원화를 받고 엔화로 바꿔주는 환전 규모도 늘었습니다. 지난달 4대 은행의 엔화 매도액은 301억6천7백만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엔저에 일본 증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 엔화 가치가 낮을 때 주식을 매입해 보유하다가 향후 강세로 전환할 때 팔아 환차익을 노리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7천7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매수 건수를 합산한 5천6백여 건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 '엔화 약세' 배경은?


미국과 유럽이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마이너스로 장기금리는 제로로 억제하는 대규모 금융완화책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내외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끈기 있게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통화 완화'를 고집하며 돈을 계속 풀겠다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분간 엔화 가치 약세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고금리나 고수익이 기대되는 곳의 채권과 주식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늘어나는 것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엔화에 비해 최근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원/엔 환율 하락에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4월 27일부터 이달 16일까지 5.2% 하락한 반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2% 상승했습니다.

■ '역대급 엔저'…국내 수출·관광 영향은?

일본 경제는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 지표도 좋습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예상을 웃돌았고, 증시는 약 3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엔화 약세는 일본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며 기업들의 실적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기업의 실적 개선은 투자 확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엔저 현상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엔저 현상이 장기화 될 경우 여행수지 적자 폭을 키우고 경상수지 악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큽니다. 이미 올해 1분기 여행수지 적자 규모가 32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가운데 여행수지 등 서비스 수지 적자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우리 수출 회복세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p 하락하면 우리나라 수출 가격은 0.41%p, 수출 물량은 0.2%p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자동차나 전자 등 제조업 분야의 수출 경합도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 "엔저, 수출 영향은 단기적" 분석도


반면 엔화 약세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으로 보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과 일본의 세계시장 수출 경합도지수가 2011년 0.475에서 2021년 0.458로 내렸다고 분석했습니다.

한일 수출 경합도는 2015년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세계 시장에서 양국이 경쟁하는 제품이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양국의 수출 구조가 차별화되면서 엔저 현상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보다 감소했다는 게 무역협회의 분석입니다.

또 엔화 약세가 본격화된 2021년 초부터 원화도 함께 절하됐기 때문에 엔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주요 시장별로 볼 때 엔저가 장기화되는 경우에는 수출경쟁력이 일본보다 하락한 품목의 경우 영향이 클 수 있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무역협회는 엔저 장기화에 대비해 수출기업들이 품목 차별화 및 고부가 가치화를 추진하는 한편 일본보다 우위에 있는 FTA를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 엔화 언제까지 떨어지나?

한동안 엔화 약세가 이어질 거라는 데 전문가들은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가 저점인지를 두고는 시각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900원 내외에서 등락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엔화가 약세를 보일 거라는 전망만 보고 너무 많은 돈을 한꺼번에 환전하거나 단기에 환차익을 기대하고 투자 하는 건 위험성이 따를 수 있다며 신중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일본 통화정책 변화, 미국 금리 정책, 원화 변동성 등에 따라 엔화의 반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환율 변동성은 달러 대비 하나의 통화 변동성만 반영되는 게 아니라 달러 대비 엔화, 또 원화 변동성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떨어질 때 크게 떨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올라갈 때도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며 "양방향성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변동성을 충분히 감안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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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엔 환율은 어제(19일) 오전 한때 8백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엔화가 8백 원대를 기록한건 2015년 이후 약 8년만입니다.

오늘 오전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소폭 올라 다시 900원 초반대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역대급 엔저'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투자자들이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엔테크' 열풍 …·엔화 예금·환전액↑


'쌀 때 미리 사두자'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엔화 예금에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4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16일 기준 8,320억 엔으로 집계됐습니다. 6월은 한 달 치 집계가 안 됐는데도 올해 들어 최대치입니다.

원화를 받고 엔화로 바꿔주는 환전 규모도 늘었습니다. 지난달 4대 은행의 엔화 매도액은 301억6천7백만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엔저에 일본 증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 엔화 가치가 낮을 때 주식을 매입해 보유하다가 향후 강세로 전환할 때 팔아 환차익을 노리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매수 건수는 7천7백여 건에 달했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매수 건수를 합산한 5천6백여 건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 '엔화 약세' 배경은?


미국과 유럽이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마이너스로 장기금리는 제로로 억제하는 대규모 금융완화책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내외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끈기 있게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통화 완화'를 고집하며 돈을 계속 풀겠다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분간 엔화 가치 약세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고금리나 고수익이 기대되는 곳의 채권과 주식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늘어나는 것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엔화에 비해 최근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원/엔 환율 하락에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4월 27일부터 이달 16일까지 5.2% 하락한 반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2% 상승했습니다.

■ '역대급 엔저'…국내 수출·관광 영향은?

일본 경제는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 지표도 좋습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예상을 웃돌았고, 증시는 약 3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엔화 약세는 일본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며 기업들의 실적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기업의 실적 개선은 투자 확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엔저 현상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엔저 현상이 장기화 될 경우 여행수지 적자 폭을 키우고 경상수지 악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큽니다. 이미 올해 1분기 여행수지 적자 규모가 32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가운데 여행수지 등 서비스 수지 적자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우리 수출 회복세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p 하락하면 우리나라 수출 가격은 0.41%p, 수출 물량은 0.2%p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자동차나 전자 등 제조업 분야의 수출 경합도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 "엔저, 수출 영향은 단기적" 분석도


반면 엔화 약세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으로 보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과 일본의 세계시장 수출 경합도지수가 2011년 0.475에서 2021년 0.458로 내렸다고 분석했습니다.

한일 수출 경합도는 2015년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세계 시장에서 양국이 경쟁하는 제품이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양국의 수출 구조가 차별화되면서 엔저 현상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보다 감소했다는 게 무역협회의 분석입니다.

또 엔화 약세가 본격화된 2021년 초부터 원화도 함께 절하됐기 때문에 엔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주요 시장별로 볼 때 엔저가 장기화되는 경우에는 수출경쟁력이 일본보다 하락한 품목의 경우 영향이 클 수 있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무역협회는 엔저 장기화에 대비해 수출기업들이 품목 차별화 및 고부가 가치화를 추진하는 한편 일본보다 우위에 있는 FTA를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 엔화 언제까지 떨어지나?

한동안 엔화 약세가 이어질 거라는 데 전문가들은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가 저점인지를 두고는 시각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900원 내외에서 등락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엔화가 약세를 보일 거라는 전망만 보고 너무 많은 돈을 한꺼번에 환전하거나 단기에 환차익을 기대하고 투자 하는 건 위험성이 따를 수 있다며 신중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일본 통화정책 변화, 미국 금리 정책, 원화 변동성 등에 따라 엔화의 반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환율 변동성은 달러 대비 하나의 통화 변동성만 반영되는 게 아니라 달러 대비 엔화, 또 원화 변동성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떨어질 때 크게 떨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올라갈 때도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며 "양방향성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변동성을 충분히 감안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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