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나의 난민, 너의 난민

입력 2023.06.20 (22:00) 수정 2023.06.2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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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신청자들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 정착하려는 ‘가짜들’일까? 난민들이 더 많이 한국에 정착해서 살면, 우리 사회는 혼란에 빠질까? 그들은 우리 세금을 축내고,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이방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난민의 날을 맞아 KBS 취재진이 세계 각지의 난민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

■ 레바논-태국-독일을 오간 긴 여정

레바논과 시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태국 북부 메솟 지역의 미얀마 난민촌에서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난민들을 만나 이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취재했다. 본국을 떠나 세계 각지를 떠돌고 있는 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취재진의 다음 행선지는 난민에게 가장 관용적인 나라, 독일이다. 한 해 난민 인정률이 평균 20%가 넘는 나라, 이제까지 9백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받아들인 나라. 독일이 그토록 이주민들에게 관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프로그램은 난민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난민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방인-난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나아갈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 해법을 찾아본다.

■ 떠날 수도, 머무를 수도 없는 사람들

취재진이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레바논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시리아 난민은 모두 680만명으로 전 세계 난민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베이루트 북쪽으로 네 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아르살(Arsal) 난민촌이다. 한날 한시에 아들 두 명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 아버지는 폭격에 숨지고 어머니는 자신을 두고 떠나서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뒤 모든 것을 버리고 레바논으로 도망친 의사에 이르기까지. 사연은 다양하다. 간절하게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 심각한 경제 위기에 놓인 레바논 정부는 더 이상 난민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무엇일까?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다른 나라로 떠날 수도, 그렇다고 난민촌에 머무를 수도 없는 삶. 난민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 난민은 가짜인가?

취재진은 국내에 살고 있는 시리아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부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도적 체류자 신분으로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1년마다 체류허가를 갱신해야하고 단순 노무직에만 취업할 수 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본국의 어려움을 입증하지 못해서, 본국에서 받은 박해의 이유가 애매해서 등등이다. 시리아인 인도적 체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어려워서 이 나라에 왔는데 ‘가짜’ 취급을 받는다고. 인간이란 본래 이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인간 존재 자체에 가짜가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다.

■ 난민은 세금 도둑?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까?

그렇다면 왜 독일은 그토록 이주민에 관용적인가? 취재진은 이민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는 한 독일 기업 대표와 베를린 주 정부 이민담당관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각각 이민자와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기업 대표는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인데다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독일 내국인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노동 인력은 줄어든다.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해법은 저임금을 받아들이면서도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이민자와 난민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베를린 주 정부 담당자는 이렇게 역설했다. “혈통이 민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느냐가 사회 구성원 여부를 결정한다.”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가치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사회일수록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했다. 어떤 연유로든 그들은 난민을 세금 도둑이라 칭하지 않았다.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에게선 지나친 연민도, 맹목적인 혐오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함께 살수록 독일은 더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과 여유가 있었다.

■ 우리가 갈 길은?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긴 여정을 마친 지금,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 나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성인 것 같다고.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이런 인간 존재의 본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존재를 품으면서 살아가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프로그램을 보는 각각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취재: 손은혜
촬영: 김민준 황종원
영상편집: 김대영
자료조사: 이재승
조연출: 이정윤

방송일시: 2023년 6월 20일(화) 밤10시 KBS1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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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기획 창] 나의 난민, 너의 난민
    • 입력 2023-06-20 22:00:51
    • 수정2023-06-20 2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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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신청자들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 정착하려는 ‘가짜들’일까? 난민들이 더 많이 한국에 정착해서 살면, 우리 사회는 혼란에 빠질까? 그들은 우리 세금을 축내고,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이방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난민의 날을 맞아 KBS 취재진이 세계 각지의 난민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

■ 레바논-태국-독일을 오간 긴 여정

레바논과 시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태국 북부 메솟 지역의 미얀마 난민촌에서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난민들을 만나 이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취재했다. 본국을 떠나 세계 각지를 떠돌고 있는 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취재진의 다음 행선지는 난민에게 가장 관용적인 나라, 독일이다. 한 해 난민 인정률이 평균 20%가 넘는 나라, 이제까지 9백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받아들인 나라. 독일이 그토록 이주민들에게 관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프로그램은 난민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난민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방인-난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나아갈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 해법을 찾아본다.

■ 떠날 수도, 머무를 수도 없는 사람들

취재진이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레바논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 시리아 난민은 모두 680만명으로 전 세계 난민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베이루트 북쪽으로 네 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아르살(Arsal) 난민촌이다. 한날 한시에 아들 두 명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 아버지는 폭격에 숨지고 어머니는 자신을 두고 떠나서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뒤 모든 것을 버리고 레바논으로 도망친 의사에 이르기까지. 사연은 다양하다. 간절하게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 심각한 경제 위기에 놓인 레바논 정부는 더 이상 난민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무엇일까?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다른 나라로 떠날 수도, 그렇다고 난민촌에 머무를 수도 없는 삶. 난민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 난민은 가짜인가?

취재진은 국내에 살고 있는 시리아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부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도적 체류자 신분으로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1년마다 체류허가를 갱신해야하고 단순 노무직에만 취업할 수 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본국의 어려움을 입증하지 못해서, 본국에서 받은 박해의 이유가 애매해서 등등이다. 시리아인 인도적 체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어려워서 이 나라에 왔는데 ‘가짜’ 취급을 받는다고. 인간이란 본래 이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인간 존재 자체에 가짜가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다.

■ 난민은 세금 도둑?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까?

그렇다면 왜 독일은 그토록 이주민에 관용적인가? 취재진은 이민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는 한 독일 기업 대표와 베를린 주 정부 이민담당관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각각 이민자와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기업 대표는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인데다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독일 내국인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노동 인력은 줄어든다.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해법은 저임금을 받아들이면서도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이민자와 난민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베를린 주 정부 담당자는 이렇게 역설했다. “혈통이 민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느냐가 사회 구성원 여부를 결정한다.”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가치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사회일수록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했다. 어떤 연유로든 그들은 난민을 세금 도둑이라 칭하지 않았다.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에게선 지나친 연민도, 맹목적인 혐오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함께 살수록 독일은 더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과 여유가 있었다.

■ 우리가 갈 길은?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긴 여정을 마친 지금,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 나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성인 것 같다고.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이런 인간 존재의 본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존재를 품으면서 살아가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프로그램을 보는 각각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취재: 손은혜
촬영: 김민준 황종원
영상편집: 김대영
자료조사: 이재승
조연출: 이정윤

방송일시: 2023년 6월 20일(화) 밤10시 KBS1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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