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100명 중 3명 ‘마약 경험’ [탐사K] [‘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

입력 2023.06.26 (21:24) 수정 2023.07.0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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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6일)은 세계 마약 퇴치의 날입니다.

한때 '마약 청정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처한 마약의 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KBS는 전 국민 실태조사를 국내 최초로 실시했습니다.

국민 100명 중 3명 정도가 마약을 경험해 봤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먼저, 탐사보도부 김용덕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전국 19살 이상 69살 이하 성인 5천 명에게 마약 사용 경험을 물었습니다.

3.2%가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마약을 사용해봤다"고 답했습니다.

3.2%, 얼핏 적어 보이지만 120만 명에 해당합니다.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 명 남짓이니까 5년간 태어나는 국민을 모두 더한 숫자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는 2015년까지 '마약 청정국'이었습니다.

마약 사범이 인구 10만 명당 20명 이하, 곧 0.02%가 마약 청정국 기준인데요.

3.2%라는 수치는 그 기준의 무려 160배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약 사용 경험을 숨기고 제대로 답을 안 할 사람들이 있겠죠?

그래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지인이 마약을 경험했다고 듣거나 본 적이 있는가?".

그랬더니, 열 명 중 한 명 넘게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마약을 경험했다는 응답 3.2%보다 3배 넘게 많습니다.

우리 국민 적어도 100명 중 세 명,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 많은 숫자가 마약을 경험했거나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마약 사용자의 9% 이상은 최근 1년 사이 마약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1년 사이 경험자 중 73%는 최근 한 달 사이 사용했다고 답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약 사용은 진행 중이라는 뜻입니다.

이번 조사는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 3일부터 열흘 동안 웹 조사로 진행했고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1.38%p입니다.

KBS 뉴스 김용덕입니다.

영상제작:손병철 김재진 권창수/영상편집:김근환

[앵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떤 경로로 마약을 하게 되는 걸까요.

놀랍게도 마약 경험자의 절반은 병·의원에서 마약을 처음 접했고, 이후에도 병·의원을 통해 계속 마약을 구했다고 답했습니다.

이 내용은 최준혁, 신지수 기자가 이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치료가 아닌 용도로 "마약을 해봤다"고 답한 3.2%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먼저, 누구를 통해 마약을 처음으로 접했던 지입니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병·의원에서 일하는 의료인을 통했다고 답했습니다.

온·오프라인 판매상을 통했다는 답은 각각 1%대에 불과했습니다.

마약을 처음 사용한 장소도 역시 가장 많은 응답자가 병원을 꼽았습니다.

두 번 이상 마약을 해 봤다는 응답자로 대상을 좁혀서 주로 어디서 마약을 구입했는지도 물었는데, 3분의 2에 가까운 응답자가 역시 병·의원을 골랐습니다.

SNS, 해외 배송, 다크웹 같이 흔히 짐작하는 마약 구입경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치료 목적이 아니어도 마약을 구하는 주된 통로가 병·의원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용해 본 마약의 종류를 모두 골라달라는 질문에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집니다.

가장 많은 답이 나온 대마를 빼면, 졸피뎀을 포함한 진정제와 프로포폴, 살 빼는 약 같이 의사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들이 모두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필로폰이나 코카인 같은 소위 '하드 드럭'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KBS 뉴스 최준혁입니다.

[리포트]

마약 중독을 경험했던 김 모 씨는 당시 병원 간판만 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허술해 보이는 병·의원을 골라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처방을 요구했습니다.

[김 ○○/마약 중독 경험자/음성변조 : "간판 오래돼 보이면 한 번 가보는 거죠. '허리가 너무 아픈데 원래 붙이던 진통제가 있어요. 패치인데 그것 좀 주실래요?'"]

여러 병·의원을 돌며 적정 용량으로 치면 1년 치 넘는 펜타닐을 한꺼번에 구해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김 ○○/마약 중독 경험자/음성변조 : "왜 이렇게 쉽게 주지? 이거를. 진짜 아픈 게 맞나 한 번 (확인) 해봐야 되는데 안 해보니까 약을 더 쉽게 탈 수 있는 것 같고."]

비만 치료를 내세운 한 병원을 직접 찾았습니다.

몸무게도 재지 않고 대뜸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주겠다고 합니다.

[A 의원 관계자/음성변조 : "향정 계열로 빨리 빼고 그 다음에 유지를 비향정으로 하는 게 제일 낫습니다. 향정으로 한 2~3달 빨리 먹고 싹 빼고…"]

식욕억제제 역시 중독과 환각 같은 부작용이 있어 처방 대상과 용법, 용량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단 3분 정도의 문진만으로 한 달 치를 처방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처방전, 누군가에게는 합법적으로 마약을 구하는 통로가 됩니다.

[박성수/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의약품으로 써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오용되거나 또는 남용되는 문제, 이게 어떻게 보면 더 심각할 수 있는 거죠. 지금 우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연간 마약류 의약품 처방 건수는 1억 건 안팎.

어느 정도가 오남용되고 있는지조차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KBS 뉴스 신지수입니다.

촬영기자:김성현/영상제작:박찬준/영상편집:이현모 김지영/그래픽: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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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국민 100명 중 3명 ‘마약 경험’ [탐사K] [‘약’한 사회, 마약을 말하다]
    • 입력 2023-06-26 21:24:26
    • 수정2023-07-02 22:05:34
    뉴스 9
[앵커]

오늘(26일)은 세계 마약 퇴치의 날입니다.

한때 '마약 청정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처한 마약의 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KBS는 전 국민 실태조사를 국내 최초로 실시했습니다.

국민 100명 중 3명 정도가 마약을 경험해 봤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먼저, 탐사보도부 김용덕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전국 19살 이상 69살 이하 성인 5천 명에게 마약 사용 경험을 물었습니다.

3.2%가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마약을 사용해봤다"고 답했습니다.

3.2%, 얼핏 적어 보이지만 120만 명에 해당합니다.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 명 남짓이니까 5년간 태어나는 국민을 모두 더한 숫자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는 2015년까지 '마약 청정국'이었습니다.

마약 사범이 인구 10만 명당 20명 이하, 곧 0.02%가 마약 청정국 기준인데요.

3.2%라는 수치는 그 기준의 무려 160배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약 사용 경험을 숨기고 제대로 답을 안 할 사람들이 있겠죠?

그래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지인이 마약을 경험했다고 듣거나 본 적이 있는가?".

그랬더니, 열 명 중 한 명 넘게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마약을 경험했다는 응답 3.2%보다 3배 넘게 많습니다.

우리 국민 적어도 100명 중 세 명,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 많은 숫자가 마약을 경험했거나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마약 사용자의 9% 이상은 최근 1년 사이 마약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1년 사이 경험자 중 73%는 최근 한 달 사이 사용했다고 답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약 사용은 진행 중이라는 뜻입니다.

이번 조사는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 3일부터 열흘 동안 웹 조사로 진행했고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1.38%p입니다.

KBS 뉴스 김용덕입니다.

영상제작:손병철 김재진 권창수/영상편집:김근환

[앵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떤 경로로 마약을 하게 되는 걸까요.

놀랍게도 마약 경험자의 절반은 병·의원에서 마약을 처음 접했고, 이후에도 병·의원을 통해 계속 마약을 구했다고 답했습니다.

이 내용은 최준혁, 신지수 기자가 이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치료가 아닌 용도로 "마약을 해봤다"고 답한 3.2%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먼저, 누구를 통해 마약을 처음으로 접했던 지입니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병·의원에서 일하는 의료인을 통했다고 답했습니다.

온·오프라인 판매상을 통했다는 답은 각각 1%대에 불과했습니다.

마약을 처음 사용한 장소도 역시 가장 많은 응답자가 병원을 꼽았습니다.

두 번 이상 마약을 해 봤다는 응답자로 대상을 좁혀서 주로 어디서 마약을 구입했는지도 물었는데, 3분의 2에 가까운 응답자가 역시 병·의원을 골랐습니다.

SNS, 해외 배송, 다크웹 같이 흔히 짐작하는 마약 구입경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치료 목적이 아니어도 마약을 구하는 주된 통로가 병·의원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용해 본 마약의 종류를 모두 골라달라는 질문에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집니다.

가장 많은 답이 나온 대마를 빼면, 졸피뎀을 포함한 진정제와 프로포폴, 살 빼는 약 같이 의사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들이 모두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필로폰이나 코카인 같은 소위 '하드 드럭'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KBS 뉴스 최준혁입니다.

[리포트]

마약 중독을 경험했던 김 모 씨는 당시 병원 간판만 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허술해 보이는 병·의원을 골라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처방을 요구했습니다.

[김 ○○/마약 중독 경험자/음성변조 : "간판 오래돼 보이면 한 번 가보는 거죠. '허리가 너무 아픈데 원래 붙이던 진통제가 있어요. 패치인데 그것 좀 주실래요?'"]

여러 병·의원을 돌며 적정 용량으로 치면 1년 치 넘는 펜타닐을 한꺼번에 구해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김 ○○/마약 중독 경험자/음성변조 : "왜 이렇게 쉽게 주지? 이거를. 진짜 아픈 게 맞나 한 번 (확인) 해봐야 되는데 안 해보니까 약을 더 쉽게 탈 수 있는 것 같고."]

비만 치료를 내세운 한 병원을 직접 찾았습니다.

몸무게도 재지 않고 대뜸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주겠다고 합니다.

[A 의원 관계자/음성변조 : "향정 계열로 빨리 빼고 그 다음에 유지를 비향정으로 하는 게 제일 낫습니다. 향정으로 한 2~3달 빨리 먹고 싹 빼고…"]

식욕억제제 역시 중독과 환각 같은 부작용이 있어 처방 대상과 용법, 용량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단 3분 정도의 문진만으로 한 달 치를 처방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처방전, 누군가에게는 합법적으로 마약을 구하는 통로가 됩니다.

[박성수/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의약품으로 써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오용되거나 또는 남용되는 문제, 이게 어떻게 보면 더 심각할 수 있는 거죠. 지금 우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연간 마약류 의약품 처방 건수는 1억 건 안팎.

어느 정도가 오남용되고 있는지조차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KBS 뉴스 신지수입니다.

촬영기자:김성현/영상제작:박찬준/영상편집:이현모 김지영/그래픽: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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