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다녀오면 5억 줄게’…제주도민 울린 200억 사기 사건

입력 2023.06.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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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씩씩하게 살고 나오겠습니다."

"형이 자주 갈 건데 형이 못 가도 동생 붙여서 면회 전부 다 채울 거야."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두 남자의 대화.

주범 1명이 죄를 몰아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오면 막대한 수익금과 편안한 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제주에서 200억 원대 피해를 낸 '수입차 사기 사건' 공범들의 녹취록에 나오는 실제 대화입니다.

나이가 가장 어린 주범은 형사처분을 받는 대신 5억 원을 받기로 했는데, 이들 사기범 3명은 결국 다 같이 유죄를 선고받고 현재 교도소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사기를 당한 130명 넘는 제주도민들은 2년 넘게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교도소 다녀오면 5억 줄게’…치밀한 범행 계획 / KBS 2021.05.14. 보도 갈무리‘교도소 다녀오면 5억 줄게’…치밀한 범행 계획 / KBS 2021.05.14. 보도 갈무리

■ 달콤한 유혹…"수입차 사면 되팔아 2,000만 원 줄게"

시작은 2020년 6월이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알게 된 이들 주범 3명은 제주에서 투자 설명회를 열어 피해자들을 모집했습니다.

대출 업체를 통해 수입차를 사면 할부금을 대신 내주고, 동남아에 되팔아 2,000만 원의 관세 차익금을 주겠다며 사람들을 모집한 겁니다.

이 말에 속아 130명 넘는 피해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좁은 지역 특성상 피해자들이 지인 등을 서로 모집하며 순식간에 피해자가 늘었습니다.

① 이렇게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운전면허증과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받아 중고차 업자들에게 넘겼습니다.

② 업자들은 캐피탈 등에 피해자들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차를 출고시켰습니다.

업자들은 이 과정에서 실제 차량값이 4,600만 원이라면, 이보다 비싼 8,000만 원 상당을 대출하는 등 매매 대금을 부풀렸습니다.

③ 이렇게 차가 출고되면, 업자들은 차를 다시 주범들에게 넘겼습니다.

④ 주범들은 이 차들을 대포차 업자들에게 반값도 안 되게 팔아넘겨 돈을 챙겼습니다.

자기 돈 하나 들이지 않고 피해자들의 대출금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겁니다.


■ '아우디 지점장'도 범행 가담

사기에 가담한 건 중고차 업자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범들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아우디 분당 판교지점 직원과 공모해 신차와 리스 차량 등도 출고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아우디 직원은 주범과 공모해 2020년 6월부터 2021년 2월까지 55억 원 상당의 아우디 차량 75대를 출고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직원은 지점장으로 초고속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피해자 130여 명의 명의로 중고차와 아우디 차량 259대가 출고됐습니다. 제주에서 200억 원에 달하는 역대급 사기 사건이 벌어지게 된 배경입니다.

제주 수입차 사기 사건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피해자들제주 수입차 사기 사건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피해자들

■ 교도소에서 만나 다시 교도소로

주범 3명 가운데 2명인 맹 모(50) 씨와 우 모(51) 씨는 사기죄 등으로 각각 징역 18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교도소에 씩씩하게 다녀오겠다'고 했던 주범 함 모(26) 씨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들 모두 수차례 사기 전과가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재판부는 고도의 방법으로 범행을 계획해 막대한 피해를 줬다며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명의로 나온 수입차와 대출내역서피해자 명의로 나온 수입차와 대출내역서

범행에 가담한 아우디 전 지점장도 최근 1심에서 사기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지점장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차량을 판매했을 뿐, 피해자 모집 등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방조죄만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점장에 대해 피해자들이 피해를 볼 걸 알면서도 차를 출고한 점, 차량 위치 추적을 막기 위해 '아우디 커넥티드 서비스(차량 위치추적 기능)'를 활성화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지점장이 주범 맹 씨와 나눈 녹취록과 대화 내용 등에도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재판부는 재판에서 지점장이 수입차를 출고시켜 일당에게 인도함으로써, 대포차로 처분하는 '사기 범행을 완성'하는 데 가담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사실상 공범격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 수사 시작 2년 넘었지만…끝나지 않은 고통

사건 초기 피해자들은 자신의 명의로 된 차량이 실제 동남아로 수출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각종 신호 위반과 주정차 과태료 통지서 수백 건이 날아오면서 뒤늦게 사기인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고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차를 찾지 못한 피해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실제 피해자에게 날아온  과태료 통지서실제 피해자에게 날아온 과태료 통지서

현재까지 경찰이 특정한 피해 차량 259대 가운데 회수된 차량은 90여 대에 불과합니다.

차를 찾은 사람들은 되팔아 겨우 빚을 갚고 있지만, 나머지 피해자들은 여전히 대출금을 갚고 있습니다.

제주경찰청은 지금까지 수사를 진행해 현재까지 15명을 검거하고, 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피해 차량을 수배하는 한편, 대포차 업자 등 범행에 가담한 자들의 여죄를 캐고 있습니다.

‘수입차 사기사건’ 피해자들에게 통지된 과태료 청구서들‘수입차 사기사건’ 피해자들에게 통지된 과태료 청구서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대포차 업자들이 채무가 있는 차량이라도 승계 없이 명의 이전이 가능한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고, 국토교통부에 제도 개선도 요청했습니다.

박만식 제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장은 "이 사건은 지인들의 투자 권유를 받은 도민들이 의심 없이 신분증 등을 제공해 큰 피해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며 "서민을 울리는 악성 사기범,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경제적 신뢰를 깨뜨린 불법 행위는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 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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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도소 다녀오면 5억 줄게’…제주도민 울린 200억 사기 사건
    • 입력 2023-06-28 14: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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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씩씩하게 살고 나오겠습니다."

"형이 자주 갈 건데 형이 못 가도 동생 붙여서 면회 전부 다 채울 거야."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두 남자의 대화.

주범 1명이 죄를 몰아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오면 막대한 수익금과 편안한 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제주에서 200억 원대 피해를 낸 '수입차 사기 사건' 공범들의 녹취록에 나오는 실제 대화입니다.

나이가 가장 어린 주범은 형사처분을 받는 대신 5억 원을 받기로 했는데, 이들 사기범 3명은 결국 다 같이 유죄를 선고받고 현재 교도소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사기를 당한 130명 넘는 제주도민들은 2년 넘게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교도소 다녀오면 5억 줄게’…치밀한 범행 계획 / KBS 2021.05.14. 보도 갈무리
■ 달콤한 유혹…"수입차 사면 되팔아 2,000만 원 줄게"

시작은 2020년 6월이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알게 된 이들 주범 3명은 제주에서 투자 설명회를 열어 피해자들을 모집했습니다.

대출 업체를 통해 수입차를 사면 할부금을 대신 내주고, 동남아에 되팔아 2,000만 원의 관세 차익금을 주겠다며 사람들을 모집한 겁니다.

이 말에 속아 130명 넘는 피해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좁은 지역 특성상 피해자들이 지인 등을 서로 모집하며 순식간에 피해자가 늘었습니다.

① 이렇게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운전면허증과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받아 중고차 업자들에게 넘겼습니다.

② 업자들은 캐피탈 등에 피해자들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차를 출고시켰습니다.

업자들은 이 과정에서 실제 차량값이 4,600만 원이라면, 이보다 비싼 8,000만 원 상당을 대출하는 등 매매 대금을 부풀렸습니다.

③ 이렇게 차가 출고되면, 업자들은 차를 다시 주범들에게 넘겼습니다.

④ 주범들은 이 차들을 대포차 업자들에게 반값도 안 되게 팔아넘겨 돈을 챙겼습니다.

자기 돈 하나 들이지 않고 피해자들의 대출금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겁니다.


■ '아우디 지점장'도 범행 가담

사기에 가담한 건 중고차 업자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범들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아우디 분당 판교지점 직원과 공모해 신차와 리스 차량 등도 출고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아우디 직원은 주범과 공모해 2020년 6월부터 2021년 2월까지 55억 원 상당의 아우디 차량 75대를 출고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직원은 지점장으로 초고속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피해자 130여 명의 명의로 중고차와 아우디 차량 259대가 출고됐습니다. 제주에서 200억 원에 달하는 역대급 사기 사건이 벌어지게 된 배경입니다.

제주 수입차 사기 사건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피해자들
■ 교도소에서 만나 다시 교도소로

주범 3명 가운데 2명인 맹 모(50) 씨와 우 모(51) 씨는 사기죄 등으로 각각 징역 18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교도소에 씩씩하게 다녀오겠다'고 했던 주범 함 모(26) 씨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들 모두 수차례 사기 전과가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재판부는 고도의 방법으로 범행을 계획해 막대한 피해를 줬다며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명의로 나온 수입차와 대출내역서
범행에 가담한 아우디 전 지점장도 최근 1심에서 사기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지점장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차량을 판매했을 뿐, 피해자 모집 등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방조죄만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점장에 대해 피해자들이 피해를 볼 걸 알면서도 차를 출고한 점, 차량 위치 추적을 막기 위해 '아우디 커넥티드 서비스(차량 위치추적 기능)'를 활성화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지점장이 주범 맹 씨와 나눈 녹취록과 대화 내용 등에도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재판부는 재판에서 지점장이 수입차를 출고시켜 일당에게 인도함으로써, 대포차로 처분하는 '사기 범행을 완성'하는 데 가담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사실상 공범격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 수사 시작 2년 넘었지만…끝나지 않은 고통

사건 초기 피해자들은 자신의 명의로 된 차량이 실제 동남아로 수출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각종 신호 위반과 주정차 과태료 통지서 수백 건이 날아오면서 뒤늦게 사기인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고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차를 찾지 못한 피해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실제 피해자에게 날아온  과태료 통지서
현재까지 경찰이 특정한 피해 차량 259대 가운데 회수된 차량은 90여 대에 불과합니다.

차를 찾은 사람들은 되팔아 겨우 빚을 갚고 있지만, 나머지 피해자들은 여전히 대출금을 갚고 있습니다.

제주경찰청은 지금까지 수사를 진행해 현재까지 15명을 검거하고, 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피해 차량을 수배하는 한편, 대포차 업자 등 범행에 가담한 자들의 여죄를 캐고 있습니다.

‘수입차 사기사건’ 피해자들에게 통지된 과태료 청구서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대포차 업자들이 채무가 있는 차량이라도 승계 없이 명의 이전이 가능한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고, 국토교통부에 제도 개선도 요청했습니다.

박만식 제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장은 "이 사건은 지인들의 투자 권유를 받은 도민들이 의심 없이 신분증 등을 제공해 큰 피해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며 "서민을 울리는 악성 사기범,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경제적 신뢰를 깨뜨린 불법 행위는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 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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