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많아도 너무 많다…그런데 가격은 왜? [주말엔]

입력 2023.07.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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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일)은 한우 업계에 뜻깊은 날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한우 수출이 첫발을 떼기 때문이다.

한우 2.5톤 (10마리 분량)을 실은 컨테이너 운반선이 인천항을 출발한다. 가는 곳은 말레이시아. 이달 14일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말레이시아로 한우 1,875톤(한우 7,500마리 분량)이 수출될 예정이다. 한해 625톤꼴이다.

지금까지는 2019년에 한우가 가장 많이 수출됐다. 그래 봐야 겨우 65톤이었다.

이번엔 거의 10배 가까운 수출 물량을 한 번에 확보했으니 개가를 올린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기념행사까지 열었을 정도다.

말레이시아 한우수출 첫 선적 기념행사, 지난달 29일(목) 인천항에서 열렸다.말레이시아 한우수출 첫 선적 기념행사, 지난달 29일(목) 인천항에서 열렸다.

■ 그 비싼 한우가 수출을?

사실 '한우'와 '수출' 두 단어는 매우 낯선 조합이다.

소고기는 국산이 외국산보다 훨씬 비싸다. 더 싼 소고기가 있는 곳에서 굳이 더 비싼 한우를 사 간다? 의아할 만하다.

그러나 한우 못지 않게 비싼 일본 '와규'(和牛, 화우)를 생각해보자. 와규가 쑥쑥 수출되는 걸 생각하면, 안될 일도 아니긴 하다.

일본 소고기 수출은 순항 중이다. 지난해 42개국에 513억 엔(약 5천억 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2030년에는 수출 물량을 3,600억 엔어치까지 늘리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한우도 수출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뚫은 말레이시아가 4번째 한우 수출국이다. 일본 와규와는 격차가 크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새로 수출할 국가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말레이시아 수출이 더 의미가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슬람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할랄' 인증(이슬람 신도가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이 꼭 필요한데, 그 문턱도 넘었다.

첫 '할랄' 관문을 통과했으니, 다른 이슬람 국가로 수출길을 넓힐 가능성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김민경/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 교수
Q. 한우는 비싼데, 수출 경쟁력이 있을까요?
A. 단순 비교를 하면 한우는 분명 가격 경쟁력이 낮죠. 하지만 일본 와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수출 대상 국가의 소비층을 고려한 품질과 맛을 유지하면 얼마든지 수출 가능합니다. 맛과 품질 측면에서 한우가 결코 와규에 뒤지지 않거든요.

수출하려는 국가의 문화와 종교, 인구와 소득 특성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춘 수출용 한우를 따로 생산해야 수출이 빠르게 늘 수 있을 겁니다.

■ 한우 수출, 뭣이 중하길래

그런데 한우 수출이 왜 중요할까. 정부가 기념식까지 열 정도로 의미를 두는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국내 한우의 수급 상황에 있다.

지금 한우, 많아도 너무 많다. 전례 없는 '초과 공급' 상태란 얘기다.

한우는 보통 3년 정도 키운 뒤 도축을 한다. 현재 사육 중인 소의 1/3 정도를 한해에 도축한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어느 시점에 한우 3마리를 키우고 있다면, 그해에는 1마리를 도축해 시장에 내놓는 구조다.

2013년 한우 파동이 있었다. 한웃값이 폭락했고, 상당수 농가가 한우 사육을 포기했다. 그해 도축된 한우가 96만 마리였다.

그런데 올해 94만~95만 마리 정도 도축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101만 마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계속 우상향이다.

같은 한국인데, '소' 세상은 저출산과 인구 절벽을 걱정하는 '인간' 세상과는 딴 판이다.

자료 : 김민경 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 교수자료 : 김민경 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 교수

힘들게 해외 시장을 개척하지 말고, 국내 소비를 늘리면 되지 않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훨씬 익숙한 방법이긴 하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보통 언제 가족끼리 한우를 굽는가. 친구는 어떤 경우에 한우를 쏘는가.

'승진해서 월급이 올랐을 때' '주식이 올라서 여윳돈이 생겼을 때' '갑자기 공돈(?)이 생겼을 때' 등등…

다시 말해, 한우는 지갑 사정이 두둑할 때 소비하는 상품이다. 축산물 중 가장 윗등급의 '사치재'다.

사치재의 특징은 소득 증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소득이 줄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사치재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한우 가격과 금리는 정확히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올라 소비가 줄면, 한우 소비도 거의 즉각적으로 감소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경기 침체와 실질소득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소고기 수요를 지금보다 더 늘리기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넘치는 한우 공급을 해소할 새로운 수요가 절실히 필요하고, 그래서 한우 수출이 지금 중요한 것이다.

■ 공급 넘친다며…왜 계속 비싸?

이쯤 되면,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남는다.

공급이 넘친다면서, 왜 한웃값은 확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당연히 가격도 폭락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한우 공급이 넘치면서, 도매가는 1년 전보다 22% 정도 빠졌다. 그러나 소매가는 6% 정도 싸지는 데 그쳤다. (통계청, 5월 기준)

소비자 입장에서 '한웃값이 싸졌다'고 쉽게 체감하긴 힘든 상황이다.

이유는 '유통'에 숨어 있다. 한우는 농가에서 소비자까지, 보통 8단계를 거친다.

한우 특성상 도축, 발골, 정형을 꼭 거쳐야 하고, 단계마다 운송비와 인건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


공산품보다 유통 비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농수산물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현재 소비자가 내는 한웃값의 48%는 유통비용이다. 내가 10만 원을 내고 한우를 샀다면, 그중 4만 8천 원은 유통업계로 흘러가는 것이다.

유통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한우업계도 악전고투 중이지만, 유통비용의 비중은 줄기는커녕 더 늘고 있다.

소비자는 비싼 가격을 치르는데, 생산자 소득이 그리 늘지도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다.

[연관기사] 한우, 역대급 ‘초과 공급’…근데 왜 계속 비싸?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13210

그래픽 : 김홍식, 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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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우, 많아도 너무 많다…그런데 가격은 왜? [주말엔]
    • 입력 2023-07-02 09:00:10
    주말엔

오늘(2일)은 한우 업계에 뜻깊은 날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한우 수출이 첫발을 떼기 때문이다.

한우 2.5톤 (10마리 분량)을 실은 컨테이너 운반선이 인천항을 출발한다. 가는 곳은 말레이시아. 이달 14일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말레이시아로 한우 1,875톤(한우 7,500마리 분량)이 수출될 예정이다. 한해 625톤꼴이다.

지금까지는 2019년에 한우가 가장 많이 수출됐다. 그래 봐야 겨우 65톤이었다.

이번엔 거의 10배 가까운 수출 물량을 한 번에 확보했으니 개가를 올린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기념행사까지 열었을 정도다.

말레이시아 한우수출 첫 선적 기념행사, 지난달 29일(목) 인천항에서 열렸다.
■ 그 비싼 한우가 수출을?

사실 '한우'와 '수출' 두 단어는 매우 낯선 조합이다.

소고기는 국산이 외국산보다 훨씬 비싸다. 더 싼 소고기가 있는 곳에서 굳이 더 비싼 한우를 사 간다? 의아할 만하다.

그러나 한우 못지 않게 비싼 일본 '와규'(和牛, 화우)를 생각해보자. 와규가 쑥쑥 수출되는 걸 생각하면, 안될 일도 아니긴 하다.

일본 소고기 수출은 순항 중이다. 지난해 42개국에 513억 엔(약 5천억 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2030년에는 수출 물량을 3,600억 엔어치까지 늘리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한우도 수출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뚫은 말레이시아가 4번째 한우 수출국이다. 일본 와규와는 격차가 크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새로 수출할 국가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말레이시아 수출이 더 의미가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슬람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할랄' 인증(이슬람 신도가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이 꼭 필요한데, 그 문턱도 넘었다.

첫 '할랄' 관문을 통과했으니, 다른 이슬람 국가로 수출길을 넓힐 가능성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김민경/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 교수
Q. 한우는 비싼데, 수출 경쟁력이 있을까요?
A. 단순 비교를 하면 한우는 분명 가격 경쟁력이 낮죠. 하지만 일본 와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수출 대상 국가의 소비층을 고려한 품질과 맛을 유지하면 얼마든지 수출 가능합니다. 맛과 품질 측면에서 한우가 결코 와규에 뒤지지 않거든요.

수출하려는 국가의 문화와 종교, 인구와 소득 특성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춘 수출용 한우를 따로 생산해야 수출이 빠르게 늘 수 있을 겁니다.

■ 한우 수출, 뭣이 중하길래

그런데 한우 수출이 왜 중요할까. 정부가 기념식까지 열 정도로 의미를 두는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국내 한우의 수급 상황에 있다.

지금 한우, 많아도 너무 많다. 전례 없는 '초과 공급' 상태란 얘기다.

한우는 보통 3년 정도 키운 뒤 도축을 한다. 현재 사육 중인 소의 1/3 정도를 한해에 도축한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어느 시점에 한우 3마리를 키우고 있다면, 그해에는 1마리를 도축해 시장에 내놓는 구조다.

2013년 한우 파동이 있었다. 한웃값이 폭락했고, 상당수 농가가 한우 사육을 포기했다. 그해 도축된 한우가 96만 마리였다.

그런데 올해 94만~95만 마리 정도 도축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101만 마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계속 우상향이다.

같은 한국인데, '소' 세상은 저출산과 인구 절벽을 걱정하는 '인간' 세상과는 딴 판이다.

자료 : 김민경 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 교수
힘들게 해외 시장을 개척하지 말고, 국내 소비를 늘리면 되지 않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훨씬 익숙한 방법이긴 하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보통 언제 가족끼리 한우를 굽는가. 친구는 어떤 경우에 한우를 쏘는가.

'승진해서 월급이 올랐을 때' '주식이 올라서 여윳돈이 생겼을 때' '갑자기 공돈(?)이 생겼을 때' 등등…

다시 말해, 한우는 지갑 사정이 두둑할 때 소비하는 상품이다. 축산물 중 가장 윗등급의 '사치재'다.

사치재의 특징은 소득 증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소득이 줄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사치재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한우 가격과 금리는 정확히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올라 소비가 줄면, 한우 소비도 거의 즉각적으로 감소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경기 침체와 실질소득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소고기 수요를 지금보다 더 늘리기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넘치는 한우 공급을 해소할 새로운 수요가 절실히 필요하고, 그래서 한우 수출이 지금 중요한 것이다.

■ 공급 넘친다며…왜 계속 비싸?

이쯤 되면,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남는다.

공급이 넘친다면서, 왜 한웃값은 확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당연히 가격도 폭락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한우 공급이 넘치면서, 도매가는 1년 전보다 22% 정도 빠졌다. 그러나 소매가는 6% 정도 싸지는 데 그쳤다. (통계청, 5월 기준)

소비자 입장에서 '한웃값이 싸졌다'고 쉽게 체감하긴 힘든 상황이다.

이유는 '유통'에 숨어 있다. 한우는 농가에서 소비자까지, 보통 8단계를 거친다.

한우 특성상 도축, 발골, 정형을 꼭 거쳐야 하고, 단계마다 운송비와 인건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


공산품보다 유통 비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농수산물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현재 소비자가 내는 한웃값의 48%는 유통비용이다. 내가 10만 원을 내고 한우를 샀다면, 그중 4만 8천 원은 유통업계로 흘러가는 것이다.

유통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한우업계도 악전고투 중이지만, 유통비용의 비중은 줄기는커녕 더 늘고 있다.

소비자는 비싼 가격을 치르는데, 생산자 소득이 그리 늘지도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다.

[연관기사] 한우, 역대급 ‘초과 공급’…근데 왜 계속 비싸?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13210

그래픽 : 김홍식, 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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