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노동자 사고 “90%는 작업자 과실이라고요?” [취재후]

입력 2023.07.05 (09:22) 수정 2023.07.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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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어둠 속 작업...두려움과 싸운다

승강기 작업자 김 모 씨는 오늘도 어둡고 좁은 통로에서 홀로 묵묵히 일합니다.

15kg의 가방을 들고 아파트 꼭대기층을 걸어 올라가는 것, 폭염에는 소금 먹고 일해야 하는 것, 승강기를 빨리 고치라고 채근하는 이용자들의 민원을 참아내며 일하는 것은 일상이죠.

하지만, 추락·끼임 사고 위험에 대한 두려움 만큼은 숨길 수 없습니다. 안전모와 벨트 그리고 난간대가 몸을 의지할 유일한 도구들, 그러나 수리 현장마다 변수는 너무 많습니다.

승강기 전원이 잘 차단됐는지, 고장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를 손봐야 빨리 고쳐질지, 팔을 뻗다가 발을 헛디디진 않을지...어둠 속에서 빠른 판단과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승강기 작업자 김 씨/
"여긴 신축이라 비교적 안전한 곳입니다. 얼마 전 사고 난 데는, 오래된 아파트라 안전 난간대가 한 줄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오래된 곳은 아예 없는 곳도 있구요."


■ "혼자서는 못하겠어요"

이 같은 승강기 점검 및 보수 작업의 위험성을 잘 알기에, 승강기법 산하 고시는 '2인 1조 작업'을 의무 규정으로 정해뒀는데요.

승강기 안전운행 및 관리에 관한 운영규정 제16조(안전보건 규정의 준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62조에 따른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점검반을 소속 직원 2명 이상으로 구성하여 법 제31조에 따른 자체점검을 하게 하거나 대행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김 씨는 홀로 일합니다. 2인 1조로 작업하는 '대상'을 법이 명시하지 않은 탓입니다. 이렇다보니 회사와 노동자의 해석이 다릅니다.

오티스 노조 위원장 방규현
"회사 측은 '현장 당' 2인 점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규모를 엘리베이터 한 대의 규모로 보는 게 아니고 아파트 같이 전체의 한 단지를 현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해석 때문에 김 씨가 속한 글로벌 대기업 오티스(OTIS) 직원들은 승강기 1대를 혼자 책임지고 점검하고 수리합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이 회사 소속 20대 노동자가 작업 중 숨졌습니다.

그가 멀리 있는 동료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혼자서는 못하겠어요" 였습니다.
그러나 사망 사건 이후에도,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티스 노동조합 제공_사망한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오티스 노동조합 제공_사망한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 '2인 1조' 법 해석 않는 정부..."90% 작업자 과실"

법이 애매하면, 누가 고쳐야 할까요? 정부가 나서서 법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침묵하고 있습니다. KBS에도, 기업에도, 노동자들에게도.

"향후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관련 규정을 현실성 있게 검토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행전안전부, 2020년, 한국승강기관리산업협동조합 질의에 답)

"저희가 명확하게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의무 사항이지만 벌칙 조항이 없지 않습니까? 사회적으로 합의가 돼야..." (행전안전부, 2023년, KBS 질의에 대한 답)

정부도 일을 하긴 합니다. 승강기로 인한 사고가 나면, 통계 수집도 하고 원인도 분석하죠.

그 결과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승강기안전공단이 지난 4년간 승강기 작업과정에서 일어난 41건의 사고(10건 사망)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사고 원인의 90%(37건)를 '작업자' 과실로 분류했습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제공)

작업 당사자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건데... 오롯이 작업자의 부주의 문제일까요? 현장에서는 '사측이 안전 수칙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고 합니다.

승강기 작업자 김 씨 /
"(회사내부) 규정상으로는 한 명이 고장수리로 이동을 하는 경우에는 복귀를 할 때 까지는 작업을 중단하고 기다려야 되는 규칙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에 소화해야 되는 점검 대수가 정해져 있다 보니...."

정진우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우리나라의 안전절차서는 형식적인 것이 굉장히 많아요. 실제 작업은 오분인데 준비를 하는데 예를 들면 30분 걸린다 라고 하면 작업 시간이 쪼이겠죠. 그러면 안전 수칙을 안 지켜버리는 거예요"


■ 죽어야 적용되는 법

'작업자 과실' 때문에,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사측 책임은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인천지방법원 2018년 6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300만 원 벌금
"양형의 이유... 유리한 정상 : 망인의 부주의가 주된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17년 8월 손해배상 소송, 가족에게 약 9천만 원 배상 판결
"오티스가 망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을 30%로 제한한다. ... 이 사건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망인이 인접 3호기의 운행 정지를 요청하지 않는 데에 있다"

한정적이긴 하지만, '승강기 1인 작업'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측 책임은 인정되는 추세입니다. 특히 법원은 현장에 '안전 관리 지휘자'가 없었다는 점, 즉 '1인'이 작업했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다만 이 처벌은 '사망 이후에야 적용'됩니다. 승강기 점검 현장에서는 힘이 없는 법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럴듯한 처벌' 즉 '사후 처리'에 중심을 둘 게 아니라, '사전에 현장부터 챙겨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정진우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책임이 정치권과 행정부에 있습니다. 예방하고 지도하고 점검하는 것이 정부의 주된 역할인데 경찰을 흉내내고 있어요. 법제랑 정부 동향에 오티스 같은 대기업들은 민감하게 대응하거든요.... 산업안전공단하고 고용노동부 합치면요, 미국의 행정조직하고 비교했을 때 근로자 만 명당 8.5배가 많고요, 일본보다 4.5배가 많아요. 진짜 가성비 떨어지죠."

■ 김용균도, 제빵공장 끼임 사고도...N년째 해결 안 되는 '2인 1조'

'2인 1조'는 승강기뿐 아니라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 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입니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 군 (19살),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진 김용균 씨 (24살), 지난해 10월 발생한 평택 SPL 제빵공장 끼임 사고 (23살) 모두 사내에 '2인 1조' 매뉴얼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은 사롑니다.

그나마, '사내 매뉴얼'에 '2인 1조 작업'이 명시돼 있어서 사측의 안전관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입니다. 현행법에는 '2인 1조 의무 규정'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논란 속에서도 '2인 1조'는 법제화도 그 논의도 아직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만 전체 산업현장에서 숨진 20대 노동자는 20명, 모두 644명이 숨졌습니다.
정부의 침묵 속에, 노동자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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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강기 노동자 사고 “90%는 작업자 과실이라고요?” [취재후]
    • 입력 2023-07-05 09:22:09
    • 수정2023-07-05 09:29:40
    취재후·사건후

■나홀로 어둠 속 작업...두려움과 싸운다

승강기 작업자 김 모 씨는 오늘도 어둡고 좁은 통로에서 홀로 묵묵히 일합니다.

15kg의 가방을 들고 아파트 꼭대기층을 걸어 올라가는 것, 폭염에는 소금 먹고 일해야 하는 것, 승강기를 빨리 고치라고 채근하는 이용자들의 민원을 참아내며 일하는 것은 일상이죠.

하지만, 추락·끼임 사고 위험에 대한 두려움 만큼은 숨길 수 없습니다. 안전모와 벨트 그리고 난간대가 몸을 의지할 유일한 도구들, 그러나 수리 현장마다 변수는 너무 많습니다.

승강기 전원이 잘 차단됐는지, 고장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를 손봐야 빨리 고쳐질지, 팔을 뻗다가 발을 헛디디진 않을지...어둠 속에서 빠른 판단과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승강기 작업자 김 씨/
"여긴 신축이라 비교적 안전한 곳입니다. 얼마 전 사고 난 데는, 오래된 아파트라 안전 난간대가 한 줄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오래된 곳은 아예 없는 곳도 있구요."


■ "혼자서는 못하겠어요"

이 같은 승강기 점검 및 보수 작업의 위험성을 잘 알기에, 승강기법 산하 고시는 '2인 1조 작업'을 의무 규정으로 정해뒀는데요.

승강기 안전운행 및 관리에 관한 운영규정 제16조(안전보건 규정의 준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62조에 따른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점검반을 소속 직원 2명 이상으로 구성하여 법 제31조에 따른 자체점검을 하게 하거나 대행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김 씨는 홀로 일합니다. 2인 1조로 작업하는 '대상'을 법이 명시하지 않은 탓입니다. 이렇다보니 회사와 노동자의 해석이 다릅니다.

오티스 노조 위원장 방규현
"회사 측은 '현장 당' 2인 점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규모를 엘리베이터 한 대의 규모로 보는 게 아니고 아파트 같이 전체의 한 단지를 현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해석 때문에 김 씨가 속한 글로벌 대기업 오티스(OTIS) 직원들은 승강기 1대를 혼자 책임지고 점검하고 수리합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이 회사 소속 20대 노동자가 작업 중 숨졌습니다.

그가 멀리 있는 동료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혼자서는 못하겠어요" 였습니다.
그러나 사망 사건 이후에도,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티스 노동조합 제공_사망한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 '2인 1조' 법 해석 않는 정부..."90% 작업자 과실"

법이 애매하면, 누가 고쳐야 할까요? 정부가 나서서 법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침묵하고 있습니다. KBS에도, 기업에도, 노동자들에게도.

"향후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관련 규정을 현실성 있게 검토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행전안전부, 2020년, 한국승강기관리산업협동조합 질의에 답)

"저희가 명확하게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의무 사항이지만 벌칙 조항이 없지 않습니까? 사회적으로 합의가 돼야..." (행전안전부, 2023년, KBS 질의에 대한 답)

정부도 일을 하긴 합니다. 승강기로 인한 사고가 나면, 통계 수집도 하고 원인도 분석하죠.

그 결과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승강기안전공단이 지난 4년간 승강기 작업과정에서 일어난 41건의 사고(10건 사망)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사고 원인의 90%(37건)를 '작업자' 과실로 분류했습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제공)

작업 당사자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건데... 오롯이 작업자의 부주의 문제일까요? 현장에서는 '사측이 안전 수칙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고 합니다.

승강기 작업자 김 씨 /
"(회사내부) 규정상으로는 한 명이 고장수리로 이동을 하는 경우에는 복귀를 할 때 까지는 작업을 중단하고 기다려야 되는 규칙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에 소화해야 되는 점검 대수가 정해져 있다 보니...."

정진우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우리나라의 안전절차서는 형식적인 것이 굉장히 많아요. 실제 작업은 오분인데 준비를 하는데 예를 들면 30분 걸린다 라고 하면 작업 시간이 쪼이겠죠. 그러면 안전 수칙을 안 지켜버리는 거예요"


■ 죽어야 적용되는 법

'작업자 과실' 때문에,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사측 책임은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인천지방법원 2018년 6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300만 원 벌금
"양형의 이유... 유리한 정상 : 망인의 부주의가 주된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17년 8월 손해배상 소송, 가족에게 약 9천만 원 배상 판결
"오티스가 망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을 30%로 제한한다. ... 이 사건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망인이 인접 3호기의 운행 정지를 요청하지 않는 데에 있다"

한정적이긴 하지만, '승강기 1인 작업'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측 책임은 인정되는 추세입니다. 특히 법원은 현장에 '안전 관리 지휘자'가 없었다는 점, 즉 '1인'이 작업했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다만 이 처벌은 '사망 이후에야 적용'됩니다. 승강기 점검 현장에서는 힘이 없는 법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럴듯한 처벌' 즉 '사후 처리'에 중심을 둘 게 아니라, '사전에 현장부터 챙겨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정진우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책임이 정치권과 행정부에 있습니다. 예방하고 지도하고 점검하는 것이 정부의 주된 역할인데 경찰을 흉내내고 있어요. 법제랑 정부 동향에 오티스 같은 대기업들은 민감하게 대응하거든요.... 산업안전공단하고 고용노동부 합치면요, 미국의 행정조직하고 비교했을 때 근로자 만 명당 8.5배가 많고요, 일본보다 4.5배가 많아요. 진짜 가성비 떨어지죠."

■ 김용균도, 제빵공장 끼임 사고도...N년째 해결 안 되는 '2인 1조'

'2인 1조'는 승강기뿐 아니라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 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입니다.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 군 (19살),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진 김용균 씨 (24살), 지난해 10월 발생한 평택 SPL 제빵공장 끼임 사고 (23살) 모두 사내에 '2인 1조' 매뉴얼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은 사롑니다.

그나마, '사내 매뉴얼'에 '2인 1조 작업'이 명시돼 있어서 사측의 안전관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입니다. 현행법에는 '2인 1조 의무 규정'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논란 속에서도 '2인 1조'는 법제화도 그 논의도 아직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만 전체 산업현장에서 숨진 20대 노동자는 20명, 모두 644명이 숨졌습니다.
정부의 침묵 속에, 노동자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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