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없어진 난간 자리에 ‘테이프’…한 달 지나 주민 추락 [판결남]

입력 2023.07.05 (09:25) 수정 2023.07.05 (09:2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장마가 왔습니다.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고, 파손되는 일도 잦을 텐데요. 만약 비가 온 지 한참이 지나도록 도로를 제대로 고치지 않다가 그만 사람이 다쳤다면, 지자체는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까요? 다친 사람이 주민이었다면 또 어떨까요?

폭우로 망가진 기반 시설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명사고가 난 경우, 그 책임 소재를 따진 최신 판결을 전해 드립니다.

■ 폭우로 사라진 도로 난간…한 달 뒤 자전거 타던 60대 노인 벼랑 추락

2020년 8월 초 가평군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도로 일부와 보호 난간이 사라졌는데요. 난간이 없어진 곳은 직선도로와 곡선도로가 만나는 부분으로, 도로 바깥 부분이 급경사인 곳이었습니다.

비가 오던 8월 6일, 가평군은 이 도로를 통제한다는 재난문자를 주민들에게 보냈고, 도로 일부와 보호난간이 없어진 부분에는 노란색의 안전띠(테이프)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이후 8월 말과 9월 초 많은 비가 내렸지만 8월 중순에는 강수량이 적거나 거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9월, 60대 A 씨는 전조등이 부착된 자전거를 타고 한밤중에 이곳을 지나가던 중 굽은 도로에서 난간이 없어진 틈새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A 씨는 뇌진탕과 안면부 열상 등의 상처를 입었고 수술 후에도 이마에 10㎝가량의 흉터가 남게 됐습니다. A 씨는 위자료를 포함해 9천여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가평군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 법원 "난간 없어졌는데 테이프만 설치…관리상 하자"

의정부지방법원(판사 조종현)은 A 씨가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최근 확정했습니다.

법원은 "지자체가 도로 일부와 보호난간이 유실된 부분에 노란색의 안전띠(테이프)만 설치하고 다른 보강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내판이나 임시 진입차단시설을 설치하거나 조명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가평군의 도로 관리상 하자가 있고, 이로 인해 A 씨가 상해를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A 씨가 전방을 주시하면서 낮은 속도로 안전하게 운전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손해 확대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지자체 책임을 40%로 제한했고, 가평군이 A 씨에게 위자료 800만 원을 포함해 4,5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특히 A 씨가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조명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굽은 도로를 지나갔던 점 △가평군에 거주해 그 무렵 폭우로 인해 도로가 침수되거나 유실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던 점도 책임 제한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폭우가 온 지 한참 시일이 지나 주민이 도로가 망가진 사실을 알았을 수 있더라도 관리 주체인 지자체가 이를 제대로 보수하지 않은 채 놔뒀다 지나가던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판결은 지난 5월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폭우로 없어진 난간 자리에 ‘테이프’…한 달 지나 주민 추락 [판결남]
    • 입력 2023-07-05 09:25:01
    • 수정2023-07-05 09:29:30
    취재후·사건후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장마가 왔습니다. 폭우로 도로가 침수되고, 파손되는 일도 잦을 텐데요. 만약 비가 온 지 한참이 지나도록 도로를 제대로 고치지 않다가 그만 사람이 다쳤다면, 지자체는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까요? 다친 사람이 주민이었다면 또 어떨까요?

폭우로 망가진 기반 시설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명사고가 난 경우, 그 책임 소재를 따진 최신 판결을 전해 드립니다.

■ 폭우로 사라진 도로 난간…한 달 뒤 자전거 타던 60대 노인 벼랑 추락

2020년 8월 초 가평군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도로 일부와 보호 난간이 사라졌는데요. 난간이 없어진 곳은 직선도로와 곡선도로가 만나는 부분으로, 도로 바깥 부분이 급경사인 곳이었습니다.

비가 오던 8월 6일, 가평군은 이 도로를 통제한다는 재난문자를 주민들에게 보냈고, 도로 일부와 보호난간이 없어진 부분에는 노란색의 안전띠(테이프)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이후 8월 말과 9월 초 많은 비가 내렸지만 8월 중순에는 강수량이 적거나 거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9월, 60대 A 씨는 전조등이 부착된 자전거를 타고 한밤중에 이곳을 지나가던 중 굽은 도로에서 난간이 없어진 틈새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A 씨는 뇌진탕과 안면부 열상 등의 상처를 입었고 수술 후에도 이마에 10㎝가량의 흉터가 남게 됐습니다. A 씨는 위자료를 포함해 9천여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가평군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 법원 "난간 없어졌는데 테이프만 설치…관리상 하자"

의정부지방법원(판사 조종현)은 A 씨가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최근 확정했습니다.

법원은 "지자체가 도로 일부와 보호난간이 유실된 부분에 노란색의 안전띠(테이프)만 설치하고 다른 보강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내판이나 임시 진입차단시설을 설치하거나 조명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가평군의 도로 관리상 하자가 있고, 이로 인해 A 씨가 상해를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A 씨가 전방을 주시하면서 낮은 속도로 안전하게 운전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손해 확대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지자체 책임을 40%로 제한했고, 가평군이 A 씨에게 위자료 800만 원을 포함해 4,5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특히 A 씨가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조명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굽은 도로를 지나갔던 점 △가평군에 거주해 그 무렵 폭우로 인해 도로가 침수되거나 유실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던 점도 책임 제한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폭우가 온 지 한참 시일이 지나 주민이 도로가 망가진 사실을 알았을 수 있더라도 관리 주체인 지자체가 이를 제대로 보수하지 않은 채 놔뒀다 지나가던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판결은 지난 5월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