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한번 열면 되는데…홍천군 1년 쓸 전기 ‘줄줄’

입력 2023.07.06 (06:01) 수정 2023.07.0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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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볼까요. 편의점의 흔한 냉장고들입니다.

왼쪽은 개방형 냉장고. 우유나 소세지, 도시락 등을 주로 진열합니다.

오른쪽은 도어형 냉장고. 보통 음료 상품을 보관합니다.

■ 문 열린 냉장고가 더 시원하다

냉장고 문이 '있고 없고' 차이는 매우 큽니다.

복잡한 설명이 굳이 필요 없겠죠? 집에서 냉장고 문을 안 닫았을 때, 돌아오는 타박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개방형 냉장고는 문이 없는 만큼 냉기가 셉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품 보관 적정 온도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한국소비자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중의 편의점 60곳을 무작위로 조사했습니다.

개방형과 도어형 냉장고에 각각 보관된 식품 829개(개방형 534개, 도어형 295개)를 확인했는데, 냉장 온도가 높아 식품이 변질된 사례는 없었습니다. 다행이긴 합니다.

그런데… 마냥 다행이기만 할까요.

각 냉장고 안에 보관된 식품의 평균 온도를 비교해봤습니다.

- 도어형 냉장고 : 7.7℃
- 개방형 냉장고 : 6.9℃

개방형 냉장고가 문이 없으니 온도가 더 높을 것 같은데, 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만큼 냉기를 세게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개방형 냉장고가 냉장 온도를 더 낮게 설정했던 겁니다.

만에 하나 변질된 식품을 팔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예전보다 훨씬 큰 사회적 비난이 종종 돌아옵니다.

십자포화의 위험을 감수할 바에야, 냉장 온도를 1도 더 낮추는 걸 선택하는 겁니다.


냉장고 문이 열렸는데 식품이 안전하다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전기 소모량이 상당합니다. 개방형이 아닌 도어형 냉장고였다면 안 써도 될 전기입니다.

낭비되는 전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계산해봤습니다.

개방형 냉장고 1대를 도어형으로 바꾸면, 연간 1,511kWh(킬로와트시)의 전기를 아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평균적인 국민 한 명이 1달 반~2달 정도 쓰는 전기량입니다.

2021년 기준 국민 1인당 전력소비량은 평균 1만 330 kWh(키로와트시)입니다.

전국의 편의점은 5만 2천여 곳입니다. 이곳의 모든 개방형 냉장고를 도어형으로 바꾼다고 가정하면, 연간 약 73만 403 MWh(메가와트시)를 아낄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면, 강원 홍천군의 주민들이 1년 동안 쓰는 전기보다 많습니다.

올해 6월 현재 강원 홍천군의 인구는 6만 7,632명. 1인당 평균 전력 소비량을 곱하면, 홍천군 전체 군민은 1년에 약 69만 8,638 MWh를 씁니다.

■ 개방형 냉장고, 언제부터 왜 쓸까

편의점에는 왜 문 없는 냉장고가 있는 걸까요.

편의점 업계에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옛날부터 그래와서"였습니다.

Q. 삼각김밥 같은 식품들도 문이 있는 냉장고에 보관해도 되는데, 문이 없는 냉장고를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A. 옛날부터 그냥 자연스럽게 써 왔습니다. 편의점이 일본에서 들어왔잖아요. 일본이 그렇게 계속해서 해 왔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편의점도 다 그렇게 진행을 해 왔고요.

부수적 효과도 있을 겁니다.

문 없는 냉장고는 상품이 눈 앞에 바로 보이기 때문에 상품의 접근성이 좋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문을 열 수고도 덜게 되니 소비자 친화적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문 한 번 열었다 닫는 수고만 감수하면, 7만여 명이 1년간 쓸 전기를 아낄 수 있습니다.

전국의 편의점만 쳤을 때 이렇다는 얘기입니다. 개방형 냉장고가 편의점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형 마트, 슈퍼마켓, 카페 등에 있는 것까지 생각하면 절약 가능한 규모는 훨씬 크겠죠.

■ 냉장고 문 달기, 정부 지원이 있긴 있는데

사진 출처 : 연합뉴스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무수한 개방형 냉장고를 당장 도어형으로 교체하긴 쉽지 않습니다. 비용만 해도 엄청날 것이고, 그 돈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 논란도 클 겁니다.

급한 대안은 개방형 냉장고에 문을 다는 겁니다. 그것도 돈이 들긴 하지만, 훨씬 쌉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3월부터 '냉장고 문 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한국전력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롯데마트·롯데슈퍼·CU 매장을 대상으로 냉장고 문을 다는 데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냉장고 도어 ㎡당 6만 원을 지원합니다. 평균적인 크기의 문 1장으로 환산하면, 문 1장 달 때 대략 4만 9천 원을 지원해 줍니다.

이번 달까지 롯데마트는 개방형 냉장고에 문 만 3천여 개를 달았고, 롯데슈퍼도 690개에 문을 설치했습니다.

지난달(6월)부터는 에너지 지원금 60억 원을 확보해 프랜차이즈가 아닌 일반 식품 판매장에도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식약처는 '냉장고 문 달기'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계획인데요. 내년 예산에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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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6 06:01:28
    • 수정2023-07-06 13: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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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볼까요. 편의점의 흔한 냉장고들입니다.

왼쪽은 개방형 냉장고. 우유나 소세지, 도시락 등을 주로 진열합니다.

오른쪽은 도어형 냉장고. 보통 음료 상품을 보관합니다.

■ 문 열린 냉장고가 더 시원하다

냉장고 문이 '있고 없고' 차이는 매우 큽니다.

복잡한 설명이 굳이 필요 없겠죠? 집에서 냉장고 문을 안 닫았을 때, 돌아오는 타박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개방형 냉장고는 문이 없는 만큼 냉기가 셉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품 보관 적정 온도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한국소비자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중의 편의점 60곳을 무작위로 조사했습니다.

개방형과 도어형 냉장고에 각각 보관된 식품 829개(개방형 534개, 도어형 295개)를 확인했는데, 냉장 온도가 높아 식품이 변질된 사례는 없었습니다. 다행이긴 합니다.

그런데… 마냥 다행이기만 할까요.

각 냉장고 안에 보관된 식품의 평균 온도를 비교해봤습니다.

- 도어형 냉장고 : 7.7℃
- 개방형 냉장고 : 6.9℃

개방형 냉장고가 문이 없으니 온도가 더 높을 것 같은데, 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만큼 냉기를 세게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개방형 냉장고가 냉장 온도를 더 낮게 설정했던 겁니다.

만에 하나 변질된 식품을 팔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예전보다 훨씬 큰 사회적 비난이 종종 돌아옵니다.

십자포화의 위험을 감수할 바에야, 냉장 온도를 1도 더 낮추는 걸 선택하는 겁니다.


냉장고 문이 열렸는데 식품이 안전하다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전기 소모량이 상당합니다. 개방형이 아닌 도어형 냉장고였다면 안 써도 될 전기입니다.

낭비되는 전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계산해봤습니다.

개방형 냉장고 1대를 도어형으로 바꾸면, 연간 1,511kWh(킬로와트시)의 전기를 아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평균적인 국민 한 명이 1달 반~2달 정도 쓰는 전기량입니다.

2021년 기준 국민 1인당 전력소비량은 평균 1만 330 kWh(키로와트시)입니다.

전국의 편의점은 5만 2천여 곳입니다. 이곳의 모든 개방형 냉장고를 도어형으로 바꾼다고 가정하면, 연간 약 73만 403 MWh(메가와트시)를 아낄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면, 강원 홍천군의 주민들이 1년 동안 쓰는 전기보다 많습니다.

올해 6월 현재 강원 홍천군의 인구는 6만 7,632명. 1인당 평균 전력 소비량을 곱하면, 홍천군 전체 군민은 1년에 약 69만 8,638 MWh를 씁니다.

■ 개방형 냉장고, 언제부터 왜 쓸까

편의점에는 왜 문 없는 냉장고가 있는 걸까요.

편의점 업계에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옛날부터 그래와서"였습니다.

Q. 삼각김밥 같은 식품들도 문이 있는 냉장고에 보관해도 되는데, 문이 없는 냉장고를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A. 옛날부터 그냥 자연스럽게 써 왔습니다. 편의점이 일본에서 들어왔잖아요. 일본이 그렇게 계속해서 해 왔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편의점도 다 그렇게 진행을 해 왔고요.

부수적 효과도 있을 겁니다.

문 없는 냉장고는 상품이 눈 앞에 바로 보이기 때문에 상품의 접근성이 좋아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문을 열 수고도 덜게 되니 소비자 친화적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문 한 번 열었다 닫는 수고만 감수하면, 7만여 명이 1년간 쓸 전기를 아낄 수 있습니다.

전국의 편의점만 쳤을 때 이렇다는 얘기입니다. 개방형 냉장고가 편의점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형 마트, 슈퍼마켓, 카페 등에 있는 것까지 생각하면 절약 가능한 규모는 훨씬 크겠죠.

■ 냉장고 문 달기, 정부 지원이 있긴 있는데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무수한 개방형 냉장고를 당장 도어형으로 교체하긴 쉽지 않습니다. 비용만 해도 엄청날 것이고, 그 돈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 논란도 클 겁니다.

급한 대안은 개방형 냉장고에 문을 다는 겁니다. 그것도 돈이 들긴 하지만, 훨씬 쌉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3월부터 '냉장고 문 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한국전력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롯데마트·롯데슈퍼·CU 매장을 대상으로 냉장고 문을 다는 데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냉장고 도어 ㎡당 6만 원을 지원합니다. 평균적인 크기의 문 1장으로 환산하면, 문 1장 달 때 대략 4만 9천 원을 지원해 줍니다.

이번 달까지 롯데마트는 개방형 냉장고에 문 만 3천여 개를 달았고, 롯데슈퍼도 690개에 문을 설치했습니다.

지난달(6월)부터는 에너지 지원금 60억 원을 확보해 프랜차이즈가 아닌 일반 식품 판매장에도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식약처는 '냉장고 문 달기'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계획인데요. 내년 예산에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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