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올 여름, 불볕더위와 폭우가 꼬리를 물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쪽방촌 노인들은 더위와 싸우고, 습도를 견뎌내며 더욱 힘든 여름을 나고 있는데요. 온열질환자가 나오는 시기도 점점 빨라지면서, 거동이 힘든 독거노인들을 위한 안전망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의 한 주택가. 거주자 대부분이 고령층이다.
80대 노인 한 명이 살고 있는 단칸방. 취재진까지 들어가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협소했다.
기온이 31도까지 오른 무더웠던 4일 오후, 취재진은 한 노인 요양보호사를 따라 노인들이 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의 한 주택가를 찾아갔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이인순 할머니가 사는 방은 고작 12㎡ 남짓했습니다.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입니다. 좁은 방에는 창문도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옆 건물과 마주하고 있어 바람 한 점 안 들었습니다. 방 안에 돌아가는 선풍기 2대에서는 더운 바람만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인순 할머니가 이렇게 푹푹 찌는 방 안에서 더위를 피할 방법은 꼼짝 않는 길밖에 없습니다. 할머니는 더위를 이길 길이 없어 온종일 침대에 그냥 누워서 버틴다고 말했습니다. 목에는 젖은 수건을 감고, 한 손에는 또 다른 손수건을 쥐고 연신 땀방울을 닦아 냈습니다.
방 안에 설치된 선풍기에선 더운 바람만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륵 흐릅니다.
"선풍기를 켜도 더우니까 힘들죠. 숨이 차면 꼼짝을 못 해요. 그럴 때는 막 땀이 비 오듯 쏟아져요. 화장실 갔다 와도 숨차고. 조금 이렇게 주방에 갔다 와도 숨차고, 요양사님이 집안일 좀 해 주시고 그러죠."
집안에서 조금 움직이기 쉽지 않은 탓에 무더위쉼터에 가는 일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여름이 더 힘든 건, 폭우와 장맛비가 며칠 간격으로 번갈아 가며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푹푹 찌는 더위에 못 견딜 습도까지 노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같은 동네의 또 다른 집의 방 한쪽엔 높은 습도 때문에 곰팡이가 잔뜩 슬어 있었다.
80세 유순자 할머니가 20년 동안 살아온 집에선, 이런 상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쪽 방 벽면에 곰팡이가 시커멓게 슬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기요금이 올랐다는 소식에 에어컨은 틀 엄두도 못 냅니다. 이른 더위에 벌써 지쳐 있는 할머니는, 한 달 넘게 남은 여름을 어떻게 견딜지 까마득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선풍기 틀어놓고 정 더우면 에어컨 틀어놓고 하지만 올해는 아직 안 틀었어요. 전기세 때문에 그렇죠. 부담될까봐. 올해는 더 더워요. 맨날 세수하고서 물수건이나 가져다 시원하게 해야죠."
전국적으로 이렇게 폭염 피해에 노출된 노인들은 45만 명이 넘습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맞춤 돌봄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입니다.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중점 관리 대상이 됩니다. 대부분이 병이 있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홀몸 노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온조절 기능이 떨어져 폭염 속에선 고체온증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여기에 제때 수분 섭취를 못하면 탈수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만성질환까지 앓고 있는 경우, 폭염 속에서 더욱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이 더운 날을 오롯이 버텨야 하는 노인들의 안전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부턴 5월부터 온열질환자가 나오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경우, 40%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올해는 더위도 유난히 일찍 시작했습니다. 6월 중순부터 폭염특보가 내려질 정도로 빨리 더워졌습니다. 실제로 2년 전만 해도 5월 온열질환자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는 5월부터 온열질환자가 30명 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노인들은 더위에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춘천의 한 노인복지센터 대표 김정숙 씨는 노인들을 위한 폭염 대책을 더 서둘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르신들은 뭐든지 아끼려고 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있더라도 안 트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고령일수록 움직이기 힘들어서 집 밖을 나가시는 경우도 적어지고요. 어르신들에 대한 집중 관리를 요구하는 시청 공문을 받은 게 6월 말이었어요. 이런 관리를 7~8월에 하기보다는 5월쯤에 미리 대비해서 사전에 안내나 관리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이제 7월 초순. 더위는 8월까지 계속됩니다. 어느 때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국 지자체들 마다 무더위쉼터 운영과 냉방 용품 배포 등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걱정이 됩니다. 이마저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겐 먼 얘기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취약계층에게는 더 두려운 재난이 된 폭염. 이들을 위한 더 촘촘한 안전망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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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무는 폭염·폭우’ 더 힘겨운 쪽방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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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7-06 07:00:13
올 여름, 불볕더위와 폭우가 꼬리를 물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쪽방촌 노인들은 더위와 싸우고, 습도를 견뎌내며 더욱 힘든 여름을 나고 있는데요. 온열질환자가 나오는 시기도 점점 빨라지면서, 거동이 힘든 독거노인들을 위한 안전망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br />
기온이 31도까지 오른 무더웠던 4일 오후, 취재진은 한 노인 요양보호사를 따라 노인들이 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의 한 주택가를 찾아갔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이인순 할머니가 사는 방은 고작 12㎡ 남짓했습니다.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입니다. 좁은 방에는 창문도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옆 건물과 마주하고 있어 바람 한 점 안 들었습니다. 방 안에 돌아가는 선풍기 2대에서는 더운 바람만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인순 할머니가 이렇게 푹푹 찌는 방 안에서 더위를 피할 방법은 꼼짝 않는 길밖에 없습니다. 할머니는 더위를 이길 길이 없어 온종일 침대에 그냥 누워서 버틴다고 말했습니다. 목에는 젖은 수건을 감고, 한 손에는 또 다른 손수건을 쥐고 연신 땀방울을 닦아 냈습니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륵 흐릅니다.
"선풍기를 켜도 더우니까 힘들죠. 숨이 차면 꼼짝을 못 해요. 그럴 때는 막 땀이 비 오듯 쏟아져요. 화장실 갔다 와도 숨차고. 조금 이렇게 주방에 갔다 와도 숨차고, 요양사님이 집안일 좀 해 주시고 그러죠."
집안에서 조금 움직이기 쉽지 않은 탓에 무더위쉼터에 가는 일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여름이 더 힘든 건, 폭우와 장맛비가 며칠 간격으로 번갈아 가며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푹푹 찌는 더위에 못 견딜 습도까지 노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80세 유순자 할머니가 20년 동안 살아온 집에선, 이런 상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쪽 방 벽면에 곰팡이가 시커멓게 슬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기요금이 올랐다는 소식에 에어컨은 틀 엄두도 못 냅니다. 이른 더위에 벌써 지쳐 있는 할머니는, 한 달 넘게 남은 여름을 어떻게 견딜지 까마득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선풍기 틀어놓고 정 더우면 에어컨 틀어놓고 하지만 올해는 아직 안 틀었어요. 전기세 때문에 그렇죠. 부담될까봐. 올해는 더 더워요. 맨날 세수하고서 물수건이나 가져다 시원하게 해야죠."
전국적으로 이렇게 폭염 피해에 노출된 노인들은 45만 명이 넘습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맞춤 돌봄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입니다.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중점 관리 대상이 됩니다. 대부분이 병이 있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홀몸 노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체온조절 기능이 떨어져 폭염 속에선 고체온증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여기에 제때 수분 섭취를 못하면 탈수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만성질환까지 앓고 있는 경우, 폭염 속에서 더욱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이 더운 날을 오롯이 버텨야 하는 노인들의 안전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올해는 더위도 유난히 일찍 시작했습니다. 6월 중순부터 폭염특보가 내려질 정도로 빨리 더워졌습니다. 실제로 2년 전만 해도 5월 온열질환자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는 5월부터 온열질환자가 30명 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노인들은 더위에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춘천의 한 노인복지센터 대표 김정숙 씨는 노인들을 위한 폭염 대책을 더 서둘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르신들은 뭐든지 아끼려고 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있더라도 안 트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고령일수록 움직이기 힘들어서 집 밖을 나가시는 경우도 적어지고요. 어르신들에 대한 집중 관리를 요구하는 시청 공문을 받은 게 6월 말이었어요. 이런 관리를 7~8월에 하기보다는 5월쯤에 미리 대비해서 사전에 안내나 관리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이제 7월 초순. 더위는 8월까지 계속됩니다. 어느 때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국 지자체들 마다 무더위쉼터 운영과 냉방 용품 배포 등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걱정이 됩니다. 이마저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겐 먼 얘기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취약계층에게는 더 두려운 재난이 된 폭염. 이들을 위한 더 촘촘한 안전망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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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연 기자 dakgalb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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