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사원 규정의 ‘열람’ 뜻 놓고 공방…내부공문 입수해 보니

입력 2023.07.06 (11: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보고서 처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두고 격론이 오갔습니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전현희 전 위원장 감사의 주심이었던 조은석 감사위원이 최종 감사결과보고서를 '열람'하지 않았는데도 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됐다며,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감사원 실세로 통하는 유병호 사무총장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감사원 사무규칙에 나와 있는 주심 감사위원의 열람은 '결재'의 의미가 아니고, 보고서를 '보는'(읽는)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 중 일부 내용(2023년 6월 29일)

김의겸 위원 : 조은석 감사위원 컴퓨터에 '열람'과 '반려' 두 가지 버튼이 있죠?
유병호 사무총장 : 제가 버튼까지는 안 봤습니다마는.
김의겸 위원 : 확인했습니다. 넘어가겠습니다.
유병호 사무총장 : 그분(조은석 감사위원)이 단군 이래 제일 많이 열람했습니다.
(중략)
김의겸 위원 : 전자문서에서 열람했습니까?
유병호 사무총장 : 전자문서에서 제가 보지는 못했고요. 서면으로 아주 자주 보셨고.
김의겸 위원 : 서면으로 보더라도 전자정보법에 의하면 화면에서 모니터상에서 버튼을 눌러야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유병호 사무총장 : 그건 화면으로 보시든 서면으로 보시든 대면으로든 보시면 됩니다.

감사원 감사결과보고서는,
(1)감사원 사무처의 감사 내용을 7명의 감사위원이 심의하고
(2)심의 내용을 반영해 다시 사무처가 수정하면
(3) 주심 감사위원이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4) 외부에 시행(공개)됩니다.

모든 과정은 전자결재시스템으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번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감사에서는 (3)번 절차, 즉 주심 감사위원이 전자결재를 하지 않았는데도, 감사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 사무처가 내부의 전자결재시스템을 아예 바꾼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주심 감사위원이 전자결재를 하지 않아도 감사보고서 시행을 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감사원 사무처는 주심 위원에게 감사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 '결재' 권한을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조은석 감사위원과 야당은 법에 정해진 주심 위원의 '전자결재' 절차를 밟지 않았으니 이번 보고서 공개 절차가 법을 어긴 거라고 주장합니다.

실체적 진실은 뭘까요? 감사원 내부 공문을 입수해 확인해 봤습니다.
감사원 내부 공문 (자료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감사원 내부 공문 (자료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

■감사원 내부 공문 살펴보니...'열람 결재'라는 표현 명기

위 문건은 이번에 감사원이 내부 전자결재시스템을 바꾸면서 만든 공문입니다.

전현희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를 맡았던 특별조사국 이기대 5과장, 김숙동 국장, 김영신 공직감찰본부장 결재로 시행됐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아래 내용입니다.

주심위원의 전산상 열람 결재 절차를 생략하고 단순 열람만 가능하도록 조치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원의 공식 문서에서조차 주심 감사위원의 확인 절차를 '열람 결재'라고 표현한 뒤, 이를 '단순 열람'으로 바꿔 달라는 문구가 쓰인 겁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주심 감사위원이 단순 열람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감사원 스스로 '열람 결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실제 복수의 감사원 관계자들은 '열람 결재'라는 표현이 내부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주심 감사위원이 단순 열람만 하는 게 아니라, 열람+결재까지 하는 것을 감사원 내에서 인정해 왔다는 겁니다.

최근 최재해 감사원장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발언에서도 이런 내용이 드러납니다.

당시 최 원장은 감사보고서 공개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스스로 주심위원의 최종 확인 절차를 '결재'라고 표현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 중 일부 내용(2023년 6월 29일)

최재해 감사원장 : 주심위원께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튼 결재를 안 하고 있는 그런 상태에서 감사 부서에서 그 시스템, 결재 없이 열람은 다 했으니까 승인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시스템을 관리하는 부서에 요청을 했고...

순서대로 시스템을 구현하다 보니까 앞에 심의상 검토 그다음에 사무총장 결재 그다음 단계가 주심위원이 열람하는 거로 돼 있다 보니까 열람 결재가 있고 그 다음에 시행하는 이런 단계로 넘어가는데요.

이에 대해 감사원 사무처는 지금까지의 관행이 문제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동안 감사보고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주심위원의 클릭이 결재인 것처럼 감사원 전산시스템에 잘못 구현돼 있었는데, 이 부분을 뒤늦게 바로잡아 가는 중이라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 사무처 관계자는 "감사원 내부에서 열람 결재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열람'이 '결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결재는 사무총장의 권한이라는 점이 명확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결과보고서의 결재와 시행에 대한 감사원 내부 규정은 어떻게 돼 있을까요.

「감사사무 등 처리에 관한 규정」 제66조 (감사결과의 시행)

② 감사위원회의에서 처리안을 변경하여 시행하도록 의결된 때에는 변경 의결된 내용을 기안하고 변경의결사항 대조표를 첨부하여 심의실장의 검토 및 사무총장의 결재를 받고 주심 감사위원의 열람을 받아 시행한다.

감사원 사무처의 주장대로 규정을 보면 사무총장의 '결재'를 받고 주심 감사위원의 '열람'을 받아 시행한다고 돼 있습니다.

감사원 사무처가 열람을 '의무적인 결재 절차'가 아니라 '읽고 보는 선택적인 절차'라고 해석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열람 뒤에 왜 '받아'라는 서술어를 넣었는지 생각해 보면, 열람이라는 단어의 맥락은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보고서를 읽거나 보는 행위 뒤에 '받아'라는 서술어를 붙이는 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감사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위원의 열람은 문언 그대로의 단순한 '열람'이 아닌 '결재'입니다. 예전에 종이 문서로 할 때는 주심 감사위원의 결재를 받아야만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위원 열람 후 시행이란 말은 감사위원 회의에서 문안 수정을 한 후 다시 검토해야 하는데 그러면 절차가 너무 복잡하니까 주심 감사위원한테 감사위원회의 권한을 내려준 것입니다."

■감사결과보고서 위법 시행 여부, 국정조사에서 밝혀질까?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 167명의 명의로 '최재해 감사원장·유병호 사무총장의 불법 정치 감사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실제로 국정조사가 시작된다면 이번 사안의 주심이었던 조은석 감사위원이 수정된 감사결과보고서를 규정에 맞게 열람했는지, 전자결재로 진행되던 시스템을 중간에 변경한 감사원의 행위가 문제가 없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은 이 같은 감사원 사무처의 결재시스템 변경 행위와 감사결과보고서 시행 과정이 전자정부법 위반과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에 해당한다며 벼르고 있습니다.

다만 여당이 국정조사 실시에 비협조적일 것으로 예상돼, 국정조사로 감사원 규정에 나와 있는 '감사위원 열람'의 진짜 뜻이 확인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단독] 감사원 규정의 ‘열람’ 뜻 놓고 공방…내부공문 입수해 보니
    • 입력 2023-07-06 11:31:05
    단독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보고서 처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두고 격론이 오갔습니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전현희 전 위원장 감사의 주심이었던 조은석 감사위원이 최종 감사결과보고서를 '열람'하지 않았는데도 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됐다며,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감사원 실세로 통하는 유병호 사무총장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감사원 사무규칙에 나와 있는 주심 감사위원의 열람은 '결재'의 의미가 아니고, 보고서를 '보는'(읽는)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 중 일부 내용(2023년 6월 29일)

김의겸 위원 : 조은석 감사위원 컴퓨터에 '열람'과 '반려' 두 가지 버튼이 있죠?
유병호 사무총장 : 제가 버튼까지는 안 봤습니다마는.
김의겸 위원 : 확인했습니다. 넘어가겠습니다.
유병호 사무총장 : 그분(조은석 감사위원)이 단군 이래 제일 많이 열람했습니다.
(중략)
김의겸 위원 : 전자문서에서 열람했습니까?
유병호 사무총장 : 전자문서에서 제가 보지는 못했고요. 서면으로 아주 자주 보셨고.
김의겸 위원 : 서면으로 보더라도 전자정보법에 의하면 화면에서 모니터상에서 버튼을 눌러야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유병호 사무총장 : 그건 화면으로 보시든 서면으로 보시든 대면으로든 보시면 됩니다.

감사원 감사결과보고서는,
(1)감사원 사무처의 감사 내용을 7명의 감사위원이 심의하고
(2)심의 내용을 반영해 다시 사무처가 수정하면
(3) 주심 감사위원이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4) 외부에 시행(공개)됩니다.

모든 과정은 전자결재시스템으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번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감사에서는 (3)번 절차, 즉 주심 감사위원이 전자결재를 하지 않았는데도, 감사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 사무처가 내부의 전자결재시스템을 아예 바꾼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주심 감사위원이 전자결재를 하지 않아도 감사보고서 시행을 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감사원 사무처는 주심 위원에게 감사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 '결재' 권한을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조은석 감사위원과 야당은 법에 정해진 주심 위원의 '전자결재' 절차를 밟지 않았으니 이번 보고서 공개 절차가 법을 어긴 거라고 주장합니다.

실체적 진실은 뭘까요? 감사원 내부 공문을 입수해 확인해 봤습니다.
감사원 내부 공문 (자료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
■감사원 내부 공문 살펴보니...'열람 결재'라는 표현 명기

위 문건은 이번에 감사원이 내부 전자결재시스템을 바꾸면서 만든 공문입니다.

전현희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를 맡았던 특별조사국 이기대 5과장, 김숙동 국장, 김영신 공직감찰본부장 결재로 시행됐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아래 내용입니다.

주심위원의 전산상 열람 결재 절차를 생략하고 단순 열람만 가능하도록 조치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원의 공식 문서에서조차 주심 감사위원의 확인 절차를 '열람 결재'라고 표현한 뒤, 이를 '단순 열람'으로 바꿔 달라는 문구가 쓰인 겁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주심 감사위원이 단순 열람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감사원 스스로 '열람 결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실제 복수의 감사원 관계자들은 '열람 결재'라는 표현이 내부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주심 감사위원이 단순 열람만 하는 게 아니라, 열람+결재까지 하는 것을 감사원 내에서 인정해 왔다는 겁니다.

최근 최재해 감사원장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발언에서도 이런 내용이 드러납니다.

당시 최 원장은 감사보고서 공개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스스로 주심위원의 최종 확인 절차를 '결재'라고 표현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 중 일부 내용(2023년 6월 29일)

최재해 감사원장 : 주심위원께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튼 결재를 안 하고 있는 그런 상태에서 감사 부서에서 그 시스템, 결재 없이 열람은 다 했으니까 승인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시스템을 관리하는 부서에 요청을 했고...

순서대로 시스템을 구현하다 보니까 앞에 심의상 검토 그다음에 사무총장 결재 그다음 단계가 주심위원이 열람하는 거로 돼 있다 보니까 열람 결재가 있고 그 다음에 시행하는 이런 단계로 넘어가는데요.

이에 대해 감사원 사무처는 지금까지의 관행이 문제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동안 감사보고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주심위원의 클릭이 결재인 것처럼 감사원 전산시스템에 잘못 구현돼 있었는데, 이 부분을 뒤늦게 바로잡아 가는 중이라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 사무처 관계자는 "감사원 내부에서 열람 결재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열람'이 '결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결재는 사무총장의 권한이라는 점이 명확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결과보고서의 결재와 시행에 대한 감사원 내부 규정은 어떻게 돼 있을까요.

「감사사무 등 처리에 관한 규정」 제66조 (감사결과의 시행)

② 감사위원회의에서 처리안을 변경하여 시행하도록 의결된 때에는 변경 의결된 내용을 기안하고 변경의결사항 대조표를 첨부하여 심의실장의 검토 및 사무총장의 결재를 받고 주심 감사위원의 열람을 받아 시행한다.

감사원 사무처의 주장대로 규정을 보면 사무총장의 '결재'를 받고 주심 감사위원의 '열람'을 받아 시행한다고 돼 있습니다.

감사원 사무처가 열람을 '의무적인 결재 절차'가 아니라 '읽고 보는 선택적인 절차'라고 해석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열람 뒤에 왜 '받아'라는 서술어를 넣었는지 생각해 보면, 열람이라는 단어의 맥락은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보고서를 읽거나 보는 행위 뒤에 '받아'라는 서술어를 붙이는 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감사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위원의 열람은 문언 그대로의 단순한 '열람'이 아닌 '결재'입니다. 예전에 종이 문서로 할 때는 주심 감사위원의 결재를 받아야만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위원 열람 후 시행이란 말은 감사위원 회의에서 문안 수정을 한 후 다시 검토해야 하는데 그러면 절차가 너무 복잡하니까 주심 감사위원한테 감사위원회의 권한을 내려준 것입니다."

■감사결과보고서 위법 시행 여부, 국정조사에서 밝혀질까?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 167명의 명의로 '최재해 감사원장·유병호 사무총장의 불법 정치 감사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실제로 국정조사가 시작된다면 이번 사안의 주심이었던 조은석 감사위원이 수정된 감사결과보고서를 규정에 맞게 열람했는지, 전자결재로 진행되던 시스템을 중간에 변경한 감사원의 행위가 문제가 없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은 이 같은 감사원 사무처의 결재시스템 변경 행위와 감사결과보고서 시행 과정이 전자정부법 위반과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에 해당한다며 벼르고 있습니다.

다만 여당이 국정조사 실시에 비협조적일 것으로 예상돼, 국정조사로 감사원 규정에 나와 있는 '감사위원 열람'의 진짜 뜻이 확인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