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증언] 70여 년 감춰왔던 아픔…박화춘 할머니의 기억
입력 2023.07.06 (19:55)
수정 2023.07.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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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순서입니다.
박화춘 할머니는 4·3 당시 학살의 광풍을 피해 산으로 갔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했는데요,
70년 넘게 가족에게도 감춰왔던 과거의 아픔을 최근에야 털어놓았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어릴 때는 부모님하고 살면서 공부도 안 하고 그저 부모님 말씀만 듣고 살았지. 친정은 아주 잘 살았어. 고구마 많이 심고 보리도 하고, 벼농사도 하고. 우리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그 시국에 서울 갔는데. (누가)잡아갔는지 죽였는지 소식 하나도 없어, 오빠들 형제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그때 스물두 살인지, 세 살인지 될 때니까 여기 강정에서 사람 죽이고 잡아간다고. 어머니네 밭에 가서 숨어 사니까 어머니 밥 해다 주면 먹고 한 며칠 살다가, 우리 큰아버지 제사가 돌아와서 제사 먹으려고 길에 나오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잡고 자기 따라오면 좋은데 데려다 주겠다. 가다 보니까 산 속에 들어가, 산에 가서 밥도 한 숟가락 안 먹고 그대로 날이 밝으니까 잡혀갔어. 호근리, 호근리에 잡혀갔어. 거기 거쳐서 서귀포경찰서에 갔어. 경찰에 가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거기 있었어."]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제주경찰서로 갔는데) 거꾸로 매달아서 취조하니까 아무것도 (무장대에) 주지도 않고 해도 막 취조하니까 내가 거짓말로 보쌀 두 되 내줬다고 하니까 풀어줘. 목포(형무소)로 가다 어떤 사람은 아기 업고 가다가 죽으니까 쓰레기통에 넣어놓고 목포 갔어. 목포(형무소)에서 하루 살았는지 며칠 살았는지 그 전주(형무소)라고 하는데 거기 가니까 밥도 잘 해주고 뭐 듣지도 않고. (몇 달)살고 있는데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실어 갔어. 거기서 살다가 다시 (풀려나서) 목포에 와서 (제주로 돌아왔지). 아기 하나 낳았는데 그 애 데리고 서울 가다가 어디 아기들 길러주는데 가서 맡겼다가 올 때는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다시 내주니까 데리고 왔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무슨 도둑질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시국에 잡혀간 거지만. (수형생활 했던 얘기) 아이들 앞에서 창피해서 얘기 안 했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어떤 일인지 작년에, 한 1년 넘었는데, 그때야 얘기했지, 아들한테. 그때 살았던 것이 억울하지."]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순서입니다.
박화춘 할머니는 4·3 당시 학살의 광풍을 피해 산으로 갔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했는데요,
70년 넘게 가족에게도 감춰왔던 과거의 아픔을 최근에야 털어놓았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어릴 때는 부모님하고 살면서 공부도 안 하고 그저 부모님 말씀만 듣고 살았지. 친정은 아주 잘 살았어. 고구마 많이 심고 보리도 하고, 벼농사도 하고. 우리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그 시국에 서울 갔는데. (누가)잡아갔는지 죽였는지 소식 하나도 없어, 오빠들 형제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그때 스물두 살인지, 세 살인지 될 때니까 여기 강정에서 사람 죽이고 잡아간다고. 어머니네 밭에 가서 숨어 사니까 어머니 밥 해다 주면 먹고 한 며칠 살다가, 우리 큰아버지 제사가 돌아와서 제사 먹으려고 길에 나오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잡고 자기 따라오면 좋은데 데려다 주겠다. 가다 보니까 산 속에 들어가, 산에 가서 밥도 한 숟가락 안 먹고 그대로 날이 밝으니까 잡혀갔어. 호근리, 호근리에 잡혀갔어. 거기 거쳐서 서귀포경찰서에 갔어. 경찰에 가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거기 있었어."]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제주경찰서로 갔는데) 거꾸로 매달아서 취조하니까 아무것도 (무장대에) 주지도 않고 해도 막 취조하니까 내가 거짓말로 보쌀 두 되 내줬다고 하니까 풀어줘. 목포(형무소)로 가다 어떤 사람은 아기 업고 가다가 죽으니까 쓰레기통에 넣어놓고 목포 갔어. 목포(형무소)에서 하루 살았는지 며칠 살았는지 그 전주(형무소)라고 하는데 거기 가니까 밥도 잘 해주고 뭐 듣지도 않고. (몇 달)살고 있는데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실어 갔어. 거기서 살다가 다시 (풀려나서) 목포에 와서 (제주로 돌아왔지). 아기 하나 낳았는데 그 애 데리고 서울 가다가 어디 아기들 길러주는데 가서 맡겼다가 올 때는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다시 내주니까 데리고 왔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무슨 도둑질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시국에 잡혀간 거지만. (수형생활 했던 얘기) 아이들 앞에서 창피해서 얘기 안 했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어떤 일인지 작년에, 한 1년 넘었는데, 그때야 얘기했지, 아들한테. 그때 살았던 것이 억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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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증언] 70여 년 감춰왔던 아픔…박화춘 할머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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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7-06 19:55:39
- 수정2023-07-06 20:18:03
[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순서입니다.
박화춘 할머니는 4·3 당시 학살의 광풍을 피해 산으로 갔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했는데요,
70년 넘게 가족에게도 감춰왔던 과거의 아픔을 최근에야 털어놓았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어릴 때는 부모님하고 살면서 공부도 안 하고 그저 부모님 말씀만 듣고 살았지. 친정은 아주 잘 살았어. 고구마 많이 심고 보리도 하고, 벼농사도 하고. 우리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그 시국에 서울 갔는데. (누가)잡아갔는지 죽였는지 소식 하나도 없어, 오빠들 형제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그때 스물두 살인지, 세 살인지 될 때니까 여기 강정에서 사람 죽이고 잡아간다고. 어머니네 밭에 가서 숨어 사니까 어머니 밥 해다 주면 먹고 한 며칠 살다가, 우리 큰아버지 제사가 돌아와서 제사 먹으려고 길에 나오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잡고 자기 따라오면 좋은데 데려다 주겠다. 가다 보니까 산 속에 들어가, 산에 가서 밥도 한 숟가락 안 먹고 그대로 날이 밝으니까 잡혀갔어. 호근리, 호근리에 잡혀갔어. 거기 거쳐서 서귀포경찰서에 갔어. 경찰에 가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거기 있었어."]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제주경찰서로 갔는데) 거꾸로 매달아서 취조하니까 아무것도 (무장대에) 주지도 않고 해도 막 취조하니까 내가 거짓말로 보쌀 두 되 내줬다고 하니까 풀어줘. 목포(형무소)로 가다 어떤 사람은 아기 업고 가다가 죽으니까 쓰레기통에 넣어놓고 목포 갔어. 목포(형무소)에서 하루 살았는지 며칠 살았는지 그 전주(형무소)라고 하는데 거기 가니까 밥도 잘 해주고 뭐 듣지도 않고. (몇 달)살고 있는데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실어 갔어. 거기서 살다가 다시 (풀려나서) 목포에 와서 (제주로 돌아왔지). 아기 하나 낳았는데 그 애 데리고 서울 가다가 어디 아기들 길러주는데 가서 맡겼다가 올 때는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다시 내주니까 데리고 왔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무슨 도둑질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시국에 잡혀간 거지만. (수형생활 했던 얘기) 아이들 앞에서 창피해서 얘기 안 했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어떤 일인지 작년에, 한 1년 넘었는데, 그때야 얘기했지, 아들한테. 그때 살았던 것이 억울하지."]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순서입니다.
박화춘 할머니는 4·3 당시 학살의 광풍을 피해 산으로 갔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했는데요,
70년 넘게 가족에게도 감춰왔던 과거의 아픔을 최근에야 털어놓았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어릴 때는 부모님하고 살면서 공부도 안 하고 그저 부모님 말씀만 듣고 살았지. 친정은 아주 잘 살았어. 고구마 많이 심고 보리도 하고, 벼농사도 하고. 우리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그 시국에 서울 갔는데. (누가)잡아갔는지 죽였는지 소식 하나도 없어, 오빠들 형제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그때 스물두 살인지, 세 살인지 될 때니까 여기 강정에서 사람 죽이고 잡아간다고. 어머니네 밭에 가서 숨어 사니까 어머니 밥 해다 주면 먹고 한 며칠 살다가, 우리 큰아버지 제사가 돌아와서 제사 먹으려고 길에 나오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잡고 자기 따라오면 좋은데 데려다 주겠다. 가다 보니까 산 속에 들어가, 산에 가서 밥도 한 숟가락 안 먹고 그대로 날이 밝으니까 잡혀갔어. 호근리, 호근리에 잡혀갔어. 거기 거쳐서 서귀포경찰서에 갔어. 경찰에 가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거기 있었어."]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제주경찰서로 갔는데) 거꾸로 매달아서 취조하니까 아무것도 (무장대에) 주지도 않고 해도 막 취조하니까 내가 거짓말로 보쌀 두 되 내줬다고 하니까 풀어줘. 목포(형무소)로 가다 어떤 사람은 아기 업고 가다가 죽으니까 쓰레기통에 넣어놓고 목포 갔어. 목포(형무소)에서 하루 살았는지 며칠 살았는지 그 전주(형무소)라고 하는데 거기 가니까 밥도 잘 해주고 뭐 듣지도 않고. (몇 달)살고 있는데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실어 갔어. 거기서 살다가 다시 (풀려나서) 목포에 와서 (제주로 돌아왔지). 아기 하나 낳았는데 그 애 데리고 서울 가다가 어디 아기들 길러주는데 가서 맡겼다가 올 때는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다시 내주니까 데리고 왔지."]
[박화춘/4·3 생존 수형인 : "무슨 도둑질을 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시국에 잡혀간 거지만. (수형생활 했던 얘기) 아이들 앞에서 창피해서 얘기 안 했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어떤 일인지 작년에, 한 1년 넘었는데, 그때야 얘기했지, 아들한테. 그때 살았던 것이 억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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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두 기자 yyd9212@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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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윤 기자 jaey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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