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 좋은 소라고 웃돈 줬는데”…가짜 혈통 한우?

입력 2023.07.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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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N950의 후손이라 등록됐지만, 친자불일치가 나온 암소KPN950의 후손이라 등록됐지만, 친자불일치가 나온 암소

'KPN950'을 들어보셨습니까?

보증받은 씨수소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소로 알려진 씨수소의 고유번호입니다.

KPN950은 2015년 도축됐지만,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KPN950인 송아지는 다른 소보다 150만 원 가량 더 비쌀 정도로 '귀한 유전자'입니다.

그런데 유명 씨수소의 후손이라고 산 소인데, 가짜 혈통이었다면 어떨까요?

'한우 혈통등록 증명서'에 KPN950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 말입니다.


박천석 씨는 경북 청도군에서 20년 넘게 한우를 키웠습니다.

지난해 12월, KPN950 후손이 있다는 판매 농가를 찾아가 2마리를 사들였습니다.

그 후손이 아니었다면, 사지도 않았을 소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농가에서 먼저 KPN950 후손을 샀던 지인이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 불일치가 나오자,
박 씨도 친자확인 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부부정’


아버지 소가 KPN950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박 씨는 혈통을 믿고 샀는데 가짜였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혈통을 믿고 샀는데 가짜더라...그럼 뭐를 믿고 사야 하느냐?"
- 박천석

한우 혈통은 가축 개량 전문기관인 한국종축개량협회에서 관리합니다.

농가에서 혈통 등록을 하면, 각 지역 축협에서 증명서를 확인하고 종축개량협회에 등록하는 방식입니다.

한국종축개량협회가 발급하는 한우 혈통등록증명서.한국종축개량협회가 발급하는 한우 혈통등록증명서.

그리고 협회는 3대에 걸친 혈통을 볼 수 있도록 혈통등록증명서를 발급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등록된 혈통과 실제 혈통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친자 불일치율은 한국종축개량협회와 농협중앙회 등 집계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약 1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혈통우 중에서 10마리 중 1.5마리는 등록된 혈통이 아니라는 겁니다.

■등록된 혈통 왜 안 맞나?

등록된 혈통과 친자확인 검사 결과가 안 맞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발정기가 온 암소에 수정을 한 번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발정기가 왔을 때 확실하게 수정을 해야 하다 보니, 여러 차례 정액을 주입합니다.

똑같은 씨수소의 정액만으로 수정하면 틀릴 일이 없지만, 유명 씨수소의 정액은 한정적이다 보니 서로 다른 소의 정액을 넣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정액으로 수정됐는지, 친자확인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넣은 정액 중 하나를 혈통으로 제시하다 보니 혈통이 맞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혈통등록증명서가 거래 목적은 아니라지만…


한국종축개량협회는 혈통등록증명서는 정보확인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거래에 활용하라고 만든 증명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한우혈통등록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법적인 효력이 없으며 정보확인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매 우시장에서는 혈통이 중요한 거래요소로 사용됩니다.

그 과정에서 혈통등록증명을 믿고 거래하기 때문에 혈통 등록 신뢰도가 높아져야 하는 겁니다.

또, 종축개량협회는 혈통 등록 증명 업무를 진행하는 곳이지, 혈통 확인을 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자기 아버지와 친자 불일치라고 해서 주민센터를 찾아가 주민등록등본이 잘못됐다고 따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종축개량협회는 공짜로 혈통 등록을 하지 않습니다.

농가로부터 혈통 등록을 위해 1마리당 6천 원씩 받습니다.

또, 지자체에 따라서 이 등록비를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혈통 관리 의무가 있고, 혈통 등록비도 받는 만큼 혈통 일치율을 높이기 위해 종축개량협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혈통 일치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혈통이 정확하게 등록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송아지에 관해서 친자확인 검사를 진행하는 건데요.

문제는 비용입니다.

친자 확인 검사를 하려면 한 번에 적게는 2~3만 원, 많게는 10만 원 가까이 들기 때문입니다.

1년에 한우가 70만 마리가 넘게 태어나니 정부에서 부담하면 연간 200억 넘는 예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농가들 사이에서 친자확인 검사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비용부담을 이유로 친자확인 검사를 꺼리는 농가도 많습니다.

그래서 농림축산식품부는 두 달 전 혈통등록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권고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농가
- 혈통 등록 시 인공수정 증명서 확인 및 인공수정사 정보 입력
- 교배 정보 중복 확인
- 특정 씨수소의 정액은 정액 스트로우도 확인.
- 친자 확인 시료 채취 거부 시 종축개량협회에서 혈통 직권취소
- 허위 등록 경력이 있는 농가는 친자검사 의무화

종축개량협회
- 종축 등록과정의 전반적인 문제점 분석 및 개선 방안 보고

농협
- 정액 일련번호 없는 경우 판매 금지
- 경매 우시장의 경우 친자가 확인된 개체만 판매 권고

인공수정사 협회
- 정액증명서나 난자 증명서가 없는 정액을 인공수정하지 않도록 조치
-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고지.

하지만 이 지침도 권고사항에 그치는 만큼 혈통을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결국 친자확인 검사가 필수입니다.

한우 개량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혈통 정립.

국내 대표 브랜드, 한우에 대한 전체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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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통 좋은 소라고 웃돈 줬는데”…가짜 혈통 한우?
    • 입력 2023-07-07 07:00:10
    심층K
KPN950의 후손이라 등록됐지만, 친자불일치가 나온 암소
'KPN950'을 들어보셨습니까?

보증받은 씨수소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소로 알려진 씨수소의 고유번호입니다.

KPN950은 2015년 도축됐지만,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KPN950인 송아지는 다른 소보다 150만 원 가량 더 비쌀 정도로 '귀한 유전자'입니다.

그런데 유명 씨수소의 후손이라고 산 소인데, 가짜 혈통이었다면 어떨까요?

'한우 혈통등록 증명서'에 KPN950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 말입니다.


박천석 씨는 경북 청도군에서 20년 넘게 한우를 키웠습니다.

지난해 12월, KPN950 후손이 있다는 판매 농가를 찾아가 2마리를 사들였습니다.

그 후손이 아니었다면, 사지도 않았을 소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농가에서 먼저 KPN950 후손을 샀던 지인이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 불일치가 나오자,
박 씨도 친자확인 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부부정’


아버지 소가 KPN950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박 씨는 혈통을 믿고 샀는데 가짜였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혈통을 믿고 샀는데 가짜더라...그럼 뭐를 믿고 사야 하느냐?"
- 박천석

한우 혈통은 가축 개량 전문기관인 한국종축개량협회에서 관리합니다.

농가에서 혈통 등록을 하면, 각 지역 축협에서 증명서를 확인하고 종축개량협회에 등록하는 방식입니다.

한국종축개량협회가 발급하는 한우 혈통등록증명서.
그리고 협회는 3대에 걸친 혈통을 볼 수 있도록 혈통등록증명서를 발급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등록된 혈통과 실제 혈통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친자 불일치율은 한국종축개량협회와 농협중앙회 등 집계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약 1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혈통우 중에서 10마리 중 1.5마리는 등록된 혈통이 아니라는 겁니다.

■등록된 혈통 왜 안 맞나?

등록된 혈통과 친자확인 검사 결과가 안 맞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발정기가 온 암소에 수정을 한 번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발정기가 왔을 때 확실하게 수정을 해야 하다 보니, 여러 차례 정액을 주입합니다.

똑같은 씨수소의 정액만으로 수정하면 틀릴 일이 없지만, 유명 씨수소의 정액은 한정적이다 보니 서로 다른 소의 정액을 넣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정액으로 수정됐는지, 친자확인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넣은 정액 중 하나를 혈통으로 제시하다 보니 혈통이 맞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혈통등록증명서가 거래 목적은 아니라지만…


한국종축개량협회는 혈통등록증명서는 정보확인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거래에 활용하라고 만든 증명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한우혈통등록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법적인 효력이 없으며 정보확인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매 우시장에서는 혈통이 중요한 거래요소로 사용됩니다.

그 과정에서 혈통등록증명을 믿고 거래하기 때문에 혈통 등록 신뢰도가 높아져야 하는 겁니다.

또, 종축개량협회는 혈통 등록 증명 업무를 진행하는 곳이지, 혈통 확인을 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자기 아버지와 친자 불일치라고 해서 주민센터를 찾아가 주민등록등본이 잘못됐다고 따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종축개량협회는 공짜로 혈통 등록을 하지 않습니다.

농가로부터 혈통 등록을 위해 1마리당 6천 원씩 받습니다.

또, 지자체에 따라서 이 등록비를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혈통 관리 의무가 있고, 혈통 등록비도 받는 만큼 혈통 일치율을 높이기 위해 종축개량협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혈통 일치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혈통이 정확하게 등록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송아지에 관해서 친자확인 검사를 진행하는 건데요.

문제는 비용입니다.

친자 확인 검사를 하려면 한 번에 적게는 2~3만 원, 많게는 10만 원 가까이 들기 때문입니다.

1년에 한우가 70만 마리가 넘게 태어나니 정부에서 부담하면 연간 200억 넘는 예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농가들 사이에서 친자확인 검사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비용부담을 이유로 친자확인 검사를 꺼리는 농가도 많습니다.

그래서 농림축산식품부는 두 달 전 혈통등록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권고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농가
- 혈통 등록 시 인공수정 증명서 확인 및 인공수정사 정보 입력
- 교배 정보 중복 확인
- 특정 씨수소의 정액은 정액 스트로우도 확인.
- 친자 확인 시료 채취 거부 시 종축개량협회에서 혈통 직권취소
- 허위 등록 경력이 있는 농가는 친자검사 의무화

종축개량협회
- 종축 등록과정의 전반적인 문제점 분석 및 개선 방안 보고

농협
- 정액 일련번호 없는 경우 판매 금지
- 경매 우시장의 경우 친자가 확인된 개체만 판매 권고

인공수정사 협회
- 정액증명서나 난자 증명서가 없는 정액을 인공수정하지 않도록 조치
-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고지.

하지만 이 지침도 권고사항에 그치는 만큼 혈통을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결국 친자확인 검사가 필수입니다.

한우 개량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혈통 정립.

국내 대표 브랜드, 한우에 대한 전체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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