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만나 770원 좁혔다…최저임금 간극 왜 안 좁혀질까?

입력 2023.07.11 (17:03) 수정 2023.07.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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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는 100만 명, 많게는 340만여 명의 임금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노사는 오늘 세 번째 수정 요구안으로 각각 시급 11,540원과 9,720원을 냈다. 금액 차이는 1,820원. 최초 요구안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논의에 진전이 없을 때, 공익위원들은 심의를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격차를 좁혀 범위를 설정한 뒤 그 안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어느 때보다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독립적이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정부의 입김을 받고 있다는 노동계의 문제 제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머니투데이'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9,800원 선에서 결정될 거란 정부 고위 인사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바 있다.

■ 노동계 670원 낮추고, 경영계 100원 올렸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오늘(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12차 전원회의에서 각각 시급 11,540원과 9,720원을 수정안으로 내놨다. 지난달 29일 9차 회의에서 노사가 최초 요구안을 낸 이후 이번이 세 번째 수정안이다.

근로자위원 요구안은 12,210원(최초)-> 12,130원(1차 수정)-> 12,000원(2차 수정)-> 11,540원(3차 수정)으로 낮춰졌다. 처음보다 670원 낮춘 것이다.

사용자위원 요구안은 9,620원(최초)-> 9,650원(1차 수정)-> 9,700원(2차 수정)-> 9720원(3차 수정)으로 인상됐다. 최초 요구안 대비 100원을 올렸다.

양측의 금액 차이는 최초 2,590원에서 1,820원으로 770원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크다. 사실상 이번 주 안에 논의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오늘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남은 회의는 모레뿐인 상황이다.

■ 최저임금 결정기준, 무엇이 중요한가?

이런 금액 차이가 발생한 근거는 뭘까? 최저임금 결정 기준 가운데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산식이 달라진다. 노동계는 노동자 가구 생계비를, 경영계는 사업주 지불능력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노동계는 생계비가 법에 명시된 기준인 데다,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보장이라는 제도 취지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결정 기준이라고 강조한다. 최저임금법 4조는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을 명시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생계비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 생계비는 월 241만 원이었다.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가 올라 필수 지출 품목인 식료품과 주거, 교통 부문에서 지출이 커졌다고 노동계는 설명한다.

이 생계비에 올해 물가 인상률 전망치를 반영한다. 또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가구는 1인 가구뿐 아니라 복수의 가구원을 둔 가구도 있으므로 가구 규모별 비중을 가중치로 추가 반영한다. 이렇게 해서 도출한 금액이 최초 요구안이었던 시급 12,210원이었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의 지불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이 부결된 이상, 가장 사정이 어려운 업종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업종을 세세하게 분류해 영업이익을 정확히 파악하는 통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못 받은 노동자 비율, 즉 '미만율'을 근거로 제시한다.

지난해 미만율이 가장 높았던 업종은 농림어업을 제외하면 숙박·음식업종으로 31.2%였다. 이 업종 노동자 10명 중 3명이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았다는 건데 그만큼 최저임금을 준수할 현실적인 여력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업종별 1인당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숙박·음식점업은 제조업의 19%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이 같은 숙박·음식점업의 사정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 인상 여력은 올해 없다는 게 경영계 주장이다.

■ "개입하지 않겠다" 공익위원들의 고민은?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하면 공익위원들이 '심의 촉진 구간'을 제시해왔다. 양측이 낸 금액 격차를 좁혀 일정 범위에서 논의하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4차 수정안까지 받은 뒤, 시급 9,410(2.7%↑)원~9,860(7.6%↑)을 심의 촉진 구간으로 제시했다.

촉진 구간 제시는 곧 표결로 이어진다. 지난해에는 5% 인상안을 공익위원 안으로 제시하며 표결에 부쳤다. 5% 인상의 근거로는 2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2.7%) + 22년 소비자 물가상승률 전망치(4.5%) - 22년 취업자증가율 전망치(2.2%)을 제시했다. 이 산식은 재작년에도 쓰였다.

그러나 올해는 공익위원들이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무리하게 공익위원들이 개입하지 않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노사 합의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는 최저임금위 논의에 정부 입김이 작용한다는 노동계의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올해 최저임금위는 정부가 농성 중 구속된 근로자위원 1명을 직권으로 해촉하면서, 근로자위원 1명이 부족한 상태로 진행 중이다. 노동계가 다른 위원을 추천했지만, 정부는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며 거부했었다.

공익위원들은 지난해 사용한 산식을 다시 적용하는 데도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공익위원 산식에 대해 최저임금을 '국민경제 생산성 증가율'에 연동시키는 것이라며, 경제적 기준만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은 법 취지나 국제노동기준에 어긋난다고 비판하고 있다.

ILO는 정책 가이드에서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목적으로 "낮은 임금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 "최소한의 생활임금 보장" "빈곤을 퇴치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적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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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번 만나 770원 좁혔다…최저임금 간극 왜 안 좁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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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는 100만 명, 많게는 340만여 명의 임금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노사는 오늘 세 번째 수정 요구안으로 각각 시급 11,540원과 9,720원을 냈다. 금액 차이는 1,820원. 최초 요구안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논의에 진전이 없을 때, 공익위원들은 심의를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격차를 좁혀 범위를 설정한 뒤 그 안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어느 때보다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독립적이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정부의 입김을 받고 있다는 노동계의 문제 제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머니투데이'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9,800원 선에서 결정될 거란 정부 고위 인사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바 있다.

■ 노동계 670원 낮추고, 경영계 100원 올렸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오늘(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12차 전원회의에서 각각 시급 11,540원과 9,720원을 수정안으로 내놨다. 지난달 29일 9차 회의에서 노사가 최초 요구안을 낸 이후 이번이 세 번째 수정안이다.

근로자위원 요구안은 12,210원(최초)-> 12,130원(1차 수정)-> 12,000원(2차 수정)-> 11,540원(3차 수정)으로 낮춰졌다. 처음보다 670원 낮춘 것이다.

사용자위원 요구안은 9,620원(최초)-> 9,650원(1차 수정)-> 9,700원(2차 수정)-> 9720원(3차 수정)으로 인상됐다. 최초 요구안 대비 100원을 올렸다.

양측의 금액 차이는 최초 2,590원에서 1,820원으로 770원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크다. 사실상 이번 주 안에 논의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오늘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남은 회의는 모레뿐인 상황이다.

■ 최저임금 결정기준, 무엇이 중요한가?

이런 금액 차이가 발생한 근거는 뭘까? 최저임금 결정 기준 가운데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산식이 달라진다. 노동계는 노동자 가구 생계비를, 경영계는 사업주 지불능력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노동계는 생계비가 법에 명시된 기준인 데다,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보장이라는 제도 취지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결정 기준이라고 강조한다. 최저임금법 4조는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을 명시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생계비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 생계비는 월 241만 원이었다.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가 올라 필수 지출 품목인 식료품과 주거, 교통 부문에서 지출이 커졌다고 노동계는 설명한다.

이 생계비에 올해 물가 인상률 전망치를 반영한다. 또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가구는 1인 가구뿐 아니라 복수의 가구원을 둔 가구도 있으므로 가구 규모별 비중을 가중치로 추가 반영한다. 이렇게 해서 도출한 금액이 최초 요구안이었던 시급 12,210원이었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의 지불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이 부결된 이상, 가장 사정이 어려운 업종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업종을 세세하게 분류해 영업이익을 정확히 파악하는 통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못 받은 노동자 비율, 즉 '미만율'을 근거로 제시한다.

지난해 미만율이 가장 높았던 업종은 농림어업을 제외하면 숙박·음식업종으로 31.2%였다. 이 업종 노동자 10명 중 3명이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았다는 건데 그만큼 최저임금을 준수할 현실적인 여력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업종별 1인당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숙박·음식점업은 제조업의 19%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이 같은 숙박·음식점업의 사정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 인상 여력은 올해 없다는 게 경영계 주장이다.

■ "개입하지 않겠다" 공익위원들의 고민은?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하면 공익위원들이 '심의 촉진 구간'을 제시해왔다. 양측이 낸 금액 격차를 좁혀 일정 범위에서 논의하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4차 수정안까지 받은 뒤, 시급 9,410(2.7%↑)원~9,860(7.6%↑)을 심의 촉진 구간으로 제시했다.

촉진 구간 제시는 곧 표결로 이어진다. 지난해에는 5% 인상안을 공익위원 안으로 제시하며 표결에 부쳤다. 5% 인상의 근거로는 2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2.7%) + 22년 소비자 물가상승률 전망치(4.5%) - 22년 취업자증가율 전망치(2.2%)을 제시했다. 이 산식은 재작년에도 쓰였다.

그러나 올해는 공익위원들이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무리하게 공익위원들이 개입하지 않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노사 합의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는 최저임금위 논의에 정부 입김이 작용한다는 노동계의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올해 최저임금위는 정부가 농성 중 구속된 근로자위원 1명을 직권으로 해촉하면서, 근로자위원 1명이 부족한 상태로 진행 중이다. 노동계가 다른 위원을 추천했지만, 정부는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며 거부했었다.

공익위원들은 지난해 사용한 산식을 다시 적용하는 데도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공익위원 산식에 대해 최저임금을 '국민경제 생산성 증가율'에 연동시키는 것이라며, 경제적 기준만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은 법 취지나 국제노동기준에 어긋난다고 비판하고 있다.

ILO는 정책 가이드에서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목적으로 "낮은 임금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 "최소한의 생활임금 보장" "빈곤을 퇴치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적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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