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드 때도 안 거른 중국군 유해 인도식, 올해는 ‘무산’ 위기

입력 2023.07.12 (10:05) 수정 2023.07.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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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제9차 중국군 유해 인도식지난해 9월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제9차 중국군 유해 인도식

■ 중국군 유해 인도식, 2014년부터 시작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당시 전사했지만 수습되지 못한 채 산야에 남겨진 호국 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해 가족 품으로 보내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 전사자 유해만 발굴되는 것은 아닙니다. 6·25전쟁 참전국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면 해당 국가로 송환하는 의미 있는 일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또 국군과 참전국 유해뿐만 아니라 전쟁에 개입했던 '중공군(중국군)' 유해도 발굴되곤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류옌둥 중국 부총리에게 '중국군 유해송환 사업'을 제안했고, 중국이 이를 수용하면서 이듬해 437구의 유해를 처음으로 인도했습니다.

지난 2017년 3월, 사드 갈등 속 치러진 중국군 유해 인도지난 2017년 3월, 사드 갈등 속 치러진 중국군 유해 인도

■ '사드' 갈등·'코로나 국가 봉쇄' 때도 안 걸렀는데...

이렇게 시작된 중국군 유해 인도식은 지난해까지 9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치러졌습니다. 특히, 한·중 갈등이 최고조였던 2016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주한미군 사드의 한국 배치 국면에도 중국군 유해 인도식은 치러졌고, 국가봉쇄 수준의 엄격한 격리 체제였던 코로나 때도 중국군 유해 인도는 거르지 않았습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하기위해 양국이 노력한 결과인데요. 지난해 인도식 때는 중국이 스텔스 전투기인 '젠-20'까지 인도식에 동원해 이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응답하라!

그런데 10년째를 맞이하는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중국군 유해 인도식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중국에 요청했는데, 중국 측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KBS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이번 달 실무협의를 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중국 측에 서신 등을 통해 요청을 해왔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군 관계자는 "국방부 국제정책관실을 통해서 중국에 서신을 보냈지만 올해는 전혀 답이 없는 상태"라며 "실무협의 관련 회의 일정을 계획했는데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일단 이 실무협의는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KBS에 전했습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도 "계속해서 서신과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으로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유해 인도식 관계자들은 10월쯤에는 성사되기를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올해에도 중국 측과의 실무협의를 통해 상호 편리한 시기에 중국군 유해송환 행사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난해 9월 인천공항에서 열린 중국군 유해 인도식지난해 9월 인천공항에서 열린 중국군 유해 인도식

■ "최근 한중관계 반영? 군사적 불만 우회 표현?"

지난달에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미국 베팅' 발언의 파장이 컸습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이 발언 등으로 경색된 한·중 관계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걸까요?

유해 인도 사업 추진을 처음 정부 측에 제안했던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은 싱하이밍 발언이 "일종의 '트리거(방아쇠)'였을 뿐, 그동안 응축된 군사적 불만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일수록, 또 통상적이고 정기적으로 해왔던 문제일수록 갑자기 중단하거나 취소 또는 연기하는 명분을 찾기 쉽지 않죠. 그럴 때 중국 사람들은 '회피'하거나 '묵인'하는 행동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상 지금 당장 답하기에 부담이 크다는 거죠.

이 배경에는 한국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사드 배치 관련 환경영향평가가 발표되면서 주한미군 사드 기지 정상화에 속도가 붙고 있죠. 또 한국과 나토 간 협력도 강화되고 있고요. 이 모든 것은 군사적인 겁니다. 유해 인도 사업의 주체는 양국 군부인데요, 최근 경색된 한·중 관계와 관련해 양국 외교 당국에서는 악화보다는 상황 관리를 잘 해나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훈풍 분위기가 아직 외교에서 군부 쪽으로 넘어오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해 인도식과 관련해 완전히 희망이 없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외교 고위급에서 구체적인 화해 시그널이 나타나면 상황이 바뀔 수 있고 이에 따라 하반기에 중국에서 응답해 진행될 가능성도 살아 있다고 봅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

내일(13일)부터 이틀간 '아세안+3 외교장관 회의'가 치러집니다. 이 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만나 관계 개선에 나설 지 관심이 쏠립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최영삼 차관보의 방중 이후 한중간 고위급 소통, 회의에 대한 공감대가 계속 있는 만큼 진전이 있다면 공유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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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제9차 중국군 유해 인도식
■ 중국군 유해 인도식, 2014년부터 시작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당시 전사했지만 수습되지 못한 채 산야에 남겨진 호국 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해 가족 품으로 보내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 전사자 유해만 발굴되는 것은 아닙니다. 6·25전쟁 참전국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면 해당 국가로 송환하는 의미 있는 일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또 국군과 참전국 유해뿐만 아니라 전쟁에 개입했던 '중공군(중국군)' 유해도 발굴되곤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류옌둥 중국 부총리에게 '중국군 유해송환 사업'을 제안했고, 중국이 이를 수용하면서 이듬해 437구의 유해를 처음으로 인도했습니다.

지난 2017년 3월, 사드 갈등 속 치러진 중국군 유해 인도
■ '사드' 갈등·'코로나 국가 봉쇄' 때도 안 걸렀는데...

이렇게 시작된 중국군 유해 인도식은 지난해까지 9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치러졌습니다. 특히, 한·중 갈등이 최고조였던 2016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주한미군 사드의 한국 배치 국면에도 중국군 유해 인도식은 치러졌고, 국가봉쇄 수준의 엄격한 격리 체제였던 코로나 때도 중국군 유해 인도는 거르지 않았습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하기위해 양국이 노력한 결과인데요. 지난해 인도식 때는 중국이 스텔스 전투기인 '젠-20'까지 인도식에 동원해 이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응답하라!

그런데 10년째를 맞이하는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중국군 유해 인도식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중국에 요청했는데, 중국 측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KBS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이번 달 실무협의를 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중국 측에 서신 등을 통해 요청을 해왔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군 관계자는 "국방부 국제정책관실을 통해서 중국에 서신을 보냈지만 올해는 전혀 답이 없는 상태"라며 "실무협의 관련 회의 일정을 계획했는데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일단 이 실무협의는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KBS에 전했습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도 "계속해서 서신과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으로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유해 인도식 관계자들은 10월쯤에는 성사되기를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올해에도 중국 측과의 실무협의를 통해 상호 편리한 시기에 중국군 유해송환 행사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난해 9월 인천공항에서 열린 중국군 유해 인도식
■ "최근 한중관계 반영? 군사적 불만 우회 표현?"

지난달에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미국 베팅' 발언의 파장이 컸습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이 발언 등으로 경색된 한·중 관계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걸까요?

유해 인도 사업 추진을 처음 정부 측에 제안했던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은 싱하이밍 발언이 "일종의 '트리거(방아쇠)'였을 뿐, 그동안 응축된 군사적 불만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일수록, 또 통상적이고 정기적으로 해왔던 문제일수록 갑자기 중단하거나 취소 또는 연기하는 명분을 찾기 쉽지 않죠. 그럴 때 중국 사람들은 '회피'하거나 '묵인'하는 행동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상 지금 당장 답하기에 부담이 크다는 거죠.

이 배경에는 한국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사드 배치 관련 환경영향평가가 발표되면서 주한미군 사드 기지 정상화에 속도가 붙고 있죠. 또 한국과 나토 간 협력도 강화되고 있고요. 이 모든 것은 군사적인 겁니다. 유해 인도 사업의 주체는 양국 군부인데요, 최근 경색된 한·중 관계와 관련해 양국 외교 당국에서는 악화보다는 상황 관리를 잘 해나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훈풍 분위기가 아직 외교에서 군부 쪽으로 넘어오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해 인도식과 관련해 완전히 희망이 없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외교 고위급에서 구체적인 화해 시그널이 나타나면 상황이 바뀔 수 있고 이에 따라 하반기에 중국에서 응답해 진행될 가능성도 살아 있다고 봅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

내일(13일)부터 이틀간 '아세안+3 외교장관 회의'가 치러집니다. 이 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만나 관계 개선에 나설 지 관심이 쏠립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최영삼 차관보의 방중 이후 한중간 고위급 소통, 회의에 대한 공감대가 계속 있는 만큼 진전이 있다면 공유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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