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그림자 아이, 누가 어둠으로 내모나

입력 2023.07.16 (22:21) 수정 2023.07.1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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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24회 I] 그림자 아이, 누가 어둠으로 내모나

[프롤로그]

지금, 이 시각에도 아이는 버려지고 있습니다.

기자: 아기 지금 (베이비박스) 들어온 지 얼마나 된 거예요?
베이비박스 보육사: "(오후) 5시 40분이니까 50분 됐네요, 50분. 들어온 지. 지금 아마 (생후) 2~3일 정도 된 것 같아요."

눈 뜨자마자 혼자가 돼 시설로 보내지는 아이들….
이 아기들은 그나마 행운입니다.

<영화 브로커 중>
"우성아, 미안해. 꼭 데리러 올게…."
"그냥 브로커잖아."

현실에서도 아기를 사고팔고….

6월 23일 KBS뉴스9 ‘그림자 아기’ 지금도 거래된다
"대화가 시작되자 '빠른 입양을 원한다', '바로 데려가도 되냐'고 적극적으로 묻습니다."

아기를 숨지게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7월 6일 KBS뉴스9 “아이 살해 후 텃밭에 묻어”…유골 찾았다
"경기도 김포의 한 텃밭에서 아기의 시신이 발견됐고 용인에서는 장애가 있는 아기를 숨지게 한 뒤…."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있는 동네‘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있는 동네

■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박스로...오늘도 버려지는 '그림자 아이들'

서울시 관악구의 한 주택가.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오르면 작은 교회가 나오고, 그 안에 '베이비박스'가 있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아기 2천여 명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INT 이종락/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베이비박스 운영
엄마들이 파김치가 돼서 출산한 지 얼마 안 되고 많은 엄마가 하혈하면서 오는 걸 자주 보거든요. 이 아이만큼은 살려야겠다는 엄마의 본능적인 마음. (아기는) 요즘 매일 들어오다시피 합니다."


이날, 갓난아이 한 명이 또 도착했습니다.

황민숙/베이비박스 상담지원센터장
"선생님, 오늘 아기 들어왔잖아요? 몇 시쯤 들어왔을까요?"

조애영 / 베이비박스 보육사
"오후 5시 한 40분쯤?"

센터장 "네, 5시 40분에 들어왔습니다. 저쪽에 있나요? 어떤 아기인지 한번 보여주세요."

보육사 "선생님, 아기 내려놓지 말고 잠깐만 이리 오실래요?"
(아기 보여주는.... 품에서 잠든 아기)

사흘 전 태어난 아기, 보육사 선생님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습니다.

조애영/베이비박스 보육사
"(기자: 오늘 그러면 아기 들어왔을 때 바로 벨이 울려서 바로 확인하신 거예요?) 네, 엄마가 (베이비)룸으로 오셔서 상담 선생님이 상담하러 나가시고 저는 아기를 안고 이쪽으로 온 상태고. (아이가) 많이 울고 이제 조금 안정 찾았어요."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들 목록. 검은색 날짜가 출생일, 파란색 날짜가 베이비박스에 온 날이다. 태어나자마자 맡겨진 아기 등 대부분 생후 일주일이 안 된 신생아이다.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들 목록. 검은색 날짜가 출생일, 파란색 날짜가 베이비박스에 온 날이다. 태어나자마자 맡겨진 아기 등 대부분 생후 일주일이 안 된 신생아이다.

방을 꽉 채운 8명의 아기, 제각기 예쁜 이름이 붙여졌지만, 절반은 출생신고도 안 된 상탭니다. 이런 아기들은 입양이나 위탁가정으로 갈 수 없어 보호시설로 인계됩니다.
이 때문에 교회에선 부모들에게 출생신고를 권유합니다. 하지만 열에 일곱은 끝내 거부하거나 포기합니다.

INT 이종락/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베이비박스 운영
"10대 아이들은 출생신고를 하면 학교를 못 다니겠죠. 그리고 부모들조차도 인정을 안 하죠. 그래서 숨기기 위해서 이렇게 오는 경우. 그리고 외도로 태어난 아이들은 아예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죠."


지난해 이곳에서 상담한 부모 중 68.9%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아기 엄마 열에 한 명은 임신을 숨기려 집이나 모텔 등 병원 밖에서 출산했습니다.

INT 이종락/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베이비박스 운영
"(병원이 아닌 곳에서) 자가 분만한 엄마들이 많거든요. 병원에 가면 기록이 남으니까. 그래서 이걸 다 따지면 앞으로 아마 큰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이 나오지 않겠나."

■ 출생 미신고 '그림자 아이', 지난 8년 동안 2천 2백여 명...이미 숨졌거나 행방조차 몰라

이 불길한 예감은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병원에서 신생아 번호를 받은 아이들과 출생신고 된 아이들을 대조했더니 무려 2천 2백여 명이 누락 된 상태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된 걸까?

KBS뉴스 6월 21일
"아파트 냉장고에서 아기 2명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KBS뉴스9 6월30일
"닷새 된 아이를 야산에 유기한 부모가 긴급 체포…."

KBS뉴스9 7월 10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영아는 34명으로 늘었고…."

출생신고가 누락 된 2천 2백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숨진 것으로 확인된 아이는 34명, 7백여 명은 아직 행방조차 모릅니다. 이번 조사엔 병원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INT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
"병원 밖에서 출산한 아이들은 없는 것인가. 외국인 아동, 통계로도 잘 정확히 잡고 있지 않은 아동들까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기본권인 출생등록의 권리조차도 현황 파악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출생 미신고' 형사판결문 통해 추정해봤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이번 사태가 정말로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 건지, 듣고도 믿기지 않고 정말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조차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의 일부만 드러난 거잖아요?"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그렇죠. 전수조사가 시작됐지만, 아직 행방조차 파악되지 않은 아이들이 많거든요. 이 아이들이 왜 이런 사각에 놓였나, 하나하나 세밀한 조사가 필요한 시점인데요. 아이들의 삶이 과연 어땠을까, 앞서 유사한 상황으로 형사재판까지 받은 사건들을 먼저 살펴보면 짐작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이 최근 5년 동안 출생 미신고와 관련한 전국의 1심 형사 판결문들을 분석해봤는데요. 모두 38건이었습니다. 살펴봤더니 피고인 대부분이 친부모였고요.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 33명이었는데요. 절반이 신생아거나 만으로 1살도 되지 않은 영아였고요. 또 심지어 19살에 발견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19살이요? 그럼 19살까지 출생신고가 안 돼 있었으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있는 거 아닙니까?"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맞습니다. 출생신고가 안 되면 건강보험 혜택 같은 것도 적용받을 수가 없고요. 그래서 의료 사각에 빠지기도 쉽고 유치원이나 학교조차 갈 수가 없는 거죠."

남현종/9층시사국 MC
"혹시 판결문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 특징 같은 게 있었나요?"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네, 있었습니다. 절반이 넘는 57.8%가 부모가 미혼모거나 아니면 혼외자를 낳은 상황이거나 이렇게 혼인 관계 밖 출산을 했던 경우였고요. 또 아이를 직접 키우더라도 법적으로는 숨기려 하기도 했습니다.


또 출산 자체를 숨기려고 집이나 고시원이나 이런 병원 밖에서 출산한 경우도 36.8%나 됐거든요. 그런데 출생신고 된 아이들은 99.8%가 병원에서 태어납니다. 극소수만 병원 밖에서 태어나는데, 이런 수치와 비교를 해보면 상당히 격차가 큰 거고요. 또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이들이 상당하지 않을까 추정될 수 있습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그나마 이번에 감사원 감사로 인해서 출생 미신고 아이들의 일부가 드러난 상황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출생통보제를 통과시켰습니다. 이게 어떤 제도입니까?"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 출생통보제는요. 의료인이 산모의 진료기록부에 아기의 출생 정보를 입력하면 또 의료기관장이 2주 안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이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러면 심평원에서 또 이 정보를 지자체에 전달하고 지자체가 이 부모가 출생신고를 한 달 안에 하는지 관리감독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그나마 이번 사태로 인해서 겨우겨우 대책이 마련된 건데,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겠죠. 정부가 통과시킨 출생통보제가 어떤 효과들을 낼지 살펴보겠습니다."


■ '출생통보제' 통과, 내년 시행...출생신고 사각 해소할 해법 될까?

KBS뉴스 6월 30일 (국회 본회의)
[김진표/국회의장 : "재석 267인 중 찬성 266인, 기권이 1인으로써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된 출생통보제, 내년 7월부터 시행됩니다.

INT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생통보제 대표 발의
"병원 안에서의 출산은 자동으로 정보가 지자체까지 부여되고. 만약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빠르게 발견할 수 있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출생신고제의 사각지대가 모두 해소될까. 오히려 병원 밖 출산으로 몰리는 등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혼모/베이비박스 아기 인계 (음성변조)
"출생통보제로 했을 때 저라면 더 숨었을 거 같고. 이래저래 피하다가 정 안 됐을 때 병원에서 출산해서 어쨌든 반강제로 출생신고가 되고 엄마가 된 거잖아요. 내 호적에 아이가 올라오고 그러면 앞으로 남은 인생이 너무 긴데 저라면 다 포기했을 거 같아요."


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로 거론되는 게 ‘보호출산제’입니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엄마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INT 김미애/국민의힘 의원, 보호출산제 대표 발의
"불안한 산모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보호 체계 아래 국가 보호 체계 아래 우선은 들어오게 하고 안심시키고 그러면 산모는 산모대로 보호하고 아기는 아기대로 국가가 보호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 보호 출산법의 핵심이에요."

하지만 출생통보제의 세부적인 시행 방법이 논의되기도 전에 보호출산제를 검토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배인구/변호사, 출생신고제도 개선안 연구진
"그런 제도를 설계하려면 (위기 임산부가) 아이를 낳겠다는 그 마음을 지원해주고 혹시나 마음이 바뀌어서 키우겠다고 했을 때 키울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그런 것들이 밑바탕이 돼야 신뢰출산이나 익명출산이나 보호출산이나 이런 것들이 다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다만 지금은 출생통보제에 집중해도 부족하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의 정보를 기재하는 방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법률혼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등록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신수경/변호사, 출생신고제도 개선안 연구진
"혼외자나 이런 경우들에서 출생신고 부분이 아무래도 가족 간의 갈등이나 이런 것들이 빚어지다 보니까 늦어지거나 미뤄지는 경우들이 많으므로 그런 부분은 추후에 다투더라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엄마 정보만을 기재하고 아이의 아버지 정보는 미정으로 우선 잠정적으로 한 상황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끔 한다든가."

미혼인 아빠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법원의 확인을 받아야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제약도 보완할 과제입니다.

INT 김지환/미혼부 지원단체 ‘아빠의품’ 대표
"(미혼부의) 아기가 대한민국의 국적과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이 걸릴 수 있어요. 내 아이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주민등록 번호도 없이 살아야 하고 이렇게 뭐 유령처럼 난민처럼... 너무 늘 원통해 하죠."

정익중/아동권리보장원장
"부모가 하지 않으면 국가가 나설 수 있게는 만들어줘야지 되는데 모든 게 다 부모에게만 맡겨졌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위기임산부일 수 있는데 부모에게만 맡겨두면 되겠느냐. 그것 가지고 안 된다. 그런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럴 수 있게 만들었어야지 되는 게 우리의 정책이어야 되는데…."

 ‘위기 임산부’ 상담부터 임신 관리, 출산까지 돕는 독일의 상담기관 ‘위기 임산부’ 상담부터 임신 관리, 출산까지 돕는 독일의 상담기관

■ "위기 임산부와 아동 모두 안전 확보" ... 독일의 '신뢰출산' 제도 어떻길래?

취재진은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고민을 시작한 독일을 찾아가 봤습니다. 독일의 혼외 출산율은 33.9%(2018년 기준),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가정 중 19%가 한부모 가정인데요. (2021년 기준) 이 중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임신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임산부들을 어떻게 돕는지 살펴봤습니다.

위기 임산부들의 출산을 돕는 베를린의 한 상담소, 산부인과 의사가 전화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신뢰출산' 상담사가 위기 임산부와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신뢰출산' 상담사가 위기 임산부와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슈나이더/의사, '신뢰출산' 상담사
(전화 상담) "네, 이해합니다, 임신하셨다고요? 몇 개월인지 아시나요?"

임산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임신 단계부터 출산까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상세히 알려줍니다. 임산부가 아이를 직접 키운다면 어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도 설명합니다.

INT 크리스티나 슈나이더/의사, '신뢰출산' 상담사
"상담센터에서는 단계별로 절차를 나눕니다. 1단계는 (위기) 임산부와 신뢰를 쌓은 후 임산부의 생활 환경을 위주로 대화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길 원하면 어떤 국가 지원이 있는지 안내합니다."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 없고 출산 기록조차 남길 수 없는 산모라면 다른 방법을 안내합니다.
16년 동안 생모의 정보를 비밀로 하는 '신뢰출산' 제도입니다.

INT 크리스티나 슈나이더/의사, 신뢰출산 상담사
"(위기 임산부의) 임신 관리를 돕고 신뢰 출산에서는 아이를 출산할 병원을 미리 정할 수도 있습니다. 산모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오직 저뿐이죠."

 독일 ‘신뢰출산’ 문서. 산모의 정보를 담아 기밀 보관하고, 16살이 된 아이만 열람할 수 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독일 ‘신뢰출산’ 문서. 산모의 정보를 담아 기밀 보관하고, 16살이 된 아이만 열람할 수 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 독일 신뢰출산 "위기 임산부 출산 돕고 생모 정보 없이 출생신고, 아이 16살 되면 열람"

독일은 2014년부터 '신뢰출산' 제도를 시작했습니다.

상담사는 위기 임산부의 임신 관리부터 출산까지 지속적으로 도우며, 익명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도 동행합니다. 출산 후엔 병원이 산모의 정보 없이 아이를 출생신고합니다. 이후 청소년관청이 법정 후견인이 돼 아이를 위탁가정에 맡겼다가 입양 절차를 진행합니다. 생모의 정보는 정부가 기밀로 보관하는데요. 아이는 16살이 되면 생모의 정보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만약 생모가 정보 열람을 거부하면 법원이 판단하는데, 가급적 아이가 친부모를 알 권리를 우선시한다는 방침입니다.

독일은 왜 이런 제도를 만들게 된 걸까?

독일에도 지역 곳곳에 민간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가 있습니다. 합법시설이 아니지만, 폐쇄할 수도 없었습니다. 출산을 숨기기 위해 아기를 낳자마자 베이비박스로 보내거나, 심지어 아무 곳에나 아기를 유기하는 일이 계속되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많은 논의 끝에 위기 임산부의 안전한 출산과 아이들을 보호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보기로 한 겁니다.


INT 폴커 립 / 독일 윤리위원회 부의장
"(임신을 둘러싼) 갈등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아두는 것이 대안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더 나은 대안으로 '신뢰 출산'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 겁니다. 아이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할 뿐만 아니라 출산 과정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신뢰출산법'이 제정되면서 위기 임산부를 촘촘히 지원하는 상담 체계도 강화됐습니다. 이를 통해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세밀히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INT 안겔리카 볼프 / '신뢰출산' 상담사
"이 법의 효과는 (임산부가) 익명으로도 도움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여성은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혼자라는 느낌을 받지 않아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장점이고요. 전화 상담과 메일, 웹사이트를 통해 임산부를 최대한 지원하려 합니다. 신뢰 출산법이 없었다면 이런 조처를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독일 ‘신뢰출산’ 시행 3년 후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번역한 자료. 독일 ‘신뢰출산’ 시행 3년 후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번역한 자료.

2014년 법 시행 후, 2017년까지 3년간 결과를 살폈더니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상담받은 임산부 가운데 24.2%는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했고, 13.7%는 정식 출생신고를 하고 입양을 보낸 겁니다. 신뢰출산을 선택한 경우는 21.8%였고 베이비박스 등으로 보낸 경우는 4.5%였습니다.

하지만 독일 사회는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INT 안겔리카 볼프/ '신뢰출산' 상담사
"현재 독일에서 신뢰 출산으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는 대략 990명 정도입니다. (신뢰출산 이후) 모든 베이비 박스가 비워지고, 익명 출산이 완전히 사라지는, 우리가 가장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신뢰출산은 (베이비박스를) 보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체하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에필로그]

탄생 그 자체로 축복받아야 할 아이들이
어둠 속에 숨겨지고, 비참하게 버려졌습니다.
아이를 낳고 버린 이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INT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인이 사망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렇게 해결을 하려고 노력을, 많은 목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밖에 못했다는 그 한계점..."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는 건 아이들의 권리이자
사회 전체의 몫이라는 걸 '그림자 아이'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INT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
"이번에 2,236명의 아이에게 우리 사회가 빚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마침내 안전해진 아이들이 오랫동안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취재기자: 차주하
촬영기자 : 김민준
외부촬영 : 조선기 설태훈 김만중
영상편집: 이상미
CG : 정예나
리서처: 김보현
AD: 정현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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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층시사국] 그림자 아이, 누가 어둠으로 내모나
    • 입력 2023-07-16 22:21:12
    • 수정2023-07-16 22: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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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24회 I] 그림자 아이, 누가 어둠으로 내모나

[프롤로그]

지금, 이 시각에도 아이는 버려지고 있습니다.

기자: 아기 지금 (베이비박스) 들어온 지 얼마나 된 거예요?
베이비박스 보육사: "(오후) 5시 40분이니까 50분 됐네요, 50분. 들어온 지. 지금 아마 (생후) 2~3일 정도 된 것 같아요."

눈 뜨자마자 혼자가 돼 시설로 보내지는 아이들….
이 아기들은 그나마 행운입니다.

<영화 브로커 중>
"우성아, 미안해. 꼭 데리러 올게…."
"그냥 브로커잖아."

현실에서도 아기를 사고팔고….

6월 23일 KBS뉴스9 ‘그림자 아기’ 지금도 거래된다
"대화가 시작되자 '빠른 입양을 원한다', '바로 데려가도 되냐'고 적극적으로 묻습니다."

아기를 숨지게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7월 6일 KBS뉴스9 “아이 살해 후 텃밭에 묻어”…유골 찾았다
"경기도 김포의 한 텃밭에서 아기의 시신이 발견됐고 용인에서는 장애가 있는 아기를 숨지게 한 뒤…."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있는 동네
■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박스로...오늘도 버려지는 '그림자 아이들'

서울시 관악구의 한 주택가.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오르면 작은 교회가 나오고, 그 안에 '베이비박스'가 있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아기 2천여 명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INT 이종락/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베이비박스 운영
엄마들이 파김치가 돼서 출산한 지 얼마 안 되고 많은 엄마가 하혈하면서 오는 걸 자주 보거든요. 이 아이만큼은 살려야겠다는 엄마의 본능적인 마음. (아기는) 요즘 매일 들어오다시피 합니다."


이날, 갓난아이 한 명이 또 도착했습니다.

황민숙/베이비박스 상담지원센터장
"선생님, 오늘 아기 들어왔잖아요? 몇 시쯤 들어왔을까요?"

조애영 / 베이비박스 보육사
"오후 5시 한 40분쯤?"

센터장 "네, 5시 40분에 들어왔습니다. 저쪽에 있나요? 어떤 아기인지 한번 보여주세요."

보육사 "선생님, 아기 내려놓지 말고 잠깐만 이리 오실래요?"
(아기 보여주는.... 품에서 잠든 아기)

사흘 전 태어난 아기, 보육사 선생님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습니다.

조애영/베이비박스 보육사
"(기자: 오늘 그러면 아기 들어왔을 때 바로 벨이 울려서 바로 확인하신 거예요?) 네, 엄마가 (베이비)룸으로 오셔서 상담 선생님이 상담하러 나가시고 저는 아기를 안고 이쪽으로 온 상태고. (아이가) 많이 울고 이제 조금 안정 찾았어요."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들 목록. 검은색 날짜가 출생일, 파란색 날짜가 베이비박스에 온 날이다. 태어나자마자 맡겨진 아기 등 대부분 생후 일주일이 안 된 신생아이다.
방을 꽉 채운 8명의 아기, 제각기 예쁜 이름이 붙여졌지만, 절반은 출생신고도 안 된 상탭니다. 이런 아기들은 입양이나 위탁가정으로 갈 수 없어 보호시설로 인계됩니다.
이 때문에 교회에선 부모들에게 출생신고를 권유합니다. 하지만 열에 일곱은 끝내 거부하거나 포기합니다.

INT 이종락/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베이비박스 운영
"10대 아이들은 출생신고를 하면 학교를 못 다니겠죠. 그리고 부모들조차도 인정을 안 하죠. 그래서 숨기기 위해서 이렇게 오는 경우. 그리고 외도로 태어난 아이들은 아예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죠."


지난해 이곳에서 상담한 부모 중 68.9%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아기 엄마 열에 한 명은 임신을 숨기려 집이나 모텔 등 병원 밖에서 출산했습니다.

INT 이종락/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베이비박스 운영
"(병원이 아닌 곳에서) 자가 분만한 엄마들이 많거든요. 병원에 가면 기록이 남으니까. 그래서 이걸 다 따지면 앞으로 아마 큰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이 나오지 않겠나."

■ 출생 미신고 '그림자 아이', 지난 8년 동안 2천 2백여 명...이미 숨졌거나 행방조차 몰라

이 불길한 예감은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병원에서 신생아 번호를 받은 아이들과 출생신고 된 아이들을 대조했더니 무려 2천 2백여 명이 누락 된 상태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된 걸까?

KBS뉴스 6월 21일
"아파트 냉장고에서 아기 2명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KBS뉴스9 6월30일
"닷새 된 아이를 야산에 유기한 부모가 긴급 체포…."

KBS뉴스9 7월 10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영아는 34명으로 늘었고…."

출생신고가 누락 된 2천 2백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숨진 것으로 확인된 아이는 34명, 7백여 명은 아직 행방조차 모릅니다. 이번 조사엔 병원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INT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
"병원 밖에서 출산한 아이들은 없는 것인가. 외국인 아동, 통계로도 잘 정확히 잡고 있지 않은 아동들까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기본권인 출생등록의 권리조차도 현황 파악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출생 미신고' 형사판결문 통해 추정해봤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이번 사태가 정말로 2023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 건지, 듣고도 믿기지 않고 정말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조차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의 일부만 드러난 거잖아요?"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그렇죠. 전수조사가 시작됐지만, 아직 행방조차 파악되지 않은 아이들이 많거든요. 이 아이들이 왜 이런 사각에 놓였나, 하나하나 세밀한 조사가 필요한 시점인데요. 아이들의 삶이 과연 어땠을까, 앞서 유사한 상황으로 형사재판까지 받은 사건들을 먼저 살펴보면 짐작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이 최근 5년 동안 출생 미신고와 관련한 전국의 1심 형사 판결문들을 분석해봤는데요. 모두 38건이었습니다. 살펴봤더니 피고인 대부분이 친부모였고요.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 33명이었는데요. 절반이 신생아거나 만으로 1살도 되지 않은 영아였고요. 또 심지어 19살에 발견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19살이요? 그럼 19살까지 출생신고가 안 돼 있었으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있는 거 아닙니까?"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맞습니다. 출생신고가 안 되면 건강보험 혜택 같은 것도 적용받을 수가 없고요. 그래서 의료 사각에 빠지기도 쉽고 유치원이나 학교조차 갈 수가 없는 거죠."

남현종/9층시사국 MC
"혹시 판결문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 특징 같은 게 있었나요?"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네, 있었습니다. 절반이 넘는 57.8%가 부모가 미혼모거나 아니면 혼외자를 낳은 상황이거나 이렇게 혼인 관계 밖 출산을 했던 경우였고요. 또 아이를 직접 키우더라도 법적으로는 숨기려 하기도 했습니다.


또 출산 자체를 숨기려고 집이나 고시원이나 이런 병원 밖에서 출산한 경우도 36.8%나 됐거든요. 그런데 출생신고 된 아이들은 99.8%가 병원에서 태어납니다. 극소수만 병원 밖에서 태어나는데, 이런 수치와 비교를 해보면 상당히 격차가 큰 거고요. 또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이들이 상당하지 않을까 추정될 수 있습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그나마 이번에 감사원 감사로 인해서 출생 미신고 아이들의 일부가 드러난 상황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출생통보제를 통과시켰습니다. 이게 어떤 제도입니까?"


차주하/9층시사국 취재기자
" 출생통보제는요. 의료인이 산모의 진료기록부에 아기의 출생 정보를 입력하면 또 의료기관장이 2주 안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이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러면 심평원에서 또 이 정보를 지자체에 전달하고 지자체가 이 부모가 출생신고를 한 달 안에 하는지 관리감독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MC
"그나마 이번 사태로 인해서 겨우겨우 대책이 마련된 건데,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겠죠. 정부가 통과시킨 출생통보제가 어떤 효과들을 낼지 살펴보겠습니다."


■ '출생통보제' 통과, 내년 시행...출생신고 사각 해소할 해법 될까?

KBS뉴스 6월 30일 (국회 본회의)
[김진표/국회의장 : "재석 267인 중 찬성 266인, 기권이 1인으로써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된 출생통보제, 내년 7월부터 시행됩니다.

INT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생통보제 대표 발의
"병원 안에서의 출산은 자동으로 정보가 지자체까지 부여되고. 만약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빠르게 발견할 수 있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출생신고제의 사각지대가 모두 해소될까. 오히려 병원 밖 출산으로 몰리는 등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혼모/베이비박스 아기 인계 (음성변조)
"출생통보제로 했을 때 저라면 더 숨었을 거 같고. 이래저래 피하다가 정 안 됐을 때 병원에서 출산해서 어쨌든 반강제로 출생신고가 되고 엄마가 된 거잖아요. 내 호적에 아이가 올라오고 그러면 앞으로 남은 인생이 너무 긴데 저라면 다 포기했을 거 같아요."


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로 거론되는 게 ‘보호출산제’입니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엄마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INT 김미애/국민의힘 의원, 보호출산제 대표 발의
"불안한 산모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보호 체계 아래 국가 보호 체계 아래 우선은 들어오게 하고 안심시키고 그러면 산모는 산모대로 보호하고 아기는 아기대로 국가가 보호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 보호 출산법의 핵심이에요."

하지만 출생통보제의 세부적인 시행 방법이 논의되기도 전에 보호출산제를 검토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배인구/변호사, 출생신고제도 개선안 연구진
"그런 제도를 설계하려면 (위기 임산부가) 아이를 낳겠다는 그 마음을 지원해주고 혹시나 마음이 바뀌어서 키우겠다고 했을 때 키울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그런 것들이 밑바탕이 돼야 신뢰출산이나 익명출산이나 보호출산이나 이런 것들이 다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다만 지금은 출생통보제에 집중해도 부족하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의 정보를 기재하는 방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법률혼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등록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신수경/변호사, 출생신고제도 개선안 연구진
"혼외자나 이런 경우들에서 출생신고 부분이 아무래도 가족 간의 갈등이나 이런 것들이 빚어지다 보니까 늦어지거나 미뤄지는 경우들이 많으므로 그런 부분은 추후에 다투더라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엄마 정보만을 기재하고 아이의 아버지 정보는 미정으로 우선 잠정적으로 한 상황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끔 한다든가."

미혼인 아빠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법원의 확인을 받아야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제약도 보완할 과제입니다.

INT 김지환/미혼부 지원단체 ‘아빠의품’ 대표
"(미혼부의) 아기가 대한민국의 국적과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이 걸릴 수 있어요. 내 아이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주민등록 번호도 없이 살아야 하고 이렇게 뭐 유령처럼 난민처럼... 너무 늘 원통해 하죠."

정익중/아동권리보장원장
"부모가 하지 않으면 국가가 나설 수 있게는 만들어줘야지 되는데 모든 게 다 부모에게만 맡겨졌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위기임산부일 수 있는데 부모에게만 맡겨두면 되겠느냐. 그것 가지고 안 된다. 그런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럴 수 있게 만들었어야지 되는 게 우리의 정책이어야 되는데…."

 ‘위기 임산부’ 상담부터 임신 관리, 출산까지 돕는 독일의 상담기관
■ "위기 임산부와 아동 모두 안전 확보" ... 독일의 '신뢰출산' 제도 어떻길래?

취재진은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고민을 시작한 독일을 찾아가 봤습니다. 독일의 혼외 출산율은 33.9%(2018년 기준),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가정 중 19%가 한부모 가정인데요. (2021년 기준) 이 중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임신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임산부들을 어떻게 돕는지 살펴봤습니다.

위기 임산부들의 출산을 돕는 베를린의 한 상담소, 산부인과 의사가 전화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신뢰출산' 상담사가 위기 임산부와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슈나이더/의사, '신뢰출산' 상담사
(전화 상담) "네, 이해합니다, 임신하셨다고요? 몇 개월인지 아시나요?"

임산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임신 단계부터 출산까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상세히 알려줍니다. 임산부가 아이를 직접 키운다면 어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도 설명합니다.

INT 크리스티나 슈나이더/의사, '신뢰출산' 상담사
"상담센터에서는 단계별로 절차를 나눕니다. 1단계는 (위기) 임산부와 신뢰를 쌓은 후 임산부의 생활 환경을 위주로 대화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길 원하면 어떤 국가 지원이 있는지 안내합니다."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 없고 출산 기록조차 남길 수 없는 산모라면 다른 방법을 안내합니다.
16년 동안 생모의 정보를 비밀로 하는 '신뢰출산' 제도입니다.

INT 크리스티나 슈나이더/의사, 신뢰출산 상담사
"(위기 임산부의) 임신 관리를 돕고 신뢰 출산에서는 아이를 출산할 병원을 미리 정할 수도 있습니다. 산모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오직 저뿐이죠."

 독일 ‘신뢰출산’ 문서. 산모의 정보를 담아 기밀 보관하고, 16살이 된 아이만 열람할 수 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 독일 신뢰출산 "위기 임산부 출산 돕고 생모 정보 없이 출생신고, 아이 16살 되면 열람"

독일은 2014년부터 '신뢰출산' 제도를 시작했습니다.

상담사는 위기 임산부의 임신 관리부터 출산까지 지속적으로 도우며, 익명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도 동행합니다. 출산 후엔 병원이 산모의 정보 없이 아이를 출생신고합니다. 이후 청소년관청이 법정 후견인이 돼 아이를 위탁가정에 맡겼다가 입양 절차를 진행합니다. 생모의 정보는 정부가 기밀로 보관하는데요. 아이는 16살이 되면 생모의 정보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만약 생모가 정보 열람을 거부하면 법원이 판단하는데, 가급적 아이가 친부모를 알 권리를 우선시한다는 방침입니다.

독일은 왜 이런 제도를 만들게 된 걸까?

독일에도 지역 곳곳에 민간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가 있습니다. 합법시설이 아니지만, 폐쇄할 수도 없었습니다. 출산을 숨기기 위해 아기를 낳자마자 베이비박스로 보내거나, 심지어 아무 곳에나 아기를 유기하는 일이 계속되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많은 논의 끝에 위기 임산부의 안전한 출산과 아이들을 보호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보기로 한 겁니다.


INT 폴커 립 / 독일 윤리위원회 부의장
"(임신을 둘러싼) 갈등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아두는 것이 대안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더 나은 대안으로 '신뢰 출산'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 겁니다. 아이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할 뿐만 아니라 출산 과정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신뢰출산법'이 제정되면서 위기 임산부를 촘촘히 지원하는 상담 체계도 강화됐습니다. 이를 통해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세밀히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INT 안겔리카 볼프 / '신뢰출산' 상담사
"이 법의 효과는 (임산부가) 익명으로도 도움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여성은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혼자라는 느낌을 받지 않아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장점이고요. 전화 상담과 메일, 웹사이트를 통해 임산부를 최대한 지원하려 합니다. 신뢰 출산법이 없었다면 이런 조처를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독일 ‘신뢰출산’ 시행 3년 후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번역한 자료.
2014년 법 시행 후, 2017년까지 3년간 결과를 살폈더니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상담받은 임산부 가운데 24.2%는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했고, 13.7%는 정식 출생신고를 하고 입양을 보낸 겁니다. 신뢰출산을 선택한 경우는 21.8%였고 베이비박스 등으로 보낸 경우는 4.5%였습니다.

하지만 독일 사회는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INT 안겔리카 볼프/ '신뢰출산' 상담사
"현재 독일에서 신뢰 출산으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는 대략 990명 정도입니다. (신뢰출산 이후) 모든 베이비 박스가 비워지고, 익명 출산이 완전히 사라지는, 우리가 가장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신뢰출산은 (베이비박스를) 보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체하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에필로그]

탄생 그 자체로 축복받아야 할 아이들이
어둠 속에 숨겨지고, 비참하게 버려졌습니다.
아이를 낳고 버린 이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INT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인이 사망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렇게 해결을 하려고 노력을, 많은 목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밖에 못했다는 그 한계점..."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는 건 아이들의 권리이자
사회 전체의 몫이라는 걸 '그림자 아이'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INT 강미정/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
"이번에 2,236명의 아이에게 우리 사회가 빚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마침내 안전해진 아이들이 오랫동안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취재기자: 차주하
촬영기자 : 김민준
외부촬영 : 조선기 설태훈 김만중
영상편집: 이상미
CG : 정예나
리서처: 김보현
AD: 정현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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