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외교무대에 ‘ICBM 찬물’…ARF 의장성명도 ‘北 우려’ 담을까

입력 2023.07.17 (16:27) 수정 2023.07.1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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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10시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발사했습니다.

이번 주 한국과 미국의 핵협의그룹(NCG) 첫 실무회의를 앞둔 시점에 나온 도발이자, 북한 내부적으로는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에 맞춰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됐는데, 시기적으로 주목할만한 점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진행되고 있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연쇄 다자회의. 11일부터 열린 ASEAN 외교장관회의를 비롯해 13-~14일 ASEAN+3(한·중·일), EAS(동아시아정상회의),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 등이 잇따라 열렸는데, 북한이 ICBM을 쏜 12일은 아세안 9개국(10개 회원국 중 불참한 미얀마 제외)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던 날이자 이어지는 아세안 관련 회의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의 외교장관들이 속속 자카르타로 모여들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는 북한이 참여하는 역내 유일의 다자안보협의체로, 북한도 매년 외무상 또는 대사급 인사를 보내 외교전을 펼치는 무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의를 앞두고 북한이 ICBM 발사를 감행하면서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3일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 장면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3일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 장면

■ '찬물' 끼얹은 대가..."북한의 도발에 깊이 경악"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논의하는 아세안 최고의 연례 다자회의 기간 벌인 북한의 도발에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13일 공동성명을 내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번 행동에 경악(dismayed)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긴장을 완화하는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과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수교를 맺고 우호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만큼 아세안 국가들은 그동안 북한에 대한 노골적인 규탄 메시지는 자제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명에 나온 '경악'이라는 표현은 이례적이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입니다.

또 아세안+3(한중일 )와 EAS(아세안+한,중,일,미,러 등)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도 "최근 북한의 ICBM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급증에 따라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 전개"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관련 당사자가 평화적 대화에 도움이 되는 환경 조성 등 외교적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 아세안 외교무대에서 점점 좁아지는 북한 입지

이번 연쇄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북한도 참여하는 ARF 외교장관회의였습니다. ARF는 과거에도 남북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던 무대여서 북한도 상당히 공을 들이는 다자회의입니다.

2010년대 들어서는 꾸준히 외무상을 참석시켰는데,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ARF 회의가 열리는 나라에 주재하는 대사나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를 수석대표로 보냈습니다. 올해도 안광일 주인도네시아 대사 겸 주아세안대표부 대사가 참석했습니다.

앞서 나온 여러 성명들을 보면 아세안 국가들은 과거와 달리 북한에 상당히 냉랭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5년 연속 외무상이 아닌 대사급 인사가 참여하면서 북한의 존재감 자체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요.

실제 안광일 대사는 13일 인도네시아가 주최한 ARF 각국 대표 환영 리셉션에서 장관급만 입장 가능한 구역에 들어가지 못한 채, 대사급 인사 공간에만 머물다 돌아갔습니다. 14일 ARF 회의장 입장 전에도 기다리던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은 채 빠르게 회의장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과거 리용호 외무상이나 최선희 외무상 등 무게감 있는 인사가 직접 참석해 적극적으로 기자회견을 하거나 미국 등 강대국의 외교수장들과 자연스럽게 악수를 하던 모습과 사뭇 비교됩니다. 아세안 외교무대에서 북한이 목소리를 내기 점점 어려워지는 모습입니다.

■ ARF 의장성명에도 CVID 등 '北 우려' 담길까

이런 와중에 북한이 ICBM 도발까지 감행한 만큼, 곧 발표될 ARF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 문구가 포함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특히 올해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1961년 북한과 수교한 전통적 우방 중 하나로, 최선희 외무상의 참석을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지만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마당에 북한이 ICBM 도발까지 했으니 실망감이 더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캄보디아가 의장국을 맡았던 지난해 ARF 의장성명에는 'CVID 달성에 대한 지지'와 함께 '의미 있는 대화의 재개를 저해할 수 있는 모든 행동 자제'라는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올해 의장성명에 CVID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반영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목소리도 있고 여전히 북한에 우호적인 아세안 국가들도 있어 ARF 의장성명에 'CVID'가 담길지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든 북한의 도발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들의 설명입니다. ARF 의장성명은 의장국이 초안을 작성하고 각 회원국의 의견을 수렴해 의장국이 최종적으로 문안을 결정해 발표하는데, 이번 아세안 연쇄 회의에 즈음해 보인 북한의 모습이 의장성명에는 어떤 내용으로 반영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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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7-17 16: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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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10시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발사했습니다.

이번 주 한국과 미국의 핵협의그룹(NCG) 첫 실무회의를 앞둔 시점에 나온 도발이자, 북한 내부적으로는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에 맞춰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됐는데, 시기적으로 주목할만한 점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진행되고 있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연쇄 다자회의. 11일부터 열린 ASEAN 외교장관회의를 비롯해 13-~14일 ASEAN+3(한·중·일), EAS(동아시아정상회의),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 등이 잇따라 열렸는데, 북한이 ICBM을 쏜 12일은 아세안 9개국(10개 회원국 중 불참한 미얀마 제외)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던 날이자 이어지는 아세안 관련 회의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의 외교장관들이 속속 자카르타로 모여들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는 북한이 참여하는 역내 유일의 다자안보협의체로, 북한도 매년 외무상 또는 대사급 인사를 보내 외교전을 펼치는 무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의를 앞두고 북한이 ICBM 발사를 감행하면서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3일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 장면
■ '찬물' 끼얹은 대가..."북한의 도발에 깊이 경악"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논의하는 아세안 최고의 연례 다자회의 기간 벌인 북한의 도발에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13일 공동성명을 내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번 행동에 경악(dismayed)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긴장을 완화하는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과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수교를 맺고 우호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만큼 아세안 국가들은 그동안 북한에 대한 노골적인 규탄 메시지는 자제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명에 나온 '경악'이라는 표현은 이례적이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입니다.

또 아세안+3(한중일 )와 EAS(아세안+한,중,일,미,러 등)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도 "최근 북한의 ICBM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급증에 따라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 전개"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관련 당사자가 평화적 대화에 도움이 되는 환경 조성 등 외교적 노력을 하는 것이 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 아세안 외교무대에서 점점 좁아지는 북한 입지

이번 연쇄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북한도 참여하는 ARF 외교장관회의였습니다. ARF는 과거에도 남북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던 무대여서 북한도 상당히 공을 들이는 다자회의입니다.

2010년대 들어서는 꾸준히 외무상을 참석시켰는데,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ARF 회의가 열리는 나라에 주재하는 대사나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를 수석대표로 보냈습니다. 올해도 안광일 주인도네시아 대사 겸 주아세안대표부 대사가 참석했습니다.

앞서 나온 여러 성명들을 보면 아세안 국가들은 과거와 달리 북한에 상당히 냉랭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5년 연속 외무상이 아닌 대사급 인사가 참여하면서 북한의 존재감 자체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요.

실제 안광일 대사는 13일 인도네시아가 주최한 ARF 각국 대표 환영 리셉션에서 장관급만 입장 가능한 구역에 들어가지 못한 채, 대사급 인사 공간에만 머물다 돌아갔습니다. 14일 ARF 회의장 입장 전에도 기다리던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은 채 빠르게 회의장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과거 리용호 외무상이나 최선희 외무상 등 무게감 있는 인사가 직접 참석해 적극적으로 기자회견을 하거나 미국 등 강대국의 외교수장들과 자연스럽게 악수를 하던 모습과 사뭇 비교됩니다. 아세안 외교무대에서 북한이 목소리를 내기 점점 어려워지는 모습입니다.

■ ARF 의장성명에도 CVID 등 '北 우려' 담길까

이런 와중에 북한이 ICBM 도발까지 감행한 만큼, 곧 발표될 ARF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 문구가 포함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특히 올해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1961년 북한과 수교한 전통적 우방 중 하나로, 최선희 외무상의 참석을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지만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마당에 북한이 ICBM 도발까지 했으니 실망감이 더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캄보디아가 의장국을 맡았던 지난해 ARF 의장성명에는 'CVID 달성에 대한 지지'와 함께 '의미 있는 대화의 재개를 저해할 수 있는 모든 행동 자제'라는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올해 의장성명에 CVID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반영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목소리도 있고 여전히 북한에 우호적인 아세안 국가들도 있어 ARF 의장성명에 'CVID'가 담길지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든 북한의 도발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들의 설명입니다. ARF 의장성명은 의장국이 초안을 작성하고 각 회원국의 의견을 수렴해 의장국이 최종적으로 문안을 결정해 발표하는데, 이번 아세안 연쇄 회의에 즈음해 보인 북한의 모습이 의장성명에는 어떤 내용으로 반영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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