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하차도 925개…50년 이상 호우 대비는 단 6곳

입력 2023.07.17 (18:21) 수정 2023.07.17 (18:2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20년 7월 23일 부산 초량 제1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3명이 숨졌습니다.

같은 달 31일에는 대전 동구 소청 지하차도가 침수돼 보행자 1명이 사망했습니다.

비슷한 안전사고가 되풀이되자, 국민권익위원회는 2021년 7월 전국의 지하차도를 일제 점검한 뒤 <지하차도 침수사고 방지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의결했습니다.

KBS가 43쪽짜리 '보고서' 원본을 입수해 내용을 분석해 봤더니, 국내 지하차도의 열악한 관리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50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비' 견딜 수 있는 지하차도는 전국 6곳

권익위가 파악한 2021년 기준 전국의 지하차도는 925개입니다. 이 가운데 설계빈도가 50년 이상인 곳은 6곳에 불과했습니다.

지하차도의 '설계빈도'란 몇 년 만에 한 번 올 수 있는 강우량에 대비해 만들었냐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설계빈도가 50년인 지하차도는 50년 동안 가장 많은 비가 내린 하루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한 지하차도라는 이야기입니다.

권익위가 925곳을 확인해 보니 설계빈도 10년 미만이 55곳, 11년~30년 빈도가 137곳이었습니다. 31년~50년 빈도는 69곳, 51년 이상 설계빈도는 6곳이었습니다.

건설된 지 너무 오래됐다는 이유 등으로 설계빈도 자체를 아예 모르는 지하차도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658개나 됐습니다.

설계빈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지하차도 주변에 빗물이 얼마나 모이는지(이걸 집수유역면적이라고 합니다)라도 정확히 파악해야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국토부의 '도로 배수시설 설계 및 관리지침'을 보면, 1·2종 지하차도는 집수유역면적, 강우 강도, 설계 기준을 최초 10년, 향후 5년 단위로 재조사해서 침수위험을 검토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925개 지하차도 가운데 집수유역면적을 재조사한 적이 있는 지하차도는 19개로, 전체의 2%뿐이었습니다.

■100미터 미만 지하터널 관리 잘 안 돼...국토부 "연구 용역 중"

이유가 있었습니다. 도로 배수시설 설계 및 관리 지침상 지하터널의 길이가 100미터 이상 되는 곳만 1·2종 지하차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길이가 100미터가 안 되는 지하차도의 경우 집수유역면적, 강우 강도 등 시설물안전법 재조사 대상에서 누락되는 겁니다. 이런 곳이 전국 지하차도 925곳 가운데 30% 정도 됩니다.

100미터 미만이라고 침수 위험이 낮아지는 건 아닙니다. 최근 5년간 침수 사고 중 33%(30건)가 연장 100미터 미만의 지하차도에서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연장 100미터 미만 지하차도에 대해서도 도로 배수시설 지침을 적용할 수 있도록 지침 개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전국 지하차도 10곳 중의 1곳이 '침수 이력'

침수를 한 차례 이상 겪은 지하차도는 전체 지하차도 925곳 가운데 89곳이었습니다.

지하차도 10곳 가운데 1곳은 침수된 적이 있는 겁니다.

눈여겨볼 점은 '오래된' 지하차도일수록 침수 확률이 높았다는 점입니다.

2004년 이후 준공된 지하차도는 전체의 6.3%가 침수 이력이 있었지만, 2003년 이전에 준공된 지하차도의 경우 15%가 침수된 적이 있었습니다.

2004년을 기점으로 침수 이력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2003년 12월에 '도로 배수시설 설계 및 관리지침'이 제정되면서 지하차도를 만들 때 안전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권익위가 조사한 9백여 개 지하차도 중 2004년 이전에 건설돼 배수시설이 규정에 맞는지 확인할 수 없는 지하차도가 전체의 40%나 됐습니다.

전체 지하차도 중 '펌프'가 없는, 그러니까 자연 배수 방식을 채택한 지하차도는 179개였습니다.

펌프가 설치된 지하차도라고 해도, 절반가량인 366곳의 경우 펌프 수·배전반이 지하에 있었습니다.

펌프의 수·배전반이 지하에 있을 때, 갑자기 물이 쏟아졌을 때 고장이 나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 이상 기후 심해지는데...대책 없나?

기상청은 한국기후 평가보고서(2020년)를 통해 여름철 강수량이 지난 10년간 11.6mm씩 증가했다는 통계를 내놨습니다.

여름철 강수량은 2013년 915mm에서 2100년에는 1,030mm까지 100mm 넘게 늘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만큼 지하차도 등 취약시설을 보강해야 할 필요가 더 커지는 겁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1년 7월 <침수사고 방지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상세히 밝혔듯이, 현행 제도에 미비점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피고, 이 기준을 현장에서 제대로 지키는지도 꼼꼼히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전국 지하차도 925개…50년 이상 호우 대비는 단 6곳
    • 입력 2023-07-17 18:21:04
    • 수정2023-07-17 18:22:11
    심층K

2020년 7월 23일 부산 초량 제1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3명이 숨졌습니다.

같은 달 31일에는 대전 동구 소청 지하차도가 침수돼 보행자 1명이 사망했습니다.

비슷한 안전사고가 되풀이되자, 국민권익위원회는 2021년 7월 전국의 지하차도를 일제 점검한 뒤 <지하차도 침수사고 방지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의결했습니다.

KBS가 43쪽짜리 '보고서' 원본을 입수해 내용을 분석해 봤더니, 국내 지하차도의 열악한 관리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50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비' 견딜 수 있는 지하차도는 전국 6곳

권익위가 파악한 2021년 기준 전국의 지하차도는 925개입니다. 이 가운데 설계빈도가 50년 이상인 곳은 6곳에 불과했습니다.

지하차도의 '설계빈도'란 몇 년 만에 한 번 올 수 있는 강우량에 대비해 만들었냐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설계빈도가 50년인 지하차도는 50년 동안 가장 많은 비가 내린 하루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한 지하차도라는 이야기입니다.

권익위가 925곳을 확인해 보니 설계빈도 10년 미만이 55곳, 11년~30년 빈도가 137곳이었습니다. 31년~50년 빈도는 69곳, 51년 이상 설계빈도는 6곳이었습니다.

건설된 지 너무 오래됐다는 이유 등으로 설계빈도 자체를 아예 모르는 지하차도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658개나 됐습니다.

설계빈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지하차도 주변에 빗물이 얼마나 모이는지(이걸 집수유역면적이라고 합니다)라도 정확히 파악해야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국토부의 '도로 배수시설 설계 및 관리지침'을 보면, 1·2종 지하차도는 집수유역면적, 강우 강도, 설계 기준을 최초 10년, 향후 5년 단위로 재조사해서 침수위험을 검토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925개 지하차도 가운데 집수유역면적을 재조사한 적이 있는 지하차도는 19개로, 전체의 2%뿐이었습니다.

■100미터 미만 지하터널 관리 잘 안 돼...국토부 "연구 용역 중"

이유가 있었습니다. 도로 배수시설 설계 및 관리 지침상 지하터널의 길이가 100미터 이상 되는 곳만 1·2종 지하차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길이가 100미터가 안 되는 지하차도의 경우 집수유역면적, 강우 강도 등 시설물안전법 재조사 대상에서 누락되는 겁니다. 이런 곳이 전국 지하차도 925곳 가운데 30% 정도 됩니다.

100미터 미만이라고 침수 위험이 낮아지는 건 아닙니다. 최근 5년간 침수 사고 중 33%(30건)가 연장 100미터 미만의 지하차도에서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연장 100미터 미만 지하차도에 대해서도 도로 배수시설 지침을 적용할 수 있도록 지침 개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전국 지하차도 10곳 중의 1곳이 '침수 이력'

침수를 한 차례 이상 겪은 지하차도는 전체 지하차도 925곳 가운데 89곳이었습니다.

지하차도 10곳 가운데 1곳은 침수된 적이 있는 겁니다.

눈여겨볼 점은 '오래된' 지하차도일수록 침수 확률이 높았다는 점입니다.

2004년 이후 준공된 지하차도는 전체의 6.3%가 침수 이력이 있었지만, 2003년 이전에 준공된 지하차도의 경우 15%가 침수된 적이 있었습니다.

2004년을 기점으로 침수 이력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2003년 12월에 '도로 배수시설 설계 및 관리지침'이 제정되면서 지하차도를 만들 때 안전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권익위가 조사한 9백여 개 지하차도 중 2004년 이전에 건설돼 배수시설이 규정에 맞는지 확인할 수 없는 지하차도가 전체의 40%나 됐습니다.

전체 지하차도 중 '펌프'가 없는, 그러니까 자연 배수 방식을 채택한 지하차도는 179개였습니다.

펌프가 설치된 지하차도라고 해도, 절반가량인 366곳의 경우 펌프 수·배전반이 지하에 있었습니다.

펌프의 수·배전반이 지하에 있을 때, 갑자기 물이 쏟아졌을 때 고장이 나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 이상 기후 심해지는데...대책 없나?

기상청은 한국기후 평가보고서(2020년)를 통해 여름철 강수량이 지난 10년간 11.6mm씩 증가했다는 통계를 내놨습니다.

여름철 강수량은 2013년 915mm에서 2100년에는 1,030mm까지 100mm 넘게 늘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만큼 지하차도 등 취약시설을 보강해야 할 필요가 더 커지는 겁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1년 7월 <침수사고 방지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상세히 밝혔듯이, 현행 제도에 미비점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피고, 이 기준을 현장에서 제대로 지키는지도 꼼꼼히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