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가 오히려 좋아”?…‘좋은 일자리’ 개념 바뀌나

입력 2023.07.19 (08:00) 수정 2023.07.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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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으로 '시간제 일자리' 선택한 청년↑

청년층이 '첫 일자리'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졌습니다. '고용동향'의 바탕이 되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청년층 응답을 쏙 빼서 더 자세하게 분석해 본 결과입니다.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걸리는 이른바 '취준' 기간도, 첫 일자리의 형태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우선 전일제냐, 시간제냐 하는 '근무 형태별'로 봤을 때, 첫 일자리로 시간제 근무를 선택한 청년이 늘었습니다. 통상적인 근로 시간보다 짧게(주 36시간 미만) 근무하는 '시간제 일자리' 비중은 21.4%로 1년 전보다 0.7%p 늘었습니다.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예전 같으면 딱 잘라 '질 낮은 일자리'가 늘었다고 했겠지만, 최근의 흐름은 좀 다릅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을 보면, 지난 5월 주 36시간 미만 청년 취업자 가운데 74.5%(33만3000명)는 '계속 그대로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습니다.

임금 근로자 가운데 기간을 정하고 일하는 '계약직'의 비중 역시 34.7%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확대됐습니다. 정규직이 줄고 계약직이 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라고 반응할 수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이런 통계도 있습니다.


청년 취업 준비자 가운데 일반직공무원 준비생은 29.3%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 2만 4,000명) 줄었습니다. 2021년 조사에서 30%를 웃돌았지만 지난해 6만 명 넘게 줄었고, 올해 또다시 2만 명 넘게 감소하며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습니다.

■ "기간제 교사인 게 오히려 좋아요"…좋은 일자리 개념 바뀌었나?


취재진이 인터뷰한 경기도 한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김 모 씨. 기간제인데도 일자리에 대해 비교적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형태이지만, 그만큼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지역에 있는 학교로 취업을 시도해볼 수 있고, 개인 상황에 따라 잠시 일을 쉴 수도 있습니다. 시간도 비교적 유연합니다. 담임을 따로 맡지 않고 있어 오전 8시쯤 출근해 오후 4시 반쯤 퇴근합니다.

김 씨는 "직업을 선택할 때 한 지역을 정하고 같은 곳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며 "한 직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무조건 견뎌야만 한다는 게 오히려 두렵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다만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계약직으로 일하면서도 계속 경력을 인정받고 호봉 상승에 따라 급여가 오르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도 이런 흐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같은 일자리가 과거에 비해서는 젊은 사람들한테 대한 매력이 좀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청년들은 근로시간이 짧고 유연하고 자신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있는 일자리를 원하는데, 과거에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이야기했던 것들과는 다른 특징을 모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빠르게 취업하고 더 빠르게 관둬"


이런 흐름으로 보면 첫 직장 근속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 임금근로자의 경우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이 1년 6.6개월로 1년 전보다 0.2개월 줄었습니다.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도 0.4개월 단축됐습니다. 심사숙고해 평생을 갈 직장을 어렵게 고르고, 거기서 어떻게든 버티는 형태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힙니다.

다만 청년들이 내몰렸을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 고용 충격의 여파가 남아있다는 분석은 눈여겨볼 만 합니다.

■"청년층, 코로나 19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일자리로"


한국노동연구원 김유빈 선임연구위원은 "2021년부터 고용이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회복한 것도 청년층"이라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고용주는 비정규직이나 임시 일용직부터 채용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청년층이 고용 안정성이 낮은 일자리로 진입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코로나 19가 완화된 이후 대면 업종인 숙박음심점업의 회복세 강하게 나타나며 청년층의 시간제 근로 비중이 올라간 영향도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시간제·기간제 일자리 증가세 이어질까?


통계청은 '지켜보자'는 입장입니다. 통계청 임경은 고용통계과장은 "취업 소요 기간이 짧아진다는 건,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가 빨리 이직하는 식으로 움직이는 형태로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년층의 인식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 정도로 해석하긴 아직 이르다고 경계하는 거죠.

그러면서 "시간제와 계약직 비중이 늘어나는 형태가 내년까지 이어지는지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자리 시장이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청년층 '마음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20대 취업자는 "계약직이냐 정규직이냐를 자신의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용의 흐름이 바뀌면 사회 안전망도, 정부가 우선 순위를 두고 추진할 제도도 바뀌는 만큼 청년층의 진짜 욕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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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7-19 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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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으로 '시간제 일자리' 선택한 청년↑

청년층이 '첫 일자리'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졌습니다. '고용동향'의 바탕이 되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청년층 응답을 쏙 빼서 더 자세하게 분석해 본 결과입니다.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걸리는 이른바 '취준' 기간도, 첫 일자리의 형태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우선 전일제냐, 시간제냐 하는 '근무 형태별'로 봤을 때, 첫 일자리로 시간제 근무를 선택한 청년이 늘었습니다. 통상적인 근로 시간보다 짧게(주 36시간 미만) 근무하는 '시간제 일자리' 비중은 21.4%로 1년 전보다 0.7%p 늘었습니다.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예전 같으면 딱 잘라 '질 낮은 일자리'가 늘었다고 했겠지만, 최근의 흐름은 좀 다릅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을 보면, 지난 5월 주 36시간 미만 청년 취업자 가운데 74.5%(33만3000명)는 '계속 그대로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습니다.

임금 근로자 가운데 기간을 정하고 일하는 '계약직'의 비중 역시 34.7%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확대됐습니다. 정규직이 줄고 계약직이 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라고 반응할 수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이런 통계도 있습니다.


청년 취업 준비자 가운데 일반직공무원 준비생은 29.3%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 2만 4,000명) 줄었습니다. 2021년 조사에서 30%를 웃돌았지만 지난해 6만 명 넘게 줄었고, 올해 또다시 2만 명 넘게 감소하며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습니다.

■ "기간제 교사인 게 오히려 좋아요"…좋은 일자리 개념 바뀌었나?


취재진이 인터뷰한 경기도 한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김 모 씨. 기간제인데도 일자리에 대해 비교적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형태이지만, 그만큼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지역에 있는 학교로 취업을 시도해볼 수 있고, 개인 상황에 따라 잠시 일을 쉴 수도 있습니다. 시간도 비교적 유연합니다. 담임을 따로 맡지 않고 있어 오전 8시쯤 출근해 오후 4시 반쯤 퇴근합니다.

김 씨는 "직업을 선택할 때 한 지역을 정하고 같은 곳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며 "한 직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무조건 견뎌야만 한다는 게 오히려 두렵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다만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계약직으로 일하면서도 계속 경력을 인정받고 호봉 상승에 따라 급여가 오르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도 이런 흐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같은 일자리가 과거에 비해서는 젊은 사람들한테 대한 매력이 좀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청년들은 근로시간이 짧고 유연하고 자신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있는 일자리를 원하는데, 과거에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이야기했던 것들과는 다른 특징을 모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빠르게 취업하고 더 빠르게 관둬"


이런 흐름으로 보면 첫 직장 근속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 임금근로자의 경우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이 1년 6.6개월로 1년 전보다 0.2개월 줄었습니다.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도 0.4개월 단축됐습니다. 심사숙고해 평생을 갈 직장을 어렵게 고르고, 거기서 어떻게든 버티는 형태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힙니다.

다만 청년들이 내몰렸을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 고용 충격의 여파가 남아있다는 분석은 눈여겨볼 만 합니다.

■"청년층, 코로나 19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일자리로"


한국노동연구원 김유빈 선임연구위원은 "2021년부터 고용이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회복한 것도 청년층"이라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고용주는 비정규직이나 임시 일용직부터 채용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청년층이 고용 안정성이 낮은 일자리로 진입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코로나 19가 완화된 이후 대면 업종인 숙박음심점업의 회복세 강하게 나타나며 청년층의 시간제 근로 비중이 올라간 영향도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시간제·기간제 일자리 증가세 이어질까?


통계청은 '지켜보자'는 입장입니다. 통계청 임경은 고용통계과장은 "취업 소요 기간이 짧아진다는 건, 빨리 취업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가 빨리 이직하는 식으로 움직이는 형태로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년층의 인식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 정도로 해석하긴 아직 이르다고 경계하는 거죠.

그러면서 "시간제와 계약직 비중이 늘어나는 형태가 내년까지 이어지는지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자리 시장이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청년층 '마음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20대 취업자는 "계약직이냐 정규직이냐를 자신의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용의 흐름이 바뀌면 사회 안전망도, 정부가 우선 순위를 두고 추진할 제도도 바뀌는 만큼 청년층의 진짜 욕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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