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못 막은 ‘스토킹 접근금지’, ‘전자발찌’는 막아줄까?

입력 2023.07.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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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또 한 차례 '스토킹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7일 새벽 30대 남성 A 씨가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출근하던 옛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일입니다.

지난달 법원이 이미 A 씨에게 접근·통신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피해자가 한 달 만에 살해되면서 이 명령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KBS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 사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사건의 판결문 54건을 살펴보니,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하는 스토킹 가해자들은 A씨 말고도 많았습니다.

<스토킹 잠정조치란?>
- 스토킹 피해 신고가 접수된 뒤에도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재범의 우려가 큰 경우, 수사기관이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 법원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성이 인정되면, 판결을 선고하기 전 수사 단계에서 ▲서면경고(1호) ▲100m 이내 접근금지(2호)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3호) ▲유치장이나 구치소 유치(4호) 등 명령을 합니다.


■20대부터 노인까지…'접근금지 명령' 위반하는 스토킹 가해자들

이런 식으로 잠정조치를 위반한 스토킹 가해자는 20대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울산의 한 50대 남성, 노령의 어머니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한 뒤 가족과 따로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했습니다. 이 때문에 잠정조치가 내려졌지만 그 후로도 이 남성은 어머니에게 231차례나 전화를 걸며 법원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부산에서는 한 남성이, 접근금지 조치 이후에도 과거 연인이었던 70대 여성의 집과 직장에 3차례 찾아갔습니다. 경북 포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20대 여성을 스토킹한 한 배달기사는 접근·통신금지 명령이 내려진 뒤에도 피해자에게 27번이나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판결문 속 가해자들은 대부분 A 씨와 같은 100m 이내 접근금지(2호)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3호)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어겼습니다. 이 명령을 어기면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 잠정조치 위반은 '위험 신호'

가해자들은 왜 법원의 명령을 쉽게 어기는 걸까요?

잠정조치가 수사 단계에서 임시로 취해지는 조치라, 강제성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그 순간을, 수사기관이 실시간으로 알아채고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가해자의 위치 추적을 할 수 없으니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일시적인 방법인 데다 안전 확보를 위한 부담을 피해자에게 지우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법적 제한'을 하는 것 또한 신중해야 한다는 법조계의 판단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잠정조치가 내려진 가해자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제도가 허술하게 운영되는 사이, 스토킹 가해자들은 공권력을 쉽게 어기며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위협합니다. 판결문 속 가해자들처럼 말입니다.

전문가들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행위는 살인 등 또 다른 범죄로 넘어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우지혜 변호사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받게 될 추가 형벌이 겁나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징역 2년형을 감수하고 잠정조치를 위반하는 스토킹 가해자들도 많고, 이런 경우 중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 KBS 자료화면위치추적 전자장치. KBS 자료화면

■판결 선고 전 '스토킹 가해자 전자발찌' 내년 1월 시행…스토킹 살인 막을까?

살인까지 이어지는 스토킹 사건이 반복되자, 내년 1월부터 '특단의 조치'가 이뤄집니다.

유죄 판결이 선고되기 전이라도, 법원의 잠정조치로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는 겁니다.

2021년 서울 중구 오피스텔 김병찬, 2022년 신당역 전주환 사건처럼 중대 스토킹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정치권이 내놓은 해법입니다. 가해자의 형사사법절차상 권리와 피해자의 안전할 권리가 첨예하게 부딪혔지만, 일단은 피해자 보호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입니다.

가해자에게 미리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은, 피해자를 더 잘 보호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피해자가 이미 위험에 처한 뒤 '스마트워치'를 누르는 것보다, 경찰이 사전에 전자발찌를 통해 가해자의 위치정보를 알 수 있으니 '선제 조치'는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러나 '잘'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도 전자발찌 관리가 어려워, 종종 이를 끊고 달아나는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토킹 잠정조치로 인한 전자발찌 착용자가 더 늘어나면, 이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구체적인 업무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서혜진 변호사는 "경찰이 가해자의 위치정보를 실효성 있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체화 하고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 보호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민고은 변호사는 "가해자의 행동을 제한하려면 절차나 요건이 엄격하게 필요하지만, 피해자 보호는 피해자가 동의만 하면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다"며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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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0 08: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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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또 한 차례 '스토킹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7일 새벽 30대 남성 A 씨가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출근하던 옛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일입니다.

지난달 법원이 이미 A 씨에게 접근·통신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피해자가 한 달 만에 살해되면서 이 명령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KBS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 사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사건의 판결문 54건을 살펴보니,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하는 스토킹 가해자들은 A씨 말고도 많았습니다.

<스토킹 잠정조치란?>
- 스토킹 피해 신고가 접수된 뒤에도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재범의 우려가 큰 경우, 수사기관이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 법원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성이 인정되면, 판결을 선고하기 전 수사 단계에서 ▲서면경고(1호) ▲100m 이내 접근금지(2호)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3호) ▲유치장이나 구치소 유치(4호) 등 명령을 합니다.


■20대부터 노인까지…'접근금지 명령' 위반하는 스토킹 가해자들

이런 식으로 잠정조치를 위반한 스토킹 가해자는 20대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울산의 한 50대 남성, 노령의 어머니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한 뒤 가족과 따로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했습니다. 이 때문에 잠정조치가 내려졌지만 그 후로도 이 남성은 어머니에게 231차례나 전화를 걸며 법원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부산에서는 한 남성이, 접근금지 조치 이후에도 과거 연인이었던 70대 여성의 집과 직장에 3차례 찾아갔습니다. 경북 포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20대 여성을 스토킹한 한 배달기사는 접근·통신금지 명령이 내려진 뒤에도 피해자에게 27번이나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판결문 속 가해자들은 대부분 A 씨와 같은 100m 이내 접근금지(2호)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3호)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어겼습니다. 이 명령을 어기면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 잠정조치 위반은 '위험 신호'

가해자들은 왜 법원의 명령을 쉽게 어기는 걸까요?

잠정조치가 수사 단계에서 임시로 취해지는 조치라, 강제성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그 순간을, 수사기관이 실시간으로 알아채고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가해자의 위치 추적을 할 수 없으니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일시적인 방법인 데다 안전 확보를 위한 부담을 피해자에게 지우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법적 제한'을 하는 것 또한 신중해야 한다는 법조계의 판단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잠정조치가 내려진 가해자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제도가 허술하게 운영되는 사이, 스토킹 가해자들은 공권력을 쉽게 어기며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위협합니다. 판결문 속 가해자들처럼 말입니다.

전문가들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행위는 살인 등 또 다른 범죄로 넘어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우지혜 변호사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받게 될 추가 형벌이 겁나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징역 2년형을 감수하고 잠정조치를 위반하는 스토킹 가해자들도 많고, 이런 경우 중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 KBS 자료화면
■판결 선고 전 '스토킹 가해자 전자발찌' 내년 1월 시행…스토킹 살인 막을까?

살인까지 이어지는 스토킹 사건이 반복되자, 내년 1월부터 '특단의 조치'가 이뤄집니다.

유죄 판결이 선고되기 전이라도, 법원의 잠정조치로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는 겁니다.

2021년 서울 중구 오피스텔 김병찬, 2022년 신당역 전주환 사건처럼 중대 스토킹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정치권이 내놓은 해법입니다. 가해자의 형사사법절차상 권리와 피해자의 안전할 권리가 첨예하게 부딪혔지만, 일단은 피해자 보호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입니다.

가해자에게 미리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은, 피해자를 더 잘 보호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피해자가 이미 위험에 처한 뒤 '스마트워치'를 누르는 것보다, 경찰이 사전에 전자발찌를 통해 가해자의 위치정보를 알 수 있으니 '선제 조치'는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러나 '잘'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도 전자발찌 관리가 어려워, 종종 이를 끊고 달아나는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토킹 잠정조치로 인한 전자발찌 착용자가 더 늘어나면, 이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구체적인 업무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서혜진 변호사는 "경찰이 가해자의 위치정보를 실효성 있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체화 하고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 보호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민고은 변호사는 "가해자의 행동을 제한하려면 절차나 요건이 엄격하게 필요하지만, 피해자 보호는 피해자가 동의만 하면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다"며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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