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유리 상가건물이 아파트 코앞에?…“사생활 보호해주세요”

입력 2023.07.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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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의 한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에 반사된 반대편 아파트 내부의 모습.광주광역시의 한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에 반사된 반대편 아파트 내부의 모습.

외벽이 통째로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표면이 매끄럽고 햇빛이 들면 반짝여 미관상 탁월합니다. 콘크리트나 철근, 벽돌과 달리 투명한 유리는 투명해서 개방감을 주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통유리 건물이 내가 사는 집 바로 앞에 있다면 어떨까요? 이 건물 안에서도, 밖에서도 우리집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면요?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앞에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이 새로 들어서면서 논란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통유리로 된 이 상가 안팎에서 아파트 내부가 다 들여다보인다며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런 통유리 건물, 아무 곳에나 지어도 되는 걸까요?

■ 직선거리로 불과 '30여 미터'..."안에서도 밖에서도 다 보여"

좌측 아파트와 우측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두 건물 사이의 직선거리는 약 33m 정도이다.  아파트는 2002년 입주해 20년이 넘었는데, 최근 아파트 바로 앞에 있던 기존 상가 건물을 허물고 큰 규모의 통유리 건물이 들어섰다.좌측 아파트와 우측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두 건물 사이의 직선거리는 약 33m 정도이다. 아파트는 2002년 입주해 20년이 넘었는데, 최근 아파트 바로 앞에 있던 기존 상가 건물을 허물고 큰 규모의 통유리 건물이 들어섰다.

통유리 상가 건물과 아파트는 직선거리로 불과 33 미터 정도입니다.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18층 높이, 상가는 5층과 10층짜리 건물 두 동이 연결된 구조입니다. 보통 상가의 층고가 아파트보다 많이 높은 점으로 미뤄봤을 때, 사실상 비슷한 높이인 셈입니다.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안에서 반대편 아파트를 바라본 모습.  아파트 주민 제공.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안에서 반대편 아파트를 바라본 모습. 아파트 주민 제공.

주민들은 상가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아파트 내부가 다 들여다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상가에서 반대편 아파트의 살림살이를 다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해당 건물에는 헬스장과 스크린 골프장, 사우나 등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주민들은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사생활이 노출될까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외벽에 반사된 아파트 내부 모습.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외벽에 반사된 아파트 내부 모습.

문제는 또 있습니다. 통유리에 아파트의 모습이 반사된다는 점입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아파트에 사는 다른 층 주민들도 통유리에 반사된 서로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저녁에 가서 상황을 지켜본 결과 사정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반대편 유리에 속옷을 입고 휴식을 취하는 남성, 실내자전거를 타는 아주머니, 거실을 오가는 아이까지 집안 곳곳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주민들은 가장 편하게 쉬어야 할 집에서 창문도, 커튼도 열지 못하고 있다며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지난해부터 짓기 시작...'통유리 건물' 건축 규제 無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 들어선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 들어선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해당 상가 건물은 지난해부터 짓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원래 아파트 앞에 있던 상가는 전면 통유리 건물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래된 상가 건물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상가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주민들도 처음엔 반겼습니다. 어차피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하게 될 시설이니 좋은 건물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길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공사 가림막을 걷어냈을 때 전면 통유리 건물이 드러나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주민들이 사생활을 보장하라며 아파트 앞에 내건 현수막.주민들이 사생활을 보장하라며 아파트 앞에 내건 현수막.

그러나 전면 통유리 건물과 관련한 규제는 없습니다. 전면 통유리 건물과 관련한 문제가 알려진 건 지난 2010년입니다. 경기도 성남의 네이버 사옥 건설 당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와 빛 반사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건데요. 규제를 강화하자는 건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3년째 계류중입니다.

관할 구청인 광주 서구청은 건축주를 설득해 특수 썬팅을 하도록 하고, 상가 내부에 벽장을 배치하는 등 바깥이 안 보이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습니다. 법이 없다 보니 관할 구청이 건축주에게 강제조치를 하기 어려운 데다, 건축주 역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청 관계자는 "주민 불편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면 통유리 상가 안에서 바라본 아파트 내부. 제보자 제공.전면 통유리 상가 안에서 바라본 아파트 내부. 제보자 제공.

저녁에 본 아파트와 통유리 상가의 모습은 꼭 좌우가 똑같은 데칼코마니를 연상케 했습니다. 현장을 떠나는 취재진에게 한 주민이 말했습니다. "진출입로와 가깝고, 상가가 있긴 했어도 시야를 가리지 않아 이 동이 아파트 단지 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으로 손꼽혔어요. 그런데 이제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는 평범한 일상조차 사라져 버렸네요." 주민들의 시간은 오늘도 불안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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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유리 상가건물이 아파트 코앞에?…“사생활 보호해주세요”
    • 입력 2023-07-20 09: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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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의 한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에 반사된 반대편 아파트 내부의 모습.
외벽이 통째로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표면이 매끄럽고 햇빛이 들면 반짝여 미관상 탁월합니다. 콘크리트나 철근, 벽돌과 달리 투명한 유리는 투명해서 개방감을 주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통유리 건물이 내가 사는 집 바로 앞에 있다면 어떨까요? 이 건물 안에서도, 밖에서도 우리집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면요?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앞에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이 새로 들어서면서 논란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통유리로 된 이 상가 안팎에서 아파트 내부가 다 들여다보인다며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런 통유리 건물, 아무 곳에나 지어도 되는 걸까요?

■ 직선거리로 불과 '30여 미터'..."안에서도 밖에서도 다 보여"

좌측 아파트와 우측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두 건물 사이의 직선거리는 약 33m 정도이다.  아파트는 2002년 입주해 20년이 넘었는데, 최근 아파트 바로 앞에 있던 기존 상가 건물을 허물고 큰 규모의 통유리 건물이 들어섰다.
통유리 상가 건물과 아파트는 직선거리로 불과 33 미터 정도입니다.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18층 높이, 상가는 5층과 10층짜리 건물 두 동이 연결된 구조입니다. 보통 상가의 층고가 아파트보다 많이 높은 점으로 미뤄봤을 때, 사실상 비슷한 높이인 셈입니다.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안에서 반대편 아파트를 바라본 모습.  아파트 주민 제공.
주민들은 상가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아파트 내부가 다 들여다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상가에서 반대편 아파트의 살림살이를 다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해당 건물에는 헬스장과 스크린 골프장, 사우나 등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주민들은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사생활이 노출될까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외벽에 반사된 아파트 내부 모습.
문제는 또 있습니다. 통유리에 아파트의 모습이 반사된다는 점입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아파트에 사는 다른 층 주민들도 통유리에 반사된 서로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저녁에 가서 상황을 지켜본 결과 사정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반대편 유리에 속옷을 입고 휴식을 취하는 남성, 실내자전거를 타는 아주머니, 거실을 오가는 아이까지 집안 곳곳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주민들은 가장 편하게 쉬어야 할 집에서 창문도, 커튼도 열지 못하고 있다며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지난해부터 짓기 시작...'통유리 건물' 건축 규제 無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 들어선 전면 통유리 상가 건물.
해당 상가 건물은 지난해부터 짓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원래 아파트 앞에 있던 상가는 전면 통유리 건물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래된 상가 건물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상가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주민들도 처음엔 반겼습니다. 어차피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하게 될 시설이니 좋은 건물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길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공사 가림막을 걷어냈을 때 전면 통유리 건물이 드러나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주민들이 사생활을 보장하라며 아파트 앞에 내건 현수막.
그러나 전면 통유리 건물과 관련한 규제는 없습니다. 전면 통유리 건물과 관련한 문제가 알려진 건 지난 2010년입니다. 경기도 성남의 네이버 사옥 건설 당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와 빛 반사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건데요. 규제를 강화하자는 건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3년째 계류중입니다.

관할 구청인 광주 서구청은 건축주를 설득해 특수 썬팅을 하도록 하고, 상가 내부에 벽장을 배치하는 등 바깥이 안 보이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습니다. 법이 없다 보니 관할 구청이 건축주에게 강제조치를 하기 어려운 데다, 건축주 역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청 관계자는 "주민 불편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면 통유리 상가 안에서 바라본 아파트 내부. 제보자 제공.
저녁에 본 아파트와 통유리 상가의 모습은 꼭 좌우가 똑같은 데칼코마니를 연상케 했습니다. 현장을 떠나는 취재진에게 한 주민이 말했습니다. "진출입로와 가깝고, 상가가 있긴 했어도 시야를 가리지 않아 이 동이 아파트 단지 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으로 손꼽혔어요. 그런데 이제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는 평범한 일상조차 사라져 버렸네요." 주민들의 시간은 오늘도 불안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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