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가슴까지 차오릅니다” 보고하자 “그냥 수색해”

입력 2023.07.21 (08:00) 수정 2023.07.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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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어제(20일) SNS에 채 상병 사건을 언급하며, 같은 부대에서 예천 수색 현장에 투입된 A 부사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고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강 의원과의 통화에서 해병대 장병 순직 소식을 언급하며 "죽고 나서 태극기 덮어주면 뭐 하나. 살아 있을 때 구명조끼 입혀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신의 아들이라도 지켜야겠다며 "아들이 있는 수색 현장에 구명 조끼를 사 들고 가서 입히겠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강 의원이 자신의 SNS에 대화 내용을 알리며 알려진 내용입니다.

■ "군 상관이 '가슴까지 물 올라온다'고 전달…그런데 구명조끼는 안 줬다"

KBS는 A 부사관 어머니와 직접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A 부사관 어머니가 아들과 주고받은 통화와 메시지 내용을 토대로 채 상병이 실종된 지난 19일 예천 수색 현장 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수색 현장에서 '불어난 강물이 장병들 가슴까지 차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장병들에게 예고도 했으면서도, 정작 구명조끼는 지급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상관이 '물이 가슴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대요. 물 높이가 장병들 가슴까지 올라올 줄 알았으면서도 구명조끼를 주지 않고 그냥 투입한 거예요. 당시 해병들은 하천 전체를 다 걸어 다녔는데 구명조끼는 주지 않았고, 수색용 삽이나 막대기만 지급됐다고 합니다."


■ "'그냥 수색해'라고 했다"

"아들 말로는 장병들이 '물이 가슴까지 차오릅니다'라고 보고하자, 상관들은 '그냥 수색해'라고 했대요. 그래서 아들에게 그랬어요. '너네들 왜 이렇게 멍청하냐. 너네들 죽을지 모르는데 그냥 하면 어떡하냐'고요. 너무 화가 났어요. 구명조끼가 없으면 서로 허리라도 끈으로 묶어줘야 휩쓸리지 않는 거잖아요. 군대는 아무리 상명하복이라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 속상한 이야기였습니다."

■ 수색 투입 직전 아들의 메시지 "살아 돌아올게요"

채 상병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면서, 어머니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아들인 A 부사관이 수색에 투입되기 직전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해병대 1사단 정훈실장이 예천군 공설운동장에 집결 후 임무 및 투입 지역을 확인하는 대로 즉시 복구 작전을 실시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떴다고 보내왔어요. 아빠는 '우리 아들 멋진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대한민국 군인이니 항상 긍지를 가지고 임무 수행하도록 해라'라고 답변을 했고요. 그 이후 아들은 '내일 살아 돌아올게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대민 지원에 투입됐어요. 목숨을 걸고 간 작전이었던 것 같아요. 불안했어요."

■ "채 상병이 아들에게 '살려주세요'라고 했어요"

청천벽력 같았던 해병대원 실종 소식.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들이 실종된 것일까 봐 노심초사하며 울었고, 실종된 해병대원이 채 상병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 가슴이 아파 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예천에서 수색하던 해병이 급류에 휩쓸렸다는 뉴스를 오전 9시 20분쯤 보고 난 뒤 아들에게 수차례 전화했지만 안 받는 거예요. 너무나 심장이 벌렁거렸어요. 오전 9시 45분쯤 아들이 아닌 부대 중사님이 전화를 받았어요.
알고 보니 아들은 실종된, 채 상병을 수색하던 중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휩쓸린 것은 아니지만 결국 또 다른 아들이 희생된 것이죠. 나중에 통화가 된 아들이 이렇게 전해왔어요. '그 친구가 죽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그만큼 위험했다는 거예요.
아들은 떠내려간 채 상병이 '살려주세요'라고 하는 것을 봤다고 해요. 채 상병과 그 부모는 어떡하고, 채 상병의 마지막 모습을 본 우리 아들의 충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두 자녀 모두 자랑스러운 해병대원...최소 안전은 책임져줬으면"

어머니는 두 자녀를 해병대에 보냈습니다. 자녀들 모두 '귀신 잡는 해병대'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 부모도 자녀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자녀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대한민국 또 다른 어머니들의 귀한 아들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A 부사관 어머니는 우리 군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내 아들 아니고 남의 아들도 해병대든 육군, 공군, 해군 다 갑니다. 우리나라는 의무적으로 군대 가게 돼 있잖아요. 그 아이들 위해 인터뷰를 하려고 했어요. 전쟁에 나갈 때는 총을 쥐어 주잖아요. 대민지원 나갈 때 최소한의 안전 장비는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지키려고 보낸 우리 아들들, 최소한의 안전만 책임져 주세요."

■ 해병대 "구명조끼 착용하는 것이 맞았다"

해병대는 어제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았다"며 "당시 구명조끼는 하천변 수색 참가자들에게 지급이 안 됐다.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고 규정과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난지역 수색 시 안전 매뉴얼이나 지침의 존재 여부와 그 내용에 대한 질의에는 "재난현장조치 매뉴얼이 있다"며 "내용 공개 여부는 검토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군 내 안전사고 건수 평균은 한해 70건 정도였습니다. 해마다 20명 정도의 군인이 안전사고로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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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21 08:00:13
    • 수정2023-07-21 18: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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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어제(20일) SNS에 채 상병 사건을 언급하며, 같은 부대에서 예천 수색 현장에 투입된 A 부사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고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강 의원과의 통화에서 해병대 장병 순직 소식을 언급하며 "죽고 나서 태극기 덮어주면 뭐 하나. 살아 있을 때 구명조끼 입혀야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신의 아들이라도 지켜야겠다며 "아들이 있는 수색 현장에 구명 조끼를 사 들고 가서 입히겠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강 의원이 자신의 SNS에 대화 내용을 알리며 알려진 내용입니다.

■ "군 상관이 '가슴까지 물 올라온다'고 전달…그런데 구명조끼는 안 줬다"

KBS는 A 부사관 어머니와 직접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A 부사관 어머니가 아들과 주고받은 통화와 메시지 내용을 토대로 채 상병이 실종된 지난 19일 예천 수색 현장 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수색 현장에서 '불어난 강물이 장병들 가슴까지 차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장병들에게 예고도 했으면서도, 정작 구명조끼는 지급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상관이 '물이 가슴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대요. 물 높이가 장병들 가슴까지 올라올 줄 알았으면서도 구명조끼를 주지 않고 그냥 투입한 거예요. 당시 해병들은 하천 전체를 다 걸어 다녔는데 구명조끼는 주지 않았고, 수색용 삽이나 막대기만 지급됐다고 합니다."


■ "'그냥 수색해'라고 했다"

"아들 말로는 장병들이 '물이 가슴까지 차오릅니다'라고 보고하자, 상관들은 '그냥 수색해'라고 했대요. 그래서 아들에게 그랬어요. '너네들 왜 이렇게 멍청하냐. 너네들 죽을지 모르는데 그냥 하면 어떡하냐'고요. 너무 화가 났어요. 구명조끼가 없으면 서로 허리라도 끈으로 묶어줘야 휩쓸리지 않는 거잖아요. 군대는 아무리 상명하복이라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 속상한 이야기였습니다."

■ 수색 투입 직전 아들의 메시지 "살아 돌아올게요"

채 상병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면서, 어머니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아들인 A 부사관이 수색에 투입되기 직전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해병대 1사단 정훈실장이 예천군 공설운동장에 집결 후 임무 및 투입 지역을 확인하는 대로 즉시 복구 작전을 실시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떴다고 보내왔어요. 아빠는 '우리 아들 멋진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대한민국 군인이니 항상 긍지를 가지고 임무 수행하도록 해라'라고 답변을 했고요. 그 이후 아들은 '내일 살아 돌아올게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대민 지원에 투입됐어요. 목숨을 걸고 간 작전이었던 것 같아요. 불안했어요."

■ "채 상병이 아들에게 '살려주세요'라고 했어요"

청천벽력 같았던 해병대원 실종 소식.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들이 실종된 것일까 봐 노심초사하며 울었고, 실종된 해병대원이 채 상병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 가슴이 아파 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예천에서 수색하던 해병이 급류에 휩쓸렸다는 뉴스를 오전 9시 20분쯤 보고 난 뒤 아들에게 수차례 전화했지만 안 받는 거예요. 너무나 심장이 벌렁거렸어요. 오전 9시 45분쯤 아들이 아닌 부대 중사님이 전화를 받았어요.
알고 보니 아들은 실종된, 채 상병을 수색하던 중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휩쓸린 것은 아니지만 결국 또 다른 아들이 희생된 것이죠. 나중에 통화가 된 아들이 이렇게 전해왔어요. '그 친구가 죽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그만큼 위험했다는 거예요.
아들은 떠내려간 채 상병이 '살려주세요'라고 하는 것을 봤다고 해요. 채 상병과 그 부모는 어떡하고, 채 상병의 마지막 모습을 본 우리 아들의 충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두 자녀 모두 자랑스러운 해병대원...최소 안전은 책임져줬으면"

어머니는 두 자녀를 해병대에 보냈습니다. 자녀들 모두 '귀신 잡는 해병대'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 부모도 자녀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자녀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대한민국 또 다른 어머니들의 귀한 아들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A 부사관 어머니는 우리 군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내 아들 아니고 남의 아들도 해병대든 육군, 공군, 해군 다 갑니다. 우리나라는 의무적으로 군대 가게 돼 있잖아요. 그 아이들 위해 인터뷰를 하려고 했어요. 전쟁에 나갈 때는 총을 쥐어 주잖아요. 대민지원 나갈 때 최소한의 안전 장비는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지키려고 보낸 우리 아들들, 최소한의 안전만 책임져 주세요."

■ 해병대 "구명조끼 착용하는 것이 맞았다"

해병대는 어제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았다"며 "당시 구명조끼는 하천변 수색 참가자들에게 지급이 안 됐다.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고 규정과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난지역 수색 시 안전 매뉴얼이나 지침의 존재 여부와 그 내용에 대한 질의에는 "재난현장조치 매뉴얼이 있다"며 "내용 공개 여부는 검토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군 내 안전사고 건수 평균은 한해 70건 정도였습니다. 해마다 20명 정도의 군인이 안전사고로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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