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티라미수에 ‘특별소주’까지…지휘부 파티 동원된 장병들

입력 2023.07.27 (07:00) 수정 2023.07.2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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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미수, 16첩 한정식, 홍어삼합, 과메기, 대방어회, 튀김, 고등어 백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는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 있습니다. 고급 일식집에 주방장이 당일 공수한 신선한 재료를 토대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오마카세'가 있다면, 이곳은 손님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고급 일식집보다 어려운 것을 해내는 곳. 다름 아닌 육군 제9사단 복지회관인 '백마회관'입니다.

이곳에는 수십 년 세월을 갈고 닦아 '오마카세'를 제공하는 주방장 대신, 한 달에 최대 100만 원(병장 월급 기준)만 받는 10명의 군 장병들이 모여 '마법의 음식'을 만듭니다.

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의 김진철 당시 제9사단장 격려 방문 만찬(가운데 군복이 김진철 소장)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의 김진철 당시 제9사단장 격려 방문 만찬(가운데 군복이 김진철 소장)

■'이틀에 한 번 꼴'...9사단 수뇌부들의 만찬

군인권센터는 오늘(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제9사단 복지회관인 '백마회관'에서 제9사단장 이하 사단 지휘부의 갑질 행태를 폭로했습니다.

군인권센터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8일부터 올 7월 15일까지 약 9개월간 9사단 지휘부는 백마회관에서 총 120회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특히 9사단 지휘부는 이 회관에서 메뉴에 없는 음식을 주문하거나 일반 손님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에피타이저, 디저트 등을 차리게 했습니다. 지휘부에게 제공되는 식기 역시 특별한 식기를 제공하게 하고, 식탁에는 냅킨이 깔리는 등 영락없는 '5성급 호텔'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육군규정121 <복지업무규정> 제3조 제5호에 따르면, 백마회관과 같은 복지회관은 '편익부대 복지시설'로 부대 임무 중심의 생활문화권 조성을 위해 사용됩니다. 하지만 사단 지휘부가 이틀에 한 번 꼴로 특별 만찬을 가졌다니, <복지업무규정>이 무색합니다.

사단장, 부사단장, 참모장, 사단주임원사 등 사단 지휘부는 '김종오실'이라 불리는 VIP룸에서만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VIP룸에서 식사가 이뤄지면, 10명의 회관병들은 30분 간격으로 룸에 들어가 반찬을 나르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의 김진철 당시 제9사단장 격려 방문 만찬때 제공된 수제 티라미수.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의 김진철 당시 제9사단장 격려 방문 만찬때 제공된 수제 티라미수.

■'조선 티라미수' '조선처럼 소주'...주 68시간 이상 일한 10명의 회관병

'백마회관'의 백미는 메뉴판에 없는 특별 메뉴와 특별 디저트가 제공된다는 겁니다.

사단 지휘부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백마회관' 관리인에게 말하고 음식은 10명의 회관병들이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입대하기 전에는 생전 만들어보지도 않은 티라미수, 16첩 반상 한정식, 홍어삼합, 과메기 등이 이들의 작품입니다.

심지어 수제 티라미수를 만들어야 하는 행사가 있을 때, 회관병들은 행사 성격에 따라 특정 모양의 틀을 따로 짜서 그에 맞춰 초콜릿 파우더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ROTC 출신인 김진철 당시 육군 9사단장이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을 초청하자 티라미수에 '조선'이라는 글자와 '조선대' 마크를 새기고, 술병에도 '조선처럼'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게 대표적입니다.

회관병들이 생전 만들어보지 못한 음식을 프로답게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상상을 초월한 노동시간이었습니다.

회관병들은 일주일에 68시간 이상 일하며, 휴가도 가지 못하고 몸이 상해가며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군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백마회관'의 회관병 TO는 2명으로 편제되어 있지만, 실제론 5배나 많은 10명의 인력을 배치하고도 어림없는 노동강도였습니다.

결국 격무로 인해 10명의 회관병 중 한 장병은 무릎에 물이 차는 병에 걸렸고, 다른 한 장병은 한 달 가까이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마회관’의 메뉴판‘백마회관’의 메뉴판

■ 고 채수근 상병의 장례 기간에도 '음주는 계속'

지난주 폭우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세상을 떠난 군 장병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제9사단 수뇌부들의 '김종오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고 채수근 상병의 장례가 진행 중이던 지난 21일, 전역하는 참모장의 송별회 명목으로 9사단 지휘부들이 백마회관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고 폭로했습니다.

육군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해당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육군 관계자는 "해당 부대 복지회관 운영과 관련해 제기된 사안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엄정하게 취하겠다"며 "육군 내 모든 복지회관을 점검하고 회관병의 복무 여건과 근무 환경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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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미수, 16첩 한정식, 홍어삼합, 과메기, 대방어회, 튀김, 고등어 백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는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 있습니다. 고급 일식집에 주방장이 당일 공수한 신선한 재료를 토대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오마카세'가 있다면, 이곳은 손님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고급 일식집보다 어려운 것을 해내는 곳. 다름 아닌 육군 제9사단 복지회관인 '백마회관'입니다.

이곳에는 수십 년 세월을 갈고 닦아 '오마카세'를 제공하는 주방장 대신, 한 달에 최대 100만 원(병장 월급 기준)만 받는 10명의 군 장병들이 모여 '마법의 음식'을 만듭니다.

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의 김진철 당시 제9사단장 격려 방문 만찬(가운데 군복이 김진철 소장)
■'이틀에 한 번 꼴'...9사단 수뇌부들의 만찬

군인권센터는 오늘(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제9사단 복지회관인 '백마회관'에서 제9사단장 이하 사단 지휘부의 갑질 행태를 폭로했습니다.

군인권센터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8일부터 올 7월 15일까지 약 9개월간 9사단 지휘부는 백마회관에서 총 120회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특히 9사단 지휘부는 이 회관에서 메뉴에 없는 음식을 주문하거나 일반 손님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에피타이저, 디저트 등을 차리게 했습니다. 지휘부에게 제공되는 식기 역시 특별한 식기를 제공하게 하고, 식탁에는 냅킨이 깔리는 등 영락없는 '5성급 호텔'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육군규정121 <복지업무규정> 제3조 제5호에 따르면, 백마회관과 같은 복지회관은 '편익부대 복지시설'로 부대 임무 중심의 생활문화권 조성을 위해 사용됩니다. 하지만 사단 지휘부가 이틀에 한 번 꼴로 특별 만찬을 가졌다니, <복지업무규정>이 무색합니다.

사단장, 부사단장, 참모장, 사단주임원사 등 사단 지휘부는 '김종오실'이라 불리는 VIP룸에서만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VIP룸에서 식사가 이뤄지면, 10명의 회관병들은 30분 간격으로 룸에 들어가 반찬을 나르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의 김진철 당시 제9사단장 격려 방문 만찬때 제공된 수제 티라미수.
■'조선 티라미수' '조선처럼 소주'...주 68시간 이상 일한 10명의 회관병

'백마회관'의 백미는 메뉴판에 없는 특별 메뉴와 특별 디저트가 제공된다는 겁니다.

사단 지휘부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백마회관' 관리인에게 말하고 음식은 10명의 회관병들이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입대하기 전에는 생전 만들어보지도 않은 티라미수, 16첩 반상 한정식, 홍어삼합, 과메기 등이 이들의 작품입니다.

심지어 수제 티라미수를 만들어야 하는 행사가 있을 때, 회관병들은 행사 성격에 따라 특정 모양의 틀을 따로 짜서 그에 맞춰 초콜릿 파우더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8월, 조선대학교 ROTC 출신인 김진철 당시 육군 9사단장이 조선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임원단을 초청하자 티라미수에 '조선'이라는 글자와 '조선대' 마크를 새기고, 술병에도 '조선처럼'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게 대표적입니다.

회관병들이 생전 만들어보지 못한 음식을 프로답게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상상을 초월한 노동시간이었습니다.

회관병들은 일주일에 68시간 이상 일하며, 휴가도 가지 못하고 몸이 상해가며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군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백마회관'의 회관병 TO는 2명으로 편제되어 있지만, 실제론 5배나 많은 10명의 인력을 배치하고도 어림없는 노동강도였습니다.

결국 격무로 인해 10명의 회관병 중 한 장병은 무릎에 물이 차는 병에 걸렸고, 다른 한 장병은 한 달 가까이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마회관’의 메뉴판
■ 고 채수근 상병의 장례 기간에도 '음주는 계속'

지난주 폭우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세상을 떠난 군 장병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제9사단 수뇌부들의 '김종오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고 채수근 상병의 장례가 진행 중이던 지난 21일, 전역하는 참모장의 송별회 명목으로 9사단 지휘부들이 백마회관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고 폭로했습니다.

육군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해당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육군 관계자는 "해당 부대 복지회관 운영과 관련해 제기된 사안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엄정하게 취하겠다"며 "육군 내 모든 복지회관을 점검하고 회관병의 복무 여건과 근무 환경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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