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수급은 ‘도덕적 해이’?…누가 실업급여 여러 번 받았나

입력 2023.07.27 (07:00) 수정 2023.07.31 (14:2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한 제재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정 횟수 이상부터는 실업급여를 10%에서 최대 50%까지 감액하는 방안입니다.

당·정은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반복 수급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실업급여를 타려고 퇴사와 재취업을 일부러 반복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복 수급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반복 수급자가 누구이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관련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그 답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분석 결과, 4회 이상 반복 수급자는 '특정 업종'에 몰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연령이나 성별, 종사상 지위보다 업종 특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해당 업종은 공공행정, 농림어업,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공공일자리 참여자, 선원, 시설관리 파견 노동자, 학교 다문화 언어 강사입니다. 모두 근속기간이 짧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입니다.

이들 노동자는 계약 기간이 짧아 원치 않은 실업이 반복되는 건데, 일률적으로 수급액을 깎는 건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반복 수급에 대한 제재가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반복 수급자, 특정 업종에 몰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구직급여 반복수급 원인 분석 및 제도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은 "고도 반복 수급자가 될수록 일부 업종에 몰리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습니다.

2019년 기준, 5년간 1회 수급자는 '제조업'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도소매업과 건설업, 보건복지업,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4회 이상 수급자부터는 공공행정, 농림어업,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5회 이상 수급자에서 제조업 비중은 4.1%, 도소매업은 1%에 불과했습니다. 1회 수급자와 반복 수급자 간에 업종별 차이가 뚜렷한 겁니다.

게다가 5회 이상 수급자는 1회 수급 때부터 마지막 수급 때까지 거의 같은 업종에서 일해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반복 수급자는 처음부터 1회 수급자와는 다른 업종별 특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1회 수급자 : 제조업(19.9%) > 도소매업(12.1%) > 건설업(11.8%) > 보건복지업(11.2%) >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10.2%)
5회 수급자 : 공공행정(34.4%) > 운수업(18.1%) > 농림어업(10.9%) >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10.1%)

그렇다면 이들 반복 수급자들이 일한 곳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연구진은 5년 간 3회 이상 수급자가 일한 사업체가 속한 세부 업종도 살펴봤습니다.

공공행정은 375개 업체 중 287개가 지방행정기관이었습니다. 교육서비스는 275개 업체 중 216개가 초·중·고등학교였습니다. 지자체나 학교에서 제공한 일자리에서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농림어업에서는 어업이 가장 많았고 어업에서는 '연근해어업'이 특히 많았습니다. 어업 사업체 167개 중 151개가 연근해어업에 속했습니다. 운수창고업에서는 65개 업체 중 24개는 '기타수상운송지원서비스업', 16개는 '화물운송 중개, 대리 및 관련 서비스업'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연령, 성별, 종사상 지위, 사업장 규모 측면에서도 특성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업종처럼 뚜렷한 관련성이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 반복적 실업, 누구의 책임일까?

연구진은 이들 업종에서 왜 반복적으로 실업이 발생하는지 당사자 심층 면접도 진행했습니다.

지방행정기관 직접 일자리 사업의 경우, "사업 기간에 맞춰 일정한 기간 일하고, 일정한 기간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식으로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는 패턴이 뚜렷"했습니다. 고용 기간은 지자체에 따라 9~11개월이었습니다. 이들은 1년 미만 계약직이어서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도 1~3개월로 짧았습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다문화 언어 강사들도 교육청 채용시스템에 따라 3월~12월에는 일하고, 방학 기간인 1~2월에는 실업급여를 받았습니다.

경비직이나 시설관리직도 대부분 파견업체를 통해 취업하고, 파견업체와 원청의 계약이 종료될 때 실업 상태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업과 운수업 수급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업 기간이 끝나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실업상태에 놓이게 되는 업종들입니다.


"한 배를 나가게 되면 계약서를 쓰고, 그 배가 끝난 후에는 계약종료예요. 바로 무직자 상태가 되는 거예요. … 하선식으로 되는 순간 그때부터 두 달 동안은 무급상태로, 수익이 없는 상태로 휴가를 가는 거죠. 저희 직종은 다 그래요."
"갔다 와서 계약해지인데, 그래도 OO 회사의 가족으로 있는 거죠. 형식은 그렇더라도."

그렇다고 다른 안정적인 일자리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연구진은 "현재의 일자리를 대체할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참여자들이 많았고,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계약 종료 혹은 해고 시 계속 구직 급여를 수령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재취업 기간, 반복 수급자가 더 짧았다

반복 수급자가 재취업에 걸리는 시간은 예상과 달리, 1~2회 수급자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2018년 수급자의 재취업 평균 소요 기간을 확인해보니, 1회 수급자는 337일, 2회 수급자는 298일, 3회 수급자는 266일, 4회 수급자는 199일, 5회 수급자는 148일, 6회 수급자는 142일, 7회 수급자는 84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일정 횟수 이상 반복 수급자를 모두 수급 제한하는 식의 규제는 일부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

■ 해외 사례는?…"반복 수급 제재 규정 없는 곳 많아"

정부는 5년간 3회 이상 반복 수급자가 2018년 82,284명에서 지난해 102,321명으로 5년간 24% 증가했다고 강조합니다. 반복 수급 행태가 확산되면서 고용보험의 공정성에 문제제기가 있으니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국회엔 정부안을 포함해 반복 수급자를 제재하는 법안이 여럿 제출돼 있습니다. 정부안의 경우, 5년간 3회 수급자는 10%, 4회 25%, 5회 40%, 6회 이상 50%를 감액하게 돼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와 핀란드, 독일, 헝가리, 캐나다는 반복 수급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습니다. 다만, 오스트리아는 2회 이상 신청 시 추가적인 수급 요건을 정해놨고, 아일랜드와 루마니아는 재신청 가능 기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정규직을 많이 고용할수록 사업주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복 수급의 원인이 불안정한 고용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반복수급은 ‘도덕적 해이’?…누가 실업급여 여러 번 받았나
    • 입력 2023-07-27 07:00:47
    • 수정2023-07-31 14:28:34
    심층K

정부가 실업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한 제재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정 횟수 이상부터는 실업급여를 10%에서 최대 50%까지 감액하는 방안입니다.

당·정은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반복 수급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실업급여를 타려고 퇴사와 재취업을 일부러 반복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복 수급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반복 수급자가 누구이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관련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그 답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분석 결과, 4회 이상 반복 수급자는 '특정 업종'에 몰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연령이나 성별, 종사상 지위보다 업종 특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해당 업종은 공공행정, 농림어업,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공공일자리 참여자, 선원, 시설관리 파견 노동자, 학교 다문화 언어 강사입니다. 모두 근속기간이 짧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입니다.

이들 노동자는 계약 기간이 짧아 원치 않은 실업이 반복되는 건데, 일률적으로 수급액을 깎는 건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반복 수급에 대한 제재가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반복 수급자, 특정 업종에 몰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구직급여 반복수급 원인 분석 및 제도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은 "고도 반복 수급자가 될수록 일부 업종에 몰리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습니다.

2019년 기준, 5년간 1회 수급자는 '제조업'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도소매업과 건설업, 보건복지업,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4회 이상 수급자부터는 공공행정, 농림어업,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5회 이상 수급자에서 제조업 비중은 4.1%, 도소매업은 1%에 불과했습니다. 1회 수급자와 반복 수급자 간에 업종별 차이가 뚜렷한 겁니다.

게다가 5회 이상 수급자는 1회 수급 때부터 마지막 수급 때까지 거의 같은 업종에서 일해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반복 수급자는 처음부터 1회 수급자와는 다른 업종별 특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1회 수급자 : 제조업(19.9%) > 도소매업(12.1%) > 건설업(11.8%) > 보건복지업(11.2%) >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10.2%)
5회 수급자 : 공공행정(34.4%) > 운수업(18.1%) > 농림어업(10.9%) > 사업시설지원서비스업(10.1%)

그렇다면 이들 반복 수급자들이 일한 곳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연구진은 5년 간 3회 이상 수급자가 일한 사업체가 속한 세부 업종도 살펴봤습니다.

공공행정은 375개 업체 중 287개가 지방행정기관이었습니다. 교육서비스는 275개 업체 중 216개가 초·중·고등학교였습니다. 지자체나 학교에서 제공한 일자리에서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농림어업에서는 어업이 가장 많았고 어업에서는 '연근해어업'이 특히 많았습니다. 어업 사업체 167개 중 151개가 연근해어업에 속했습니다. 운수창고업에서는 65개 업체 중 24개는 '기타수상운송지원서비스업', 16개는 '화물운송 중개, 대리 및 관련 서비스업'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연령, 성별, 종사상 지위, 사업장 규모 측면에서도 특성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업종처럼 뚜렷한 관련성이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 반복적 실업, 누구의 책임일까?

연구진은 이들 업종에서 왜 반복적으로 실업이 발생하는지 당사자 심층 면접도 진행했습니다.

지방행정기관 직접 일자리 사업의 경우, "사업 기간에 맞춰 일정한 기간 일하고, 일정한 기간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식으로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는 패턴이 뚜렷"했습니다. 고용 기간은 지자체에 따라 9~11개월이었습니다. 이들은 1년 미만 계약직이어서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도 1~3개월로 짧았습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다문화 언어 강사들도 교육청 채용시스템에 따라 3월~12월에는 일하고, 방학 기간인 1~2월에는 실업급여를 받았습니다.

경비직이나 시설관리직도 대부분 파견업체를 통해 취업하고, 파견업체와 원청의 계약이 종료될 때 실업 상태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업과 운수업 수급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업 기간이 끝나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실업상태에 놓이게 되는 업종들입니다.


"한 배를 나가게 되면 계약서를 쓰고, 그 배가 끝난 후에는 계약종료예요. 바로 무직자 상태가 되는 거예요. … 하선식으로 되는 순간 그때부터 두 달 동안은 무급상태로, 수익이 없는 상태로 휴가를 가는 거죠. 저희 직종은 다 그래요."
"갔다 와서 계약해지인데, 그래도 OO 회사의 가족으로 있는 거죠. 형식은 그렇더라도."

그렇다고 다른 안정적인 일자리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연구진은 "현재의 일자리를 대체할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참여자들이 많았고,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계약 종료 혹은 해고 시 계속 구직 급여를 수령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재취업 기간, 반복 수급자가 더 짧았다

반복 수급자가 재취업에 걸리는 시간은 예상과 달리, 1~2회 수급자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2018년 수급자의 재취업 평균 소요 기간을 확인해보니, 1회 수급자는 337일, 2회 수급자는 298일, 3회 수급자는 266일, 4회 수급자는 199일, 5회 수급자는 148일, 6회 수급자는 142일, 7회 수급자는 84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일정 횟수 이상 반복 수급자를 모두 수급 제한하는 식의 규제는 일부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

■ 해외 사례는?…"반복 수급 제재 규정 없는 곳 많아"

정부는 5년간 3회 이상 반복 수급자가 2018년 82,284명에서 지난해 102,321명으로 5년간 24% 증가했다고 강조합니다. 반복 수급 행태가 확산되면서 고용보험의 공정성에 문제제기가 있으니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국회엔 정부안을 포함해 반복 수급자를 제재하는 법안이 여럿 제출돼 있습니다. 정부안의 경우, 5년간 3회 수급자는 10%, 4회 25%, 5회 40%, 6회 이상 50%를 감액하게 돼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와 핀란드, 독일, 헝가리, 캐나다는 반복 수급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습니다. 다만, 오스트리아는 2회 이상 신청 시 추가적인 수급 요건을 정해놨고, 아일랜드와 루마니아는 재신청 가능 기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정규직을 많이 고용할수록 사업주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복 수급의 원인이 불안정한 고용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