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아파트 10층 높이인 27m에서 몸을 던진 선수가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입수한 뒤 물에 떠오르지 않는다.
항시 대기하는 안전 요원이 기절한 선수를 물속에서 구조해 입수 풀 밖으로 꺼낸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종목 가운데 가장 위험한,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경기해야 하는 하이다이빙 종목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한국인 1호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31·인천광역시체육회)는 이번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며 '살아서 돌아오기'를 목표로 세웠다.
의미 있는 첫 도전에서 순위는 맨 아래에 자리했지만, 후쿠오카의 바닷바람을 한껏 느끼며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첫 세계선수권대회를 마감했다.
최병화는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하이다이빙 남자부 27m 경기 3·4차 시기에서 113.10점을 추가해 1∼4차 시기 합계 187.50점으로 23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출전한 선수 가운데 최하위다.
경기를 마친 뒤 공동 취재 구역에서 만난 최병화는 "무척 만족스럽다. 처음에 여기 와서는 부담도 아주 크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사실 지금 수행한 4차 시기 기술은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최고 난도다. 후쿠오카에 와서 처음으로 시도한 기술이다"라면서 "이제 4라운드를 마치고, 아직 살아 있으니 만족한다"며 웃었다.
최병화가 4라운드에서 보여준 기술은 '뒤로 서서 3바퀴 돌면서 마지막에 반 바퀴를 틀어서 입수하는' 난도 3.8짜리 연기다.
3라운드에서 펼친 난도 3.4의 '앞으로 서서 3바퀴 돌며 마지막에 반 바퀴 틀어서 입수'하는 동작과는 다이빙대를 출발할 때만 반대고 나머지는 같다.
최병화는 "3라운드 경기를 잘 마치니까 4라운드를 앞두고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사실 어제도 훈련할 기회는 있었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이 쌓인 상황이라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하루 쉬었다. 대신 영양 섭취 잘하고 푹 쉬고 충분히 마사지하고 명상하면서 교감 신경을 내려놓고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도 다이빙대에 서면 무섭다.
아무리 훈련받은 선수라도, 27m 높이에서 몸을 던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 올 때도 비행기 대신 구름 타고 그냥 날아왔다. 평소 높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두려움은 훈련과 명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 최병화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아픈 기억'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동료 선수가 다치고, 때로는 목숨을 잃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최병화는 "'내가 다쳐봤던 기술이다, 내가 다쳤던 높이다'라는 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전설적인 베테랑도 정신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그걸 극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는 그래서 모두가 진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그는 "대기실도 종목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수구는 전쟁 같다고 하는데, 하이다이빙은 모두가 껴안고 하이 파이브 하며 '같이 안전하게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고 말하는 문화가 있다. '내가 저 선수보다 잘해야 한다, 저 선수가 실수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실수하고 다치고 죽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경쟁자 실수를 바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한 종목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27m 위 다이빙대로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병화는 "그래야 제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저는 여기에 살아남으려고 온 것"이라며 "제가 진짜 살아 있는지, 반쯤 살이 있는 건지 확인하려면 다이빙대에 올라가야 한다. 4라운드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네 번이나 낭떠러지 끝에 서보지 않았느냐"며 웃었다.
한국 하이다이빙은 걸음마 단계다.
국내에는 훈련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고, 정규 규격인 10m 플랫폼 다이빙대조차 쓰기 어렵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인천광역시체육회의 도움으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훈련을 소화했던 그는 "불타는 의지는 있어도, 훈련할 여건이 없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기업이나 연맹에 지원을 부탁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최병화는 "제가 상품성이 있고, 제 실력과 가치를 세상에 입증하면 될 일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그다음 일"이라고 자신했다.
만약 자기를 보고 하이다이빙을 꿈꾸는 후배가 등장한다면, 모든 걸 알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최병화는 "제가 한국 최초 하이 다이버가 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저 하이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저보다 먼저 한 선배가 없었을 뿐"이라며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군가가 하이다이빙을 꿈꾼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최병화의 할아버지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인 고(故)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이다.
최윤칠 고문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38㎞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가 근육 경련으로 기권한 '불운의 마라토너'다.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육상 1,500m에 출전해 한국 선수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최병화는 "솔직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효자는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사랑만 주시고, 뭔가를 강요하거나 주입하신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대신, 할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메시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왼쪽 허벅지에 문신으로 새겼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남긴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참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의 환희가 아닌 투쟁'이라는 말이다.
이 명언을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최병화는 "어렸을 때 해주신 올림픽 정신이 성장하면서 영향을 줬다"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2013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세계선수권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하이다이빙은 원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됐고,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병화는 "할아버지를 이어 올림피언이 된다면 무척 영광이겠지만, 올림픽이 목표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서 더 많은 국민이 종목을 알아만 주시면 좋겠다. 저는 이제 시작했으니 점점 발전할 거고, 나중에는 진짜 경쟁력 있는 하이다이빙 선수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제 대회를 마친 '생존자' 최병화의 바람은 소박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에서 대회를 안전하게 끝내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경기 무사히 끝나면 하루 종일 잠만 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숙소 돌아가서 맛있는 거 먹고, 좀 쉰 다음에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항시 대기하는 안전 요원이 기절한 선수를 물속에서 구조해 입수 풀 밖으로 꺼낸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종목 가운데 가장 위험한,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경기해야 하는 하이다이빙 종목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한국인 1호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31·인천광역시체육회)는 이번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며 '살아서 돌아오기'를 목표로 세웠다.
의미 있는 첫 도전에서 순위는 맨 아래에 자리했지만, 후쿠오카의 바닷바람을 한껏 느끼며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첫 세계선수권대회를 마감했다.
최병화는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하이다이빙 남자부 27m 경기 3·4차 시기에서 113.10점을 추가해 1∼4차 시기 합계 187.50점으로 23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출전한 선수 가운데 최하위다.
경기를 마친 뒤 공동 취재 구역에서 만난 최병화는 "무척 만족스럽다. 처음에 여기 와서는 부담도 아주 크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사실 지금 수행한 4차 시기 기술은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최고 난도다. 후쿠오카에 와서 처음으로 시도한 기술이다"라면서 "이제 4라운드를 마치고, 아직 살아 있으니 만족한다"며 웃었다.
최병화가 4라운드에서 보여준 기술은 '뒤로 서서 3바퀴 돌면서 마지막에 반 바퀴를 틀어서 입수하는' 난도 3.8짜리 연기다.
3라운드에서 펼친 난도 3.4의 '앞으로 서서 3바퀴 돌며 마지막에 반 바퀴 틀어서 입수'하는 동작과는 다이빙대를 출발할 때만 반대고 나머지는 같다.
최병화는 "3라운드 경기를 잘 마치니까 4라운드를 앞두고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사실 어제도 훈련할 기회는 있었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이 쌓인 상황이라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하루 쉬었다. 대신 영양 섭취 잘하고 푹 쉬고 충분히 마사지하고 명상하면서 교감 신경을 내려놓고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도 다이빙대에 서면 무섭다.
아무리 훈련받은 선수라도, 27m 높이에서 몸을 던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 올 때도 비행기 대신 구름 타고 그냥 날아왔다. 평소 높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두려움은 훈련과 명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 최병화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아픈 기억'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동료 선수가 다치고, 때로는 목숨을 잃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최병화는 "'내가 다쳐봤던 기술이다, 내가 다쳤던 높이다'라는 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전설적인 베테랑도 정신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그걸 극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는 그래서 모두가 진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그는 "대기실도 종목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수구는 전쟁 같다고 하는데, 하이다이빙은 모두가 껴안고 하이 파이브 하며 '같이 안전하게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고 말하는 문화가 있다. '내가 저 선수보다 잘해야 한다, 저 선수가 실수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실수하고 다치고 죽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경쟁자 실수를 바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한 종목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27m 위 다이빙대로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병화는 "그래야 제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저는 여기에 살아남으려고 온 것"이라며 "제가 진짜 살아 있는지, 반쯤 살이 있는 건지 확인하려면 다이빙대에 올라가야 한다. 4라운드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네 번이나 낭떠러지 끝에 서보지 않았느냐"며 웃었다.
한국 하이다이빙은 걸음마 단계다.
국내에는 훈련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고, 정규 규격인 10m 플랫폼 다이빙대조차 쓰기 어렵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인천광역시체육회의 도움으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훈련을 소화했던 그는 "불타는 의지는 있어도, 훈련할 여건이 없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기업이나 연맹에 지원을 부탁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최병화는 "제가 상품성이 있고, 제 실력과 가치를 세상에 입증하면 될 일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그다음 일"이라고 자신했다.
만약 자기를 보고 하이다이빙을 꿈꾸는 후배가 등장한다면, 모든 걸 알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최병화는 "제가 한국 최초 하이 다이버가 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저 하이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저보다 먼저 한 선배가 없었을 뿐"이라며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군가가 하이다이빙을 꿈꾼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최병화의 할아버지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인 고(故)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이다.
최윤칠 고문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38㎞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가 근육 경련으로 기권한 '불운의 마라토너'다.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육상 1,500m에 출전해 한국 선수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최병화는 "솔직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효자는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사랑만 주시고, 뭔가를 강요하거나 주입하신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대신, 할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메시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왼쪽 허벅지에 문신으로 새겼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남긴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참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의 환희가 아닌 투쟁'이라는 말이다.
이 명언을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최병화는 "어렸을 때 해주신 올림픽 정신이 성장하면서 영향을 줬다"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2013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세계선수권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하이다이빙은 원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됐고,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병화는 "할아버지를 이어 올림피언이 된다면 무척 영광이겠지만, 올림픽이 목표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서 더 많은 국민이 종목을 알아만 주시면 좋겠다. 저는 이제 시작했으니 점점 발전할 거고, 나중에는 진짜 경쟁력 있는 하이다이빙 선수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제 대회를 마친 '생존자' 최병화의 바람은 소박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에서 대회를 안전하게 끝내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경기 무사히 끝나면 하루 종일 잠만 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숙소 돌아가서 맛있는 거 먹고, 좀 쉰 다음에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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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 걸고 27m 다이빙 마친 최병화…“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
- 입력 2023-07-27 15:31:47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아파트 10층 높이인 27m에서 몸을 던진 선수가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입수한 뒤 물에 떠오르지 않는다.
항시 대기하는 안전 요원이 기절한 선수를 물속에서 구조해 입수 풀 밖으로 꺼낸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종목 가운데 가장 위험한,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경기해야 하는 하이다이빙 종목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한국인 1호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31·인천광역시체육회)는 이번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며 '살아서 돌아오기'를 목표로 세웠다.
의미 있는 첫 도전에서 순위는 맨 아래에 자리했지만, 후쿠오카의 바닷바람을 한껏 느끼며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첫 세계선수권대회를 마감했다.
최병화는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하이다이빙 남자부 27m 경기 3·4차 시기에서 113.10점을 추가해 1∼4차 시기 합계 187.50점으로 23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출전한 선수 가운데 최하위다.
경기를 마친 뒤 공동 취재 구역에서 만난 최병화는 "무척 만족스럽다. 처음에 여기 와서는 부담도 아주 크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사실 지금 수행한 4차 시기 기술은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최고 난도다. 후쿠오카에 와서 처음으로 시도한 기술이다"라면서 "이제 4라운드를 마치고, 아직 살아 있으니 만족한다"며 웃었다.
최병화가 4라운드에서 보여준 기술은 '뒤로 서서 3바퀴 돌면서 마지막에 반 바퀴를 틀어서 입수하는' 난도 3.8짜리 연기다.
3라운드에서 펼친 난도 3.4의 '앞으로 서서 3바퀴 돌며 마지막에 반 바퀴 틀어서 입수'하는 동작과는 다이빙대를 출발할 때만 반대고 나머지는 같다.
최병화는 "3라운드 경기를 잘 마치니까 4라운드를 앞두고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사실 어제도 훈련할 기회는 있었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이 쌓인 상황이라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하루 쉬었다. 대신 영양 섭취 잘하고 푹 쉬고 충분히 마사지하고 명상하면서 교감 신경을 내려놓고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도 다이빙대에 서면 무섭다.
아무리 훈련받은 선수라도, 27m 높이에서 몸을 던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 올 때도 비행기 대신 구름 타고 그냥 날아왔다. 평소 높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두려움은 훈련과 명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 최병화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아픈 기억'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동료 선수가 다치고, 때로는 목숨을 잃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최병화는 "'내가 다쳐봤던 기술이다, 내가 다쳤던 높이다'라는 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전설적인 베테랑도 정신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그걸 극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는 그래서 모두가 진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그는 "대기실도 종목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수구는 전쟁 같다고 하는데, 하이다이빙은 모두가 껴안고 하이 파이브 하며 '같이 안전하게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고 말하는 문화가 있다. '내가 저 선수보다 잘해야 한다, 저 선수가 실수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실수하고 다치고 죽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경쟁자 실수를 바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한 종목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27m 위 다이빙대로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병화는 "그래야 제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저는 여기에 살아남으려고 온 것"이라며 "제가 진짜 살아 있는지, 반쯤 살이 있는 건지 확인하려면 다이빙대에 올라가야 한다. 4라운드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네 번이나 낭떠러지 끝에 서보지 않았느냐"며 웃었다.
한국 하이다이빙은 걸음마 단계다.
국내에는 훈련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고, 정규 규격인 10m 플랫폼 다이빙대조차 쓰기 어렵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인천광역시체육회의 도움으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훈련을 소화했던 그는 "불타는 의지는 있어도, 훈련할 여건이 없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기업이나 연맹에 지원을 부탁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최병화는 "제가 상품성이 있고, 제 실력과 가치를 세상에 입증하면 될 일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그다음 일"이라고 자신했다.
만약 자기를 보고 하이다이빙을 꿈꾸는 후배가 등장한다면, 모든 걸 알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최병화는 "제가 한국 최초 하이 다이버가 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저 하이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저보다 먼저 한 선배가 없었을 뿐"이라며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군가가 하이다이빙을 꿈꾼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최병화의 할아버지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인 고(故)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이다.
최윤칠 고문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38㎞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가 근육 경련으로 기권한 '불운의 마라토너'다.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육상 1,500m에 출전해 한국 선수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최병화는 "솔직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효자는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사랑만 주시고, 뭔가를 강요하거나 주입하신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대신, 할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메시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왼쪽 허벅지에 문신으로 새겼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남긴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참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의 환희가 아닌 투쟁'이라는 말이다.
이 명언을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최병화는 "어렸을 때 해주신 올림픽 정신이 성장하면서 영향을 줬다"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2013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세계선수권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하이다이빙은 원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됐고,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병화는 "할아버지를 이어 올림피언이 된다면 무척 영광이겠지만, 올림픽이 목표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서 더 많은 국민이 종목을 알아만 주시면 좋겠다. 저는 이제 시작했으니 점점 발전할 거고, 나중에는 진짜 경쟁력 있는 하이다이빙 선수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제 대회를 마친 '생존자' 최병화의 바람은 소박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에서 대회를 안전하게 끝내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경기 무사히 끝나면 하루 종일 잠만 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숙소 돌아가서 맛있는 거 먹고, 좀 쉰 다음에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항시 대기하는 안전 요원이 기절한 선수를 물속에서 구조해 입수 풀 밖으로 꺼낸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종목 가운데 가장 위험한,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경기해야 하는 하이다이빙 종목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한국인 1호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31·인천광역시체육회)는 이번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며 '살아서 돌아오기'를 목표로 세웠다.
의미 있는 첫 도전에서 순위는 맨 아래에 자리했지만, 후쿠오카의 바닷바람을 한껏 느끼며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첫 세계선수권대회를 마감했다.
최병화는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국제수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하이다이빙 남자부 27m 경기 3·4차 시기에서 113.10점을 추가해 1∼4차 시기 합계 187.50점으로 23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출전한 선수 가운데 최하위다.
경기를 마친 뒤 공동 취재 구역에서 만난 최병화는 "무척 만족스럽다. 처음에 여기 와서는 부담도 아주 크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사실 지금 수행한 4차 시기 기술은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최고 난도다. 후쿠오카에 와서 처음으로 시도한 기술이다"라면서 "이제 4라운드를 마치고, 아직 살아 있으니 만족한다"며 웃었다.
최병화가 4라운드에서 보여준 기술은 '뒤로 서서 3바퀴 돌면서 마지막에 반 바퀴를 틀어서 입수하는' 난도 3.8짜리 연기다.
3라운드에서 펼친 난도 3.4의 '앞으로 서서 3바퀴 돌며 마지막에 반 바퀴 틀어서 입수'하는 동작과는 다이빙대를 출발할 때만 반대고 나머지는 같다.
최병화는 "3라운드 경기를 잘 마치니까 4라운드를 앞두고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사실 어제도 훈련할 기회는 있었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이 쌓인 상황이라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하루 쉬었다. 대신 영양 섭취 잘하고 푹 쉬고 충분히 마사지하고 명상하면서 교감 신경을 내려놓고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도 다이빙대에 서면 무섭다.
아무리 훈련받은 선수라도, 27m 높이에서 몸을 던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 올 때도 비행기 대신 구름 타고 그냥 날아왔다. 평소 높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두려움은 훈련과 명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 최병화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아픈 기억'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동료 선수가 다치고, 때로는 목숨을 잃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최병화는 "'내가 다쳐봤던 기술이다, 내가 다쳤던 높이다'라는 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전설적인 베테랑도 정신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그걸 극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이다이빙 선수는 그래서 모두가 진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그는 "대기실도 종목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수구는 전쟁 같다고 하는데, 하이다이빙은 모두가 껴안고 하이 파이브 하며 '같이 안전하게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고 말하는 문화가 있다. '내가 저 선수보다 잘해야 한다, 저 선수가 실수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실수하고 다치고 죽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경쟁자 실수를 바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한 종목을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27m 위 다이빙대로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병화는 "그래야 제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저는 여기에 살아남으려고 온 것"이라며 "제가 진짜 살아 있는지, 반쯤 살이 있는 건지 확인하려면 다이빙대에 올라가야 한다. 4라운드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네 번이나 낭떠러지 끝에 서보지 않았느냐"며 웃었다.
한국 하이다이빙은 걸음마 단계다.
국내에는 훈련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고, 정규 규격인 10m 플랫폼 다이빙대조차 쓰기 어렵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인천광역시체육회의 도움으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훈련을 소화했던 그는 "불타는 의지는 있어도, 훈련할 여건이 없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기업이나 연맹에 지원을 부탁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최병화는 "제가 상품성이 있고, 제 실력과 가치를 세상에 입증하면 될 일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그다음 일"이라고 자신했다.
만약 자기를 보고 하이다이빙을 꿈꾸는 후배가 등장한다면, 모든 걸 알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최병화는 "제가 한국 최초 하이 다이버가 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저 하이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저보다 먼저 한 선배가 없었을 뿐"이라며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군가가 하이다이빙을 꿈꾼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최병화의 할아버지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인 고(故)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이다.
최윤칠 고문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38㎞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가 근육 경련으로 기권한 '불운의 마라토너'다.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육상 1,500m에 출전해 한국 선수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최병화는 "솔직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효자는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그저 사랑만 주시고, 뭔가를 강요하거나 주입하신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대신, 할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메시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왼쪽 허벅지에 문신으로 새겼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남긴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참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의 환희가 아닌 투쟁'이라는 말이다.
이 명언을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최병화는 "어렸을 때 해주신 올림픽 정신이 성장하면서 영향을 줬다"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2013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세계선수권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하이다이빙은 원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됐고,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병화는 "할아버지를 이어 올림피언이 된다면 무척 영광이겠지만, 올림픽이 목표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서 더 많은 국민이 종목을 알아만 주시면 좋겠다. 저는 이제 시작했으니 점점 발전할 거고, 나중에는 진짜 경쟁력 있는 하이다이빙 선수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제 대회를 마친 '생존자' 최병화의 바람은 소박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에서 대회를 안전하게 끝내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경기 무사히 끝나면 하루 종일 잠만 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숙소 돌아가서 맛있는 거 먹고, 좀 쉰 다음에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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