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소멸시대…“사는 곳 따라 건강 불평등”

입력 2023.07.28 (07:32) 수정 2023.07.2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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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과거 '건강 불평등'은 소득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나타나는 건강상 차이를 말했지만, 이제는 단순히 사는 곳에 따라 이 불평등이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소멸 문제는 아이의 건강을 담보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안녕하세요! (민규 안녕?)"]

네 살배기 민규는 귀를 다쳤습니다.

["귀가 아파. (어디가?) 여기."]

민규네가 사는 장수엔 치료해줄 곳이 없어 도시로 나가야 했고, 전주에 있는 대학병원에서도 민규 귀를 고쳐줄 의사가 없다고 해, 결국 서울로 가 수술했습니다.

아이 병원을 찾아 먼 길을 다니는 일이 엄마에겐 일상이 됐습니다.

민규가 감기만 걸려도 한 시간을 운전해야 합니다.

[윤사라/장수군 장계면 : "(새벽에) 애가 열이 팔팔 끓는데 해열제도 안 들어요. 여기서는 병원을 가게 돼도 무조건 전화부터 하고 가요. 대기가 기냐, 한 시간 뒤에 도착하는데 봐줄 수 있냐."]

아이들 아픈 건 밤낮 가리지 않기에 불안함을 안고 삽니다.

언제고 떠날 수 있도록 미리 짐을 챙겨놓는 게 그나마 생각해낸 대비책입니다.

[윤사라/장수군 장계면 : "밤이고 낮이고 일단은 나가야 할 거를 항상 준비해놔요. 짐가방을 싸놓죠. 병원 갈 준비를 해놔요. 저희는 멀리 가니까, 가는 시간이 기니까."]

민규가 사는 장수와 진안, 무주, 임실, 순창 그리고 고창엔 소아청소년과가 없습니다.

전북 14개 시군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지역에 아이를 돌볼 병원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응급상황이나 큰 병을 다룰 소아전문 의료체계는 전북 전체를 따져도 매우 열악합니다.

소아전용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전북엔 아예 없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매일 밤 당직을 서는 병원은 딱 1곳뿐입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올해 전북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한 전공의가 단 한 명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소아청소년과가 소멸하고 있는 겁니다.

[이재희/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지방에 있는 소아 중환자가 계속 (수도권으로) 전원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암이나 심장 수술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아이들이 수술할 의사를 못 찾아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마저 소외될수록 지방의 인구는 빠르게 사라질 거라고 전문가는 경고합니다.

[이재희/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제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에 소아·청소년 인프라가, 청소년 의료시설이 부족하면 출산하지 않겠다고 한 경우도 많고,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겠다고 분석한 결과가 있거든요."]

사는 곳에 따라 건강 불평등의 차별이 선명해진 시대.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 하는 순간, 소멸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김동균·한문현·신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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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아과 소멸시대…“사는 곳 따라 건강 불평등”
    • 입력 2023-07-28 07:32:51
    • 수정2023-07-29 22:11:56
    뉴스광장(전주)
[앵커]

과거 '건강 불평등'은 소득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나타나는 건강상 차이를 말했지만, 이제는 단순히 사는 곳에 따라 이 불평등이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소멸 문제는 아이의 건강을 담보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안녕하세요! (민규 안녕?)"]

네 살배기 민규는 귀를 다쳤습니다.

["귀가 아파. (어디가?) 여기."]

민규네가 사는 장수엔 치료해줄 곳이 없어 도시로 나가야 했고, 전주에 있는 대학병원에서도 민규 귀를 고쳐줄 의사가 없다고 해, 결국 서울로 가 수술했습니다.

아이 병원을 찾아 먼 길을 다니는 일이 엄마에겐 일상이 됐습니다.

민규가 감기만 걸려도 한 시간을 운전해야 합니다.

[윤사라/장수군 장계면 : "(새벽에) 애가 열이 팔팔 끓는데 해열제도 안 들어요. 여기서는 병원을 가게 돼도 무조건 전화부터 하고 가요. 대기가 기냐, 한 시간 뒤에 도착하는데 봐줄 수 있냐."]

아이들 아픈 건 밤낮 가리지 않기에 불안함을 안고 삽니다.

언제고 떠날 수 있도록 미리 짐을 챙겨놓는 게 그나마 생각해낸 대비책입니다.

[윤사라/장수군 장계면 : "밤이고 낮이고 일단은 나가야 할 거를 항상 준비해놔요. 짐가방을 싸놓죠. 병원 갈 준비를 해놔요. 저희는 멀리 가니까, 가는 시간이 기니까."]

민규가 사는 장수와 진안, 무주, 임실, 순창 그리고 고창엔 소아청소년과가 없습니다.

전북 14개 시군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지역에 아이를 돌볼 병원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응급상황이나 큰 병을 다룰 소아전문 의료체계는 전북 전체를 따져도 매우 열악합니다.

소아전용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전북엔 아예 없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매일 밤 당직을 서는 병원은 딱 1곳뿐입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올해 전북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한 전공의가 단 한 명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소아청소년과가 소멸하고 있는 겁니다.

[이재희/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지방에 있는 소아 중환자가 계속 (수도권으로) 전원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암이나 심장 수술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아이들이 수술할 의사를 못 찾아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마저 소외될수록 지방의 인구는 빠르게 사라질 거라고 전문가는 경고합니다.

[이재희/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제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에 소아·청소년 인프라가, 청소년 의료시설이 부족하면 출산하지 않겠다고 한 경우도 많고,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겠다고 분석한 결과가 있거든요."]

사는 곳에 따라 건강 불평등의 차별이 선명해진 시대.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 하는 순간, 소멸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김동균·한문현·신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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