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병 시키면 1병 공짜’ 가능해졌지만, 할인 효과는 그닥?

입력 2023.08.01 (16:06) 수정 2023.08.0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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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소매점에서 공급가보다 싸게 판매 '허용'
술집·마트 등에서 파격 할인 가능해질 듯
유권 해석·세법 개정으로 가격 인하 '고심'
주류업계 "밑지고 팔겠냐…효과 제한적"


소주 네댓 병씩 마시는 애주가들 술자리가 끝나면 사장님과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사장님, 많이 마셨는데 몇 병만 계산에서 빼주세요." 사장님은 강경합니다. "안 돼, 빼 줄 생각 없어, 돌아가" 사장님이 천종호 판사님처럼 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세청의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의 제2조 3항 때문입니다. 이 조항은 '주류소매업자는 주류를 구입 가격 이하로 판매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일부 금액을 빼줘서 한 병 가격이 구매가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고시를 어기는 셈이죠.


하지만 너무 빡빡한 것 아닐까요. 단골집에서 에누리 흥정에 가볍게 실랑이 벌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국세청이 큰맘 먹었습니다. 국세청은 지난주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주류수입협회 등에 일종의 고시에 대한 유권 해석 격인 안내문을 보냈습니다. "소매업자는 소비자에게 술을 구입 가격 이하로 팔 수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 3병 시키면 1병 공짜…'안주 시키면 덤' 안 돼

이 안내문에 따르면 식당에서 술을 팔 때 공급가(도매업자로부터 산 가격) 이하로 술을 팔아도 됩니다. 업주 입장에선 밑지는 장사이지만, 술 할인 판매로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걸 막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3병 시키면 1병 공짜' 마케팅이 식당에서 이제부터 가능해 집니다. 또 대형마트 같은 유통업체에서 술을 일종의 미끼 상품으로, 공급가 이하에 '파격 할인'하는 것도 허용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술을 '경품'으로 주는 행위입니다. 가령 비싼 안주를 사면 술을 공짜로 주는 영업 행위는 안 됩니다. 국세청 고시는 '주류 또는 주류 교환권을 경품으로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행위'를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류회사들은 술 많이 사는 소비자들에게 두꺼비 인형 같은 '굿즈'를 대신 주고 있습니다.) 또 이번 유권 해석은 소매업(식당·마트 등)에만 해당됩니다. 도매상이 소매상에 술을 팔 때 공급가 이하로 팔려면 좀 더 까다롭습니다.


국세청 고시는 주류 거래와 관련해 장려금·할인 등 형식과 관계없이 돈이나 술을 주거나 받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도매업자가 소매업자에게 싸게 물건을 넘기는 대신, 소매업자가 이익 일부를 도매업자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리베이트'를 막기 위해섭니다. 다만, 국세청은 주류 도매업·소매업 간의 벌어지는 거래에서 모든 할인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당 고시는 변칙적인 거래나 거래질서 문란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합리적 기준에 근거한 할인 판매는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술 가격 인하 '고심'…상승률 둔화

국세청이 술 가격에 관심을 쏟는 건 올해 초 불거진 '소주 1병 6,000원 논란' 때문입니다. 지난해 주류 가격이 1년 전보다 5.7% 상승해 외환 위기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뛴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식당에서 3,000원~4,000원 하던 소주 한 병이 6,000원 하는 식당들도 생겨났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업계에 협조를 부탁한다"라고 발언하고, 정부는 주류업계에 대한 가격 실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우회적 압박에 올해 2월 하이트진로·오비맥주 등 점유율 1위 업체들은 원가 인상 요인에도 "가격을 동결하겠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소주와 맥주의 물가상승률은 둔화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여기에 더해 맥주·탁주 등 주류 종량세에 적용되던 '물가 연동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따라 자동으로 맥주에 붙는 세금이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내년 1월부터는 탄력세율 제도로 바꿉니다. 무슨 말이냐면,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법률로 주류 종량세의 기본 세율을 결정하고, 필요시 정부가 시행령으로 기본 세율의 ±30% 내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주류 가격 상승의 빌미를 줄여 가격 인상 억제 효과가 있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 "밑지고 팔 장사꾼이 얼마나 있겠나"

국세청의 이번 유권 해석이 실제로 술 가격을 끌어내릴 수 있을까요. 주류업계에선 회의적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한 대형마트의 주류 담당 바이어는 "소주·맥주를 비롯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위스키까지 유통업체가 가져가는 마진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서 "지금도 공급가에 가깝게 팔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할인을 더 할 룸(여유)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대형마트의 주류 코너.한 대형마트의 주류 코너.

'밑지는 장사'를 가능하게 해줬다고 해서, 그걸 실제로 할 장사꾼이 얼마냐 많겠냐는 얘기입니다. 다만,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주류 관련 마케팅 기준이 매우 엄격했는데, 이번 유권해석으로 프로모션 폭은 넓어질 수 있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류 도매업계 관계자는 "할인 경쟁이 더 심해졌을 때 대형 유통업체에서 더 싸게 공급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 우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업종과 유통채널에 따라 이번 유권해석에 대한 활용법은 달라질 수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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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8-01 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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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점에서 공급가보다 싸게 판매 '허용'<br />술집·마트 등에서 파격 할인 가능해질 듯<br />유권 해석·세법 개정으로 가격 인하 '고심'<br />주류업계 "밑지고 팔겠냐…효과 제한적"

소주 네댓 병씩 마시는 애주가들 술자리가 끝나면 사장님과 힘겨루기가 시작됩니다. "사장님, 많이 마셨는데 몇 병만 계산에서 빼주세요." 사장님은 강경합니다. "안 돼, 빼 줄 생각 없어, 돌아가" 사장님이 천종호 판사님처럼 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세청의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의 제2조 3항 때문입니다. 이 조항은 '주류소매업자는 주류를 구입 가격 이하로 판매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일부 금액을 빼줘서 한 병 가격이 구매가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고시를 어기는 셈이죠.


하지만 너무 빡빡한 것 아닐까요. 단골집에서 에누리 흥정에 가볍게 실랑이 벌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국세청이 큰맘 먹었습니다. 국세청은 지난주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주류수입협회 등에 일종의 고시에 대한 유권 해석 격인 안내문을 보냈습니다. "소매업자는 소비자에게 술을 구입 가격 이하로 팔 수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 3병 시키면 1병 공짜…'안주 시키면 덤' 안 돼

이 안내문에 따르면 식당에서 술을 팔 때 공급가(도매업자로부터 산 가격) 이하로 술을 팔아도 됩니다. 업주 입장에선 밑지는 장사이지만, 술 할인 판매로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걸 막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3병 시키면 1병 공짜' 마케팅이 식당에서 이제부터 가능해 집니다. 또 대형마트 같은 유통업체에서 술을 일종의 미끼 상품으로, 공급가 이하에 '파격 할인'하는 것도 허용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술을 '경품'으로 주는 행위입니다. 가령 비싼 안주를 사면 술을 공짜로 주는 영업 행위는 안 됩니다. 국세청 고시는 '주류 또는 주류 교환권을 경품으로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행위'를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류회사들은 술 많이 사는 소비자들에게 두꺼비 인형 같은 '굿즈'를 대신 주고 있습니다.) 또 이번 유권 해석은 소매업(식당·마트 등)에만 해당됩니다. 도매상이 소매상에 술을 팔 때 공급가 이하로 팔려면 좀 더 까다롭습니다.


국세청 고시는 주류 거래와 관련해 장려금·할인 등 형식과 관계없이 돈이나 술을 주거나 받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도매업자가 소매업자에게 싸게 물건을 넘기는 대신, 소매업자가 이익 일부를 도매업자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리베이트'를 막기 위해섭니다. 다만, 국세청은 주류 도매업·소매업 간의 벌어지는 거래에서 모든 할인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당 고시는 변칙적인 거래나 거래질서 문란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합리적 기준에 근거한 할인 판매는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술 가격 인하 '고심'…상승률 둔화

국세청이 술 가격에 관심을 쏟는 건 올해 초 불거진 '소주 1병 6,000원 논란' 때문입니다. 지난해 주류 가격이 1년 전보다 5.7% 상승해 외환 위기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뛴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식당에서 3,000원~4,000원 하던 소주 한 병이 6,000원 하는 식당들도 생겨났습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업계에 협조를 부탁한다"라고 발언하고, 정부는 주류업계에 대한 가격 실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우회적 압박에 올해 2월 하이트진로·오비맥주 등 점유율 1위 업체들은 원가 인상 요인에도 "가격을 동결하겠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소주와 맥주의 물가상승률은 둔화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여기에 더해 맥주·탁주 등 주류 종량세에 적용되던 '물가 연동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따라 자동으로 맥주에 붙는 세금이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내년 1월부터는 탄력세율 제도로 바꿉니다. 무슨 말이냐면,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법률로 주류 종량세의 기본 세율을 결정하고, 필요시 정부가 시행령으로 기본 세율의 ±30% 내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주류 가격 상승의 빌미를 줄여 가격 인상 억제 효과가 있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 "밑지고 팔 장사꾼이 얼마나 있겠나"

국세청의 이번 유권 해석이 실제로 술 가격을 끌어내릴 수 있을까요. 주류업계에선 회의적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한 대형마트의 주류 담당 바이어는 "소주·맥주를 비롯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위스키까지 유통업체가 가져가는 마진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서 "지금도 공급가에 가깝게 팔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할인을 더 할 룸(여유)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대형마트의 주류 코너.
'밑지는 장사'를 가능하게 해줬다고 해서, 그걸 실제로 할 장사꾼이 얼마냐 많겠냐는 얘기입니다. 다만,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주류 관련 마케팅 기준이 매우 엄격했는데, 이번 유권해석으로 프로모션 폭은 넓어질 수 있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류 도매업계 관계자는 "할인 경쟁이 더 심해졌을 때 대형 유통업체에서 더 싸게 공급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어 우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업종과 유통채널에 따라 이번 유권해석에 대한 활용법은 달라질 수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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