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범으로 몰린 교사들…법원은 왜 무죄를 선고했을까

입력 2023.08.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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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 내내 준비물을 주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게 한 교사.
1분간 '투명의자' 벌칙을 주고 "모자라게 태어났다"고 말한 교사.
"사람 취급받을 자격이 있냐"며 폭언과 욕설을 내뱉은 교사.

세 명의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건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두 명에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나머지 한 명도 형의 선고가 유예돼 사실상 처벌을 피했습니다.

법원은 왜 이런 판단을 했을까요.

■말 안 듣는 학생에 '벌' 준 교사들…아동학대 재판 끝에 '무죄'

2019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실에서 매주 월요일 '컵타 놀이(컵을 타악기로 이용하는 놀이)' 수업을 진행한 기간제 교사 A 씨.

3주 연속 B군에게만 컵과 악보를 주지 않고 40분간 교실 뒤편 책상에 홀로 엎드려 있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 씨를 고소한 건 같은 학교 교사였던 B 군의 엄마였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아들을 데리러 왔다가 책상에 엎드린 모습을 보고 A 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겁니다.

2년 가까운 재판 끝에 A 씨는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재판부는 "거듭된 지적에도 피해 아동의 태도가 불량해지자 수업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이라며 "단순한 충동적 감정이나 분노에 따른 조치가 아니라 나름의 교육관과 고심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수업 배제 조치를 타당하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면서도, 정서적 학대로서 처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피고인으로서는 수업 진행자로서 피해 아동의 행위가 반복될 경우 다른 아동들이 피해를 볼 상황을 우려해야 했기에 우선은 임시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고 (…) 피해 아동은 돌봄 전담교사에게 A 씨에 대한 두려움이나 원망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싫어, 싫어'라면서 수업 참여를 완강하게 거부했고 달리 수업 참여 의사가 있었다고 볼 정황도 없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1심 판결문 (2021년 1월 14일 선고)

재판부는 또 B군의 문제 행동이 1학기부터 2학기까지 이어졌고 처음에는 A 씨가 수업 참여를 독려한 점, 공포심을 조성할 만한 언행을 하지는 않은 점, 같은 교실에서 돌봄 전담교사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점 등을 두루 고려했습니다.

■"모자란 학생 취급해?" 녹음기 들려보낸 학부모…법원은 "적절한 교육법"

일산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한 C 씨도 2019년 학급 '문제아'로 꼽혔던 D 군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언행 때문에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결국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특히 여러 차례 D 군에게 1분간 '투명의자 벌칙'을 준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투명의자 벌칙은 C 씨가 학기 초 학급회의에서 정한 규칙이었습니다. D 군이 복도나 계단에서 뛰어다니거나 수업시간에 큰소리로 떠들면 벌칙을 실시했는데, 수사기관은 이를 정서적 학대로 본 겁니다.

또 다른 학생들에게 "D 군은 모자라게 태어났으니 너희들이 이해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학급 내 모둠조에서 D 군만 분리해 1주일간 홀로 '세모조'를 시킨 행위도 아동학대 혐의로 공소장에 적혔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2030청년위원회 소속 청년 교사들이 지난달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교권 회복 대책 마련과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제공)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2030청년위원회 소속 청년 교사들이 지난달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교권 회복 대책 마련과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제공)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법원은 투명의자 벌칙과 '세모조' 조편성은 학생의 문제 행위를 훈육하는 적절한 교육방법이라고 본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D군을 가리켜 "모자라게 태어났다"고 한 발언도 전체적 맥락과 발언 전후 정황을 볼 때 학대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D 군의 문제 행위에 불만을 표하는 학생들을 달래고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겁니다.

D 군은 평소 학교에서 태도가 좋지 않아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담임교사인 피고인에게 불평이나 불만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피고인은 학생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니 너그럽게 감싸주고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D군이 수업 태도가 좋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같은 사실에 의해 알 수 있는 공소사실 기재 발언을 하게 된 경위, 발언의 의미와 전체적인 맥락, 발언 장소와 전후 정황 등에 비춰 보면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1심 판결문 (2021년 1월 20일 선고)

교사 C 씨는 2019년 11월 D 군이 다른 학생과 다툰 뒤 자신을 찾아오자 "안 들어주고 싶으니까 선생님한테 말하는 거 삼가주세요", "너희만 보면 막 피곤해"라고 말하고, D 군이 벌레를 라디에이터에 떨어뜨려 태워 죽인 사실을 알고 "뜨거운 판 위에 너 한 번 놔볼까"라고 말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 발언들은 D 군의 녹음기에 고스란히 녹음됐습니다. 2학기 후반 무렵부터 D군의 엄마는 선생님이 부당 대우를 한다는 생각에 녹음기를 들려보냈고, 발언을 확인한 뒤 고소했던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대화의 전체 맥락을 보면 이 역시 학대가 아닌 훈육이라고 봤습니다. C 씨가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비를 가려 D 군과 다툰 학생을 화해시키려 했고, 또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려고 한 것이 발언의 본질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말 안 듣는 학생 참지 못하고 '쌍욕'한 교사는 유죄

반면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학생에게 거친 욕설을 한 교사에게는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 E 씨는 2020년 담임을 맡은 1학년 학급의 F 양에게 두 차례 문제적 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1월에는 F 양이 남자친구와 교내에서 애정행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자 "성욕을 참지 못하겠냐. 너가 짐승이지 사람 취급을 받을 자격이 있냐"고 말했습니다.

12월엔 F 양이 비대면 원격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던 사실을 알게 돼 전화 통화 도중 "씨X 이 친구 미친 거 아냐", "이 돌은 것아", "라면 빨 생각이나 하고 이 죽일 것아"라며 욕설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발언을 두고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교육자의 지도행위로 보기는 도저히 어렵다"면서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다만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평가할 특수한 사정이 있다. 우선, 이 사건 전후의 F의 성행이 일반적인 중학생의 비행을 월등히 초월한다.
- 제주지법 1심 판결문 (2022년 1월 19일 선고)

재판부가 교사 E 씨를 선처하게 된 '특수한 사정'은 F 양의 지나친 비행과 교권 침해였습니다.

F 양은 조건만남 사기 범죄로 형사재판을 받게 됐는데, 죄질이 불량해 만 14세의 소년범으로서 이례적으로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점을 법원에서도 주요하게 고려한 겁니다.

재판부는 또 F 양은 물론 그 부모 역시 교사인 E 씨를 무시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F 양의 어머니는 E 씨에게 욕설 섞인 꾸지람을 듣는다는 말을 듣고 대화를 녹음하도록 부추겼고, F 양의 아버지는 원격 수업 시간에 F 양과 함께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습니다.

F는 교사들의 지도와 훈육을 무시하고 오히려 교사들의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태도를 보이고, 그의 부모 역시 비행을 일삼는 자식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고 방임할 뿐 아니라 오히려 담임 선생님에 대한 신고를 부추기며 교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서 참작해야 할 매우 특수한 사정이다.
- 제주지법 1심 판결문 (2022년 1월 19일 선고)

법원은 E 씨를 선처했지만, E 씨는 사건 이후 스스로 교사직을 그만뒀습니다.

■아동학대 교사 무죄 사례 줄이어…"무고도 교권침해"

학생 지도 과정에서 '훈육'과 '학대'의 경계선에 선 교사들, 판결문 속에서 그 지난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5년간 교원 대상 법률분쟁을 분석한 결과 10건 중 7건은 형사사건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같은 연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소송을 경험한 교사 3명 중 2명이 승소하거나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교사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법적 분쟁까지 나아간 사례가 현실에서 생각보다 더 많다는 뜻인데요. 결국 무죄나 승소로 끝나더라도 장기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교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무고'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교권 침해 사안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오늘(1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새로운 법적 보완장치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 교육감은 또 그 방안으로 학내 법적 갈등을 사전에 중재하는 '학교분쟁조정위원회'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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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1 16: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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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 내내 준비물을 주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게 한 교사.
1분간 '투명의자' 벌칙을 주고 "모자라게 태어났다"고 말한 교사.
"사람 취급받을 자격이 있냐"며 폭언과 욕설을 내뱉은 교사.

세 명의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건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두 명에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나머지 한 명도 형의 선고가 유예돼 사실상 처벌을 피했습니다.

법원은 왜 이런 판단을 했을까요.

■말 안 듣는 학생에 '벌' 준 교사들…아동학대 재판 끝에 '무죄'

2019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실에서 매주 월요일 '컵타 놀이(컵을 타악기로 이용하는 놀이)' 수업을 진행한 기간제 교사 A 씨.

3주 연속 B군에게만 컵과 악보를 주지 않고 40분간 교실 뒤편 책상에 홀로 엎드려 있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 씨를 고소한 건 같은 학교 교사였던 B 군의 엄마였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아들을 데리러 왔다가 책상에 엎드린 모습을 보고 A 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겁니다.

2년 가까운 재판 끝에 A 씨는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재판부는 "거듭된 지적에도 피해 아동의 태도가 불량해지자 수업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이라며 "단순한 충동적 감정이나 분노에 따른 조치가 아니라 나름의 교육관과 고심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수업 배제 조치를 타당하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면서도, 정서적 학대로서 처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피고인으로서는 수업 진행자로서 피해 아동의 행위가 반복될 경우 다른 아동들이 피해를 볼 상황을 우려해야 했기에 우선은 임시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고 (…) 피해 아동은 돌봄 전담교사에게 A 씨에 대한 두려움이나 원망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싫어, 싫어'라면서 수업 참여를 완강하게 거부했고 달리 수업 참여 의사가 있었다고 볼 정황도 없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1심 판결문 (2021년 1월 14일 선고)

재판부는 또 B군의 문제 행동이 1학기부터 2학기까지 이어졌고 처음에는 A 씨가 수업 참여를 독려한 점, 공포심을 조성할 만한 언행을 하지는 않은 점, 같은 교실에서 돌봄 전담교사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점 등을 두루 고려했습니다.

■"모자란 학생 취급해?" 녹음기 들려보낸 학부모…법원은 "적절한 교육법"

일산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한 C 씨도 2019년 학급 '문제아'로 꼽혔던 D 군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언행 때문에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결국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특히 여러 차례 D 군에게 1분간 '투명의자 벌칙'을 준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투명의자 벌칙은 C 씨가 학기 초 학급회의에서 정한 규칙이었습니다. D 군이 복도나 계단에서 뛰어다니거나 수업시간에 큰소리로 떠들면 벌칙을 실시했는데, 수사기관은 이를 정서적 학대로 본 겁니다.

또 다른 학생들에게 "D 군은 모자라게 태어났으니 너희들이 이해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학급 내 모둠조에서 D 군만 분리해 1주일간 홀로 '세모조'를 시킨 행위도 아동학대 혐의로 공소장에 적혔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2030청년위원회 소속 청년 교사들이 지난달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교권 회복 대책 마련과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제공)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법원은 투명의자 벌칙과 '세모조' 조편성은 학생의 문제 행위를 훈육하는 적절한 교육방법이라고 본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D군을 가리켜 "모자라게 태어났다"고 한 발언도 전체적 맥락과 발언 전후 정황을 볼 때 학대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D 군의 문제 행위에 불만을 표하는 학생들을 달래고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겁니다.

D 군은 평소 학교에서 태도가 좋지 않아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담임교사인 피고인에게 불평이나 불만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피고인은 학생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니 너그럽게 감싸주고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D군이 수업 태도가 좋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같은 사실에 의해 알 수 있는 공소사실 기재 발언을 하게 된 경위, 발언의 의미와 전체적인 맥락, 발언 장소와 전후 정황 등에 비춰 보면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1심 판결문 (2021년 1월 20일 선고)

교사 C 씨는 2019년 11월 D 군이 다른 학생과 다툰 뒤 자신을 찾아오자 "안 들어주고 싶으니까 선생님한테 말하는 거 삼가주세요", "너희만 보면 막 피곤해"라고 말하고, D 군이 벌레를 라디에이터에 떨어뜨려 태워 죽인 사실을 알고 "뜨거운 판 위에 너 한 번 놔볼까"라고 말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 발언들은 D 군의 녹음기에 고스란히 녹음됐습니다. 2학기 후반 무렵부터 D군의 엄마는 선생님이 부당 대우를 한다는 생각에 녹음기를 들려보냈고, 발언을 확인한 뒤 고소했던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대화의 전체 맥락을 보면 이 역시 학대가 아닌 훈육이라고 봤습니다. C 씨가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비를 가려 D 군과 다툰 학생을 화해시키려 했고, 또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려고 한 것이 발언의 본질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말 안 듣는 학생 참지 못하고 '쌍욕'한 교사는 유죄

반면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학생에게 거친 욕설을 한 교사에게는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 E 씨는 2020년 담임을 맡은 1학년 학급의 F 양에게 두 차례 문제적 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1월에는 F 양이 남자친구와 교내에서 애정행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자 "성욕을 참지 못하겠냐. 너가 짐승이지 사람 취급을 받을 자격이 있냐"고 말했습니다.

12월엔 F 양이 비대면 원격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던 사실을 알게 돼 전화 통화 도중 "씨X 이 친구 미친 거 아냐", "이 돌은 것아", "라면 빨 생각이나 하고 이 죽일 것아"라며 욕설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발언을 두고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교육자의 지도행위로 보기는 도저히 어렵다"면서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다만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평가할 특수한 사정이 있다. 우선, 이 사건 전후의 F의 성행이 일반적인 중학생의 비행을 월등히 초월한다.
- 제주지법 1심 판결문 (2022년 1월 19일 선고)

재판부가 교사 E 씨를 선처하게 된 '특수한 사정'은 F 양의 지나친 비행과 교권 침해였습니다.

F 양은 조건만남 사기 범죄로 형사재판을 받게 됐는데, 죄질이 불량해 만 14세의 소년범으로서 이례적으로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점을 법원에서도 주요하게 고려한 겁니다.

재판부는 또 F 양은 물론 그 부모 역시 교사인 E 씨를 무시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F 양의 어머니는 E 씨에게 욕설 섞인 꾸지람을 듣는다는 말을 듣고 대화를 녹음하도록 부추겼고, F 양의 아버지는 원격 수업 시간에 F 양과 함께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습니다.

F는 교사들의 지도와 훈육을 무시하고 오히려 교사들의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태도를 보이고, 그의 부모 역시 비행을 일삼는 자식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고 방임할 뿐 아니라 오히려 담임 선생님에 대한 신고를 부추기며 교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서 참작해야 할 매우 특수한 사정이다.
- 제주지법 1심 판결문 (2022년 1월 19일 선고)

법원은 E 씨를 선처했지만, E 씨는 사건 이후 스스로 교사직을 그만뒀습니다.

■아동학대 교사 무죄 사례 줄이어…"무고도 교권침해"

학생 지도 과정에서 '훈육'과 '학대'의 경계선에 선 교사들, 판결문 속에서 그 지난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5년간 교원 대상 법률분쟁을 분석한 결과 10건 중 7건은 형사사건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같은 연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소송을 경험한 교사 3명 중 2명이 승소하거나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교사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법적 분쟁까지 나아간 사례가 현실에서 생각보다 더 많다는 뜻인데요. 결국 무죄나 승소로 끝나더라도 장기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교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무고'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교권 침해 사안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오늘(1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새로운 법적 보완장치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 교육감은 또 그 방안으로 학내 법적 갈등을 사전에 중재하는 '학교분쟁조정위원회'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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