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은 미국이 했지만, ‘몸살’은 우리 경제의 몫?

입력 2023.08.02 (14:19) 수정 2023.08.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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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기침을 했습니다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을 때렸습니다. 신용등급을 내린 겁니다.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렸습니다.

국가 신용등급은 국가가 '빚을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 등급은 개별 국가 내 기업 '신용등급의 천정'입니다. 즉, 그 나라 기업이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한 채권으로 빚을 조달할 때'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의 '상단'이 됩니다.

따라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미국 기업이 자금 조달하는 비용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미국은 발끈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자의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백악관도 나섰습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피치의 강등 조치 직후 성명을 냅니다. 등급 기준은 "트럼프 행정부 때 하락했다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상승했는데, 왜 지금 시점에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경기회복세가 강한 미국의 등급을 강등하냐"며 화를 냈습니다.

여당인 미 민주당은 야당을 비판했습니다. (역시 정치는 남탓입니다.) 미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이 만들어낸 채무불이행 사태의 결과"라면서 "반복적으로 국가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신용을 위험에 빠뜨렸으며, 이번 강등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국가재정, 국가채무, 거버넌스' … 피치가 지적한 미국의 3가지 아킬레스건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의 악화 등을 반영한다"

①거버넌스부터 보죠. 이건 올 초에 있었던 '부채한도 협상 대치국면'을 말합니다. 당시 '국가 재정 디폴트의 날(X-Date)이 다가오는데도 미국의 여·야는 서로 남탓하며 싸우기만 했죠.

특히 피치는 이게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난 20년 간 꾸준히 거버넌스 기준이 악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가 경제 중대사를 마지막 순간에 해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6월에 합의는 했지만 여전히 "재정과 부채 문제는 남아있다"고도 지적합니다.

② 국가 재정적자와 관련해 피치는 "세수 감소와 재정지출 증가, 이자 부담 증가 등의 여파로 미국의 정부 재정적자는 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7%에서 2023년 6.3% 수준으로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2024년엔 6.6%, 2025년엔 6.9%로 계속 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니까 매년 추가로 지는 빚이 줄기는 커녕 계속 늘 것이라고 한 겁니다. 우리 정부가 세운 국가채무 건전성의 기준이 GDP 대비 3%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수치인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③국가채무는 결국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재정적자가 쌓이면 국가채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수지'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재정 적자는 저수지로 새롭게 흘러드는 물입니다. 매년 새로 생기는 빚(Flow:유량)입니다. 국가채무는 흘러든 물이 차서 만든 '저수지'입니다. 누적된 빚(Stock:저량)입니다. 재정적자라는 물줄기가 쌓이면 국가채무라는 저수지가 가득 차게 됩니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코로나 극복과정에서 이미 GDP의 100%를 넘긴 바 있습니다. 우리가 40% 선을 넘을 때 각종 우려가 나왔던 점을 돌이켜보면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저수지가 가득 차 있는 상태인데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높아지는 속도까지 빠르다'면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치는 "향후 10년간 금리 상승과 부채 증가로 인해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재정개혁이 없는 한 고령층에 대한 지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이 좋아질 기미는 없다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도 언급합니다. "신용 여건 악화와 투자 감소, 소비 하락이 미국 경제를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 약한 침체로 밀어 넣을 것"이란 거죠.


■ 그러나 몸살은 우리의 몫입니다

미국의 문제를 왜 우리가 이렇게 소상히 알아야 할까요? 그들의 기침은 우리의 몸살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미국의 국채금리는 소폭 떨어졌습니다. 신용등급이 떨어져도 금리가 오르지 않고 떨어지는 겁니다. 이유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풀이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기침하면 세계가 걱정하고, 걱정이 되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되고, 미국 국채의 수요는 증가합니다.

미국 달러화도 크게 약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요 국가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가 크게 떨어지는 모습은 없습니다.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면' 전혀 달랐을 겁니다. 우리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겪었을 겁니다.)

오히려 상황은 역설적입니다. 한국 원화의 환율은 올라갑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진단 뜻입니다. 오늘 우리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3.7원 오른 1,287.5원에 개장해 1290원 대를 넘어 1,300원 선을 위협합니다. 휴가철 해외여행 수요로 원화를 외화로 바꾸는 상황 탓도 있지만, 미국 신용등급 강등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역시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해석합니다. 미국이 기침하면 세계가 걱정하고, 걱정이 되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되고, 위험자산인 원화보다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선호한다는 것이죠.

정부는 '사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었습니다. 당장 무슨 일이 있지 않더라도 경계하고 지켜본다는 의미입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며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아시아 증시와 환율은 대체로 동반 약세입니다.


■ 2011년에도 그랬다…국제 금융시장의 중력은 똑같다

기시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피치였지만 2011년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였습니다. 당시는 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렸습니다. 이유는 지금과 같습니다. 당시에도 국가부채 상한 증액에 대한 미국 정치권 협상이 난항을 겪었습니다.

당시는 혼란이 컸습니다. 이 조치로 미국 주가가 15% 이상 폭락했습니다. 국제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우리는 원화 환율은 급등하고, 우리 정부는 자본유출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주가는 6거래일 만에 17%나 하락했습니다. 투매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정도로 시장이 놀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미국에 미친 영향도, 우리에게 건너오는 파급효과도 크지 않습니다. 시장은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 난항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 효과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단 점을 꼽습니다.

다만 아직 끝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웰링턴의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ANZ)의 데이비드 크로이 전략가는 "시장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액면 그대로 보면 미국의 명성과 위상에 먹칠하는 것이지만, 시장의 불안과 위험회피 움직임을 부추긴다면 미 국채와 달러화 등 안전자산 매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세계 금융시장의 중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기침해도 몸살을 앓지는 않습니다. 몸살은 우리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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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8-02 16: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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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기침을 했습니다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을 때렸습니다. 신용등급을 내린 겁니다.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렸습니다.

국가 신용등급은 국가가 '빚을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 등급은 개별 국가 내 기업 '신용등급의 천정'입니다. 즉, 그 나라 기업이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한 채권으로 빚을 조달할 때'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의 '상단'이 됩니다.

따라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미국 기업이 자금 조달하는 비용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미국은 발끈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자의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백악관도 나섰습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피치의 강등 조치 직후 성명을 냅니다. 등급 기준은 "트럼프 행정부 때 하락했다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상승했는데, 왜 지금 시점에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경기회복세가 강한 미국의 등급을 강등하냐"며 화를 냈습니다.

여당인 미 민주당은 야당을 비판했습니다. (역시 정치는 남탓입니다.) 미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이 만들어낸 채무불이행 사태의 결과"라면서 "반복적으로 국가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신용을 위험에 빠뜨렸으며, 이번 강등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국가재정, 국가채무, 거버넌스' … 피치가 지적한 미국의 3가지 아킬레스건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의 악화 등을 반영한다"

①거버넌스부터 보죠. 이건 올 초에 있었던 '부채한도 협상 대치국면'을 말합니다. 당시 '국가 재정 디폴트의 날(X-Date)이 다가오는데도 미국의 여·야는 서로 남탓하며 싸우기만 했죠.

특히 피치는 이게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난 20년 간 꾸준히 거버넌스 기준이 악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국가 경제 중대사를 마지막 순간에 해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6월에 합의는 했지만 여전히 "재정과 부채 문제는 남아있다"고도 지적합니다.

② 국가 재정적자와 관련해 피치는 "세수 감소와 재정지출 증가, 이자 부담 증가 등의 여파로 미국의 정부 재정적자는 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7%에서 2023년 6.3% 수준으로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2024년엔 6.6%, 2025년엔 6.9%로 계속 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니까 매년 추가로 지는 빚이 줄기는 커녕 계속 늘 것이라고 한 겁니다. 우리 정부가 세운 국가채무 건전성의 기준이 GDP 대비 3%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수치인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③국가채무는 결국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재정적자가 쌓이면 국가채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수지'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재정 적자는 저수지로 새롭게 흘러드는 물입니다. 매년 새로 생기는 빚(Flow:유량)입니다. 국가채무는 흘러든 물이 차서 만든 '저수지'입니다. 누적된 빚(Stock:저량)입니다. 재정적자라는 물줄기가 쌓이면 국가채무라는 저수지가 가득 차게 됩니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코로나 극복과정에서 이미 GDP의 100%를 넘긴 바 있습니다. 우리가 40% 선을 넘을 때 각종 우려가 나왔던 점을 돌이켜보면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저수지가 가득 차 있는 상태인데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높아지는 속도까지 빠르다'면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치는 "향후 10년간 금리 상승과 부채 증가로 인해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재정개혁이 없는 한 고령층에 대한 지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이 좋아질 기미는 없다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도 언급합니다. "신용 여건 악화와 투자 감소, 소비 하락이 미국 경제를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 약한 침체로 밀어 넣을 것"이란 거죠.


■ 그러나 몸살은 우리의 몫입니다

미국의 문제를 왜 우리가 이렇게 소상히 알아야 할까요? 그들의 기침은 우리의 몸살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미국의 국채금리는 소폭 떨어졌습니다. 신용등급이 떨어져도 금리가 오르지 않고 떨어지는 겁니다. 이유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풀이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기침하면 세계가 걱정하고, 걱정이 되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되고, 미국 국채의 수요는 증가합니다.

미국 달러화도 크게 약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요 국가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가 크게 떨어지는 모습은 없습니다.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면' 전혀 달랐을 겁니다. 우리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겪었을 겁니다.)

오히려 상황은 역설적입니다. 한국 원화의 환율은 올라갑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진단 뜻입니다. 오늘 우리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3.7원 오른 1,287.5원에 개장해 1290원 대를 넘어 1,300원 선을 위협합니다. 휴가철 해외여행 수요로 원화를 외화로 바꾸는 상황 탓도 있지만, 미국 신용등급 강등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역시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해석합니다. 미국이 기침하면 세계가 걱정하고, 걱정이 되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되고, 위험자산인 원화보다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선호한다는 것이죠.

정부는 '사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었습니다. 당장 무슨 일이 있지 않더라도 경계하고 지켜본다는 의미입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며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아시아 증시와 환율은 대체로 동반 약세입니다.


■ 2011년에도 그랬다…국제 금융시장의 중력은 똑같다

기시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피치였지만 2011년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였습니다. 당시는 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내렸습니다. 이유는 지금과 같습니다. 당시에도 국가부채 상한 증액에 대한 미국 정치권 협상이 난항을 겪었습니다.

당시는 혼란이 컸습니다. 이 조치로 미국 주가가 15% 이상 폭락했습니다. 국제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우리는 원화 환율은 급등하고, 우리 정부는 자본유출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주가는 6거래일 만에 17%나 하락했습니다. 투매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정도로 시장이 놀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미국에 미친 영향도, 우리에게 건너오는 파급효과도 크지 않습니다. 시장은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 난항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 효과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단 점을 꼽습니다.

다만 아직 끝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웰링턴의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ANZ)의 데이비드 크로이 전략가는 "시장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액면 그대로 보면 미국의 명성과 위상에 먹칠하는 것이지만, 시장의 불안과 위험회피 움직임을 부추긴다면 미 국채와 달러화 등 안전자산 매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세계 금융시장의 중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기침해도 몸살을 앓지는 않습니다. 몸살은 우리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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