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접근금지명령 내려졌는데…흉기 들고 아들 찾아간 남성

입력 2023.08.02 (15:31) 수정 2023.08.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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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새벽 1시를 넘은 시각,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주택가에서 경찰이 웬 남성과 추격전을 벌였습니다.

3~400미터 가량 도주 끝에 멈춰선 남성, 뒤따라오던 경찰에 흉기를 꺼내들었고 맞선 경찰은 테이저건을 뽑아 겨누었습니다.

한밤중 주택가 골목길에서 벌어진 대치 상황은, 남성이 스스로 흉기를 버리고 경찰에 체포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 반복된 가정 폭력…다시 흉기들고 아들 찾아간 아빠

이 남성이 찾아간 곳은 부인과 자녀들이 살고 있던 집이었습니다.

이미 수 차례 가정 폭력을 저지르고 집을 나가 살던 아빠가 당일 흉기를 든 채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와 10대 청소년인 아들에게 다시 행패를 부린 겁니다.

법적으로 이 남성은 가족들의 집에 갈 수도,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법원에서 아동학대처벌법상 임시조치 1호, 2호 ,3호 ,7호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된 조항이, 이 남성에게 내려진 명령입니다.

아동학대처벌법 제19조(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한 임시조치)

①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원활한 조사ㆍ심리 또는 피해아동등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아동학대행위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이하 “임시조치”라 한다)를 할 수 있다.
1. 피해아동등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로부터 퇴거 등 격리
2. 피해아동등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학교 또는 보호시설 등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3. 피해아동등 또는 가정구성원에 대한 「전기통신기본법」 제2조제1호의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4. 친권 또는 후견인 권한 행사의 제한 또는 정지
5.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의 상담 및 교육 위탁
6. 의료기관이나 그 밖의 요양시설에의 위탁
7. 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

■ 유치장에 있었어야 할 아빠가 왜 그곳에?

임시조치에 따라 남성은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이나 학교 등에 갈 수 없고, 아들을 직접 만나지도 전화를 걸어서도 안됩니다.

특히 임시조치 7호에 따라 경찰서 유치장 등에 유치된 상태여야 했습니다.

법원이 남성에 대한 이러한 임시조치를 결정한 것은 5월 26일.

사건은 6월 2일에 벌어졌으니, 이미 법원 결정이 내려진지 일주일이 흐른 뒤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법원이 남성에게 내린 임시 조치가 '고지'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고지'가 안된 임시조치는 효력 없어..."접근금지 명령 위반으로 처벌 안돼"

임시조치의 효력이 제대로 발생하려면, 법원에서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남성에게 고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해당 남성이 집에도 없고 휴대전화기도 꺼놔서 접근금지 명령과 유치장 유치 등의 임시조치가 결정된 사실을 고지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남성은 분명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아들을 찾아갔지만, 임시조치를 어긴 죄로는 추가 처벌할 수 없습니다. 고지가 안돼 남성이 임시조치를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남성은 사건 당일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죄가 아니라, '폭력행위처벌법상 우범자'로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흉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닌 것을 보면,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만 판단돼 체포했단 뜻입니다.

무엇보다, 임시조치의 고지가 늦어지는 동안 국가는 16살 아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 "'고지' 안되더라도 아동 보호할 대책 필요"

이런 위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법원의 임시조치가 내려진 뒤 수사기관이나 지자체는 아동학대 행위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아동학대 행위자가 잠적하는 상황이 생기면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여성 청소년 사건을 주로 수사하는 경찰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임시조치를 아동학대행위자에게 고지하는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다"며 "법원이 임시조치를 결정하면 대상자의 집에 찾아가거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성이 집에 없거나 휴대폰을 꺼놓으면 딱히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처럼 임시조치의 고지가 안 된 사이 아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임시조치의 고지가 어렵다면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는게 최우선"이라며 "고지가 될 때까지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서 해당 아동을 보호쉼터 등에서 보호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회장은 "장기적으로는 고지를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이 남성을 체포한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6월 9일 해당 남성을 구속해 검찰로 넘겼습니다.

현재 서울 서부지법은 구속된 남성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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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접근금지명령 내려졌는데…흉기 들고 아들 찾아간 남성
    • 입력 2023-08-02 15:31:20
    • 수정2023-08-14 18: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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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새벽 1시를 넘은 시각,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주택가에서 경찰이 웬 남성과 추격전을 벌였습니다.

3~400미터 가량 도주 끝에 멈춰선 남성, 뒤따라오던 경찰에 흉기를 꺼내들었고 맞선 경찰은 테이저건을 뽑아 겨누었습니다.

한밤중 주택가 골목길에서 벌어진 대치 상황은, 남성이 스스로 흉기를 버리고 경찰에 체포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 반복된 가정 폭력…다시 흉기들고 아들 찾아간 아빠

이 남성이 찾아간 곳은 부인과 자녀들이 살고 있던 집이었습니다.

이미 수 차례 가정 폭력을 저지르고 집을 나가 살던 아빠가 당일 흉기를 든 채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와 10대 청소년인 아들에게 다시 행패를 부린 겁니다.

법적으로 이 남성은 가족들의 집에 갈 수도,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법원에서 아동학대처벌법상 임시조치 1호, 2호 ,3호 ,7호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된 조항이, 이 남성에게 내려진 명령입니다.

아동학대처벌법 제19조(아동학대행위자에 대한 임시조치)

①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원활한 조사ㆍ심리 또는 피해아동등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아동학대행위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이하 “임시조치”라 한다)를 할 수 있다.
1. 피해아동등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로부터 퇴거 등 격리
2. 피해아동등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학교 또는 보호시설 등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3. 피해아동등 또는 가정구성원에 대한 「전기통신기본법」 제2조제1호의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4. 친권 또는 후견인 권한 행사의 제한 또는 정지
5.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의 상담 및 교육 위탁
6. 의료기관이나 그 밖의 요양시설에의 위탁
7. 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

■ 유치장에 있었어야 할 아빠가 왜 그곳에?

임시조치에 따라 남성은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이나 학교 등에 갈 수 없고, 아들을 직접 만나지도 전화를 걸어서도 안됩니다.

특히 임시조치 7호에 따라 경찰서 유치장 등에 유치된 상태여야 했습니다.

법원이 남성에 대한 이러한 임시조치를 결정한 것은 5월 26일.

사건은 6월 2일에 벌어졌으니, 이미 법원 결정이 내려진지 일주일이 흐른 뒤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법원이 남성에게 내린 임시 조치가 '고지'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고지'가 안된 임시조치는 효력 없어..."접근금지 명령 위반으로 처벌 안돼"

임시조치의 효력이 제대로 발생하려면, 법원에서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남성에게 고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해당 남성이 집에도 없고 휴대전화기도 꺼놔서 접근금지 명령과 유치장 유치 등의 임시조치가 결정된 사실을 고지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남성은 분명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아들을 찾아갔지만, 임시조치를 어긴 죄로는 추가 처벌할 수 없습니다. 고지가 안돼 남성이 임시조치를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남성은 사건 당일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죄가 아니라, '폭력행위처벌법상 우범자'로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흉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닌 것을 보면,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만 판단돼 체포했단 뜻입니다.

무엇보다, 임시조치의 고지가 늦어지는 동안 국가는 16살 아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 "'고지' 안되더라도 아동 보호할 대책 필요"

이런 위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법원의 임시조치가 내려진 뒤 수사기관이나 지자체는 아동학대 행위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아동학대 행위자가 잠적하는 상황이 생기면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여성 청소년 사건을 주로 수사하는 경찰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임시조치를 아동학대행위자에게 고지하는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다"며 "법원이 임시조치를 결정하면 대상자의 집에 찾아가거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성이 집에 없거나 휴대폰을 꺼놓으면 딱히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처럼 임시조치의 고지가 안 된 사이 아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임시조치의 고지가 어렵다면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는게 최우선"이라며 "고지가 될 때까지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서 해당 아동을 보호쉼터 등에서 보호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회장은 "장기적으로는 고지를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이 남성을 체포한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6월 9일 해당 남성을 구속해 검찰로 넘겼습니다.

현재 서울 서부지법은 구속된 남성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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