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기록’ EDR 보완 나선 국토부…국회는 ‘잠잠’

입력 2023.08.0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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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친할머니가 몰던 차에 타고 있던 12살 이도현 군이 숨졌습니다.

이후 '급발진 사고'를 예방하고, 원인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는데요.

KBS는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지난 5월 급발진을 막을 수 있는 이른바 '제조물책임법'의 개정과 사고기록장치(EDR)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현기차에 급발진 예방책 묻자 ‘빈칸’이 돌아왔습니다 [취재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5788

12살 도현이 할머니 탄원서 “죽자니 아들에게 더 큰 죄” [취재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2215

■국토부, EDR(사고기록장치) 개선 방침

자동차 안전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인 국토부가 급발진 의심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의 저장 기록을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과 관련 법령은 자동차 제조사가 EDR(사고기록장치)에 15가지 항목의 기록하는지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고기록장치 장착기준'에 의무화된 15가지 기록 항목은 자동차의 속도와 RPM(엔진회전수), 가속 페달, 브레이크 페달 작동 여부 등입니다. 여기에 국토부는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록되고 있는 '브레이크 페달' 항목은 페달의 단순 작동 여부만 기록에 남습니다. 반면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제동 압력'이 마스터 실린더 등에 실제로 얼마나 전달됐는지 기록되는 방식입니다.


현재도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들이 생산하는 일부 차량에는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이 기록되거나 저장되고 있지만, 의무는 아닙니다.

국토부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고쳐 기록을 의무화하면, 급발진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브레이크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얼마나 강하게 눌렀는지 등을 지금보다 상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윤대권 교통사고공학연구소장은 "가솔린 차량의 경우 페달을 밟으면 배력장치(부스터 백)를 거쳐 압력이 증가되는데 이 과정을 거친 압력이 모듈에 기록되는 것"이라며 "사고 원인 규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토부는 사고기록장치(EDR)의 길이를 5초에서 20초까지 늘리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행 규정상 사고기록장치(EDR)의 저장시간은 최소 5초입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차량 대부분이 규정에 따라 5초만 사고기록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급발진 의심 사고들은 '고속주행'이 수십 초간 이어질 때가 많아서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충분한 기록이 확보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역시 차량이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약 30초 동안 질주했지만, 국과수가 분석할 수 있었던 건 사고 직전 마지막 5초의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뿐이었습니다.

김은정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장은 "미국에서도 EDR 길이 연장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만큼, 미국에서의 개정 진행 상황을 참고해 국내 법령에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하위규정 개선 나섰지만.. 국회 논의는 '잠잠'

국토부가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제도 보완에 나섰지만, 더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 등은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도현이의 아버지는 '급발진 방지법'을 입법 청원했고, 엿새 만에 5만 명이 동의했습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났을 때, 차량 결함 때문에 사고가 난 게 아니라는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지게 하자는 내용입니다.

차량의 결함과 급발진 원인에 대한 분석은 차량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개별 소비자가 밝혀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급발진 방지법에는 가속제압장치(비정상적 고속주행 현상 시 강제로 속도를 낮추는 것) 등 사고 예방 장치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는 것도 '급발진 방지법'에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이후 담당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 제2 법안소위에 두 차례 안건으로 오르기만 했을 뿐, 다른 안건에 밀려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했습니다.

더구나 최근 정무위에 상정된 '민주화 유공자법' 을 둘러싸고 여야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상임위 일정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취재진이 국회 정무위원 24명을 대상으로 '급발진 방지법'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 9명의 위원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나머지는 입장을 유보하거나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다만 명시적으로 반대한 위원들은 없었습니다. 여야 소속을 떠나 담당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도 충분히 합의될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도현이 아버지가 '12살 도현이가 남긴 마지막 소명'이라고 했던 급발진 방지법, 내년에 21대 국회가 끝나면, 이 법안도 자동 폐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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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급발진 기록’ EDR 보완 나선 국토부…국회는 ‘잠잠’
    • 입력 2023-08-05 0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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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친할머니가 몰던 차에 타고 있던 12살 이도현 군이 숨졌습니다.

이후 '급발진 사고'를 예방하고, 원인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는데요.

KBS는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지난 5월 급발진을 막을 수 있는 이른바 '제조물책임법'의 개정과 사고기록장치(EDR)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현기차에 급발진 예방책 묻자 ‘빈칸’이 돌아왔습니다 [취재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5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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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2215

■국토부, EDR(사고기록장치) 개선 방침

자동차 안전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인 국토부가 급발진 의심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의 저장 기록을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과 관련 법령은 자동차 제조사가 EDR(사고기록장치)에 15가지 항목의 기록하는지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고기록장치 장착기준'에 의무화된 15가지 기록 항목은 자동차의 속도와 RPM(엔진회전수), 가속 페달, 브레이크 페달 작동 여부 등입니다. 여기에 국토부는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록되고 있는 '브레이크 페달' 항목은 페달의 단순 작동 여부만 기록에 남습니다. 반면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제동 압력'이 마스터 실린더 등에 실제로 얼마나 전달됐는지 기록되는 방식입니다.


현재도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들이 생산하는 일부 차량에는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이 기록되거나 저장되고 있지만, 의무는 아닙니다.

국토부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고쳐 기록을 의무화하면, 급발진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브레이크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얼마나 강하게 눌렀는지 등을 지금보다 상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윤대권 교통사고공학연구소장은 "가솔린 차량의 경우 페달을 밟으면 배력장치(부스터 백)를 거쳐 압력이 증가되는데 이 과정을 거친 압력이 모듈에 기록되는 것"이라며 "사고 원인 규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토부는 사고기록장치(EDR)의 길이를 5초에서 20초까지 늘리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행 규정상 사고기록장치(EDR)의 저장시간은 최소 5초입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차량 대부분이 규정에 따라 5초만 사고기록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급발진 의심 사고들은 '고속주행'이 수십 초간 이어질 때가 많아서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충분한 기록이 확보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역시 차량이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약 30초 동안 질주했지만, 국과수가 분석할 수 있었던 건 사고 직전 마지막 5초의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뿐이었습니다.

김은정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장은 "미국에서도 EDR 길이 연장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만큼, 미국에서의 개정 진행 상황을 참고해 국내 법령에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하위규정 개선 나섰지만.. 국회 논의는 '잠잠'

국토부가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제도 보완에 나섰지만, 더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 등은 국회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도현이의 아버지는 '급발진 방지법'을 입법 청원했고, 엿새 만에 5만 명이 동의했습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났을 때, 차량 결함 때문에 사고가 난 게 아니라는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지게 하자는 내용입니다.

차량의 결함과 급발진 원인에 대한 분석은 차량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개별 소비자가 밝혀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급발진 방지법에는 가속제압장치(비정상적 고속주행 현상 시 강제로 속도를 낮추는 것) 등 사고 예방 장치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는 것도 '급발진 방지법'에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이후 담당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 제2 법안소위에 두 차례 안건으로 오르기만 했을 뿐, 다른 안건에 밀려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했습니다.

더구나 최근 정무위에 상정된 '민주화 유공자법' 을 둘러싸고 여야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상임위 일정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취재진이 국회 정무위원 24명을 대상으로 '급발진 방지법'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 9명의 위원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나머지는 입장을 유보하거나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다만 명시적으로 반대한 위원들은 없었습니다. 여야 소속을 떠나 담당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도 충분히 합의될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도현이 아버지가 '12살 도현이가 남긴 마지막 소명'이라고 했던 급발진 방지법, 내년에 21대 국회가 끝나면, 이 법안도 자동 폐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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