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일까 거품일까 ‘9월 위기설’…따져볼 세 가지 [주말엔]

입력 2023.08.20 (10:17) 수정 2023.08.20 (11:5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우리 경제 '9월 위기설' 실체 있나
부실 대출·PF 위기·미중 악재 3중고
금융당국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
보이지 않는 위험도…안심은 일러


금융가에는 예고된 위험은 위험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9월 위기설'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과거의 경험 때문일까. 외환위기(1997년)와 리먼 사태(2008년), 레고랜드 사태(2022년) 모두 9월에 터지거나 조짐을 보였다. 어쩌면 '과도한 걱정이 게으른 안심보다 낫다'라는 관성이 지금의 위기설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막연히 낙천적인 건 위험하다. 9월이 오기 전 우리 경제 어디가 허약하고, 정부 대응은 어떤지 점검할 필요는 있다.

■ 위험 ① 자영업자 '빚 폭탄' 9월에 터진다?

코로나19 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에 지원해 줬던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9월에 끝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오해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최대 3년간의 만기연장, 최대 1년간의 상환유예'라는 문구를 맨 앞에 넣었는데 언론에 조금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는 거다.

전체 지원 대출 잔액 중 92%(3월 말 기준 78.8조 원)가 '만기연장'이다. 원래 예고했던 것처럼 2025년 9월까지 이용 가능하다. 그런데 올해 9월에 종료되는 상환유예와 묶이면서 마치 함께 종료되는 것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사실 '만기연장' 차주들은 이자를 정상 납부하기 때문에, 통상 대출처럼 만기가 재연장(Roll-over)되는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부실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뜻이다.


나머지 8%(3월 말 기준 6.5조 원)인 '상환유예'에 주목해야 한다. 상환유예 차주들은 이자는 내고 있는 원금상환유예와 이자도 못 내는 이자상환유예로 나뉘는데, 당연히 후자가 더 위험하다. 다만, 이들의 비중은 2%(3월 말 기준 1.4조 원)에 불과하고, 차주 수로 보면 1,100명 수준이기 때문에 전체 금융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또 이들에 대한 상환유예 조치가 사실상 끝나는 것도 아니다. 금융회사와 협의해 상환계획서를 내면, 9월이 지나가더라도 최대 60개월까지 상환유예를 이어갈 수 있다.
금융위는 "원금상환유예 이용 차주의 98.3%, 이자상환유예 이용 차주의 84.8%가 상환계획서 작성을 완료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GDP 대비 102.2%(1분기 기준, 국제금융협회)로 불어난 전체 가계부채는 분명 뇌관이 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대출 잔액이 급증하고, 연체율도 증가세다. 금융감독원은 다음 주부터 약 두 달간 은행권 가계대출 취급실태에 대한 종합 점검에 나선다. 은행들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보다 과도한 대출을 내어주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 위험 ② PF 부실로 공사 중단, 자금 경색?

레고랜드 사태 때 유동성 50조 원 공급하고, '둔촌 주공 살리기'로 급한 불 껐는데 불씨는 여전하다. 브릿지론(토지 매입 대금 등 착공 전에 쓰이는 자금 단기 대출) 만기가 8월 말에 상당수 몰려 있고, 본 PF 전환이 어려운 사업장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1~2년 전 토지 가격이 높고 공사비가 낮았을 때 원가가 계산됐던 사업장들은 지금 사업성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제부터 만기를 연장하려면 확 늘어난 이자를 줘야 하기 때문에,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 대응은 '대주단 협약'이다. 어려운 사업장이지만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이 '한 번 믿고 살려보자'라고 뭉쳤다고 보면 된다. 협약이 가동되면 채권 행사(회수 조치)를 할 수 없다. '나만 살겠다'라면서 금융사가 함부로 돈 못 뺀다는 얘기다. 대신 이자를 유예해주고, 신규 자금도 지원해 준다. 또 자금 관련 의결 정족수를 '100% 동의'에서 업권 별로 66%, 50% 수준으로 낮춰서, 빠른 의사결정을 유도한다. 6월 말 기준 이렇게 협약이 맺어진 곳이 전국에 91곳이고, 이 중 66곳이 실질적인 금융 지원을 결정했다.


3월 말 기준 전 업권 PF 연체율은 2.01%였다. 석 달 전(2022년 말)보다 0.82% 포인트 상승했다. 상승폭도 높고 절대치도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 때(2012년 말) 기록한 PF 연체율, 13.62%와는 아직 상당한 차이다. 전체 PF 대출 잔액(131조 원)도 꽤 커 보이는 숫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부동산 금융 시장(2,700조 원)에 비하면 5% 남짓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9월부터 1조 원 규모의 부동산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펀드를 가동한다.

그러나 전국에 수없이 많이 퍼진 공사장에 1조 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업장은 희생이 불가피하다. 지방에 산재한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생활형 숙박시설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 PF 문제가 예측이 어려운 건 뜬금없는 곳에서 불이 붙는 경향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레고랜드(강원도의 개발공사 회생 신청)가 그랬고, 올해 7월 새마을금고(일부 지점의 합병 공고로 인한 뱅크런)도 마찬가지였다. 숫자에 안심하다가 외부 충격에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

■ 위험 ③ 미국 '기지개' 중국 '기침' 우리는 '몸살'

미국과 중국의 경기 흐름이 엇갈린다. 미국은 소비·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위기가 터지며 암울한 경제 성적표를 내고 있다. '나홀로' 미국이 선전하면 우리에게는 악재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세진다. 위험자산인 원화보다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나마 미국이 기준금리라도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고금리가 더 유지될 거라 믿는 분위기다. '강달러'가 더 세지고 원화값이 더 떨어진다. 요즘 1,340원대를 넘나드는 고환율인 배경이다.

고환율은 통상 수출기업에 유리하다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중국 내수 부진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불황형 흑자' 기조인데 수출 물량 더 줄면, 하반기 무역수지 흑자는 불투명하다. 국제 유가도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7월 수입 물가는 석 달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물가가 들썩거리면 기업 실적도 악화하고 민간 소비가 뒷걸음칠 수 있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 '상저하고(경기가 상반기에 나빴다가 하반기에 좋아진다)'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17일 비상 경제 장관회의 겸 수출 투자대책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추경호 경제부총리가 17일 비상 경제 장관회의 겸 수출 투자대책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돌파구의 하나로 '수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17일 품목과 지역 다변화 등 구조적 수출 대책을 강조했다. 또 수출 기업의 대출 금리 낮춰주는 등 23조 원 규모의 금융 지원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기업 하는 입장에서 하루 아침에 거래선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한시적 금융 지원도 활력을 회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내외 악재가 걷히진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은 어렵다는 뜻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면 물가 불안으로 연결되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상승 압박이 심해지면서 가계 빚, 부동산 PF 부실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라면서 "정부가 산업 경쟁력 키우는 데 더 투자해야한다"라고 말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진짜일까 거품일까 ‘9월 위기설’…따져볼 세 가지 [주말엔]
    • 입력 2023-08-20 10:17:26
    • 수정2023-08-20 11:52:26
    주말엔
우리 경제 '9월 위기설' 실체 있나<br />부실 대출·PF 위기·미중 악재 3중고<br />금융당국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br />보이지 않는 위험도…안심은 일러

금융가에는 예고된 위험은 위험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9월 위기설'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과거의 경험 때문일까. 외환위기(1997년)와 리먼 사태(2008년), 레고랜드 사태(2022년) 모두 9월에 터지거나 조짐을 보였다. 어쩌면 '과도한 걱정이 게으른 안심보다 낫다'라는 관성이 지금의 위기설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막연히 낙천적인 건 위험하다. 9월이 오기 전 우리 경제 어디가 허약하고, 정부 대응은 어떤지 점검할 필요는 있다.

■ 위험 ① 자영업자 '빚 폭탄' 9월에 터진다?

코로나19 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에 지원해 줬던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9월에 끝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오해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최대 3년간의 만기연장, 최대 1년간의 상환유예'라는 문구를 맨 앞에 넣었는데 언론에 조금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는 거다.

전체 지원 대출 잔액 중 92%(3월 말 기준 78.8조 원)가 '만기연장'이다. 원래 예고했던 것처럼 2025년 9월까지 이용 가능하다. 그런데 올해 9월에 종료되는 상환유예와 묶이면서 마치 함께 종료되는 것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사실 '만기연장' 차주들은 이자를 정상 납부하기 때문에, 통상 대출처럼 만기가 재연장(Roll-over)되는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부실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뜻이다.


나머지 8%(3월 말 기준 6.5조 원)인 '상환유예'에 주목해야 한다. 상환유예 차주들은 이자는 내고 있는 원금상환유예와 이자도 못 내는 이자상환유예로 나뉘는데, 당연히 후자가 더 위험하다. 다만, 이들의 비중은 2%(3월 말 기준 1.4조 원)에 불과하고, 차주 수로 보면 1,100명 수준이기 때문에 전체 금융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또 이들에 대한 상환유예 조치가 사실상 끝나는 것도 아니다. 금융회사와 협의해 상환계획서를 내면, 9월이 지나가더라도 최대 60개월까지 상환유예를 이어갈 수 있다.
금융위는 "원금상환유예 이용 차주의 98.3%, 이자상환유예 이용 차주의 84.8%가 상환계획서 작성을 완료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GDP 대비 102.2%(1분기 기준, 국제금융협회)로 불어난 전체 가계부채는 분명 뇌관이 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대출 잔액이 급증하고, 연체율도 증가세다. 금융감독원은 다음 주부터 약 두 달간 은행권 가계대출 취급실태에 대한 종합 점검에 나선다. 은행들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보다 과도한 대출을 내어주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 위험 ② PF 부실로 공사 중단, 자금 경색?

레고랜드 사태 때 유동성 50조 원 공급하고, '둔촌 주공 살리기'로 급한 불 껐는데 불씨는 여전하다. 브릿지론(토지 매입 대금 등 착공 전에 쓰이는 자금 단기 대출) 만기가 8월 말에 상당수 몰려 있고, 본 PF 전환이 어려운 사업장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1~2년 전 토지 가격이 높고 공사비가 낮았을 때 원가가 계산됐던 사업장들은 지금 사업성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제부터 만기를 연장하려면 확 늘어난 이자를 줘야 하기 때문에,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 대응은 '대주단 협약'이다. 어려운 사업장이지만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이 '한 번 믿고 살려보자'라고 뭉쳤다고 보면 된다. 협약이 가동되면 채권 행사(회수 조치)를 할 수 없다. '나만 살겠다'라면서 금융사가 함부로 돈 못 뺀다는 얘기다. 대신 이자를 유예해주고, 신규 자금도 지원해 준다. 또 자금 관련 의결 정족수를 '100% 동의'에서 업권 별로 66%, 50% 수준으로 낮춰서, 빠른 의사결정을 유도한다. 6월 말 기준 이렇게 협약이 맺어진 곳이 전국에 91곳이고, 이 중 66곳이 실질적인 금융 지원을 결정했다.


3월 말 기준 전 업권 PF 연체율은 2.01%였다. 석 달 전(2022년 말)보다 0.82% 포인트 상승했다. 상승폭도 높고 절대치도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 때(2012년 말) 기록한 PF 연체율, 13.62%와는 아직 상당한 차이다. 전체 PF 대출 잔액(131조 원)도 꽤 커 보이는 숫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부동산 금융 시장(2,700조 원)에 비하면 5% 남짓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9월부터 1조 원 규모의 부동산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펀드를 가동한다.

그러나 전국에 수없이 많이 퍼진 공사장에 1조 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업장은 희생이 불가피하다. 지방에 산재한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생활형 숙박시설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 PF 문제가 예측이 어려운 건 뜬금없는 곳에서 불이 붙는 경향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레고랜드(강원도의 개발공사 회생 신청)가 그랬고, 올해 7월 새마을금고(일부 지점의 합병 공고로 인한 뱅크런)도 마찬가지였다. 숫자에 안심하다가 외부 충격에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

■ 위험 ③ 미국 '기지개' 중국 '기침' 우리는 '몸살'

미국과 중국의 경기 흐름이 엇갈린다. 미국은 소비·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위기가 터지며 암울한 경제 성적표를 내고 있다. '나홀로' 미국이 선전하면 우리에게는 악재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세진다. 위험자산인 원화보다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나마 미국이 기준금리라도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고금리가 더 유지될 거라 믿는 분위기다. '강달러'가 더 세지고 원화값이 더 떨어진다. 요즘 1,340원대를 넘나드는 고환율인 배경이다.

고환율은 통상 수출기업에 유리하다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중국 내수 부진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불황형 흑자' 기조인데 수출 물량 더 줄면, 하반기 무역수지 흑자는 불투명하다. 국제 유가도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7월 수입 물가는 석 달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물가가 들썩거리면 기업 실적도 악화하고 민간 소비가 뒷걸음칠 수 있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 '상저하고(경기가 상반기에 나빴다가 하반기에 좋아진다)'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17일 비상 경제 장관회의 겸 수출 투자대책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돌파구의 하나로 '수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17일 품목과 지역 다변화 등 구조적 수출 대책을 강조했다. 또 수출 기업의 대출 금리 낮춰주는 등 23조 원 규모의 금융 지원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기업 하는 입장에서 하루 아침에 거래선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한시적 금융 지원도 활력을 회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내외 악재가 걷히진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은 어렵다는 뜻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면 물가 불안으로 연결되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상승 압박이 심해지면서 가계 빚, 부동산 PF 부실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라면서 "정부가 산업 경쟁력 키우는 데 더 투자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