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헌혈증 나누는 의사…“200번째 헌혈, 앞으로도 쭉”

입력 2023.08.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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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2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제주한라병원 이지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 제공지난 23일 2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제주한라병원 이지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 제공

지난 23일, 제주시 연동 헌혈의집 신제주센터. 베테랑 간호사가 알코올이 묻은 솜으로 이지원(41) 씨의 오른쪽 팔뚝을 소독했습니다. 20여 년간 199차례나 굵은 주삿바늘이 들락거린 팔이자, 불의의 사고로 절단된 수지(手指)를 접합하는 인술을 펼치는 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가 피기를 1시간 30분, 또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소중한 혈액 한 팩이 채워졌습니다.

제주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지 절단 환자의 접합 수술을 담당하는 정형외과 의사인 이 씨의 생애 200번째 헌혈입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은 이지원 제주한라병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지난 23일, 제주시 연동에 있는 헌혈의집 신제주센터에서 200번째 헌혈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제주의 53번째 '200회 이상 헌혈자'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 쌍둥이 동생과 함께 한 첫 헌혈…"100번째 헌혈 기록도 함께"

이지원 씨의 첫 헌혈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교 시절, 과학자가 꿈이었던 이 씨는 00학번으로 한 대학 생물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쌍둥이 동생과 '좋은 일 한 번 해보자'며 처음 헌혈했어요. 그 길로 틈틈이 헌혈에 참여했죠."

이후 이 씨는 '의사'로 다시 한번 진로를 바꿨고, 05학번 늦깎이 의대생으로 입학해 의료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이 씨는 바쁜 전공의, 전문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헌혈은 잊지 않았습니다. 함께 첫 헌혈에 참여한 지 15년 뒤, 쌍둥이 형제는 100번째 헌혈 기록도 사이좋게 나란히 세웠습니다.

■ 100회 달성까지 15년, 200회 달성까지 8년…"건강 되는 한까지 헌혈 봉사"

이 씨의 헌혈 실천은 그 뒤로도 이어졌고, 100회 헌혈을 달성한 지 8년 만인 지난 23일, 200번째 헌혈이라는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불규칙하고 긴 근무시간이 일상인 의사로서 헌혈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씨는 특히 새벽에도 응급 환자가 밀려오는 외상센터 소속 의사로 일하고 있어, 이틀에 한 번꼴로 당직 근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 씨는 "집에 있다가도 위급한 환자가 오면 병원으로 달려나가야 한다. 365일 대기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쁘고 피곤할 법한데도 이 씨는 헌혈에 꾸준히 참여하기 위해,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헌혈은 예약을 할 수 있어요. 보통 2주에 한 번, 바쁠 땐 3주에 한 번꼴로 헌혈에 참여하고 있는데, 헌혈 2~3일 전에는 조절을 하고 있고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운동도 하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등 식이 조절도 합니다. 저희(의사)가 술 마시는 빈도도 높은데, 헌혈을 2~3일 앞두고는 술도 안 마십니다. 아, 원래 술은 잘 마십니다. (웃음)"

지난 23일 2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제주한라병원 이지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 제공지난 23일 2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제주한라병원 이지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 제공

이 씨는 이렇게 한 장, 두 장 헌혈증을 모아, 큰 수술을 앞두고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2년 전, 제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대퇴골이 골절된 고령의 환자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수혈이 많이 필요했던 환자여서, 당시 모아두었던 헌혈증 20장을 환자에게 전했다"면서 "당시 환자의 보호자가 무척 고마워하기도 했고, 특별히 더욱 생각나는 환자이기도 하다"라고 떠올렸습니다.

이 씨는 헌혈에 여러 번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귀감이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최근에 제주에서 700회 이상 헌혈에 참여하신 분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도 몸이 허락하는 한 헌혈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라며 "101번째 헌혈부터 200번째에 이르기까지 8년이 걸렸는데, 앞으로 한 500회 정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습니다.

■ "혈액 수급 어려운 동절기…생명 살리는 헌혈 동참을"

지난 25일 기준 제주의 혈액 재고 보유량은 7.4일분으로, 적정 재고량(5일분)을 웃도는 '안정'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주 혈액원 관계자는 "방학 기간인 7월부터 8월 초 사이에는 단체 헌혈이 감소세를 보여 혈액 수급이 어려웠으나, 개학이 시작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는 주로 동절기인데, 한파 속에서 외출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겨울방학 등이 겹치며, 혈액 적정 재고량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주 혈액원 측은 "제주 도내 53번째 200회 이상 헌혈자인 이지원 과장의 생명 나눔 실천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헌혈자 예우와 헌혈자 만족도 향상을 통한 혈액 수급 안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골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골프를 치거나, 저마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있다면, 저는 그 시간에 헌혈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뿐이죠. 헌혈하는 동안에는 한쪽 팔을 못 쓰니까, 그 시간에 밀린 이메일도 확인하고, 책도 읽곤 합니다.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헌혈이라고 생각해요. 환자에게 수술과 치료를 잘 해주는 것도 전문의로서 해야 할 의무이지만, 헌혈 역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건강히 허락하는 한 꾸준히 헌혈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많은 의료인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함께 참여하는 문화가 더 확산하길 소망합니다."

(이지원 제주한라병원 외상정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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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2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제주한라병원 이지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 제공
지난 23일, 제주시 연동 헌혈의집 신제주센터. 베테랑 간호사가 알코올이 묻은 솜으로 이지원(41) 씨의 오른쪽 팔뚝을 소독했습니다. 20여 년간 199차례나 굵은 주삿바늘이 들락거린 팔이자, 불의의 사고로 절단된 수지(手指)를 접합하는 인술을 펼치는 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가 피기를 1시간 30분, 또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소중한 혈액 한 팩이 채워졌습니다.

제주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지 절단 환자의 접합 수술을 담당하는 정형외과 의사인 이 씨의 생애 200번째 헌혈입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은 이지원 제주한라병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지난 23일, 제주시 연동에 있는 헌혈의집 신제주센터에서 200번째 헌혈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제주의 53번째 '200회 이상 헌혈자'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 쌍둥이 동생과 함께 한 첫 헌혈…"100번째 헌혈 기록도 함께"

이지원 씨의 첫 헌혈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교 시절, 과학자가 꿈이었던 이 씨는 00학번으로 한 대학 생물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쌍둥이 동생과 '좋은 일 한 번 해보자'며 처음 헌혈했어요. 그 길로 틈틈이 헌혈에 참여했죠."

이후 이 씨는 '의사'로 다시 한번 진로를 바꿨고, 05학번 늦깎이 의대생으로 입학해 의료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이 씨는 바쁜 전공의, 전문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헌혈은 잊지 않았습니다. 함께 첫 헌혈에 참여한 지 15년 뒤, 쌍둥이 형제는 100번째 헌혈 기록도 사이좋게 나란히 세웠습니다.

■ 100회 달성까지 15년, 200회 달성까지 8년…"건강 되는 한까지 헌혈 봉사"

이 씨의 헌혈 실천은 그 뒤로도 이어졌고, 100회 헌혈을 달성한 지 8년 만인 지난 23일, 200번째 헌혈이라는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불규칙하고 긴 근무시간이 일상인 의사로서 헌혈에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씨는 특히 새벽에도 응급 환자가 밀려오는 외상센터 소속 의사로 일하고 있어, 이틀에 한 번꼴로 당직 근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 씨는 "집에 있다가도 위급한 환자가 오면 병원으로 달려나가야 한다. 365일 대기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쁘고 피곤할 법한데도 이 씨는 헌혈에 꾸준히 참여하기 위해,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헌혈은 예약을 할 수 있어요. 보통 2주에 한 번, 바쁠 땐 3주에 한 번꼴로 헌혈에 참여하고 있는데, 헌혈 2~3일 전에는 조절을 하고 있고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운동도 하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등 식이 조절도 합니다. 저희(의사)가 술 마시는 빈도도 높은데, 헌혈을 2~3일 앞두고는 술도 안 마십니다. 아, 원래 술은 잘 마십니다. (웃음)"

지난 23일 2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제주한라병원 이지원 외상정형외과 과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혈액원 제공
이 씨는 이렇게 한 장, 두 장 헌혈증을 모아, 큰 수술을 앞두고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2년 전, 제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대퇴골이 골절된 고령의 환자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수혈이 많이 필요했던 환자여서, 당시 모아두었던 헌혈증 20장을 환자에게 전했다"면서 "당시 환자의 보호자가 무척 고마워하기도 했고, 특별히 더욱 생각나는 환자이기도 하다"라고 떠올렸습니다.

이 씨는 헌혈에 여러 번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귀감이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최근에 제주에서 700회 이상 헌혈에 참여하신 분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도 몸이 허락하는 한 헌혈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라며 "101번째 헌혈부터 200번째에 이르기까지 8년이 걸렸는데, 앞으로 한 500회 정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습니다.

■ "혈액 수급 어려운 동절기…생명 살리는 헌혈 동참을"

지난 25일 기준 제주의 혈액 재고 보유량은 7.4일분으로, 적정 재고량(5일분)을 웃도는 '안정'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주 혈액원 관계자는 "방학 기간인 7월부터 8월 초 사이에는 단체 헌혈이 감소세를 보여 혈액 수급이 어려웠으나, 개학이 시작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는 주로 동절기인데, 한파 속에서 외출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겨울방학 등이 겹치며, 혈액 적정 재고량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주 혈액원 측은 "제주 도내 53번째 200회 이상 헌혈자인 이지원 과장의 생명 나눔 실천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헌혈자 예우와 헌혈자 만족도 향상을 통한 혈액 수급 안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골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골프를 치거나, 저마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있다면, 저는 그 시간에 헌혈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뿐이죠. 헌혈하는 동안에는 한쪽 팔을 못 쓰니까, 그 시간에 밀린 이메일도 확인하고, 책도 읽곤 합니다.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헌혈이라고 생각해요. 환자에게 수술과 치료를 잘 해주는 것도 전문의로서 해야 할 의무이지만, 헌혈 역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건강히 허락하는 한 꾸준히 헌혈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많은 의료인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함께 참여하는 문화가 더 확산하길 소망합니다."

(이지원 제주한라병원 외상정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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