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5년 눈감은 ‘부당거래’…“면밀 검토하겠다”

입력 2023.08.2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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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법은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들의 부당지원행위로 연명하던 부실 계열회사가 줄도산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가 결국 우리나라 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 부당지원행위 금지?…TRS라는 '꼼수' 활용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공정거래법')

제45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9. 부당하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공정거래위원회는 ▲ 시장기능에 의해 퇴출돼야 할 부실 계열회사가 존속할 경우 공정경쟁기반 훼손 ▲ 우량 계열회사의 핵심역량이 부실 계열회사로 이전될 경우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 감소 등 동반부실 초래 등을 이유로 부당지원행위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지원'은 시장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는 점에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TRS(총수익스왑·total return swap) 계약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이른바 '꼼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TRS 계약은 '한 회사'가 향후 '다른 회사'의 가치 변동으로 발생하는 차액을 정산해주는 것을 전제로, 증권사가 그 '다른 회사'에 자금을 대여해주는 금융상품을 말합니다.

금융상품으로 합법이지만,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 금지된 대기업들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부실 계열사를 부당지원할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이를 악용하면 '채무보증 금지 조항'도 슬쩍 피해갈 수 있어 '꼼수 자금 지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 등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던 계열사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에게 효성투자개발이 3,250억 원 규모의 TRS 계약을 체결해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지난해 유죄 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 5년간 눈감은 '부당거래'…공정위 "경쟁 제한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KBS가 단독 입수한 2018년 금융감독원의 'TRS 검사결과 유형별 개별거래 분석' 문건에는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9개 대기업, 16개 의심 사례들이 지적됐습니다.

특히 2015년 CJ 그룹은 CJ 푸드빌과 CJ 건설(현재 CJ 대한통운 합병)을 위해 각각 500억 원의 TRS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CJ CGV 역시 같은 해 시뮬라인(현재 CJ 포디플렉스 합병)의 자금 조달을 위해 150억 원의 TRS 계약을 맺었습니다.

금감원은 5년 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문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를 했지만, 공정위의 현장 조사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공정위는 'TRS 거래별 주요 검토 결과'를 통해 ▲지원 주체가 지원객체의 지분을 보유함 ▲지원객체가 계열회사에 흡수합병돼 경쟁 제한성을 입증하기 어려움 등의 이유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전문가들 "지분 100% 보유해도 불법"…배임 가능성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사를 하지 않기로 한 공정위 검토 결과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심건섭 변호사는 "공정위에서 운영하고 있는 부당성 판단 기준과 공정거래법을 보면, 지원 주체가 100% 또는 대부분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고 하더라도 퇴출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행위 자체는 현행법상 금지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공정위가 '지분 보유' 등을 이유로 조사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지원객체와 지원 주체가 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부당지원 행위 예외 규정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또 '지원객체가 도산해 경쟁 제한성 입증이 곤란하다'는 공정위 결과에 대해서도 "부당지원행위의 부당성은 도산을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면 부당지원의 부당성을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라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검토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도 " 모회사가 계열사 지분을 100% 가지고 있어도 부당지원할 경우 불법이라는 판례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사를 하지 않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공정위가 조사에 나오기 어렵게 하려고 대기업들이 부당지원 문제가 불거지면 계열사를 인수·합병하는 게 관행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부당지원' 기업들에 대한 배임 적용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모회사 입장에서는 재산적 손실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면서 "그런 부분에서는 대표 이사 등이 배임 행위를 했다는 부분이 인정된다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해외는?…"주주들의 감시 역할 강해 "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주주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사회가 회사 이익과 무관하게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보증을 하거나 TRS 계약을 하게 되면, 주주들이 바로 이사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김남근 위원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들이 다수의 연기금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는데, 연기금과 같은 주주들도 감시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불법 행위들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입니다.

김 위원장은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역할이) 국민연금 하나로 통합돼 있다"며 "국민연금이 출자한 대기업 이사회의 위법행위를 잘 감시하지 못하고 있고, 이사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제도도 잘 발달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김남근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회사에 불법행위가 일어나고 있는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고 있는지 등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불법행위가 발견됐을 경우에는 철저하게 이사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참여연대, CJ 그룹 신고…공정위 "면밀 검토하겠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24일 CJ, CJ건설(대한통운에 흡수합병), CJ푸드빌, CJ CGV, 시뮬라인(CJ포디플렉스에 흡수합병)의 TRS 계약을 활용한 부당지원행위가 이뤄졌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참여연대는 "TRS 계약으로 인해 사실상 시장 경쟁력을 상실한 CJ건설, CJ푸드빌, 시뮬라인의 시장 퇴출이 막히면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경제력 집중이 유지·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에 공정위는 "이번 신고된 CJ 부당지원행위 신고를 면밀히 검토해 처리할 계획"이라며 "계열사 간 TRS 등 금융상품 거래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TRS 등 금융상품을 통해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우회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022년 8월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2022년 10월 채무보증현황 정보공개 당시 실태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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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29 0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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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법은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들의 부당지원행위로 연명하던 부실 계열회사가 줄도산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가 결국 우리나라 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 부당지원행위 금지?…TRS라는 '꼼수' 활용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공정거래법')

제45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9. 부당하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공정거래위원회는 ▲ 시장기능에 의해 퇴출돼야 할 부실 계열회사가 존속할 경우 공정경쟁기반 훼손 ▲ 우량 계열회사의 핵심역량이 부실 계열회사로 이전될 경우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 감소 등 동반부실 초래 등을 이유로 부당지원행위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지원'은 시장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는 점에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TRS(총수익스왑·total return swap) 계약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이른바 '꼼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TRS 계약은 '한 회사'가 향후 '다른 회사'의 가치 변동으로 발생하는 차액을 정산해주는 것을 전제로, 증권사가 그 '다른 회사'에 자금을 대여해주는 금융상품을 말합니다.

금융상품으로 합법이지만,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 금지된 대기업들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부실 계열사를 부당지원할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이를 악용하면 '채무보증 금지 조항'도 슬쩍 피해갈 수 있어 '꼼수 자금 지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 등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던 계열사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에게 효성투자개발이 3,250억 원 규모의 TRS 계약을 체결해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지난해 유죄 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 5년간 눈감은 '부당거래'…공정위 "경쟁 제한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KBS가 단독 입수한 2018년 금융감독원의 'TRS 검사결과 유형별 개별거래 분석' 문건에는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9개 대기업, 16개 의심 사례들이 지적됐습니다.

특히 2015년 CJ 그룹은 CJ 푸드빌과 CJ 건설(현재 CJ 대한통운 합병)을 위해 각각 500억 원의 TRS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CJ CGV 역시 같은 해 시뮬라인(현재 CJ 포디플렉스 합병)의 자금 조달을 위해 150억 원의 TRS 계약을 맺었습니다.

금감원은 5년 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문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를 했지만, 공정위의 현장 조사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공정위는 'TRS 거래별 주요 검토 결과'를 통해 ▲지원 주체가 지원객체의 지분을 보유함 ▲지원객체가 계열회사에 흡수합병돼 경쟁 제한성을 입증하기 어려움 등의 이유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전문가들 "지분 100% 보유해도 불법"…배임 가능성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사를 하지 않기로 한 공정위 검토 결과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심건섭 변호사는 "공정위에서 운영하고 있는 부당성 판단 기준과 공정거래법을 보면, 지원 주체가 100% 또는 대부분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고 하더라도 퇴출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행위 자체는 현행법상 금지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공정위가 '지분 보유' 등을 이유로 조사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지원객체와 지원 주체가 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부당지원 행위 예외 규정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또 '지원객체가 도산해 경쟁 제한성 입증이 곤란하다'는 공정위 결과에 대해서도 "부당지원행위의 부당성은 도산을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면 부당지원의 부당성을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라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검토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도 " 모회사가 계열사 지분을 100% 가지고 있어도 부당지원할 경우 불법이라는 판례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사를 하지 않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공정위가 조사에 나오기 어렵게 하려고 대기업들이 부당지원 문제가 불거지면 계열사를 인수·합병하는 게 관행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부당지원' 기업들에 대한 배임 적용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모회사 입장에서는 재산적 손실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면서 "그런 부분에서는 대표 이사 등이 배임 행위를 했다는 부분이 인정된다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해외는?…"주주들의 감시 역할 강해 "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주주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사회가 회사 이익과 무관하게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보증을 하거나 TRS 계약을 하게 되면, 주주들이 바로 이사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김남근 위원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들이 다수의 연기금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는데, 연기금과 같은 주주들도 감시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불법 행위들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입니다.

김 위원장은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역할이) 국민연금 하나로 통합돼 있다"며 "국민연금이 출자한 대기업 이사회의 위법행위를 잘 감시하지 못하고 있고, 이사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제도도 잘 발달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김남근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회사에 불법행위가 일어나고 있는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고 있는지 등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불법행위가 발견됐을 경우에는 철저하게 이사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참여연대, CJ 그룹 신고…공정위 "면밀 검토하겠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24일 CJ, CJ건설(대한통운에 흡수합병), CJ푸드빌, CJ CGV, 시뮬라인(CJ포디플렉스에 흡수합병)의 TRS 계약을 활용한 부당지원행위가 이뤄졌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참여연대는 "TRS 계약으로 인해 사실상 시장 경쟁력을 상실한 CJ건설, CJ푸드빌, 시뮬라인의 시장 퇴출이 막히면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경제력 집중이 유지·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에 공정위는 "이번 신고된 CJ 부당지원행위 신고를 면밀히 검토해 처리할 계획"이라며 "계열사 간 TRS 등 금융상품 거래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TRS 등 금융상품을 통해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우회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022년 8월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2022년 10월 채무보증현황 정보공개 당시 실태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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