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쓰레기 금지’로 오염수 틀어막기 가능할까

입력 2023.08.29 (15:00) 수정 2023.08.3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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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국내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괴담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사실과 다른 괴담으로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1+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 이라고 규정한 만큼 이런 기조는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은 이른바 '무책임론'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일본의 방류 결정에 정부가 무기력하게 동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두 써야 한다는 겁니다.

민주당은 국제법적 조치를 총동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3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1. 국제해사기구(IMO) 총회 논의 2.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제소 3. 유엔 인권이사회 진정

안 그래도 국제법은 생소한데, 그나마 많이 들어본 UN이나 WTO도 아니라 더 생소합니다.

이들 국제기구를 통하면 오염수 방류를 막을 수 있는 걸까. 막을 수 있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 걸까. 정부가 아닌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일까.

궁금한 쟁점들을 하나씩 따져봤습니다.

■ 쟁점 1. 오염수 방류=해양 투기?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상안전과 해수 오염을 막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회원국입니다.

국제해사기구가 다루는 국제협약 중 '런던 의정서'라는 게 있습니다.

런던 의정서의 핵심은 쓰레기를 배에 싣고 가 바다에 버리는 행위인 '선박 투기'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선박 투기에 해당할 수 있으니 따져보자는 겁니다. 만약 런던 의정서 위반이라는 해석을 받아내면 오염수 방류를 저지할 수 있다는 전략입니다.

민주당이 꺼내든 3가지 국제법 방법론 중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결론도 가장 신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염수 이슈를 런던 의정서로 다뤄본 전례가 없습니다. 오염수의 해양 방류 자체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넘어야 할 산은 크게 둘입니다. 비유하면 '법리의 산'과 '외교의 산'입니다. 먼저 법리부터 보겠습니다.

첫째. 오염수는 폐기물, 즉 쓰레기에 해당할까요. 애매합니다. 깨끗하지 않은 물이니 쓰레기일 것 같기도 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문제없다고 인정했으니 쓰레기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둘째, 방류는 해양 투기일까요. 전형적인 해양 투기는 배에 싣고 나가 먼바다에 몰래 버리는 걸 말합니다. 오염수는 1km 남짓한 파이프를 통해 바다로 나옵니다. 역시 애매합니다.

수학 문제가 아닌 이상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어느 해석이 다수의 지지를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외교의 영역입니다. 국제해사기구의 올해 총회는 10월 2일부터 6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립니다. 이 자리에서 길고 짧은 걸 대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앞서 2021년 일본이 해양 방류를 결정하자, 우리 정부가 국제해사기구에 런던 의정서 적용이 가능한지를 타진한 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회원국 간 의견 불일치로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의견은 분분하다고 합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일본을 지지하는 기류입니다. 오염수 방류는 해양 쓰레기로 볼 수 없다는 쪽입니다.

중국과 태평양 도서국 등의 기류는 반대라고 합니다. 오염수 방류도 해양 쓰레기로 볼 수 있으니 런던 의정서 위반 여부를 따져 보자는 쪽입니다.


■ 쟁점 2. 정부 아닌 야당이 발제?

문제는 10월에 열리는 국제해사기구 총회의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올해 총회에 안건으로 채택되려면 지난해까지는 문서로 제출했어야 합니다. 해수부는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총회 현장에서도 발제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회원국의 대표가 발언대에 올라 언급하면 그 자체로 안건 발제가 되는 셈이고, 다른 회원국들이 이견을 내면 자연스레 논의가 성립합니다.

총회에 참석하는 대표단은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수부가 주축이 됩니다. 해수부가 올해 총회에서 오염수 안건을 발의할까요. 결국, 대통령의 결정이 필요할 문제입니다.

야당은 예외적으로 총회에 참가할 수도 있는데, 옵저버나 대표단 자문위원이 가능합니다. 역시 정부의 승인이나 협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실종된 협치가 부활해야 가능할 대목입니다.

여러모로 쉽지 않지만, 현장 발의가 이뤄지고, 또 어찌어찌하여 오염수 방류도 런던 의정서를 기준으로 논의해보자는 다수론이 형성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진행될까요.

국제해사기구 내부 기구인 런던 의정서 준수그룹이 오염수가 규정에 맞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다만, 모든 국제기구가 그렇듯이 설사 런던 의정서 규정 위반이라고 판단한다고 해서, 일본에 강제 조치가 가해지는 건 없습니다. 일종의 평판이 깎일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본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겠지만, 수많은 조건이 동시에 만족해야만 일어날법한 '바늘 구멍' 같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 쟁점 3. 해양법재판 가능?

민주당이 제시한 또 다른 방법은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입니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해양 분쟁을 관할하는 국제사법기구입니다. 본부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습니다.

원래는 해양 영토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생긴 기구입니다. 대륙붕이 누구 땅이냐 같은 걸 말합니다.

오염수 문제도 재판소에서 따질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유엔 해양법에는 '해양환경 보호 의무'에 대한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을 근거로 다퉈볼 수 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당사국입니다.

한덕수 총리도 가능성을 시사하긴 했습니다. 지난 23일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한일 양국 합의를 벗어나면 즉각 방류 중단을 요청하고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해양법 재판소 제소는 정부만 할 수 있습니다. 국제해사기구 총회 논의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 설사 재판이 시작된다 해도 국제재판 특성상 최종 판결까진 수년은 족히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민주당은 유엔 인권이사회도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가장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는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결론이 난다 쳐도, 현실적 변화를 가져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중국이나 북한의 인권 문제를 생각하면 됩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현실적 변화는 없습니다.

한줄 요약 : 국제기구 통한 해결은 쉽지는 않지만 여지는 있다. 정부의 의지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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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 쓰레기 금지’로 오염수 틀어막기 가능할까
    • 입력 2023-08-29 15:00:38
    • 수정2023-08-30 10: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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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국내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괴담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사실과 다른 괴담으로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1+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 이라고 규정한 만큼 이런 기조는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은 이른바 '무책임론'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일본의 방류 결정에 정부가 무기력하게 동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두 써야 한다는 겁니다.

민주당은 국제법적 조치를 총동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3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1. 국제해사기구(IMO) 총회 논의 2.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제소 3. 유엔 인권이사회 진정

안 그래도 국제법은 생소한데, 그나마 많이 들어본 UN이나 WTO도 아니라 더 생소합니다.

이들 국제기구를 통하면 오염수 방류를 막을 수 있는 걸까. 막을 수 있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 걸까. 정부가 아닌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일까.

궁금한 쟁점들을 하나씩 따져봤습니다.

■ 쟁점 1. 오염수 방류=해양 투기?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상안전과 해수 오염을 막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회원국입니다.

국제해사기구가 다루는 국제협약 중 '런던 의정서'라는 게 있습니다.

런던 의정서의 핵심은 쓰레기를 배에 싣고 가 바다에 버리는 행위인 '선박 투기'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선박 투기에 해당할 수 있으니 따져보자는 겁니다. 만약 런던 의정서 위반이라는 해석을 받아내면 오염수 방류를 저지할 수 있다는 전략입니다.

민주당이 꺼내든 3가지 국제법 방법론 중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결론도 가장 신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염수 이슈를 런던 의정서로 다뤄본 전례가 없습니다. 오염수의 해양 방류 자체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넘어야 할 산은 크게 둘입니다. 비유하면 '법리의 산'과 '외교의 산'입니다. 먼저 법리부터 보겠습니다.

첫째. 오염수는 폐기물, 즉 쓰레기에 해당할까요. 애매합니다. 깨끗하지 않은 물이니 쓰레기일 것 같기도 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문제없다고 인정했으니 쓰레기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둘째, 방류는 해양 투기일까요. 전형적인 해양 투기는 배에 싣고 나가 먼바다에 몰래 버리는 걸 말합니다. 오염수는 1km 남짓한 파이프를 통해 바다로 나옵니다. 역시 애매합니다.

수학 문제가 아닌 이상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어느 해석이 다수의 지지를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외교의 영역입니다. 국제해사기구의 올해 총회는 10월 2일부터 6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립니다. 이 자리에서 길고 짧은 걸 대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앞서 2021년 일본이 해양 방류를 결정하자, 우리 정부가 국제해사기구에 런던 의정서 적용이 가능한지를 타진한 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회원국 간 의견 불일치로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의견은 분분하다고 합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일본을 지지하는 기류입니다. 오염수 방류는 해양 쓰레기로 볼 수 없다는 쪽입니다.

중국과 태평양 도서국 등의 기류는 반대라고 합니다. 오염수 방류도 해양 쓰레기로 볼 수 있으니 런던 의정서 위반 여부를 따져 보자는 쪽입니다.


■ 쟁점 2. 정부 아닌 야당이 발제?

문제는 10월에 열리는 국제해사기구 총회의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올해 총회에 안건으로 채택되려면 지난해까지는 문서로 제출했어야 합니다. 해수부는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총회 현장에서도 발제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회원국의 대표가 발언대에 올라 언급하면 그 자체로 안건 발제가 되는 셈이고, 다른 회원국들이 이견을 내면 자연스레 논의가 성립합니다.

총회에 참석하는 대표단은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수부가 주축이 됩니다. 해수부가 올해 총회에서 오염수 안건을 발의할까요. 결국, 대통령의 결정이 필요할 문제입니다.

야당은 예외적으로 총회에 참가할 수도 있는데, 옵저버나 대표단 자문위원이 가능합니다. 역시 정부의 승인이나 협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실종된 협치가 부활해야 가능할 대목입니다.

여러모로 쉽지 않지만, 현장 발의가 이뤄지고, 또 어찌어찌하여 오염수 방류도 런던 의정서를 기준으로 논의해보자는 다수론이 형성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진행될까요.

국제해사기구 내부 기구인 런던 의정서 준수그룹이 오염수가 규정에 맞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다만, 모든 국제기구가 그렇듯이 설사 런던 의정서 규정 위반이라고 판단한다고 해서, 일본에 강제 조치가 가해지는 건 없습니다. 일종의 평판이 깎일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본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겠지만, 수많은 조건이 동시에 만족해야만 일어날법한 '바늘 구멍' 같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 쟁점 3. 해양법재판 가능?

민주당이 제시한 또 다른 방법은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입니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해양 분쟁을 관할하는 국제사법기구입니다. 본부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습니다.

원래는 해양 영토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생긴 기구입니다. 대륙붕이 누구 땅이냐 같은 걸 말합니다.

오염수 문제도 재판소에서 따질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유엔 해양법에는 '해양환경 보호 의무'에 대한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을 근거로 다퉈볼 수 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당사국입니다.

한덕수 총리도 가능성을 시사하긴 했습니다. 지난 23일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한일 양국 합의를 벗어나면 즉각 방류 중단을 요청하고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해양법 재판소 제소는 정부만 할 수 있습니다. 국제해사기구 총회 논의와 차이가 있습니다. 또, 설사 재판이 시작된다 해도 국제재판 특성상 최종 판결까진 수년은 족히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민주당은 유엔 인권이사회도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가장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는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결론이 난다 쳐도, 현실적 변화를 가져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중국이나 북한의 인권 문제를 생각하면 됩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현실적 변화는 없습니다.

한줄 요약 : 국제기구 통한 해결은 쉽지는 않지만 여지는 있다. 정부의 의지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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