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합격자 1100명 정해 놓고 점수 짜맞추기?

입력 2023.08.30 (17:11) 수정 2023.08.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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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인회계사(CPA)의 선발 규모가 회계시장이 필요로 하는 수요보다 크게 부족해,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금융당국이 법령상 '절대평가'로 뽑아야 하는 공인회계사 시험을 사실상 '상대평가'처럼 운영해, 공인회계사 선발 인원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왔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감사원은 오늘(30일) 이 같은 내용의 금융위원회 정기감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감사원은 오늘 오후 제58회 공인회계사 선발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금융위원회 정기 감사 내용 중 '공인회계사' 선발 부분만 미리 공개했습니다.


■"회계사 선발인원 1,100명으로 제한해 와"

금융위원회는 공인회계사법에 따라 해마다 회계사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을 정합니다. 이후 금융감독원이 시험 범위와 난이도 등 '출제관리 기준'을 정하고 시험 진행까지 총괄합니다.

그런데 감사원은 그동안 금융위가 회계사 최소 선발 인원을 시장 수요보다 축소 산정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위가 근거로 삼은 건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수행한 연구 용역이었는데, 이 용역이 공인회계사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감사원은 또 2019년 이후 비감사부문의 공인회계사 수요가 늘었는데도, 금융위가 2019년 KDI 연구용역 결과를 그대로 반영해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을 정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2년도 공인회계사 합격자 전체 수(1,237명)는 국내 회계법인의 전체 채용 규모(1,256명)보다 적었습니다. 4대 대형 법인의 채용 규모(1,232명)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감사원은 4대 대형 회계법인을 제외한 중소・중견 회계법인(36개)은 목표 인원(247명)의 10%밖에 채용하지 못했고 일반기업과 금융회사 등은 회계사 채용 난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목표선발 인원 맞추기 위해 수차례 재채점.. "사실상 상대평가"

금융위가 1,100명으로 정한 선발인원을 맞추기 위해 법령상 '절대평가'인 시험방식을 따르지 않고, 내부적으로 '상대평가'에 가깝게 공인회계사 시험을 운영해 온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04년 개정된 공인회계사법 시행령에 따라, 회계사시험은 2007년부터는 5과목 모두 6할 이상(100점 만점일 경우 60점 이상)을 받으면 합격하는 '절대평가'로 바뀌었습니다.

절대평가가 기본이고, 최소 선발 예정 인원에 미달할 때만 상대평가(총점 고득점순)로 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미리 정해 놓은 점수 이상 득점한 응시자를 모두 합격시켜야 해, 금융당국이 합격자 수를 사실상 '조정'해 왔다는 겁니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채점 위원들에게 응시생 20%를 임시채점한 다음 '예상 합격자 수'에 근접할 때까지 채점 기준을 2∼3차례 변경해 다시 채점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출제와 임시채점, 본 채점의 채점 기준(부분 점수 등)은 계속 임의로 변경됐습니다.

합격 선인 '60점'에 근접한 '59점' 답안지의 경우 채점위원에게 요청해 점수를 '58점'으로 내리거나 '60점'으로 올려서 아예 '59점' 답안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최종합격자 수를 추가 조절하고, 합격 기준인 60점에 근접한 응시생의 이의제기 방지를 위해서라는 게 점수 조정의 명분이었습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절대평가라면 상식적으로 출제 난이도 조절을 통해서 합격자를 예상할 수 있어야 된다"면서 "출제가 아니라 채점 단계에서 합격자를 조절한다면 그건 상대평가에 가깝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에서 위탁을 받아 시험을 관리해 온 금감원이 법규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검토 의견을 제시했으나, 금융위는 처음 계획한 '적정합격자 수'를 고수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제56회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제56회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

■"시장 수요 반영해 회계사 진입규제 완화해야"

감사원은 앞으로 회계사 시험의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을 정할 때 일반기업ㆍ공공기관 등 비회계법인과 회계환경 변화에 따른 회계법인 등의 수요를 반영하라고 금융위에 권고했습니다. 또 법령에 규정된 '절대평가'라는 취지에 맞게 공인회계사 선발시험을 운영하라고 금융위원장에게 통보했습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대한 진입규제와 수험생의 수험부담이 과중한 측면이 있다는 감사원 지적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감사원 지적을 그대로 따르겠다기보다 지적된 취지에 맞게 제도를 개선할 방안이 있는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검토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회계사 시험을 실제 진행해 온 금감원은 "수험생들 입장에서 꾸준한 난이도가 유지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출제가 아닌 채점을 조정한 측면이 있다"면서 "절대평가로 운영될 경우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감사원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는 별도의 조정 없이 기준에 따라 채점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감사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한 회계업체 대표는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컨설팅 쪽도 감사 쪽도 모두 다 수요가 줄어서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 수요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회계사 선발을 너무 많이 하면 공급과잉이 와서 나중에 회계 보수 덤핑문제 생길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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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금융당국이 법령상 '절대평가'로 뽑아야 하는 공인회계사 시험을 사실상 '상대평가'처럼 운영해, 공인회계사 선발 인원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왔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감사원은 오늘(30일) 이 같은 내용의 금융위원회 정기감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감사원은 오늘 오후 제58회 공인회계사 선발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금융위원회 정기 감사 내용 중 '공인회계사' 선발 부분만 미리 공개했습니다.


■"회계사 선발인원 1,100명으로 제한해 와"

금융위원회는 공인회계사법에 따라 해마다 회계사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을 정합니다. 이후 금융감독원이 시험 범위와 난이도 등 '출제관리 기준'을 정하고 시험 진행까지 총괄합니다.

그런데 감사원은 그동안 금융위가 회계사 최소 선발 인원을 시장 수요보다 축소 산정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위가 근거로 삼은 건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수행한 연구 용역이었는데, 이 용역이 공인회계사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감사원은 또 2019년 이후 비감사부문의 공인회계사 수요가 늘었는데도, 금융위가 2019년 KDI 연구용역 결과를 그대로 반영해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을 정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2년도 공인회계사 합격자 전체 수(1,237명)는 국내 회계법인의 전체 채용 규모(1,256명)보다 적었습니다. 4대 대형 법인의 채용 규모(1,232명)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감사원은 4대 대형 회계법인을 제외한 중소・중견 회계법인(36개)은 목표 인원(247명)의 10%밖에 채용하지 못했고 일반기업과 금융회사 등은 회계사 채용 난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목표선발 인원 맞추기 위해 수차례 재채점.. "사실상 상대평가"

금융위가 1,100명으로 정한 선발인원을 맞추기 위해 법령상 '절대평가'인 시험방식을 따르지 않고, 내부적으로 '상대평가'에 가깝게 공인회계사 시험을 운영해 온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04년 개정된 공인회계사법 시행령에 따라, 회계사시험은 2007년부터는 5과목 모두 6할 이상(100점 만점일 경우 60점 이상)을 받으면 합격하는 '절대평가'로 바뀌었습니다.

절대평가가 기본이고, 최소 선발 예정 인원에 미달할 때만 상대평가(총점 고득점순)로 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미리 정해 놓은 점수 이상 득점한 응시자를 모두 합격시켜야 해, 금융당국이 합격자 수를 사실상 '조정'해 왔다는 겁니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채점 위원들에게 응시생 20%를 임시채점한 다음 '예상 합격자 수'에 근접할 때까지 채점 기준을 2∼3차례 변경해 다시 채점하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출제와 임시채점, 본 채점의 채점 기준(부분 점수 등)은 계속 임의로 변경됐습니다.

합격 선인 '60점'에 근접한 '59점' 답안지의 경우 채점위원에게 요청해 점수를 '58점'으로 내리거나 '60점'으로 올려서 아예 '59점' 답안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최종합격자 수를 추가 조절하고, 합격 기준인 60점에 근접한 응시생의 이의제기 방지를 위해서라는 게 점수 조정의 명분이었습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절대평가라면 상식적으로 출제 난이도 조절을 통해서 합격자를 예상할 수 있어야 된다"면서 "출제가 아니라 채점 단계에서 합격자를 조절한다면 그건 상대평가에 가깝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에서 위탁을 받아 시험을 관리해 온 금감원이 법규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검토 의견을 제시했으나, 금융위는 처음 계획한 '적정합격자 수'를 고수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제56회 공인회계사 2차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
■"시장 수요 반영해 회계사 진입규제 완화해야"

감사원은 앞으로 회계사 시험의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을 정할 때 일반기업ㆍ공공기관 등 비회계법인과 회계환경 변화에 따른 회계법인 등의 수요를 반영하라고 금융위에 권고했습니다. 또 법령에 규정된 '절대평가'라는 취지에 맞게 공인회계사 선발시험을 운영하라고 금융위원장에게 통보했습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대한 진입규제와 수험생의 수험부담이 과중한 측면이 있다는 감사원 지적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감사원 지적을 그대로 따르겠다기보다 지적된 취지에 맞게 제도를 개선할 방안이 있는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검토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회계사 시험을 실제 진행해 온 금감원은 "수험생들 입장에서 꾸준한 난이도가 유지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출제가 아닌 채점을 조정한 측면이 있다"면서 "절대평가로 운영될 경우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감사원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는 별도의 조정 없이 기준에 따라 채점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감사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한 회계업체 대표는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컨설팅 쪽도 감사 쪽도 모두 다 수요가 줄어서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 수요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회계사 선발을 너무 많이 하면 공급과잉이 와서 나중에 회계 보수 덤핑문제 생길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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