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를 팔지 않은 미국의 4년과 그 실패

입력 2023.08.31 (08:03) 수정 2023.08.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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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리는 미국의 정책이 성공했는지 평가하는 데 익숙지 않다.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IRA나 CHIPS 법 같은 정책에 대해서도 그렇다.

미국이 하는 일인데, 우리는 따라야지 별수 있나.

그럴지도 모르나, 그래도 평가는 필요하다. 세상은 미국의 뜻대로, 그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미국은 최강국이지만 의지를 관철하는 데 실패한 경험도 수없이 많다. 시행착오의 과정도 역사로 숱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도 실패로 기록될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한편이라는 이유로 그 과정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 자체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 세계화를 팔지 않은 미국의 4년

미국은 더는 세계화를 팔지 않기로 했다. 특히 중국이 포함된 세계화를 않기로 했다. 2018년이 기점이다. (트럼프가 25%의 대중국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2018년 미국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1%였다. 2022년 이 비율은 16%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더 낮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


저비용(저부가가치) 상품의 수입만 보면 변화는 더 극명하다. 2018년에는 저비용 상품 수입의 3분의 2가 중국산이었는데, 4년 만에 2분의 1로 줄었다. (이코노미스트지)

투자도 급감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의 TOP3 투자국가에서 빠졌다. 25년 만의 일이니까 21세기에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숫자만 보면 미국의 성공이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쪽이 별로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베트남과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와 태국으로 '조립공장을 옮긴 영향'일 뿐, 중국 입김이 준 것은 아니라는 기사를 냈다. 이것부터 살펴보자.

■ 동남아시아 '태양광 두더지 잡기'

최근 미국이 '중국 태양광의 숨통을 죈다'는 식의 기사가 등장했다. 미국 정부가 동남아시아 국가를 우회해 태양광 모듈을 수출해 온 중국 업체들에 대해 ‘관세 폭탄’을 부과한다는 뉴스였다. 우회수출 단속이다. BYD 홍콩(캄보디아), 뉴이스트솔라(캄보디아), 캐내디언솔라(태국), 트리나솔라(태국), 비나솔라(베트남) 5개를 지목했다.

직접 수출을 규제하니, 중간재를 아시아로 수출한 뒤 조립해 미국에 보낸단 얘기다. 규제 빈틈이다. 시장은 언제나 이런 규제의 빈틈을 파고든다. 생물처럼 적응한다.

두더지 잡기 하듯 단속에 나서지만, 태양광 산업에서 중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실 위 5개 업체 외에도 의심기업은 훨씬 많다. (말레이시아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도 조사 대상이었다.) 우선은 단속이 어렵다. 중국 자금이 얼마나 섞였는지, 또 확실히 중국 회사인지 밝히기 어렵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다 빼면 태양광 발전 수요를 맞출 수 없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내놓은 태양광 산업 동향(2023년 상반기)을 보면, 중국은 "세계 태양광 산업을 장악"했으며 "현재는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다. 자체 생산기술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했다. 기술적으로 앞서고, 광물도 선점했는데, 효율적 물류망까지 이미 갖추고 있다. 점유율은 경악할 만큼 높다.

점유율이 이렇게 높은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폴리실리콘 제조와 가공비용에서 중국산은 유럽산의 2/3에 불과하다. ( IEA, 국제에너지기구) 최근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8월 초 기준으로 중국 폴리실리콘 단가는 비중국산의 1/3에 불과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 중국의 중간재를 받아다가 조립해서 미국에 팔고 싶다. 그게 그들의 국익이다. 그래서 중국의 자본과 협력했고, 그 결과 공급망은 조금 길고 복잡해졌다. 미국의 규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이 규제로 치러야 할 비용은 이미 충분히 크다. 미국의 소비자는 더 비싼 태양광 소재와 부품, 장비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마련한 정부 보조금은 중국산보다 경쟁력 떨어지는 제품에 들어가고 있다. 자유무역을 했다면 아예 들이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지금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려고 납세자의 세금을 허공에 뿌리고 있다.

비효율과 실패는 자동차 분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의 규제 뒤, 멕시코가 수입한 중국 자동차 부품이5배 늘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 산업에는 멕시코를 통하는 우회로가 있는 것이다. 멕시코는 중국의 중간재를 활용해 경쟁력을 높인다. 실제로, 올해 테슬라가멕시코 몬테레이에 공장을 증설하기로 하자, 지금 최소 7개 이상의 중국 협력사들이 멕시코로 몰려가 공장을 짓고 있다.

■ 한국, '배터리에서 중국과 합작'

우리의 이해와 직결되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이야기로 옮겨가자. 우리에겐 전기차 보조금법으로 알려진 IRA의 등장으로 현대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타격을 입었으나, 배터리 업체들은 다르다. 배터리 3사는 모두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수령하고 있다. 지난 1년간 3사가 회계상으로 반영한 보조금만 수천억 원에 이른다.

그래서, 중국을 지워내려는 미국의 노력은 성과를 낸 것일까?

아래는 블룸버그가 정리한 중국 배터리 산업이 지배하는 광물들과 그 점유율이다. 우리 배터리 산업은 바로 이 중국 배터리 산업이 지배하는 광물과 소재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의 비율이 IRA 규정을 충족하기 때문에 한국산 인정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 배터리도 실은 여전히 대부분 중국 광물과 소재 등 중간재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미국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배터리 분야에서 지금 한·중 협력이 급속히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 진출이 막힌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있다.

SK온과 에코프로는 새만금에서 중국 거린메이 등과 함께 전구체 제조 공장을 짓는다. LG화학은 중국의 화유코발트와 함께 역시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는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포항에 전구체 공장과 니켈 제련 라인을 건설한다. 포스코 그룹은 중국 CNGR과 함께 포항에 황산니켈과 전구체 생산시설을 만든다. 롱바이는 단독 진출한다. 모든 프로젝트가 '조' 단위 투자를 전제로 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업체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소재와 부품도 공급한다.

모두 미국이 만든 IRA 법이 낳은 풍경이다.


물론, 미국이 이들 합작기업에 대해서 우려 집단(FEOC, foreign entity of concern)으로 지정하거나 합작비율을 규제해서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다.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을 완전히 도려낸다면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가격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벌써 '미국이 합작비율을 규제하면 그에 맞춰 중국의 투자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비상계획도 만들어놨다. 합작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중국의 경쟁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BYD는 전기차는 물론 배터리와 원자재, 그리고 광산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세계 유일의 기업이다. 독일의 렌터카업체 Sixt는 10만 대를 한번에 주문했다. 쌍용차를 인수한 KG모빌리티는 BYD와 협력해 전기차 10만대를 생산하겠다고 했다. CATL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배터리를 만든다.

골드만삭스도 인정한다. '중국은 다른 나라 1/3 시간으로 공장을 건설한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보다 비용이 80% 더 들고, 제조 비용은 3배 더 든다'고 표현했다. 자원과 기술, 그리고 노동환경과 인플레이션, 환경기준에서 중국의 우위가 확실하다.

풍력터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양 경쟁사의 1/2 가격으로 생산한다. (S&P)

이코노미스트지는 '공급망은 복잡해졌고, 무역은 더 비싸졌지만, 중국의 지배력은 그대로'라고 정리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한국과 같은 동맹국과 중국이 국제 공급망에서 더 가까워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덕에 미국의 동맹이 공급망과 금융의 측면에서 중국과 더 긴밀히 협력한다는 이야기다.

이래도 미국이 성공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 미국에 반도체 공장은 짓는데, 가동도 예정대로?

반도체 이야기도 빼놓을 순 없다. 미국은 CHIPS 법안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한국의 삼성과 타이완의 TSMC가 미국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게 했다. 그러나 순조롭기만 하진 않다. 우선 TSMC는 공장 가동 시점을 2024년에서 2025년으로 1년 미뤘다. 전문인력 부족 때문이다. 타이완에서 기술자를 파견해 대응할 정도다.

미국의 '고용호황'이 기업 입장에선 '인력부족'으로 번역되고 있다. 미국의 SIA(반도체협회)는 2030년까지 엔지니어 등 반도체 전문인력 6만 7만 명, 더 넓은 경제 전반에서는 140만 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지금 미국에선 보름 안팎 교육받고, 반도체 기업 취업 인터뷰를 보러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학이 개설한 6개월 안팎의 반도체 인력 단기 과정도 있다. 당장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힘들어서다.

삼성이라고 상황이 더 나을 리는 없다. 공장은 보조금으로 짓는다해도, 고급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첨단 반도체를 비용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은 다른 일이다.

SK하이닉스는 과거 오레곤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지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철수했다. 원가도 비싸고, 인력 구하기도 힘들어서다. 당시 1조 5천억 원 이상을 투자했던 현지 공장 용지는 사실상 버려졌다가, 매각과 재매각을 거치면서 최근 70억 원에 한 디스플레이 업체에 팔렸다.

부동산 업체 Ten-X.com 사진, 오레곤주 유진시 (구)하이닉스 반도체 제조시설부동산 업체 Ten-X.com 사진, 오레곤주 유진시 (구)하이닉스 반도체 제조시설

미국 내에선 중국과의 단절을 두고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인텔의 CEO 펫 겔싱어는 지난 7월 "(중국에 최첨단 칩을 공급하지 못하게 해서) 시장이 25~30% 줄어들면 공장을 덜 지어야 한다."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5월에 FT에 "(중국을 잃어) 시장이 1/3 줄면, 미국 공장(fab)은 필요 없다. 거기서 수영이나 해야지." 라고 말했다.

■ 그래도 미국 경기는 좋다고? 올라가는 시장 금리를 보라

미국 장기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초 대비 1%p 넘게 올랐다.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7%를 넘어 8%대에 육박한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 Axios는 '장기적 구조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논평한다.

구조 변화는 '정부 재정적자 증가'를 말한다.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IRA와 CHIPS 법안 같은 법안을 내고 국내 투자를 장려하는 재정지출을 할 것이다. 재정적자는 계속 늘 것이다. 국가채무도 쌓일 것이다. 그래서 인플레 압력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쪽에 투자자들이 베팅하고 있단 얘기다.

국제 상황도 변하고 있다. 일본도 물가가 오르고 있다. 장기 금리까지 0% 수준에 묶어두는 YCC(수익률 곡선 통제) 정책을 변화시킬 것이다. 즉, 금리가 오를 것이고 이 경우 일본의 미국채 수요가 상당 부분 일본 국내 수요로 바뀔 것이다. 중국도 국내 혼란과 정치적 긴장 때문에, 또 동남아시아 등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 국채 매입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미국의 시장 금리가 오르고 있는 것이라면 당장 물가가 잠잠해지는 가운데 수요는 건재하고 고용도 좋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경제 상황'이 지속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시장의 기대가 맞다면 금리에 의해, 인플레이션에 의해 미국 경제가 할퀴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 '수정하라'는 조언은 쏟아진다

미국은 중국을 끊어내려 엄청난 돈을 찍어내고 있다. 강력한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요 산업에서 중국을 끊어냈다는 진짜 지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넬로피 골드버그는 정책을 수정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미국 산업정책의 두 요소로 1) 녹색 성장 지원과 2) 수입을 대체하는 국내 제조 지원 정책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국경을 닫거나 미국 제품만 사는 정책은 가난한 미국인에게 피해를 준다. 노동력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제 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 수정은 1) 녹색 성장만 세심하고 포용적으로 추진하되, 2) 국내 제조 정책은 생략하는 것이다.

앞서 중국 경제의 위기를 다룬 기사에선 중국이 '국가부흥'을 성장의 앞에 놓고, '안보'를 효율의 앞에 놓아 잘못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고 했다. (참고기사 : 중국 경제 ‘치명적 뇌관’, 감출수록 도드라진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권위주의 국가 체제 자체가 스스로 수정할 힘을 잃고 있다고도 했다. 일부는 분명 미국에 대해서도 맞는 말이다.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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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화를 팔지 않은 미국의 4년과 그 실패
    • 입력 2023-08-31 08:03:39
    • 수정2023-08-31 10: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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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의 정책이 성공했는지 평가하는 데 익숙지 않다.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IRA나 CHIPS 법 같은 정책에 대해서도 그렇다.<br /><br /><strong><em>미국이 하는 일인데, 우리는 따라야지 별수 있나.</em></strong><br /><br />그럴지도 모르나, 그래도 평가는 필요하다. 세상은 미국의 뜻대로, 그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미국은 최강국이지만 의지를 관철하는 데 실패한 경험도 수없이 많다. 시행착오의 과정도 역사로 숱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도 실패로 기록될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한편이라는 이유로 그 과정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 자체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br />

■ 세계화를 팔지 않은 미국의 4년

미국은 더는 세계화를 팔지 않기로 했다. 특히 중국이 포함된 세계화를 않기로 했다. 2018년이 기점이다. (트럼프가 25%의 대중국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2018년 미국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1%였다. 2022년 이 비율은 16%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더 낮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


저비용(저부가가치) 상품의 수입만 보면 변화는 더 극명하다. 2018년에는 저비용 상품 수입의 3분의 2가 중국산이었는데, 4년 만에 2분의 1로 줄었다. (이코노미스트지)

투자도 급감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의 TOP3 투자국가에서 빠졌다. 25년 만의 일이니까 21세기에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숫자만 보면 미국의 성공이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쪽이 별로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베트남과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와 태국으로 '조립공장을 옮긴 영향'일 뿐, 중국 입김이 준 것은 아니라는 기사를 냈다. 이것부터 살펴보자.

■ 동남아시아 '태양광 두더지 잡기'

최근 미국이 '중국 태양광의 숨통을 죈다'는 식의 기사가 등장했다. 미국 정부가 동남아시아 국가를 우회해 태양광 모듈을 수출해 온 중국 업체들에 대해 ‘관세 폭탄’을 부과한다는 뉴스였다. 우회수출 단속이다. BYD 홍콩(캄보디아), 뉴이스트솔라(캄보디아), 캐내디언솔라(태국), 트리나솔라(태국), 비나솔라(베트남) 5개를 지목했다.

직접 수출을 규제하니, 중간재를 아시아로 수출한 뒤 조립해 미국에 보낸단 얘기다. 규제 빈틈이다. 시장은 언제나 이런 규제의 빈틈을 파고든다. 생물처럼 적응한다.

두더지 잡기 하듯 단속에 나서지만, 태양광 산업에서 중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실 위 5개 업체 외에도 의심기업은 훨씬 많다. (말레이시아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도 조사 대상이었다.) 우선은 단속이 어렵다. 중국 자금이 얼마나 섞였는지, 또 확실히 중국 회사인지 밝히기 어렵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다 빼면 태양광 발전 수요를 맞출 수 없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내놓은 태양광 산업 동향(2023년 상반기)을 보면, 중국은 "세계 태양광 산업을 장악"했으며 "현재는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다. 자체 생산기술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했다. 기술적으로 앞서고, 광물도 선점했는데, 효율적 물류망까지 이미 갖추고 있다. 점유율은 경악할 만큼 높다.

점유율이 이렇게 높은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폴리실리콘 제조와 가공비용에서 중국산은 유럽산의 2/3에 불과하다. ( IEA, 국제에너지기구) 최근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8월 초 기준으로 중국 폴리실리콘 단가는 비중국산의 1/3에 불과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 중국의 중간재를 받아다가 조립해서 미국에 팔고 싶다. 그게 그들의 국익이다. 그래서 중국의 자본과 협력했고, 그 결과 공급망은 조금 길고 복잡해졌다. 미국의 규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이 규제로 치러야 할 비용은 이미 충분히 크다. 미국의 소비자는 더 비싼 태양광 소재와 부품, 장비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마련한 정부 보조금은 중국산보다 경쟁력 떨어지는 제품에 들어가고 있다. 자유무역을 했다면 아예 들이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지금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려고 납세자의 세금을 허공에 뿌리고 있다.

비효율과 실패는 자동차 분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의 규제 뒤, 멕시코가 수입한 중국 자동차 부품이5배 늘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 산업에는 멕시코를 통하는 우회로가 있는 것이다. 멕시코는 중국의 중간재를 활용해 경쟁력을 높인다. 실제로, 올해 테슬라가멕시코 몬테레이에 공장을 증설하기로 하자, 지금 최소 7개 이상의 중국 협력사들이 멕시코로 몰려가 공장을 짓고 있다.

■ 한국, '배터리에서 중국과 합작'

우리의 이해와 직결되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이야기로 옮겨가자. 우리에겐 전기차 보조금법으로 알려진 IRA의 등장으로 현대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타격을 입었으나, 배터리 업체들은 다르다. 배터리 3사는 모두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수령하고 있다. 지난 1년간 3사가 회계상으로 반영한 보조금만 수천억 원에 이른다.

그래서, 중국을 지워내려는 미국의 노력은 성과를 낸 것일까?

아래는 블룸버그가 정리한 중국 배터리 산업이 지배하는 광물들과 그 점유율이다. 우리 배터리 산업은 바로 이 중국 배터리 산업이 지배하는 광물과 소재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의 비율이 IRA 규정을 충족하기 때문에 한국산 인정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 배터리도 실은 여전히 대부분 중국 광물과 소재 등 중간재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미국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배터리 분야에서 지금 한·중 협력이 급속히 고도화되고 있다. 미국 진출이 막힌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있다.

SK온과 에코프로는 새만금에서 중국 거린메이 등과 함께 전구체 제조 공장을 짓는다. LG화학은 중국의 화유코발트와 함께 역시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는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포항에 전구체 공장과 니켈 제련 라인을 건설한다. 포스코 그룹은 중국 CNGR과 함께 포항에 황산니켈과 전구체 생산시설을 만든다. 롱바이는 단독 진출한다. 모든 프로젝트가 '조' 단위 투자를 전제로 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업체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소재와 부품도 공급한다.

모두 미국이 만든 IRA 법이 낳은 풍경이다.


물론, 미국이 이들 합작기업에 대해서 우려 집단(FEOC, foreign entity of concern)으로 지정하거나 합작비율을 규제해서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다.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을 완전히 도려낸다면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가격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벌써 '미국이 합작비율을 규제하면 그에 맞춰 중국의 투자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비상계획도 만들어놨다. 합작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중국의 경쟁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BYD는 전기차는 물론 배터리와 원자재, 그리고 광산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세계 유일의 기업이다. 독일의 렌터카업체 Sixt는 10만 대를 한번에 주문했다. 쌍용차를 인수한 KG모빌리티는 BYD와 협력해 전기차 10만대를 생산하겠다고 했다. CATL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배터리를 만든다.

골드만삭스도 인정한다. '중국은 다른 나라 1/3 시간으로 공장을 건설한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보다 비용이 80% 더 들고, 제조 비용은 3배 더 든다'고 표현했다. 자원과 기술, 그리고 노동환경과 인플레이션, 환경기준에서 중국의 우위가 확실하다.

풍력터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양 경쟁사의 1/2 가격으로 생산한다. (S&P)

이코노미스트지는 '공급망은 복잡해졌고, 무역은 더 비싸졌지만, 중국의 지배력은 그대로'라고 정리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한국과 같은 동맹국과 중국이 국제 공급망에서 더 가까워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덕에 미국의 동맹이 공급망과 금융의 측면에서 중국과 더 긴밀히 협력한다는 이야기다.

이래도 미국이 성공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 미국에 반도체 공장은 짓는데, 가동도 예정대로?

반도체 이야기도 빼놓을 순 없다. 미국은 CHIPS 법안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한국의 삼성과 타이완의 TSMC가 미국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게 했다. 그러나 순조롭기만 하진 않다. 우선 TSMC는 공장 가동 시점을 2024년에서 2025년으로 1년 미뤘다. 전문인력 부족 때문이다. 타이완에서 기술자를 파견해 대응할 정도다.

미국의 '고용호황'이 기업 입장에선 '인력부족'으로 번역되고 있다. 미국의 SIA(반도체협회)는 2030년까지 엔지니어 등 반도체 전문인력 6만 7만 명, 더 넓은 경제 전반에서는 140만 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지금 미국에선 보름 안팎 교육받고, 반도체 기업 취업 인터뷰를 보러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학이 개설한 6개월 안팎의 반도체 인력 단기 과정도 있다. 당장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힘들어서다.

삼성이라고 상황이 더 나을 리는 없다. 공장은 보조금으로 짓는다해도, 고급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첨단 반도체를 비용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은 다른 일이다.

SK하이닉스는 과거 오레곤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지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철수했다. 원가도 비싸고, 인력 구하기도 힘들어서다. 당시 1조 5천억 원 이상을 투자했던 현지 공장 용지는 사실상 버려졌다가, 매각과 재매각을 거치면서 최근 70억 원에 한 디스플레이 업체에 팔렸다.

부동산 업체 Ten-X.com 사진, 오레곤주 유진시 (구)하이닉스 반도체 제조시설
미국 내에선 중국과의 단절을 두고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인텔의 CEO 펫 겔싱어는 지난 7월 "(중국에 최첨단 칩을 공급하지 못하게 해서) 시장이 25~30% 줄어들면 공장을 덜 지어야 한다."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5월에 FT에 "(중국을 잃어) 시장이 1/3 줄면, 미국 공장(fab)은 필요 없다. 거기서 수영이나 해야지." 라고 말했다.

■ 그래도 미국 경기는 좋다고? 올라가는 시장 금리를 보라

미국 장기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초 대비 1%p 넘게 올랐다.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7%를 넘어 8%대에 육박한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 Axios는 '장기적 구조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논평한다.

구조 변화는 '정부 재정적자 증가'를 말한다.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IRA와 CHIPS 법안 같은 법안을 내고 국내 투자를 장려하는 재정지출을 할 것이다. 재정적자는 계속 늘 것이다. 국가채무도 쌓일 것이다. 그래서 인플레 압력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쪽에 투자자들이 베팅하고 있단 얘기다.

국제 상황도 변하고 있다. 일본도 물가가 오르고 있다. 장기 금리까지 0% 수준에 묶어두는 YCC(수익률 곡선 통제) 정책을 변화시킬 것이다. 즉, 금리가 오를 것이고 이 경우 일본의 미국채 수요가 상당 부분 일본 국내 수요로 바뀔 것이다. 중국도 국내 혼란과 정치적 긴장 때문에, 또 동남아시아 등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 국채 매입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미국의 시장 금리가 오르고 있는 것이라면 당장 물가가 잠잠해지는 가운데 수요는 건재하고 고용도 좋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경제 상황'이 지속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시장의 기대가 맞다면 금리에 의해, 인플레이션에 의해 미국 경제가 할퀴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 '수정하라'는 조언은 쏟아진다

미국은 중국을 끊어내려 엄청난 돈을 찍어내고 있다. 강력한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요 산업에서 중국을 끊어냈다는 진짜 지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넬로피 골드버그는 정책을 수정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미국 산업정책의 두 요소로 1) 녹색 성장 지원과 2) 수입을 대체하는 국내 제조 지원 정책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국경을 닫거나 미국 제품만 사는 정책은 가난한 미국인에게 피해를 준다. 노동력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제 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 수정은 1) 녹색 성장만 세심하고 포용적으로 추진하되, 2) 국내 제조 정책은 생략하는 것이다.

앞서 중국 경제의 위기를 다룬 기사에선 중국이 '국가부흥'을 성장의 앞에 놓고, '안보'를 효율의 앞에 놓아 잘못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고 했다. (참고기사 : 중국 경제 ‘치명적 뇌관’, 감출수록 도드라진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권위주의 국가 체제 자체가 스스로 수정할 힘을 잃고 있다고도 했다. 일부는 분명 미국에 대해서도 맞는 말이다.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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