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12 신고 뒤 숨진 여성…비슷한 일 막으려면?

입력 2023.08.31 (15:02) 수정 2023.09.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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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신고 17시간 만에 발견…여성 결국 숨져

지난 28일 밤 9시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빌라에서 40대 남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발견 당시 여성의 얼굴은 멍과 상처 등 폭행 흔적이 있었고, 양손은 청테이프로 묶여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흉기와 번개탄을 피운 흔적 등이 발견됐지만,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A 씨, 같은 날 새벽 112신고를 했었습니다. 신고 이후 17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된 건데,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 "시장 근처가 집이다" 했지만...수색 실패한 경찰

이 17시간 동안, 경찰은 A 씨를 왜 못 찾은 걸까요

어제(30일) 경찰이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서울경찰청 상황보고서’를 KBS 취재진이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숨진 당일 새벽 3시 39분. 경찰은 A 씨의 휴대폰으로 첫 신고를 받았습니다. 멀리서 "왜"하는 여성의 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겼는데요. 이후 경찰은 '긴급 출동'해야 하는 '코드1' 을 발령한 뒤 A 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경찰청 상황보고서, 자료출처 :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실서울경찰청 상황보고서, 자료출처 :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실

첫 신고 9분 뒤인 새벽 3시 48분.

순찰차 2대가 출동했습니다. 하지만, A 씨의 휴대폰 송수신 위치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반경 2km. 정확히 A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A 씨의 휴대폰도 꺼져 더는 A 씨와 소통할 수 없는 상황.

'통신 수사'를 통해 A 씨의 주민등록 상과 통신사 상 주소지 확인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두 곳 모두 A 씨의 실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A 씨의 가족이 살고 있었고, 이 가족도 A 씨의 현재 거주지 주소를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고 말해 피해자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게 경찰 보고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신고 위치를 찾을 수 있었던 단서'는 있었습니다.

첫 신고 35분 뒤인 새벽 4시 14분. 경찰을 만난 가족은, "A 씨가 수유시장 부근 원룸에 거주한다" 고 경찰에 말했습니다. 실제 A 씨의 주거지는 수유시장에서 500m 안에 있었습니다.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단서'가 있었음에도 경찰의 특별한 수색이나 탐문 등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경찰은 이미 꺼져있는 A 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만 수차례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성은 17시간 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신고 이후 "새벽 시간이니까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수색할 순 없었다"면서 "순찰차가 가서 순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A 씨를 발견한 건 결국 가족


A 씨를 발견한 건 기억을 더듬어 A 씨의 집으로 찾아간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은 사다리로 2층에 올라가 창문 밖에서 집 안에 쓰러져 있는 A 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고, 경찰도 함께 출동했습니다.


타살 혐의점 배제 어려워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외견상 함께 자살한 걸로 보이지만, 남성이 A 씨에게 '자살을 강요'한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와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 결국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신고자...비슷한 일 막으려면?

이번 사건을 복기해가며 점검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112 신고 당시 살아있었던 여성이, 결국 도움을 받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신고 피해자와 연결이 끊어진 상황에서, 반경 2km나 되는 휴대전화 위치 추적 범위만으로는 발빠른 현장 대응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 새벽 시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도 수색에 장애가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시장 근처 원룸' 이라는 단서를 더 살릴 방법은 없었을지, 순찰차 두 대의 수색만으로 충분했던 건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위험 상황에서 112 버튼을 누른 신고자가 기댈 곳은, 경찰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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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31 15:02:19
    • 수정2023-09-01 09:26:21
    단독

■ 112 신고 17시간 만에 발견…여성 결국 숨져

지난 28일 밤 9시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빌라에서 40대 남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발견 당시 여성의 얼굴은 멍과 상처 등 폭행 흔적이 있었고, 양손은 청테이프로 묶여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흉기와 번개탄을 피운 흔적 등이 발견됐지만,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A 씨, 같은 날 새벽 112신고를 했었습니다. 신고 이후 17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된 건데,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 "시장 근처가 집이다" 했지만...수색 실패한 경찰

이 17시간 동안, 경찰은 A 씨를 왜 못 찾은 걸까요

어제(30일) 경찰이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서울경찰청 상황보고서’를 KBS 취재진이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숨진 당일 새벽 3시 39분. 경찰은 A 씨의 휴대폰으로 첫 신고를 받았습니다. 멀리서 "왜"하는 여성의 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겼는데요. 이후 경찰은 '긴급 출동'해야 하는 '코드1' 을 발령한 뒤 A 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경찰청 상황보고서, 자료출처 :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실
첫 신고 9분 뒤인 새벽 3시 48분.

순찰차 2대가 출동했습니다. 하지만, A 씨의 휴대폰 송수신 위치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반경 2km. 정확히 A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A 씨의 휴대폰도 꺼져 더는 A 씨와 소통할 수 없는 상황.

'통신 수사'를 통해 A 씨의 주민등록 상과 통신사 상 주소지 확인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두 곳 모두 A 씨의 실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A 씨의 가족이 살고 있었고, 이 가족도 A 씨의 현재 거주지 주소를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고 말해 피해자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게 경찰 보고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신고 위치를 찾을 수 있었던 단서'는 있었습니다.

첫 신고 35분 뒤인 새벽 4시 14분. 경찰을 만난 가족은, "A 씨가 수유시장 부근 원룸에 거주한다" 고 경찰에 말했습니다. 실제 A 씨의 주거지는 수유시장에서 500m 안에 있었습니다.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단서'가 있었음에도 경찰의 특별한 수색이나 탐문 등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경찰은 이미 꺼져있는 A 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만 수차례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성은 17시간 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신고 이후 "새벽 시간이니까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수색할 순 없었다"면서 "순찰차가 가서 순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A 씨를 발견한 건 결국 가족


A 씨를 발견한 건 기억을 더듬어 A 씨의 집으로 찾아간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은 사다리로 2층에 올라가 창문 밖에서 집 안에 쓰러져 있는 A 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고, 경찰도 함께 출동했습니다.


타살 혐의점 배제 어려워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외견상 함께 자살한 걸로 보이지만, 남성이 A 씨에게 '자살을 강요'한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와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 결국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신고자...비슷한 일 막으려면?

이번 사건을 복기해가며 점검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112 신고 당시 살아있었던 여성이, 결국 도움을 받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신고 피해자와 연결이 끊어진 상황에서, 반경 2km나 되는 휴대전화 위치 추적 범위만으로는 발빠른 현장 대응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 새벽 시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도 수색에 장애가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시장 근처 원룸' 이라는 단서를 더 살릴 방법은 없었을지, 순찰차 두 대의 수색만으로 충분했던 건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위험 상황에서 112 버튼을 누른 신고자가 기댈 곳은, 경찰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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