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20년 만에 작업 나선 탈북민 도예가

입력 2023.09.02 (08:39) 수정 2023.09.0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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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K-컬쳐’라 부르면서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죠.

과거엔 우리의 고려청자나 조선백자같은 아름답고 황홀한 도자기 문화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일종의 ‘원조 K-컬쳐’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조선백자의 시원지로 꼽히는 강원도 양구에서, 남한의 흙과 북한의 도자기 기술을 접목시켜 이른바 ‘통일 백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데요.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 탈북민 도예가 이상철 씨의 도자기 인생을 최효은 리포터와 함께 보시죠.

[리포트]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강원도 양구.

지금은 군사분계선을 두고 남북이 대치 중인 접경지역이지만 조선백자의 근본인 백토가 많이 생산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흰 바탕에 푸른 그림이 조화로운 조선 청화 백자의 단아하게 빛나는 자태.

그 옆에는 특별한 다소 결이 다른 도자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어깨선에 이렇게 뭔가 흘러내린 듯한 느낌들이 있는데요. 이건 일반적인 옹기를 만드는 기법으로 만들고 유약도 뿌리고 그리고 그 위에 볏짚을 태워서 만든 유약을 두껍게 흘리면 이런 느낌들이 나요."]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서 생산한 도자기들입니다.

장독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짙게 빛나는 색과질감이 매력입니다.

조선시대부터 강원도 양구는 질 좋은 백토가 생산돼 백자의 본고장으로도 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백자와는 다소 결이 다른 북한의 도자기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그리고 북한의 도자기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 정착한 지 20여년 만에 다시 도자기를 빚게 됐다는 한 도예가의 사연이 사뭇 궁금해집니다.

회령 도자기는 한때 일본의 유명 도자 지역인 가라츠 마을에도 영향을 줄 만큼 융성했다고 합니다.

이상철 도예가도 북한 회령 출신입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저희 고향에선 이걸 5가지 색이 나온다고 오지라고 계속 전해 왔다고 이렇게 알고 있어요. "]

북한에선 만수대창작사를 중심으로 전승 도예가 계승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회령 도자기는 오랜 전통과 우수성이 인정돼 북한의 국가비물질문화유산에 등록돼 독립적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

회령에서만 도자기를 빚었던 이상철 작가에게 양구의 백토는 어떤 느낌일까요?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백색도도 좋고 흙도 좋고 백자 흙으로선 최고죠."]

반죽한 점토를 물레에 올리고 모양을 잡아 나가는데요.

재료는 남한의 것이지만, 형태는 북한식으로, 장을 끓이는 그릇인 장사기를 만들 예정입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이건 북한에서 항아리로 만들 때 잘 깨지지 않게 하려고 홈을 만들어줘서 튼튼하게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손잡이를 붙여주는 방식도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이건 북한식이에요. 이거는 우리 고향에서만 이렇게 하는가보다 이렇게 제가 알고 있어요."]

물레 작업을 마친 도자기는 건조 작업을 거치고, 이후엔,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작업을 하게 됩니다.

섬세한 붓질로 산수화를 그려 넣는 방식은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전통적인 면에선 거의 똑같아요. 한나라 한민족이니까 거의 똑같을 수밖에 없죠. 전통적인 문양이라든가, 그림이라든가..."]

1993년 경성 도자기 단과 대학을 졸업하고 회령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며, 도자기 빚는 일을 천직으로 여겼다는 이상철 작가.

하지만 북한에서는 늘 자재와 자원이 부족해 도예 작업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도자기를 고향에선 재래식 가마라고 있어서 거기다 나무불을 때서 굽거든요. 전기나 가스가 없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까 나무를 때야 되는데 나무 자체도 부족한 거에요."]

그러다 탈북을 결심한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한 부부의 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위로 차원에서 아들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어줬는데 이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1년 동안 비판 무대(생활총화)에 올라선 거죠. 잘못하면 잡혀 들어갈 뻔했죠. 이거 안되겠다. 이거 만들면 그런 거 정도를 못만들면 어떻게 작품을 하겠어요."]

도예가로서 암울한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4년 남한에 왔지만, 정작 이곳에선 생계를 위해 도자 굽는 일은 포기하고 여러 일을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3월 양구백자박물관과의 ‘통일 백자’ 제안은 그에게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의미가 됐습니다.

통일 백자 프로젝트 때문에 생이별을 하고 있지만 아내도 그가 도자기를 다시 빚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합니다.

[조윤진/이상철 도예가의 아내 : "자기는 그게 소원이라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신랑이 이 소원을 푼 것이 저는 너무 좋아요."]

이제 도자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를 굽고 유약을 발라야 합니다.

박물관의 가마실에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이상철 전시회가 박물관에서 10월 27일날 진행되거든요. 많이 밀려있어요. 서둘러야 해요."]

이상철 작가는 양구백자박물관과의 협업을 통해 다음 달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이 작가의 전시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북한의 도자기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이렇게 만들어가는 백자는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른바 통일 백자이기 때문입니다.

초벌구이를 마친 도자기는 유약을 바르고 다시 재벌구이를 하면 완성됩니다.

정두섭 관장이 이상철 작가의 곁에서 가마 작업을 돕습니다.

그는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 다양한 학술적, 문화적 의미들을 찾아나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북한에서 어떤 형식으로 작업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겠고요. 또 거기에서 만들었던 제작 방식들을 저희 박물관에서 아카이빙 해서 남한에서 학술적인 연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 관장은 오랜 시간, 남과 북의 재료와 도예 방식을 통합한 이른바 통일백자를 구상해 왔는데요.

그의 고민은 박물관에서 운영 중인 백토 생산시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장석이 오랜 시간 동안 풍화가 되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도석으로 풍화가 돼요."]

남과 북을 오가는 바람에 깎여 이 흙이 만들어진 것처럼, 남북의 경게가 허물어지는 그 자리에 통일백자가 완성된다는 설명입니다.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바로 뒤에 큰 개울이 하나 있어요. 개울이 북한 쪽에서 내려오는 물하고 합수가 돼 있는 수입천이라 얘기하거든요. 수입천의 원료를 이용해서 흙들을 수비하고 있습니다. 합수, 합토, 모든 것들을 담자 그리고 만드는 사람들조차 남북의 도예가가 만든 통일 백자를 만들자 그런 의미에서..."]

도자기를 구심점으로 마주 앉은 남북한의 도공들.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통일 백자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지 않을까요?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남북의 원료를 갖고 통일된 통일백토를 만들고 남북의 도예가가 같이 만든 통일백자를 저희 박물관에 전시하는 사업들을 꾸준히 실행해 옮겼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남북이 합치진 못했지만 우린 여기서 도자기로서 미리 합치고 있다는걸 그들한데 응시해주고 남북통일에 관한 염원을 담아서 통일 자기도 만들어서 열심히 노력하신 분들도 있다란걸 알려드리고 싶고 그래요."]

오늘도 통일의 희망을 담은 백자가 백토의 고장 양구에선 빚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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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20년 만에 작업 나선 탈북민 도예가
    • 입력 2023-09-02 08:39:56
    • 수정2023-09-02 09:32:32
    남북의 창
[앵커]

요즘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K-컬쳐’라 부르면서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죠.

과거엔 우리의 고려청자나 조선백자같은 아름답고 황홀한 도자기 문화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일종의 ‘원조 K-컬쳐’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조선백자의 시원지로 꼽히는 강원도 양구에서, 남한의 흙과 북한의 도자기 기술을 접목시켜 이른바 ‘통일 백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데요.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 탈북민 도예가 이상철 씨의 도자기 인생을 최효은 리포터와 함께 보시죠.

[리포트]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강원도 양구.

지금은 군사분계선을 두고 남북이 대치 중인 접경지역이지만 조선백자의 근본인 백토가 많이 생산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흰 바탕에 푸른 그림이 조화로운 조선 청화 백자의 단아하게 빛나는 자태.

그 옆에는 특별한 다소 결이 다른 도자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어깨선에 이렇게 뭔가 흘러내린 듯한 느낌들이 있는데요. 이건 일반적인 옹기를 만드는 기법으로 만들고 유약도 뿌리고 그리고 그 위에 볏짚을 태워서 만든 유약을 두껍게 흘리면 이런 느낌들이 나요."]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서 생산한 도자기들입니다.

장독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짙게 빛나는 색과질감이 매력입니다.

조선시대부터 강원도 양구는 질 좋은 백토가 생산돼 백자의 본고장으로도 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백자와는 다소 결이 다른 북한의 도자기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그리고 북한의 도자기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 정착한 지 20여년 만에 다시 도자기를 빚게 됐다는 한 도예가의 사연이 사뭇 궁금해집니다.

회령 도자기는 한때 일본의 유명 도자 지역인 가라츠 마을에도 영향을 줄 만큼 융성했다고 합니다.

이상철 도예가도 북한 회령 출신입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저희 고향에선 이걸 5가지 색이 나온다고 오지라고 계속 전해 왔다고 이렇게 알고 있어요. "]

북한에선 만수대창작사를 중심으로 전승 도예가 계승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회령 도자기는 오랜 전통과 우수성이 인정돼 북한의 국가비물질문화유산에 등록돼 독립적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

회령에서만 도자기를 빚었던 이상철 작가에게 양구의 백토는 어떤 느낌일까요?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백색도도 좋고 흙도 좋고 백자 흙으로선 최고죠."]

반죽한 점토를 물레에 올리고 모양을 잡아 나가는데요.

재료는 남한의 것이지만, 형태는 북한식으로, 장을 끓이는 그릇인 장사기를 만들 예정입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이건 북한에서 항아리로 만들 때 잘 깨지지 않게 하려고 홈을 만들어줘서 튼튼하게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손잡이를 붙여주는 방식도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이건 북한식이에요. 이거는 우리 고향에서만 이렇게 하는가보다 이렇게 제가 알고 있어요."]

물레 작업을 마친 도자기는 건조 작업을 거치고, 이후엔,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작업을 하게 됩니다.

섬세한 붓질로 산수화를 그려 넣는 방식은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전통적인 면에선 거의 똑같아요. 한나라 한민족이니까 거의 똑같을 수밖에 없죠. 전통적인 문양이라든가, 그림이라든가..."]

1993년 경성 도자기 단과 대학을 졸업하고 회령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며, 도자기 빚는 일을 천직으로 여겼다는 이상철 작가.

하지만 북한에서는 늘 자재와 자원이 부족해 도예 작업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도자기를 고향에선 재래식 가마라고 있어서 거기다 나무불을 때서 굽거든요. 전기나 가스가 없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까 나무를 때야 되는데 나무 자체도 부족한 거에요."]

그러다 탈북을 결심한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한 부부의 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위로 차원에서 아들 모습을 조각상으로 만들어줬는데 이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1년 동안 비판 무대(생활총화)에 올라선 거죠. 잘못하면 잡혀 들어갈 뻔했죠. 이거 안되겠다. 이거 만들면 그런 거 정도를 못만들면 어떻게 작품을 하겠어요."]

도예가로서 암울한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4년 남한에 왔지만, 정작 이곳에선 생계를 위해 도자 굽는 일은 포기하고 여러 일을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3월 양구백자박물관과의 ‘통일 백자’ 제안은 그에게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의미가 됐습니다.

통일 백자 프로젝트 때문에 생이별을 하고 있지만 아내도 그가 도자기를 다시 빚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합니다.

[조윤진/이상철 도예가의 아내 : "자기는 그게 소원이라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신랑이 이 소원을 푼 것이 저는 너무 좋아요."]

이제 도자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를 굽고 유약을 발라야 합니다.

박물관의 가마실에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이상철 전시회가 박물관에서 10월 27일날 진행되거든요. 많이 밀려있어요. 서둘러야 해요."]

이상철 작가는 양구백자박물관과의 협업을 통해 다음 달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이 작가의 전시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북한의 도자기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이렇게 만들어가는 백자는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른바 통일 백자이기 때문입니다.

초벌구이를 마친 도자기는 유약을 바르고 다시 재벌구이를 하면 완성됩니다.

정두섭 관장이 이상철 작가의 곁에서 가마 작업을 돕습니다.

그는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 다양한 학술적, 문화적 의미들을 찾아나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북한에서 어떤 형식으로 작업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겠고요. 또 거기에서 만들었던 제작 방식들을 저희 박물관에서 아카이빙 해서 남한에서 학술적인 연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 관장은 오랜 시간, 남과 북의 재료와 도예 방식을 통합한 이른바 통일백자를 구상해 왔는데요.

그의 고민은 박물관에서 운영 중인 백토 생산시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장석이 오랜 시간 동안 풍화가 되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도석으로 풍화가 돼요."]

남과 북을 오가는 바람에 깎여 이 흙이 만들어진 것처럼, 남북의 경게가 허물어지는 그 자리에 통일백자가 완성된다는 설명입니다.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바로 뒤에 큰 개울이 하나 있어요. 개울이 북한 쪽에서 내려오는 물하고 합수가 돼 있는 수입천이라 얘기하거든요. 수입천의 원료를 이용해서 흙들을 수비하고 있습니다. 합수, 합토, 모든 것들을 담자 그리고 만드는 사람들조차 남북의 도예가가 만든 통일 백자를 만들자 그런 의미에서..."]

도자기를 구심점으로 마주 앉은 남북한의 도공들.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통일 백자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지 않을까요?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 관장 : "남북의 원료를 갖고 통일된 통일백토를 만들고 남북의 도예가가 같이 만든 통일백자를 저희 박물관에 전시하는 사업들을 꾸준히 실행해 옮겼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상철/탈북민 도예가 : "남북이 합치진 못했지만 우린 여기서 도자기로서 미리 합치고 있다는걸 그들한데 응시해주고 남북통일에 관한 염원을 담아서 통일 자기도 만들어서 열심히 노력하신 분들도 있다란걸 알려드리고 싶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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