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금요일에 흉기를 들었다”…이유는? [주말엔]

입력 2023.09.03 (09:01) 수정 2023.09.0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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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조선 흉기난동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흉기 관련 범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희남, 김혜빈 씨 비롯해 5명의 피해자가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으려면 원인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이에 KBS는 조선의 범행 뒤로 이어진 123건의 흉기난동과 살인예고 범죄를 모두 분석했습니다. 전수분석 데이터 속에는 누가 어떤 이유로 범행을 벌이는지, 주목해야 할 위험 요소는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숨어있었습니다.

■ 흉기난동·범행예고 123건, 피의자 125명 전수조사

분석 대상 사건은 7월 21일 조선 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인 흉기 관련 범행이었습니다. 최근의 흉기 범행은 범행의 상대가 정해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라 면식범에 의한 사건은 제외했습니다.

범행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눠서 살펴봤습니다. 흉기를 실제로 손에 쥔 '흉기 들었음' 66건, 온라인에 '범행 예고' 글을 올린 57건으로 분류했습니다.


■"청년이 금요일에 흉기를 들었다"

123건의 피의자는 125명. 대부분 청년이었습니다. 10~30대가 82명으로 66%를 차지했습니다. 성별로는 남성이 112명, 여성이 9명이었습니다.

10~30대 피의자 중 실제로 흉기를 든 사람은 31명, 범행 예고 글을 올린 사람은 51명이었습니다.

범행 시기는 금요일을 중심으로 집중됐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토요일에 일어난 사건이 67건으로 전체의 54%를 차지했습니다. 조선의 흉기난동도 금요일에 발생했고, 최원종과 최윤종의 범행도 목요일에 있었습니다.


■ "분노가 범행으로"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뭘까? 조선 사건 직후부터 줄을 이었던 '범행예고' 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작성자들은 대부분 "장난으로" "관심을 받으려고" 글을 썼다며, 실제로 범행을 할 의사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몇몇은 "분노해서" 범행 예고 글을 올렸다고 답했습니다.

경기도의 10대는 "불우한 나와 다르게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서", 서울의 20대는 "연예인이 팬심을 받아주지 않아서", 충남의 30대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잃어서" 화가 났다고 진술했습니다.


분노라는 이유는 이번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피의자들의 가장 주된 범행 동기였습니다.

분노한 이들은 범행 예고글을 올리는데 그치기보단, 실제로 흉기를 소지하고 위협하거나 난동을 부린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광주의 20대는 "여자친구가 나를 무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길에서 분풀이를 했고, 충북의 30대는 "편의점주가 불친절해서" 흉기를 손에 쥐었습니다. 서울의 한 30대는 "쌍꺼풀 재수술을 해주지 않아" 병원에서 흉기를 들었습니다.


■ "장난으로 올린 범행 예고 글, 누군가를 자극했다"

범행 예고 글이 폭증한 뒤, 실제로 흉기를 소지하고 난동을 부린 사건은 늘었습니다.

"장난으로 올렸다"는 범행 예고 글이 결국 실제 흉기난동 사건들의 자극제가 된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입니다.

초반 3주(7월 21일~8월 10일)는 범행예고가 47건, 흉기를 든 사건은 26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후반 3주(8월 11일~8월 28일)는 범행예고는 10건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흉기를 든 사건은 40건 발생해 53%나 늘었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 기관이 범행 예고 글 작성자를 엄벌하겠다며 적극 검거 등 조치를 하자 예고 범행은 급격히 줄었지만, 이 글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 불만 감정을 품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흉기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50대는 숨은 위험인자"

50대 피의자의 비율이 10~30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다는 점도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입니다.

50대 피의자는 22명으로 전체의 18%를 차지했습니다. 10대(28명) 22%, 20대(28명) 22%, 30대(26명) 21%와 견주어 결코 낮지 않은 비율입니다.

게다가 범행예고 비율이 높았던 젊은 층과 달리, 50대는 2명을 제외하곤 모두 실제로 흉기를 손에 들었습니다.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으로 번질 위험이 젊은 층보다 큰 겁니다.

서울의 50대는 "지나가던 사람과 어깨가 부딪혀 시비가 붙어서", 경기도의 50대는 "식당 종업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흉기 위협 사건을 벌였습니다.

이 교수는 "50대의 경우 본인이 생각했던 목표를 상실하거나 가족과 멀어지면서 범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숨어 있는 '은둔형 외톨이' 위험지표가 젊은 층만큼은 높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정신질환'은 통계적으로 높지 않아…사회적 고립도 주요 동기"

최원종 사건에서 범행 동기로 지목된 정신질환자의 범행 비율은 특별히 높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보유한 사건은 24건으로, 고립· 은둔·음주가 원인이 된 사건(21건)과 비슷했습니다. 분노(45건)나 장난 등(30건)이 동기였던 사건보단 발생 비율이 낮았습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는 "정신질환자의 비율이 실제로는 더 낮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정신질환 피의자의 조건을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우울증 등 관련 증상은 단발적인 이벤트에 불과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거나 지지 체계가 없는 점이 더 주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경찰이 내놓은 보고서도 이런 분석과 같은 흐름을 보여줍니다.

KBS가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의 '불특정 다수 살상사건 분석 및 대응방안 고찰' 보고서를 보면, 국내외 주요 무차별 범죄 20건 중 정신질환이 주요 동기였던 사건은 3건에 불과했습니다.

국내 사건의 주요 동기는 8건이 부적응, 2건이 정신질환이었습니다. 국내 피의자 10명의 주요 특성을 보면, 경제 수준이 낮은 경우가 6건, 의지할 곳이 없던 경우가 7건이었던 걸로 확인됩니다.


■ "고립·은둔 청년부터 고독한 중년까지 품는 치안·복지대책 절실"

대책으로는 치안과 복지 정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펼쳐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범행 의사를 가진 사람의 분노가 펼쳐지지 못하도록 범행 관련 요소들을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 교수는 "범행을 촉발할 수 있는 요소를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치안 대책이, 분노를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복지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범행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이 흉기나 위험 장소 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범행 위험 시간대에 심리치료 등을 위한 자조모임을 조직하고, 일자리 제공 등도 돕는 구조를 만드는 식입니다.

고립·은둔 청년부터 고독한 중년까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흉기를 드는 상황.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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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이 금요일에 흉기를 들었다”…이유는? [주말엔]
    • 입력 2023-09-03 09:01:12
    • 수정2023-09-03 09:16:32
    주말엔

7월 21일 조선 흉기난동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흉기 관련 범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희남, 김혜빈 씨 비롯해 5명의 피해자가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으려면 원인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이에 KBS는 조선의 범행 뒤로 이어진 123건의 흉기난동과 살인예고 범죄를 모두 분석했습니다. 전수분석 데이터 속에는 누가 어떤 이유로 범행을 벌이는지, 주목해야 할 위험 요소는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숨어있었습니다.

■ 흉기난동·범행예고 123건, 피의자 125명 전수조사

분석 대상 사건은 7월 21일 조선 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인 흉기 관련 범행이었습니다. 최근의 흉기 범행은 범행의 상대가 정해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라 면식범에 의한 사건은 제외했습니다.

범행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눠서 살펴봤습니다. 흉기를 실제로 손에 쥔 '흉기 들었음' 66건, 온라인에 '범행 예고' 글을 올린 57건으로 분류했습니다.


■"청년이 금요일에 흉기를 들었다"

123건의 피의자는 125명. 대부분 청년이었습니다. 10~30대가 82명으로 66%를 차지했습니다. 성별로는 남성이 112명, 여성이 9명이었습니다.

10~30대 피의자 중 실제로 흉기를 든 사람은 31명, 범행 예고 글을 올린 사람은 51명이었습니다.

범행 시기는 금요일을 중심으로 집중됐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토요일에 일어난 사건이 67건으로 전체의 54%를 차지했습니다. 조선의 흉기난동도 금요일에 발생했고, 최원종과 최윤종의 범행도 목요일에 있었습니다.


■ "분노가 범행으로"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뭘까? 조선 사건 직후부터 줄을 이었던 '범행예고' 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작성자들은 대부분 "장난으로" "관심을 받으려고" 글을 썼다며, 실제로 범행을 할 의사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몇몇은 "분노해서" 범행 예고 글을 올렸다고 답했습니다.

경기도의 10대는 "불우한 나와 다르게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서", 서울의 20대는 "연예인이 팬심을 받아주지 않아서", 충남의 30대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잃어서" 화가 났다고 진술했습니다.


분노라는 이유는 이번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피의자들의 가장 주된 범행 동기였습니다.

분노한 이들은 범행 예고글을 올리는데 그치기보단, 실제로 흉기를 소지하고 위협하거나 난동을 부린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광주의 20대는 "여자친구가 나를 무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길에서 분풀이를 했고, 충북의 30대는 "편의점주가 불친절해서" 흉기를 손에 쥐었습니다. 서울의 한 30대는 "쌍꺼풀 재수술을 해주지 않아" 병원에서 흉기를 들었습니다.


■ "장난으로 올린 범행 예고 글, 누군가를 자극했다"

범행 예고 글이 폭증한 뒤, 실제로 흉기를 소지하고 난동을 부린 사건은 늘었습니다.

"장난으로 올렸다"는 범행 예고 글이 결국 실제 흉기난동 사건들의 자극제가 된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입니다.

초반 3주(7월 21일~8월 10일)는 범행예고가 47건, 흉기를 든 사건은 26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후반 3주(8월 11일~8월 28일)는 범행예고는 10건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흉기를 든 사건은 40건 발생해 53%나 늘었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 기관이 범행 예고 글 작성자를 엄벌하겠다며 적극 검거 등 조치를 하자 예고 범행은 급격히 줄었지만, 이 글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 불만 감정을 품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흉기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50대는 숨은 위험인자"

50대 피의자의 비율이 10~30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다는 점도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입니다.

50대 피의자는 22명으로 전체의 18%를 차지했습니다. 10대(28명) 22%, 20대(28명) 22%, 30대(26명) 21%와 견주어 결코 낮지 않은 비율입니다.

게다가 범행예고 비율이 높았던 젊은 층과 달리, 50대는 2명을 제외하곤 모두 실제로 흉기를 손에 들었습니다.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으로 번질 위험이 젊은 층보다 큰 겁니다.

서울의 50대는 "지나가던 사람과 어깨가 부딪혀 시비가 붙어서", 경기도의 50대는 "식당 종업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흉기 위협 사건을 벌였습니다.

이 교수는 "50대의 경우 본인이 생각했던 목표를 상실하거나 가족과 멀어지면서 범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숨어 있는 '은둔형 외톨이' 위험지표가 젊은 층만큼은 높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정신질환'은 통계적으로 높지 않아…사회적 고립도 주요 동기"

최원종 사건에서 범행 동기로 지목된 정신질환자의 범행 비율은 특별히 높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보유한 사건은 24건으로, 고립· 은둔·음주가 원인이 된 사건(21건)과 비슷했습니다. 분노(45건)나 장난 등(30건)이 동기였던 사건보단 발생 비율이 낮았습니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는 "정신질환자의 비율이 실제로는 더 낮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정신질환 피의자의 조건을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우울증 등 관련 증상은 단발적인 이벤트에 불과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거나 지지 체계가 없는 점이 더 주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경찰이 내놓은 보고서도 이런 분석과 같은 흐름을 보여줍니다.

KBS가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의 '불특정 다수 살상사건 분석 및 대응방안 고찰' 보고서를 보면, 국내외 주요 무차별 범죄 20건 중 정신질환이 주요 동기였던 사건은 3건에 불과했습니다.

국내 사건의 주요 동기는 8건이 부적응, 2건이 정신질환이었습니다. 국내 피의자 10명의 주요 특성을 보면, 경제 수준이 낮은 경우가 6건, 의지할 곳이 없던 경우가 7건이었던 걸로 확인됩니다.


■ "고립·은둔 청년부터 고독한 중년까지 품는 치안·복지대책 절실"

대책으로는 치안과 복지 정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펼쳐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범행 의사를 가진 사람의 분노가 펼쳐지지 못하도록 범행 관련 요소들을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 교수는 "범행을 촉발할 수 있는 요소를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치안 대책이, 분노를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복지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범행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이 흉기나 위험 장소 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범행 위험 시간대에 심리치료 등을 위한 자조모임을 조직하고, 일자리 제공 등도 돕는 구조를 만드는 식입니다.

고립·은둔 청년부터 고독한 중년까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흉기를 드는 상황.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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