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대 은행 가계대출 급증…‘50년 만기’ 주담대 막차 탑승 행렬 때문?

입력 2023.09.03 (15:26) 수정 2023.09.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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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 등 부채 줄이기 정책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규제 도입 과정에서 오히려 ‘막차 탑승’을 노린 가계대출 대기 수요가 몰린 겁니다.

8월 주담대 2.1조↑…8개월 만에 2조 원대 증가

오늘(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0조 8,12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7월 말(679조 2,208억 원)과 비교해 한 달 만에 1조 5,912억 원 늘어난 규모입니다.

가계대출 잔액은 5월 이후 4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는데, 8월 증가 폭은 2021년 11월(2조 3,622억 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컸습니다.

특히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8월에만 2조 1,122억 원(512조 8,875억 원→514조 9,997억 원)이나 뛰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월별 증가액이 2조 원을 넘어선 것은 2022년 12월(2조 3,782억 원) 이래 8개월 만에 처음입니다.

이런 추세로 미뤄보면,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간 계속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이 이미 각 6조 원, 5조 4천억 원 불어난 데 이어, 8월 증가 폭은 더 커졌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50년 만기 막히기 전에’…농협에서만 5영업일 주담대 5천억 원↑

8월 가계대출 급증에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논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입니다.

우선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7월 말 8,657억 원에서 ▲지난달 24일 2조 8,867억 원으로 2조 원 넘게 불었습니다.

여기에 이례적으로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단 5 영업일(8월 25∼31일) 만에 513조 3,716억 원에서 514조 9,997억 원으로 1조 6,281억 원 급증했는데, 상당 부분이 50년 만기 상품 대출로 추정됩니다.

지난달 10일 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최근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한 뒤, 은행권은 스스로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이하’ 등 연령 제한을 두거나 아예 잠정적 판매 중단 방침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같은 달 하순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준 조정에 따른 50년 만기 상품의 실제 한도 축소가 임박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주택담보대출 수요까지 몰리게 된 겁니다.

이달 말까지만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겠다고 예고한 NH농협에서 지난달 25∼31일 주택담보대출이 5,082억 원이나 폭증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 개별은행 연체율 등 건전성지표 2∼3년내 ‘최악’

이처럼 가계대출이 빠르게 다시 늘어나는 가운데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까지 계속 나빠지면서, 부실 위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5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31%(가계대출 0.28%·기업대출 0.34%)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한 달 전 6월 말의 0.29%(0.26%·0.31%)보다 0.02%포인트(p) 높아진 수치입니다.

고정이하여신(NPL)비율도 한 달 사이 평균 0.25%에서 0.29%로 0.04%p 상승했습니다.

각 은행이 건전성 지표 관리 차원에서 6월 말 부실 채권을 집중적으로 상·매각을 통해 털어내면서 잠시 주춤했던 연체율 등의 오름세가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입니다.

앞선 수년과 비교하면 5대 은행의 건전성 악화는 더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7월 말 5대 은행 평균 연체율과 NPL 비율은 각 0.18%, 0.23%로 올해 같은 시점보다 각 0.13%p, 0.06%p 낮았습니다.

새로운 부실 채권 증감 추이가 드러나는 신규 연체율(해당하는 달 신규 연체 발생액/전월 말 대출 잔액)도 7월 말 0.08%로 1년 전(0.04%)보다 0.04%p 오른 상태인데, 불과 1년 새 지표가 거의 두 배로 뛴 셈입니다.

더구나 개별은행의 내부 시계열을 보면, A 은행의 7월 말 전체 대출(가계+기업) 연체율(0.27%)과 기업 연체율(0.26%)은 모두 지난 2019년 11월(0.33%·0.32%) 이후 2년 8개월 내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B 은행의 7월 말 전체 대출 신규 연체율(0.09%)도 2019년 7월(0.10%) 이후 3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고, C 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비율(0.33%)은 2021년 6월(0.40%) 이후 2년 1개월 내 기록입니다.

■ 한은 “대출 규제 먼저”·당국 “50년만기 한도 축소”…회의론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가계부채가 연착륙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규제 등 미시적 정책이 먼저고, 그다음이 거시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거시정책을 쓸)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가계대출이 너무 많이 늘어나면 기준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지만, 경기 위축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한은으로서는 쉽게 인상을 결정하기 어려운 입장입니다.

따라서 일단 문제 해결 주도권을 금융 당국에 넘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실제로 당국은 지난달 은행권 등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인터넷은행의 공격적 주택담보대출 영업 등을 가계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해결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논의 결과로서 50년 만기 상품을 40년 만에 갚는 것으로 가정하는 새로운 DSR 산정 방식이 이르면 이번 주부터 모든 은행에서 시행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50년 만기 상품 관련 억제책만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습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50년 만기 상품 수요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라며 “주택담보대출 급증의 더 근본적 원인은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상한 완화, 부동산규제지역 해제,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지정 해제, 특례보금자리론 도입 등 부동산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라고 지적했습니다.

은행권에선 당국이 8월 가계대출 지표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가계대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50년 만기 DSR 산정 기준 변경 외 다른 규제가 추가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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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9-03 15: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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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 등 부채 줄이기 정책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규제 도입 과정에서 오히려 ‘막차 탑승’을 노린 가계대출 대기 수요가 몰린 겁니다.

8월 주담대 2.1조↑…8개월 만에 2조 원대 증가

오늘(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0조 8,12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7월 말(679조 2,208억 원)과 비교해 한 달 만에 1조 5,912억 원 늘어난 규모입니다.

가계대출 잔액은 5월 이후 4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는데, 8월 증가 폭은 2021년 11월(2조 3,622억 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컸습니다.

특히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8월에만 2조 1,122억 원(512조 8,875억 원→514조 9,997억 원)이나 뛰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월별 증가액이 2조 원을 넘어선 것은 2022년 12월(2조 3,782억 원) 이래 8개월 만에 처음입니다.

이런 추세로 미뤄보면,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간 계속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이 이미 각 6조 원, 5조 4천억 원 불어난 데 이어, 8월 증가 폭은 더 커졌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50년 만기 막히기 전에’…농협에서만 5영업일 주담대 5천억 원↑

8월 가계대출 급증에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논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입니다.

우선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7월 말 8,657억 원에서 ▲지난달 24일 2조 8,867억 원으로 2조 원 넘게 불었습니다.

여기에 이례적으로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단 5 영업일(8월 25∼31일) 만에 513조 3,716억 원에서 514조 9,997억 원으로 1조 6,281억 원 급증했는데, 상당 부분이 50년 만기 상품 대출로 추정됩니다.

지난달 10일 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최근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한 뒤, 은행권은 스스로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이하’ 등 연령 제한을 두거나 아예 잠정적 판매 중단 방침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같은 달 하순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준 조정에 따른 50년 만기 상품의 실제 한도 축소가 임박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주택담보대출 수요까지 몰리게 된 겁니다.

이달 말까지만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겠다고 예고한 NH농협에서 지난달 25∼31일 주택담보대출이 5,082억 원이나 폭증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 개별은행 연체율 등 건전성지표 2∼3년내 ‘최악’

이처럼 가계대출이 빠르게 다시 늘어나는 가운데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까지 계속 나빠지면서, 부실 위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5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31%(가계대출 0.28%·기업대출 0.34%)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한 달 전 6월 말의 0.29%(0.26%·0.31%)보다 0.02%포인트(p) 높아진 수치입니다.

고정이하여신(NPL)비율도 한 달 사이 평균 0.25%에서 0.29%로 0.04%p 상승했습니다.

각 은행이 건전성 지표 관리 차원에서 6월 말 부실 채권을 집중적으로 상·매각을 통해 털어내면서 잠시 주춤했던 연체율 등의 오름세가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입니다.

앞선 수년과 비교하면 5대 은행의 건전성 악화는 더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7월 말 5대 은행 평균 연체율과 NPL 비율은 각 0.18%, 0.23%로 올해 같은 시점보다 각 0.13%p, 0.06%p 낮았습니다.

새로운 부실 채권 증감 추이가 드러나는 신규 연체율(해당하는 달 신규 연체 발생액/전월 말 대출 잔액)도 7월 말 0.08%로 1년 전(0.04%)보다 0.04%p 오른 상태인데, 불과 1년 새 지표가 거의 두 배로 뛴 셈입니다.

더구나 개별은행의 내부 시계열을 보면, A 은행의 7월 말 전체 대출(가계+기업) 연체율(0.27%)과 기업 연체율(0.26%)은 모두 지난 2019년 11월(0.33%·0.32%) 이후 2년 8개월 내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B 은행의 7월 말 전체 대출 신규 연체율(0.09%)도 2019년 7월(0.10%) 이후 3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고, C 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비율(0.33%)은 2021년 6월(0.40%) 이후 2년 1개월 내 기록입니다.

■ 한은 “대출 규제 먼저”·당국 “50년만기 한도 축소”…회의론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가계부채가 연착륙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규제 등 미시적 정책이 먼저고, 그다음이 거시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거시정책을 쓸)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가계대출이 너무 많이 늘어나면 기준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지만, 경기 위축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한은으로서는 쉽게 인상을 결정하기 어려운 입장입니다.

따라서 일단 문제 해결 주도권을 금융 당국에 넘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실제로 당국은 지난달 은행권 등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인터넷은행의 공격적 주택담보대출 영업 등을 가계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해결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논의 결과로서 50년 만기 상품을 40년 만에 갚는 것으로 가정하는 새로운 DSR 산정 방식이 이르면 이번 주부터 모든 은행에서 시행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50년 만기 상품 관련 억제책만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습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50년 만기 상품 수요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라며 “주택담보대출 급증의 더 근본적 원인은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상한 완화, 부동산규제지역 해제,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지정 해제, 특례보금자리론 도입 등 부동산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라고 지적했습니다.

은행권에선 당국이 8월 가계대출 지표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가계대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50년 만기 DSR 산정 기준 변경 외 다른 규제가 추가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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