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도 전학도 무용지물…멈추지 않는 무차별 학교 폭력

입력 2023.09.0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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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이 보일 정도로 움푹 파인 입술. 얼굴은 퉁퉁 부어 온통 시퍼런 멍투성입니다.

'흉터는 영구히 추상으로 남을 것', '치아 괴사가 의심되어 추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의사가 작성한 진단서에는 당시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제주의 한 중학생이 무차별 폭행을 당한 건 지난달 27일. 친구의 연락을 받고 불려 나갔다가 한 살 위 선배 중학생에게 마구 폭행당한 겁니다.


피해자는 제주시 노형동의 한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놀이터까지 200여m를 질질 끌려다니며 폭행당했습니다.

"가자마자 머리 때리고 뒤통수를 때리고. 머리를 잡고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다 중간에 놓고 뺨을 맞았는데 안경이 날아가고. 귀에서 삐 소리 나고…"

무릎을 꿇고 빌어도 봤지만, 폭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이어서 주변의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놀이터로 가자마자 안경을 벗으라는 거예요. 잘못했다고,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잘못했다고 하고. 안경을 벗으니까 명치를 주먹으로 때리고 갑자기 오른손으로 턱을 때려서 입술이 터지고. 니킥(무릎 차기)으로 머리랑 배랑 같이 때려서 코피 터지고…아 진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피가 철철 흐르고 나서야 가해자들은 폭행은 멈췄습니다.

폭행을 저지른 A 군과 현장에 있던 또 다른 중학생 B 군은 물로 피해자를 씻기고, 피 묻은 옷을 벗겨 인근에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SNS 메시지를 보내 '자전거 타다 다쳤다'고 하라, '맞은 건 어떻게 들켰냐'며 입막음까지 시도했습니다.

가해 학생이 피해자에게 보낸 SNS 메시지가해 학생이 피해자에게 보낸 SNS 메시지

피해자의 어머니는 뒤늦게 응급실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있는 사이 가해자가 아들에게 SNS 메시지를 보낸 걸 알게 됐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피해자 어머니는 폭행 이후 가해자들의 태도에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삼촌이 가해자들에게 전화해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더니 '네네' 거리며 비웃었다. 정말 무서울 게 없는 아이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KBS 취재 결과, 폭행을 저지른 A 군은 KBS가 올해 초 보도한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가해 학생은 14명으로, 여학생 1명을 30분 넘게 공원과 아파트 주차장을 오가며 폭행했습니다.

A 군은 당시에도 폭행에 가담해 전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또 A 군과 B 군은 지난 5월 KBS가 보도했던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중학생 학폭 사건의 가해자들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이들은 또 다른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때리고, 한 피해자를 엎드려뻗쳐 시킨 뒤 코를 막고 담배를 물리는 등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저지르고 돈을 갈취했습니다.

여기에 B 군은 지난달 중순 제주시 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SNS로 접근해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학교로 찾아가겠다고 협박하는 등 130여만 원 상당을 갈취한 혐의로 또다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두 가해자 모두 강제 전학 처분을 받고, 재판을 받는 와중에 또다시 폭행을 저지른 겁니다.

재판도, 교육 당국의 조치도 이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피해자의 변호인인 김수진 변호사(법무법인 현)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피해 학생에게 보호 조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전 피해 사례를 보면 여전히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불려 나가고 있다"며 "합의를 종용하거나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요한 건 가해 학생이 계속해서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라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면 피해 학생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제주서부경찰서와 제주동부경찰서는 피해자 진술 등을 토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교육 당국도 진상 조사를 통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 예정입니다.

현재 피해자는 학교에 제대로 출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학교를 옮겨야만 했고, 또 다른 피해자의 어머니는 아예 일을 그만두고 아들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밖으로 못 나가겠어요…"

이번 학폭 사건의 피해자가 인터뷰 말미에 취재진에게 건넨 말입니다.

가해자들이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나서는 문 밖을, 피해자는 두려움에 떨며 서성이고 있습니다.

<제주지역 학교폭력 실태 연속보도>
1. 남학생까지 가세해 여중생 집단폭행…“엄벌 호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06458
2. 지속적인 폭행…피해자는 결국 학교 떠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5792
3. 숨 못 쉬게 코 막고 담배 물려…제대로 된 사과도 못 받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6850
4. 늦춰지는 강제 전학…계속된 폭행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7905
5.“피 빠져 나가는 것 같아요”…피해 학생 상담 막막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892
6. 학교전담경찰관은 뭐하나…“법제화·협력 절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1347
7. 심각해진 학교폭력…“피해자 전담 기관 필요” 한목소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99583
8. 재판도 전학 처분도 무용지물…멈추지 않는 무차별 학교 폭력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6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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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도 전학도 무용지물…멈추지 않는 무차별 학교 폭력
    • 입력 2023-09-07 12:19:22
    심층K

속살이 보일 정도로 움푹 파인 입술. 얼굴은 퉁퉁 부어 온통 시퍼런 멍투성입니다.

'흉터는 영구히 추상으로 남을 것', '치아 괴사가 의심되어 추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의사가 작성한 진단서에는 당시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제주의 한 중학생이 무차별 폭행을 당한 건 지난달 27일. 친구의 연락을 받고 불려 나갔다가 한 살 위 선배 중학생에게 마구 폭행당한 겁니다.


피해자는 제주시 노형동의 한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놀이터까지 200여m를 질질 끌려다니며 폭행당했습니다.

"가자마자 머리 때리고 뒤통수를 때리고. 머리를 잡고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다 중간에 놓고 뺨을 맞았는데 안경이 날아가고. 귀에서 삐 소리 나고…"

무릎을 꿇고 빌어도 봤지만, 폭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이어서 주변의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놀이터로 가자마자 안경을 벗으라는 거예요. 잘못했다고,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잘못했다고 하고. 안경을 벗으니까 명치를 주먹으로 때리고 갑자기 오른손으로 턱을 때려서 입술이 터지고. 니킥(무릎 차기)으로 머리랑 배랑 같이 때려서 코피 터지고…아 진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피가 철철 흐르고 나서야 가해자들은 폭행은 멈췄습니다.

폭행을 저지른 A 군과 현장에 있던 또 다른 중학생 B 군은 물로 피해자를 씻기고, 피 묻은 옷을 벗겨 인근에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SNS 메시지를 보내 '자전거 타다 다쳤다'고 하라, '맞은 건 어떻게 들켰냐'며 입막음까지 시도했습니다.

가해 학생이 피해자에게 보낸 SNS 메시지
피해자의 어머니는 뒤늦게 응급실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있는 사이 가해자가 아들에게 SNS 메시지를 보낸 걸 알게 됐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피해자 어머니는 폭행 이후 가해자들의 태도에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삼촌이 가해자들에게 전화해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더니 '네네' 거리며 비웃었다. 정말 무서울 게 없는 아이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KBS 취재 결과, 폭행을 저지른 A 군은 KBS가 올해 초 보도한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가해 학생은 14명으로, 여학생 1명을 30분 넘게 공원과 아파트 주차장을 오가며 폭행했습니다.

A 군은 당시에도 폭행에 가담해 전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또 A 군과 B 군은 지난 5월 KBS가 보도했던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중학생 학폭 사건의 가해자들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이들은 또 다른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때리고, 한 피해자를 엎드려뻗쳐 시킨 뒤 코를 막고 담배를 물리는 등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저지르고 돈을 갈취했습니다.

여기에 B 군은 지난달 중순 제주시 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SNS로 접근해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학교로 찾아가겠다고 협박하는 등 130여만 원 상당을 갈취한 혐의로 또다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두 가해자 모두 강제 전학 처분을 받고, 재판을 받는 와중에 또다시 폭행을 저지른 겁니다.

재판도, 교육 당국의 조치도 이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피해자의 변호인인 김수진 변호사(법무법인 현)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피해 학생에게 보호 조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전 피해 사례를 보면 여전히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불려 나가고 있다"며 "합의를 종용하거나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중요한 건 가해 학생이 계속해서 학교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라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면 피해 학생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제주서부경찰서와 제주동부경찰서는 피해자 진술 등을 토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교육 당국도 진상 조사를 통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 예정입니다.

현재 피해자는 학교에 제대로 출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학교를 옮겨야만 했고, 또 다른 피해자의 어머니는 아예 일을 그만두고 아들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밖으로 못 나가겠어요…"

이번 학폭 사건의 피해자가 인터뷰 말미에 취재진에게 건넨 말입니다.

가해자들이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나서는 문 밖을, 피해자는 두려움에 떨며 서성이고 있습니다.

<제주지역 학교폭력 실태 연속보도>
1. 남학생까지 가세해 여중생 집단폭행…“엄벌 호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06458
2. 지속적인 폭행…피해자는 결국 학교 떠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5792
3. 숨 못 쉬게 코 막고 담배 물려…제대로 된 사과도 못 받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6850
4. 늦춰지는 강제 전학…계속된 폭행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7905
5.“피 빠져 나가는 것 같아요”…피해 학생 상담 막막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7892
6. 학교전담경찰관은 뭐하나…“법제화·협력 절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1347
7. 심각해진 학교폭력…“피해자 전담 기관 필요” 한목소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99583
8. 재판도 전학 처분도 무용지물…멈추지 않는 무차별 학교 폭력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6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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