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후보자 딸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23.09.08 (06:00) 수정 2023.09.0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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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장녀는 전업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국내 유수의 콩쿨에서 우승하기도 한 재원입니다.

후보자의 장녀가 쓰는 악기는 '프란체스코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유명 현악기인데요, 이 첼로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현악기 제조 가문 스트라디바리 가문이 제작한 악기입니다.

2012년에는 이 가문이 제작한 다른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가 경매에서 우리 돈 80억 원 가까운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KBS가 입수한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첨부서류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의 재산 목록에 장녀가 사용 중인 첼로 관련 내역을 한 번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왜였을까요.

■ '무상 대여' 자산, 재산등록 대상 아냐

KBS는 후보자 가족의 재산공개 내역에 장녀의 첼로 등 악기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이유를 이 후보자에게 물었습니다. 또, 프란체스코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의 추정 가격은 얼마인지, 장녀가 지금도 해당 첼로를 보유하고 있는지도 함께 질의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후보자의 딸은 세계적으로 실력과 명성을 갖춘 음악가에게 악기를 대여해주는 외국 기관으로부터 첼로를 무상 대여받아 사용한 바 있다"며, 장녀가 첼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정상급 연주자들이 후원자로부터 고가의 악기를 대여받는 일은 일반적입니다. 이 후보자의 딸은 미국 5대 관현악단으로 꼽히는 보스턴심포니의 첫 아시아 여성 단원이고,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와 플로브디프 콩쿠르 등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당연히 이 후보자의 딸이 고가 악기를 무상 대여받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이 첼로가 재산 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이 후보자 측은 " 재산을 무상 대여받는 경우에는 그 반환채무가 재산등록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후보자는 이에 대하여 별도의 재산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장녀가 약 20년간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다른 첼로가 있으나, 이는 고가의 첼로가 아닌 데다 그 가액을 정확히 특정하기도 어렵다"며 "공직자윤리법은 등록의무자가 재산신고 시 등록해야 하는 재산 종류를 특정하고 있는데, 기술장비, 가방, 악기, 의류 등은 등록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후보자의 딸이 보유하는 첼로를 재산 등록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후보자의 딸이 외국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어, 필요한 부분은 추후 청문 과정에서 해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딸이 무상 대여받은 첼로의 추정 가격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고, 현재 보유 중인지 여부도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직자 또는 그 가족이 무상 대여한 자산의 경우, 고가라도 재산공개 대상엔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딸이 무상 대여받은 첼로를 재산등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 후보자의 해명은 인사혁신처의 설명과도 부합합니다.

자료사진 이미지자료사진 이미지

■ 인사혁신처 "무상 대여는 재산공개 대상 아냐"…시민단체 "등록해야"

하지만 시민단체는 누군가에게서 물건을 빌리면, 당연히 물건을 돌려줄 채무가 생긴다며, 무상 대여 자산의 경우라도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물건을 돌려줄 채무'는 재산공개 대상 항목인 '사인간(아는 사람끼리의) 채무'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정지웅 변호사(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는 "공직자 및 그 가족에게 고가의 물건을 쓰라고 빌려주는 건 민법상 '사용대차'에 해당하는데, 이는 채권자와 채무자, 기간이 있는 계약의 일종"이라며, "예컨대 공무원에게 초고가 슈퍼카를 '무상으로' 빌려줬다고 치면, 당연히 주인은 슈퍼카를 돌려받을 것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은 그 차량의 가액만큼의 채무를 지게 되고, '사인간 채무'로 재산 등록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고위공직자나 그 가족이 초고가의 자산을 타인으로부터 '무상 대여' 명목으로 후원받기만 하면 그 자산의 가액이나 대여 기간 일체를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재산 등록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인데, 사실상 공직자 자신의 재산처럼 보유하면서도 감시를 받지 않게 되는 사각지대가 생긴단 겁니다.

인사혁신처의 재산공개 실무지침에 따르면, 합계 1천만 원 이상의 사인 간 채무는 신고 대상입니다.

인사혁신처는 "자산을 빌려왔다면 이를 돌려줄 '반환채무'가 생기는 건 맞다"면서도, "무상 대여한 자산까지 등록해야 한다면 관리가 불필요한 다양한 대여 물품까지 등록시키게 돼 공직자윤리법상 당초 재산등록의 대상이 되는 재산의 개념과도 맞지 않고, 한정된 자원과 시간으로 재산등록을 관리해야 하는데 재산등록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정확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들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물건을 반환할 채무는 따로 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등이 규율할 문제고, 인사혁신처는 재산 공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단 설명입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무상 대여 자산 관련해서는 법률상 기준이 없어 재산 공개에 미비점이 있다"면서 "공직자윤리법 개정 전까지 규제되지 않았던 '가상 자산'과 같은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알고 보니 재산공개 대상에 '무상 대여' 자산을 제외하는 게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산 공개 당시,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나토(NATO) 순방에서 착용한 고가 장신구들이 등록재산에 포함돼 있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2점은 지인에게 (무상) 대여한 것이고, 1점은 소상공인에게 구입한 제품으로 (품목당 500만 원 이하의 보석류라서) 재산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 '악기' 등록한 고위 공직자 여럿

다만 KBS가 살펴본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등 재산 내역 등에는, 배우자나 자녀가 소유한 악기를 재산 신고한 고위 공직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2022년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을 보면 박진 외교부 장관은 배우자 소유 7천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신고했습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 하프업체 라이온앤힐리가 제작한 하프 세 개 7천만 원 상당을 배우자 소유로 신고했고,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도 장녀 명의의 1,500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신고했습니다.

인사혁신처의 재산신고 안내에 따르면, 악기와 같은 예술품의 경우 품목당 가액이 5백만 원 이상인 경우 신고 의무가 생기고, 품명이나 크기, 제작연대 등 작품 세부정보를 적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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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9-08 08: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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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장녀는 전업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국내 유수의 콩쿨에서 우승하기도 한 재원입니다.

후보자의 장녀가 쓰는 악기는 '프란체스코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유명 현악기인데요, 이 첼로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현악기 제조 가문 스트라디바리 가문이 제작한 악기입니다.

2012년에는 이 가문이 제작한 다른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가 경매에서 우리 돈 80억 원 가까운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KBS가 입수한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첨부서류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의 재산 목록에 장녀가 사용 중인 첼로 관련 내역을 한 번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왜였을까요.

■ '무상 대여' 자산, 재산등록 대상 아냐

KBS는 후보자 가족의 재산공개 내역에 장녀의 첼로 등 악기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이유를 이 후보자에게 물었습니다. 또, 프란체스코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의 추정 가격은 얼마인지, 장녀가 지금도 해당 첼로를 보유하고 있는지도 함께 질의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후보자의 딸은 세계적으로 실력과 명성을 갖춘 음악가에게 악기를 대여해주는 외국 기관으로부터 첼로를 무상 대여받아 사용한 바 있다"며, 장녀가 첼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정상급 연주자들이 후원자로부터 고가의 악기를 대여받는 일은 일반적입니다. 이 후보자의 딸은 미국 5대 관현악단으로 꼽히는 보스턴심포니의 첫 아시아 여성 단원이고,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와 플로브디프 콩쿠르 등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당연히 이 후보자의 딸이 고가 악기를 무상 대여받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이 첼로가 재산 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이 후보자 측은 " 재산을 무상 대여받는 경우에는 그 반환채무가 재산등록 대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후보자는 이에 대하여 별도의 재산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장녀가 약 20년간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다른 첼로가 있으나, 이는 고가의 첼로가 아닌 데다 그 가액을 정확히 특정하기도 어렵다"며 "공직자윤리법은 등록의무자가 재산신고 시 등록해야 하는 재산 종류를 특정하고 있는데, 기술장비, 가방, 악기, 의류 등은 등록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후보자의 딸이 보유하는 첼로를 재산 등록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후보자의 딸이 외국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어, 필요한 부분은 추후 청문 과정에서 해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딸이 무상 대여받은 첼로의 추정 가격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고, 현재 보유 중인지 여부도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직자 또는 그 가족이 무상 대여한 자산의 경우, 고가라도 재산공개 대상엔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딸이 무상 대여받은 첼로를 재산등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 후보자의 해명은 인사혁신처의 설명과도 부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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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혁신처 "무상 대여는 재산공개 대상 아냐"…시민단체 "등록해야"

하지만 시민단체는 누군가에게서 물건을 빌리면, 당연히 물건을 돌려줄 채무가 생긴다며, 무상 대여 자산의 경우라도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물건을 돌려줄 채무'는 재산공개 대상 항목인 '사인간(아는 사람끼리의) 채무'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정지웅 변호사(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는 "공직자 및 그 가족에게 고가의 물건을 쓰라고 빌려주는 건 민법상 '사용대차'에 해당하는데, 이는 채권자와 채무자, 기간이 있는 계약의 일종"이라며, "예컨대 공무원에게 초고가 슈퍼카를 '무상으로' 빌려줬다고 치면, 당연히 주인은 슈퍼카를 돌려받을 것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은 그 차량의 가액만큼의 채무를 지게 되고, '사인간 채무'로 재산 등록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고위공직자나 그 가족이 초고가의 자산을 타인으로부터 '무상 대여' 명목으로 후원받기만 하면 그 자산의 가액이나 대여 기간 일체를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재산 등록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인데, 사실상 공직자 자신의 재산처럼 보유하면서도 감시를 받지 않게 되는 사각지대가 생긴단 겁니다.

인사혁신처의 재산공개 실무지침에 따르면, 합계 1천만 원 이상의 사인 간 채무는 신고 대상입니다.

인사혁신처는 "자산을 빌려왔다면 이를 돌려줄 '반환채무'가 생기는 건 맞다"면서도, "무상 대여한 자산까지 등록해야 한다면 관리가 불필요한 다양한 대여 물품까지 등록시키게 돼 공직자윤리법상 당초 재산등록의 대상이 되는 재산의 개념과도 맞지 않고, 한정된 자원과 시간으로 재산등록을 관리해야 하는데 재산등록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정확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들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물건을 반환할 채무는 따로 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등이 규율할 문제고, 인사혁신처는 재산 공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단 설명입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무상 대여 자산 관련해서는 법률상 기준이 없어 재산 공개에 미비점이 있다"면서 "공직자윤리법 개정 전까지 규제되지 않았던 '가상 자산'과 같은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알고 보니 재산공개 대상에 '무상 대여' 자산을 제외하는 게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산 공개 당시,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나토(NATO) 순방에서 착용한 고가 장신구들이 등록재산에 포함돼 있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2점은 지인에게 (무상) 대여한 것이고, 1점은 소상공인에게 구입한 제품으로 (품목당 500만 원 이하의 보석류라서) 재산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 '악기' 등록한 고위 공직자 여럿

다만 KBS가 살펴본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등 재산 내역 등에는, 배우자나 자녀가 소유한 악기를 재산 신고한 고위 공직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2022년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을 보면 박진 외교부 장관은 배우자 소유 7천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신고했습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 하프업체 라이온앤힐리가 제작한 하프 세 개 7천만 원 상당을 배우자 소유로 신고했고,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도 장녀 명의의 1,500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신고했습니다.

인사혁신처의 재산신고 안내에 따르면, 악기와 같은 예술품의 경우 품목당 가액이 5백만 원 이상인 경우 신고 의무가 생기고, 품명이나 크기, 제작연대 등 작품 세부정보를 적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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