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카드를 3개월마다 교체?…여성·노인 울리는 블랙박스 회원제

입력 2023.09.12 (07: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운전자들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데 차량 정보에 취약한 여성과 노인을 대상으로 고가의 '블랙박스 회원제'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습니다.

■ 3배 넘는 돈 쓴 여성 "환불 요구하자 협박 문자"


제주에 사는 여성 A 씨는 지난달 말 블랙박스 수리를 위해 제주시 내 한 블랙박스 전문 업체에 들렀습니다.

당초 A 씨는 수리만 받으려고 했으나 업체 측이 "메인보드가 고장 나 기계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고, 특정 모델을 추천받아 교체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업체 측은 "방전을 막기 위해 보조배터리가 있어야 한다"며 "SD 메모리 카드도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해줘야 하는데 VIP 회원제에 가입하면 6년간 관리해줄 수 있다"고 권유했습니다.

결국, A 씨는 블랙박스에 보조배터리·6년 약정 서비스 회원제까지 가입해 모두 113만 7,600원을 결제했습니다. 매달 만 5,800원씩 72개월(6년)간 금액을 합산한 금액입니다.

VIP 회원제 서비스는 3개월마다 SD 메모리 카드 교체·와이퍼 관리·워셔액 충전·실내 소독 등을 해주는 상품이었습니다.

평균 30만 원 수준의 블랙박스를 교체하러 갔다가 얼떨결에 3배 넘는 돈을 쓴 A 씨는 이튿날 계약 철회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인터넷에 경험담을 올리자 돌아온 건 업체 측의 문자였습니다.

문자에는 "집에 찾아갈까요? 직장으로 찾아갈까요?" "X씨 성이 많지 않으니 금방 찾을 수 있다" "우리 X 먹였으니 똑같이 갚아주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업체 측은 회원신청 약정서를 통해 A 씨의 집 주소와 직장 주소 등 개인정보를 알고 있었습니다.

겁에 질린 A 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협박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취재진과 만난 A 씨는 "너무 불안해서 한 3일은 잠을 아예 못 잤다"며 "불안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고 토로했습니다.

A 씨는 이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블랙박스 회원제 피해가 많아서 '왜 이런 걸 속았나' 자책이 너무 컸다"며 "나처럼 잘 모르고 결제해버린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말고 소비자의 권리를 꼭 찾으시길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업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업체 측은 "모든 설명을 한 뒤 고객의 선택으로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면서 "이미 설치된 상품이기 때문에 환불은 당연히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에게 문자를 보낸 이유에 대해선 "다짜고짜 환불을 요청하면서 악의적인 글을 올렸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것이지 실제로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며 "경찰 조사에서 입장을 얘기하겠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 "아버지도 피해…전국적으로 주로 노인·여성 피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블랙박스 회원제 피해’ 게시글 갈무리.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블랙박스 회원제 피해’ 게시글 갈무리.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습니다.

제주에 사는 유진수 씨는 "3년 전 서울의 한 블랙박스 업체에서 아버지가 2백만 원 넘는 블랙박스 회원제에 가입했던 적 있다"면서 "업체 측에 환불을 요구하자 아버지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블랙박스 회원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유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보면 전국적으로 블랙박스 회원제로 피해를 당했다는 글들이 수두룩하다"며 "피해자들은 대부분 차량에 대해 잘 모르는 노인과 여성"이라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유 씨는 "환불을 받지 못한 피해자가 인터넷에 경험담을 올리자 집으로 찾아가 협박한 업체도 본 적 있다"면서 "대부분 전액 환불을 받지 못하는데, 외부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환불받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30년 넘게 서울에서 카 오디오와 블랙박스 취급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B 씨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최대 650만 원에 계약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B 씨에 따르면 SD 메모리 카드는 3개월마다 교체할 필요가 전혀 없고, 고장이 나더라도 2년 정도 무상 AS(사후관리)가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블랙박스도 2~3년간의 보증기간이 있기 때문에 장착한 지점에서 무상으로 AS를 받을 수 있습니다.

B 씨는 "일반 업체에서 약정서나 계약서를 쓰자고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며 "블랙박스를 판매할 때는 기곗값과 설치비만 받기 때문에 AS라는 말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달만 해도 저희가 상담해드린 피해가 20건이 넘는다"며 "동종 업체로서 더는 고객들을 기망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도 블랙박스 회원제 관련 상담 접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9년 173건 ▲2020년 119건 ▲2021년 132건 ▲2022년 87건 ▲2023년 50건(9월 기준)의 상담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확인한 뒤 설명을 듣고 계약을 진행했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최근 제주에서 피해를 본 A 씨의 계약 건과 관련해 소비자원은 "약정서에 상호명이 없고, 사본도 없는 점 등을 토대로 할부거래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관 기사] 블랙박스가 수백만 원?…‘여성·노인’ 회원제 판매 주의 [제보K]
https://news.kbs.co.kr/news/view2.do?ncd=7769285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SD카드를 3개월마다 교체?…여성·노인 울리는 블랙박스 회원제
    • 입력 2023-09-12 07:01:00
    심층K

운전자들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데 차량 정보에 취약한 여성과 노인을 대상으로 고가의 '블랙박스 회원제'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습니다.

■ 3배 넘는 돈 쓴 여성 "환불 요구하자 협박 문자"


제주에 사는 여성 A 씨는 지난달 말 블랙박스 수리를 위해 제주시 내 한 블랙박스 전문 업체에 들렀습니다.

당초 A 씨는 수리만 받으려고 했으나 업체 측이 "메인보드가 고장 나 기계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고, 특정 모델을 추천받아 교체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업체 측은 "방전을 막기 위해 보조배터리가 있어야 한다"며 "SD 메모리 카드도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해줘야 하는데 VIP 회원제에 가입하면 6년간 관리해줄 수 있다"고 권유했습니다.

결국, A 씨는 블랙박스에 보조배터리·6년 약정 서비스 회원제까지 가입해 모두 113만 7,600원을 결제했습니다. 매달 만 5,800원씩 72개월(6년)간 금액을 합산한 금액입니다.

VIP 회원제 서비스는 3개월마다 SD 메모리 카드 교체·와이퍼 관리·워셔액 충전·실내 소독 등을 해주는 상품이었습니다.

평균 30만 원 수준의 블랙박스를 교체하러 갔다가 얼떨결에 3배 넘는 돈을 쓴 A 씨는 이튿날 계약 철회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인터넷에 경험담을 올리자 돌아온 건 업체 측의 문자였습니다.

문자에는 "집에 찾아갈까요? 직장으로 찾아갈까요?" "X씨 성이 많지 않으니 금방 찾을 수 있다" "우리 X 먹였으니 똑같이 갚아주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업체 측은 회원신청 약정서를 통해 A 씨의 집 주소와 직장 주소 등 개인정보를 알고 있었습니다.

겁에 질린 A 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협박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취재진과 만난 A 씨는 "너무 불안해서 한 3일은 잠을 아예 못 잤다"며 "불안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고 토로했습니다.

A 씨는 이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블랙박스 회원제 피해가 많아서 '왜 이런 걸 속았나' 자책이 너무 컸다"며 "나처럼 잘 모르고 결제해버린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말고 소비자의 권리를 꼭 찾으시길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업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업체 측은 "모든 설명을 한 뒤 고객의 선택으로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면서 "이미 설치된 상품이기 때문에 환불은 당연히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에게 문자를 보낸 이유에 대해선 "다짜고짜 환불을 요청하면서 악의적인 글을 올렸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것이지 실제로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며 "경찰 조사에서 입장을 얘기하겠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 "아버지도 피해…전국적으로 주로 노인·여성 피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블랙박스 회원제 피해’ 게시글 갈무리.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습니다.

제주에 사는 유진수 씨는 "3년 전 서울의 한 블랙박스 업체에서 아버지가 2백만 원 넘는 블랙박스 회원제에 가입했던 적 있다"면서 "업체 측에 환불을 요구하자 아버지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블랙박스 회원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유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보면 전국적으로 블랙박스 회원제로 피해를 당했다는 글들이 수두룩하다"며 "피해자들은 대부분 차량에 대해 잘 모르는 노인과 여성"이라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유 씨는 "환불을 받지 못한 피해자가 인터넷에 경험담을 올리자 집으로 찾아가 협박한 업체도 본 적 있다"면서 "대부분 전액 환불을 받지 못하는데, 외부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환불받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30년 넘게 서울에서 카 오디오와 블랙박스 취급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B 씨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최대 650만 원에 계약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B 씨에 따르면 SD 메모리 카드는 3개월마다 교체할 필요가 전혀 없고, 고장이 나더라도 2년 정도 무상 AS(사후관리)가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블랙박스도 2~3년간의 보증기간이 있기 때문에 장착한 지점에서 무상으로 AS를 받을 수 있습니다.

B 씨는 "일반 업체에서 약정서나 계약서를 쓰자고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며 "블랙박스를 판매할 때는 기곗값과 설치비만 받기 때문에 AS라는 말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달만 해도 저희가 상담해드린 피해가 20건이 넘는다"며 "동종 업체로서 더는 고객들을 기망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도 블랙박스 회원제 관련 상담 접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9년 173건 ▲2020년 119건 ▲2021년 132건 ▲2022년 87건 ▲2023년 50건(9월 기준)의 상담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확인한 뒤 설명을 듣고 계약을 진행했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최근 제주에서 피해를 본 A 씨의 계약 건과 관련해 소비자원은 "약정서에 상호명이 없고, 사본도 없는 점 등을 토대로 할부거래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관 기사] 블랙박스가 수백만 원?…‘여성·노인’ 회원제 판매 주의 [제보K]
https://news.kbs.co.kr/news/view2.do?ncd=7769285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