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사건 1년’…끊이지 않는 스토킹 범죄

입력 2023.09.14 (21:32) 수정 2023.09.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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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년 전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전주환에게 살해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스토킹 처벌법이 강화됐고,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바뀐 게 있을까요?

올해 들어 112에 접수된 스토킹 신고는 한 달 평균 2천 7백여 건, 지난해 2천4백여 건보다 되레 늘었습니다.

올해 들어 스토킹 범죄로 경찰에 입건된 피의자 역시 한 달 평균 943명, 지난해 833명보다 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에는 출근하려던 여성이 자신을 스토킹해 온 전 남자친구에게 잔혹하게 살해됐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최민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7월 인천에서 자신을 스토킹하던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숨진 이은총 씨.

이 씨 유족이 신당역 사건 추모 공간을 찾았습니다.

[이은총 씨 사촌언니/음성변조 : "사실 저희는 그 추모 공간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어서... 동생한테도 인사하고 오는 것 같아서."]

이은총 씨 사건은 신당역 사건과 꼭 닮았습니다.

직장 동료였던 남성이 피해자의 법적 대응에 앙갚음하려고 범행했고 피해자는 경찰의 안전 조치가 종료된 후 살해당했습니다.

[이은총 씨 사촌언니/음성변조 : "(경찰이)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 반납을 해야 된다고... 스마트 워치를 반납을 하고 온 날이었어요."]

신당역 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 대책이 쏟아졌지만, 닮은 꼴 사건을 막지 못한 이유는 뭘까.

먼저 스마트워치 지급 건수는 크게 늘었지만, 전담 경찰은 소폭 늘어 빠른 대처가 불가능합니다.

[민고은/변호사/신당역 피해 유족 대리 : "피해자 보호 조치에 대한 내용들이 강화가 되었는데요. 인력을 마련할 수 있는 예산이 충분히 배정돼 있는지..."]

접근금지 제도가 있지만 어겨도 사후에야 형사처벌이 가능해 작심하고 흉기를 휘두르는 가해자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또 긴급 상황에 요청할 수 있는 유치장 일시구금은 법원에서 절반이 기각됐습니다.

[전윤정/국회 입법조사관 : "보호 조치라든가 이걸 법원을 통해서 받아야 되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공백이 나타나거나 이런 경우가 좀 많고..."]

제도만 만들게 아니라 실효성 있게 시행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관건인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신당역 사건과 이은총 씨 사건 유족들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한 목소리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올해 선고된 스토킹 단일 범죄 사건 중 가장 많은 게 집행유예(33%)와 공소기각(32%)이었고, 벌금형(27%)이 뒤를 이었습니다.

KBS 뉴스 최민영입니다.

촬영기자:권준용 홍성백 조창훈/영상편집:한효정/그래픽:노경일 서수민

[앵커]

보신 것 처럼 두 사건 모두 같은 회사를 다녔던 한 때 직장 동료가 스토킹 가해자가 됐습니다.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 특히 성폭력은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에 회사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피해를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어서 정해주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 모 씨는 입사 두 달도 안돼 지우고 싶은 경험을 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부적절한 접촉을 해온 겁니다.

[이OO/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음성변조 : "손이랑 이렇게 다리를 계속 번갈아 가면서 만졌어요. 제 목덜미 이렇게 끌어당기면서 입맞춤을 두 번..."]

고민 끝에 사측에 알렸지만, '재택 근무' 제안이 사실상 해결책의 전부였습니다.

가해자인 상사는 피해자의 자리를 한 칸 옆으로 옮기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씨는 결국 퇴사했습니다.

[이OO/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음성변조 : "조치를 해야될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퇴사 의사를 밝혔고."]

상사에게 성폭행 당할 뻔 했다고 회사에 신고한 대한항공 직원 A 씨.

사측은 징계위도 열지 않고 가해자를 조용히 퇴직 처리했습니다.

A 씨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1,2심 모두 이겼지만, 사측은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긴 소송전이 진행되는 동안, A 씨는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한항공 피해자/음성변조 : "제가 품행이 나쁜 직원으로 낙인이 찍혀서 (동료들이) 같이 어울리는 거 자체를 회사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하기 어렵고 사내 소문 등 2차 피해의 우려도 큽니다.

하지만 현행 스토킹 방지법에는 사업주가 근무 장소를 변경할 수 있다고만 돼있을 뿐, 의무 규정은 없습니다.

[최수영/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장 : "직장 내 성희롱이 우리 회사에서 발생하면 안된다는 회사의 의지가 있어야 되는데 개인의 일탈로 발생한 성희롱 사건으로 보고..."]

직장갑질 119 설문조사 결과,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260명 중 신고했다는 사람은 8명 뿐.

신고하지 않은 이유의 63%가량은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KBS 뉴스 정해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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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당역 사건 1년’…끊이지 않는 스토킹 범죄
    • 입력 2023-09-14 21:32:14
    • 수정2023-09-14 22:05:56
    뉴스 9
[앵커]

1년 전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전주환에게 살해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스토킹 처벌법이 강화됐고,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바뀐 게 있을까요?

올해 들어 112에 접수된 스토킹 신고는 한 달 평균 2천 7백여 건, 지난해 2천4백여 건보다 되레 늘었습니다.

올해 들어 스토킹 범죄로 경찰에 입건된 피의자 역시 한 달 평균 943명, 지난해 833명보다 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에는 출근하려던 여성이 자신을 스토킹해 온 전 남자친구에게 잔혹하게 살해됐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최민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7월 인천에서 자신을 스토킹하던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숨진 이은총 씨.

이 씨 유족이 신당역 사건 추모 공간을 찾았습니다.

[이은총 씨 사촌언니/음성변조 : "사실 저희는 그 추모 공간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어서... 동생한테도 인사하고 오는 것 같아서."]

이은총 씨 사건은 신당역 사건과 꼭 닮았습니다.

직장 동료였던 남성이 피해자의 법적 대응에 앙갚음하려고 범행했고 피해자는 경찰의 안전 조치가 종료된 후 살해당했습니다.

[이은총 씨 사촌언니/음성변조 : "(경찰이)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 반납을 해야 된다고... 스마트 워치를 반납을 하고 온 날이었어요."]

신당역 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 대책이 쏟아졌지만, 닮은 꼴 사건을 막지 못한 이유는 뭘까.

먼저 스마트워치 지급 건수는 크게 늘었지만, 전담 경찰은 소폭 늘어 빠른 대처가 불가능합니다.

[민고은/변호사/신당역 피해 유족 대리 : "피해자 보호 조치에 대한 내용들이 강화가 되었는데요. 인력을 마련할 수 있는 예산이 충분히 배정돼 있는지..."]

접근금지 제도가 있지만 어겨도 사후에야 형사처벌이 가능해 작심하고 흉기를 휘두르는 가해자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또 긴급 상황에 요청할 수 있는 유치장 일시구금은 법원에서 절반이 기각됐습니다.

[전윤정/국회 입법조사관 : "보호 조치라든가 이걸 법원을 통해서 받아야 되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공백이 나타나거나 이런 경우가 좀 많고..."]

제도만 만들게 아니라 실효성 있게 시행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관건인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신당역 사건과 이은총 씨 사건 유족들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한 목소리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올해 선고된 스토킹 단일 범죄 사건 중 가장 많은 게 집행유예(33%)와 공소기각(32%)이었고, 벌금형(27%)이 뒤를 이었습니다.

KBS 뉴스 최민영입니다.

촬영기자:권준용 홍성백 조창훈/영상편집:한효정/그래픽:노경일 서수민

[앵커]

보신 것 처럼 두 사건 모두 같은 회사를 다녔던 한 때 직장 동료가 스토킹 가해자가 됐습니다.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 특히 성폭력은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에 회사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피해를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어서 정해주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 모 씨는 입사 두 달도 안돼 지우고 싶은 경험을 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부적절한 접촉을 해온 겁니다.

[이OO/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음성변조 : "손이랑 이렇게 다리를 계속 번갈아 가면서 만졌어요. 제 목덜미 이렇게 끌어당기면서 입맞춤을 두 번..."]

고민 끝에 사측에 알렸지만, '재택 근무' 제안이 사실상 해결책의 전부였습니다.

가해자인 상사는 피해자의 자리를 한 칸 옆으로 옮기라고 제안했습니다.

이 씨는 결국 퇴사했습니다.

[이OO/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음성변조 : "조치를 해야될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퇴사 의사를 밝혔고."]

상사에게 성폭행 당할 뻔 했다고 회사에 신고한 대한항공 직원 A 씨.

사측은 징계위도 열지 않고 가해자를 조용히 퇴직 처리했습니다.

A 씨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1,2심 모두 이겼지만, 사측은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긴 소송전이 진행되는 동안, A 씨는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한항공 피해자/음성변조 : "제가 품행이 나쁜 직원으로 낙인이 찍혀서 (동료들이) 같이 어울리는 거 자체를 회사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하기 어렵고 사내 소문 등 2차 피해의 우려도 큽니다.

하지만 현행 스토킹 방지법에는 사업주가 근무 장소를 변경할 수 있다고만 돼있을 뿐, 의무 규정은 없습니다.

[최수영/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장 : "직장 내 성희롱이 우리 회사에서 발생하면 안된다는 회사의 의지가 있어야 되는데 개인의 일탈로 발생한 성희롱 사건으로 보고..."]

직장갑질 119 설문조사 결과,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260명 중 신고했다는 사람은 8명 뿐.

신고하지 않은 이유의 63%가량은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KBS 뉴스 정해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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