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잡는 자, 표심을 잡는다?…미 대선판에 ‘기름 붓기’ [세계엔]

입력 2023.09.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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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국제 유가 상승세가 무섭습니다. 브렌트유 기준으로 5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한 뒤 계속 오름세입니다. 이 기세대로면 100달러는 시간 문제란 관측이 나옵니다.
발단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입니다. 두 나라는 이미 원유 생산을 줄이고 있었는데, 이 조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다 잡혀가던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나쁜 소식인 건 당연하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행보에도 악재라는 말이 나옵니다.


■ 긴축 끝나나 했더니…고유가가 발목 잡나?

지난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배럴당 130달러 선을 뚫고 올랐던 유가는 올해 들어 겨우 안정세를 보여 왔습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기준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며 긴축을 한 결과입니다.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대로 안정되며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하지만 원유를 파는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상황이겠죠. 사우디와 러시아는 7월 원유 생산을 하루 130만 배럴(사우디 100만, 러시아 30만 배럴)씩 줄이기로 합의했고, 지난 5일 이 조치를 연장했습니다. 지난해 두 나라의 하루 평균 생산량과 비교하면 6% 가까이 생산량이 줄었습니다.

원유 공급 축소 → 유가 상승 → 인플레이션 재점화라는 우려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최근 미국의 물가 지표를 보면 이미 현실이 된 듯 합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7% 올랐습니다. 시장 예상보다도 높고, 전달(3.2%)과 비교해도 상승 폭이 가팔라졌습니다.

미 연준(Fed)의 금리 셈법은 또다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유가가 지금처럼 흔들리기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거의 끝났다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연준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이 쉽게 긴축을 풀기 어려울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연준은 오는 19일~20일(현지 시각)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다시 한번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합니다.

■ "공급 줄여도 쓸 여력 없어"

이런 우려 한편에선 유가 상승세가 지속 되기 힘들 거란 말도 나옵니다. 언뜻 다행이다 싶지만, 사실은 더 암울한 분석입니다. 원유 공급을 줄여도, 기름 소비 여력이 많지 않아 결국 가격이 내려갈 거란 예측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경제의 거대한 소비 시장,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 탓입니다.

지난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모습. 최근 중국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서자, 중국 당국은 취업률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지난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모습. 최근 중국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서자, 중국 당국은 취업률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올해 초 중국이 오랜 코로나19 봉쇄를 풀 때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기에 활력을 줄 거란 기대가 높았습니다. 지난 7월 국제에너지포럼(IEF) 사무총장은 "중국과 인도가 올 하반기, 하루 200만 배럴 정도의 원유 수요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죠. 하지만 중국 경제를 견인하던 부동산은 동력을 잃었고, 고용 시장도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중국 경기는 회복은커녕 침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선 상황입니다.

여기에 미국 등 서방이 사우디나 러시아가 아닌 '제3국'을 통해 추가 원유 공급처를 찾아 유가를 안정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어려웠던 이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풀거라는 겁니다. 최근 미국은 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의 에너지 판매 대금 70억 달러를 풀어줬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휘발유 값이 갤런당 5$를 넘을 때 주유기계 모습. 기름 값이 이렇게 높은 건 바이든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출처:아마존)지난해 미국에서 휘발유 값이 갤런당 5$를 넘을 때 주유기계 모습. 기름 값이 이렇게 높은 건 바이든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출처:아마존)

"유가, 바이든 재선 고삐 쥔다"

미 정부가 외교적 해법까지 동원해서 국제 유가를 잡을 것이란 분석은 내년 11월 대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기름값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국민 불만이 쌓이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바이드노믹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신의 경제 정책이 인플레이션도 잡고, 일자리도 늘렸다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바이드노믹스'가 효과를 낸다고 부각하던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이번 사우디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은 매우 민감한 시기에 나온 결정"(파이낸셜타임스)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서 유가가 고삐를 쥐고 있는"(블룸버그) 셈이란 말도 나오죠.

“채굴, 자기야, 채굴(Drill, baby, drill)”이란 문구와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출처:아마존)“채굴, 자기야, 채굴(Drill, baby, drill)”이란 문구와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출처:아마존)

야당인 공화당은 기름값을 이미 정치 쟁점화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5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채굴, 자기야, 채굴!(Drill, baby, drill!)"이란 표현을 썼죠. 바이든 정부가 기후 정책을 우선하느라 미국 내 석유를 채굴하지 않아서 결국 유가를 잡지 못한다는 거죠. 블룸버그는 "대통령이 유가를 통제하기 어려운데도 사람들은 유가 상승에 대해 백악관을 비난한다"며, "유가는 부동층 유권자를 잡는 데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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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을 잡는 자, 표심을 잡는다?…미 대선판에 ‘기름 붓기’ [세계엔]
    • 입력 2023-09-16 08:00:04
    주말엔
국제 유가 상승세가 무섭습니다. 브렌트유 기준으로 5일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한 뒤 계속 오름세입니다. 이 기세대로면 100달러는 시간 문제란 관측이 나옵니다.<br />발단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입니다. 두 나라는 이미 원유 생산을 줄이고 있었는데, 이 조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다 잡혀가던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나쁜 소식인 건 당연하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행보에도 악재라는 말이 나옵니다.

■ 긴축 끝나나 했더니…고유가가 발목 잡나?

지난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배럴당 130달러 선을 뚫고 올랐던 유가는 올해 들어 겨우 안정세를 보여 왔습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기준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며 긴축을 한 결과입니다.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대로 안정되며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하지만 원유를 파는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상황이겠죠. 사우디와 러시아는 7월 원유 생산을 하루 130만 배럴(사우디 100만, 러시아 30만 배럴)씩 줄이기로 합의했고, 지난 5일 이 조치를 연장했습니다. 지난해 두 나라의 하루 평균 생산량과 비교하면 6% 가까이 생산량이 줄었습니다.

원유 공급 축소 → 유가 상승 → 인플레이션 재점화라는 우려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최근 미국의 물가 지표를 보면 이미 현실이 된 듯 합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7% 올랐습니다. 시장 예상보다도 높고, 전달(3.2%)과 비교해도 상승 폭이 가팔라졌습니다.

미 연준(Fed)의 금리 셈법은 또다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유가가 지금처럼 흔들리기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거의 끝났다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연준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이 쉽게 긴축을 풀기 어려울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연준은 오는 19일~20일(현지 시각)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다시 한번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합니다.

■ "공급 줄여도 쓸 여력 없어"

이런 우려 한편에선 유가 상승세가 지속 되기 힘들 거란 말도 나옵니다. 언뜻 다행이다 싶지만, 사실은 더 암울한 분석입니다. 원유 공급을 줄여도, 기름 소비 여력이 많지 않아 결국 가격이 내려갈 거란 예측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경제의 거대한 소비 시장,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 탓입니다.

지난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모습. 최근 중국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서자, 중국 당국은 취업률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올해 초 중국이 오랜 코로나19 봉쇄를 풀 때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기에 활력을 줄 거란 기대가 높았습니다. 지난 7월 국제에너지포럼(IEF) 사무총장은 "중국과 인도가 올 하반기, 하루 200만 배럴 정도의 원유 수요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죠. 하지만 중국 경제를 견인하던 부동산은 동력을 잃었고, 고용 시장도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중국 경기는 회복은커녕 침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선 상황입니다.

여기에 미국 등 서방이 사우디나 러시아가 아닌 '제3국'을 통해 추가 원유 공급처를 찾아 유가를 안정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어려웠던 이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풀거라는 겁니다. 최근 미국은 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의 에너지 판매 대금 70억 달러를 풀어줬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휘발유 값이 갤런당 5$를 넘을 때 주유기계 모습. 기름 값이 이렇게 높은 건 바이든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출처:아마존)
"유가, 바이든 재선 고삐 쥔다"

미 정부가 외교적 해법까지 동원해서 국제 유가를 잡을 것이란 분석은 내년 11월 대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기름값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국민 불만이 쌓이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바이드노믹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신의 경제 정책이 인플레이션도 잡고, 일자리도 늘렸다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바이드노믹스'가 효과를 낸다고 부각하던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이번 사우디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은 매우 민감한 시기에 나온 결정"(파이낸셜타임스)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서 유가가 고삐를 쥐고 있는"(블룸버그) 셈이란 말도 나오죠.

“채굴, 자기야, 채굴(Drill, baby, drill)”이란 문구와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출처:아마존)
야당인 공화당은 기름값을 이미 정치 쟁점화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5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채굴, 자기야, 채굴!(Drill, baby, drill!)"이란 표현을 썼죠. 바이든 정부가 기후 정책을 우선하느라 미국 내 석유를 채굴하지 않아서 결국 유가를 잡지 못한다는 거죠. 블룸버그는 "대통령이 유가를 통제하기 어려운데도 사람들은 유가 상승에 대해 백악관을 비난한다"며, "유가는 부동층 유권자를 잡는 데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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