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불똥’ 피하나…협의 잘 된다지만

입력 2023.09.18 (18: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화웨이가 쏘아 올린 작은 폰…'불똥'은 SK로

화웨이가 내놓은 '메이트 60 프로'의 반향이 거셉니다. 중국의 '애국 소비' 열풍 속에 성룡까지 구매에 실패했다는 SNS 목격담이 돌 정도입니다.

이 와중에 놀란 곳은 SK하이닉스입니다. 메이트 60 프로를 뜯어보니 SK하이닉스의 첨단 LPDDR5 D램과 낸드플래시메모리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SK는 팔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흘러 들어간 것일까요?

지난해 10월 미국은 중국에 있는 외국 기업 반도체 공장으로의 첨단 반도체 제조 설비 수출을 통제했습니다.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관련 장비나 18나노 이하 D램 반도체 관련 장비는 중국에 있는 공장에 들여갈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1년 유예가 내려졌고 그 종료 시점이 다음 달입니다.

만약 유예가 안 된다면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공장 가동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됩니다. 메이트 60 프로에서 SK하이닉스의 반도체가 나온 것이 여기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까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 "협의는 굉장히 잘 되고 있어"

통상 당국의 한 관계자는 "연장될 예정이었던 대중 장비 수출 통제 유예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협의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고 막바지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화웨이 건과 (연장은) 별개라고 우리는 보고 있고 그 이전부터 연장 문제를 협의해왔기 때문에 이 두 개(화웨이와 연장)가 연계돼 문제 될 거 같지는 않다"면서 "협의는 굉장히 잘 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업계는 미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기업들에게 반도체 판매처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라 등 새로운 요구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합니다.


■ 갈 길 먼 화웨이 "우리 공정 뒤쳐졌다"

화웨이의 메이트60 프로는 첨단 스마트폰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위성통화 기능이 들어갔다지만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칩은 7나노급으로, 이 급의 AP칩은 이미 애플이 5년 전 아이폰XR에 도입했고 삼성도 4년 전 갤럭시 S10에 썼습니다.

스마트폰의 '속도' 측면 성능에 가장 영향이 큰 요소는 AP 칩의 싱글코어 속도입니다. 긱벤치 등 IT 제품 비교 측정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메이트60 프로의 AP 싱글 코어 속도는 2년 전 출시된 갤럭시S21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이 폰에 중국이 열광하고,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화제가 된 이유는 화웨이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봉쇄를 뚫고 7나노칩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웨이퍼를 장비에 여러 번 돌리는 '멀티 패터닝' 기법으로는 7나노급 이상의 첨단 제품 개발은 사실상 어렵고, 7나노급 칩의 생산 단가도 매우 높을 거로 보입니다. 마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의 주인공처럼, 시간과 공력을 다해 만들긴 했지만, 채산성이 과연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쉬즈쥔 화웨이 순환회장도 최근 한 행사장에서 "중국의 반도체 제조 공정이 뒤쳐져 있고, 이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중국 제일재경신문이 18일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미국의 대중 제재는 잘 먹히고 있는 걸까요? 미국 의원들은 중국이 미국산 칩 설계-검증 프로그램(EDA)를 몰래 썼을 거로 보고 있지만, 그런 우려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중국 반도체 개발을 봉쇄하고 있는 거로 보입니다.

■미국 기업의 반발이 규제 장벽에 틈새를 낼까?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매출의 막대한 부분을 중국에서 올리고 있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과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많습니다.


통신용 반도체와 스마트폰 AP를 만드는 미국회사 퀄컴은 지난해 60% 이상의 매출을 중국에서 올렸고 반도체의 전통적인 강호인 미국회사 TI 역시 매출 48%를 중국에서 거뒀습니다. 반도체 장비 회사인 AM 역시 28% 매출은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기업들의 반발과 동맹국들의 협력 지속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 연구위원은 "이미 상당한 손실을 경험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기업과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손실은 대중제재 지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텔과 엔비디아, 퀄컴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 경영진은 바이든 행정부를 만나 미국이 새 수출 통제를 추진하기 전에 업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잰슨 황 엔비디아 CEO나 팻 갤싱어 인텔 CEO도 수출 통제가 미국에 부정적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중국을 향한 반도체 규제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화웨이의 새 폰은 정치적인 효과 외의 무엇을 얻었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차라리 저성능의 범용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게 중국에 유리할거라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삼성과 SK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들의 반도체 공장이 몰려 있는 최대 제조공장입니다. 그리고 세계 반도체 수출량의 절반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시장이기도 합니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들의 반발을 미국 정부가 어떻게 무마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력과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과연 막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한국 반도체 ‘불똥’ 피하나…협의 잘 된다지만
    • 입력 2023-09-18 18:00:44
    심층K

■ 화웨이가 쏘아 올린 작은 폰…'불똥'은 SK로

화웨이가 내놓은 '메이트 60 프로'의 반향이 거셉니다. 중국의 '애국 소비' 열풍 속에 성룡까지 구매에 실패했다는 SNS 목격담이 돌 정도입니다.

이 와중에 놀란 곳은 SK하이닉스입니다. 메이트 60 프로를 뜯어보니 SK하이닉스의 첨단 LPDDR5 D램과 낸드플래시메모리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SK는 팔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흘러 들어간 것일까요?

지난해 10월 미국은 중국에 있는 외국 기업 반도체 공장으로의 첨단 반도체 제조 설비 수출을 통제했습니다.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관련 장비나 18나노 이하 D램 반도체 관련 장비는 중국에 있는 공장에 들여갈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1년 유예가 내려졌고 그 종료 시점이 다음 달입니다.

만약 유예가 안 된다면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공장 가동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됩니다. 메이트 60 프로에서 SK하이닉스의 반도체가 나온 것이 여기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까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 "협의는 굉장히 잘 되고 있어"

통상 당국의 한 관계자는 "연장될 예정이었던 대중 장비 수출 통제 유예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협의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고 막바지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화웨이 건과 (연장은) 별개라고 우리는 보고 있고 그 이전부터 연장 문제를 협의해왔기 때문에 이 두 개(화웨이와 연장)가 연계돼 문제 될 거 같지는 않다"면서 "협의는 굉장히 잘 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업계는 미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기업들에게 반도체 판매처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라 등 새로운 요구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합니다.


■ 갈 길 먼 화웨이 "우리 공정 뒤쳐졌다"

화웨이의 메이트60 프로는 첨단 스마트폰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위성통화 기능이 들어갔다지만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칩은 7나노급으로, 이 급의 AP칩은 이미 애플이 5년 전 아이폰XR에 도입했고 삼성도 4년 전 갤럭시 S10에 썼습니다.

스마트폰의 '속도' 측면 성능에 가장 영향이 큰 요소는 AP 칩의 싱글코어 속도입니다. 긱벤치 등 IT 제품 비교 측정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메이트60 프로의 AP 싱글 코어 속도는 2년 전 출시된 갤럭시S21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이 폰에 중국이 열광하고,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화제가 된 이유는 화웨이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봉쇄를 뚫고 7나노칩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웨이퍼를 장비에 여러 번 돌리는 '멀티 패터닝' 기법으로는 7나노급 이상의 첨단 제품 개발은 사실상 어렵고, 7나노급 칩의 생산 단가도 매우 높을 거로 보입니다. 마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의 주인공처럼, 시간과 공력을 다해 만들긴 했지만, 채산성이 과연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쉬즈쥔 화웨이 순환회장도 최근 한 행사장에서 "중국의 반도체 제조 공정이 뒤쳐져 있고, 이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중국 제일재경신문이 18일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미국의 대중 제재는 잘 먹히고 있는 걸까요? 미국 의원들은 중국이 미국산 칩 설계-검증 프로그램(EDA)를 몰래 썼을 거로 보고 있지만, 그런 우려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중국 반도체 개발을 봉쇄하고 있는 거로 보입니다.

■미국 기업의 반발이 규제 장벽에 틈새를 낼까?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매출의 막대한 부분을 중국에서 올리고 있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과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많습니다.


통신용 반도체와 스마트폰 AP를 만드는 미국회사 퀄컴은 지난해 60% 이상의 매출을 중국에서 올렸고 반도체의 전통적인 강호인 미국회사 TI 역시 매출 48%를 중국에서 거뒀습니다. 반도체 장비 회사인 AM 역시 28% 매출은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기업들의 반발과 동맹국들의 협력 지속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 연구위원은 "이미 상당한 손실을 경험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기업과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손실은 대중제재 지속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텔과 엔비디아, 퀄컴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 경영진은 바이든 행정부를 만나 미국이 새 수출 통제를 추진하기 전에 업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잰슨 황 엔비디아 CEO나 팻 갤싱어 인텔 CEO도 수출 통제가 미국에 부정적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중국을 향한 반도체 규제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화웨이의 새 폰은 정치적인 효과 외의 무엇을 얻었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차라리 저성능의 범용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게 중국에 유리할거라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삼성과 SK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들의 반도체 공장이 몰려 있는 최대 제조공장입니다. 그리고 세계 반도체 수출량의 절반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시장이기도 합니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들의 반발을 미국 정부가 어떻게 무마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력과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과연 막을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