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구하려다 병원비만 2천 3백만 원…‘범죄피해자보호기금’ 유명무실

입력 2023.09.1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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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대구시 북구의 한 원룸으로 귀가하던 20대 여성 A 씨,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던 그 순간.

갑자기 웬 괴한이 한 손에 흉기를 든 채 뒤따라 들어갑니다.

"(괴한이) 칼을 제 목 쪽에 갖다 대더니 '자기 인생 어차피 망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해라.' 이렇게 얘기를 했고, 저는 그런 상황을 처음 겪다 보니까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 A 씨

배달 기사인 척 위장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뒤따라 들어가 성폭행을 시도한 겁니다.

괴한은 저항하는 A 씨의 이마를 가격하고 몇 차례 밟는 등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때마침 A 씨의 남자친구인 B 씨도 도착해 비명 소리를 듣고 급히 원룸에 들어갔습니다.

B 씨는 괴한과 몸싸움을 벌였는데, 괴한은 B 씨의 목과 얼굴 등을 흉기로 몇 차례 찌른 뒤 달아났습니다.


괴한은 금방 붙잡혔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립니다.

A 씨는 양손을 크게 다쳤는데, 특히 왼손은 1년가량 재활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 심리적 트라우마도 크게 겪어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괴한에게서 급소를 찔린 B 씨는 상태가 더 심각합니다.


아들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B 씨의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곧 사망하니 가족들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 번이나 심정지가 왔고, 이틀에 걸쳐 20시간 넘게 수술해 겨우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 인지능력은 중학생 수준으로 떨어졌고, 재활치료는 얼마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병원비만 이미 2천3백만 원….

병원비도 큰 문제입니다.


B 씨는 넉 달간 입원했는데, 병원비와 간병비 등을 합쳐 2300만 원 가량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하는 재활치료와 흉터를 지우는 성형외과 수술까지 생각하면 추가로 들어갈 병원비만 2천만 원이 넘습니다.

이 같은 범죄피해자를 위해, 국가는 경제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헌법 30조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범죄피해구조금과 범죄피해자 경제적 지원제도입니다.

하지만 범죄피해구조금은 2020년 기준으로 인정된 것이 장해구조금 27건, 중상해 구조금 34건으로 총 61건뿐입니다. 그만큼,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급액도 장해구조금이 1건당 평균 3천198만 원, 중상해 구조금이 1천80만 원에 불과한데 대부분 평생 치료를 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려 사회 생활을 하기 어려운 피해자가 많다는 것에 비춰보면 충분하지 않은 금액입니다.

범죄피해자 경제적 지원제도는 심사를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요.

이마저도 연 1천500만 원에 5년간 총 5천만 원에 그칩니다.

B 씨의 아버지는 떼야 할 서류도 너무 많고, 지원도 부실하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사람이 적게 다쳤을 때는 1,500(만원)하면 돼요. (아들처럼) 심정지가 두 번 오고 이러면 아예 첫 병원비가 한 1,500만 원 가까이 나와버리는데…."
"다쳤으면 거기에만 집중하게 해주면 좋은데 행정하고 사람하고 이게 너무 안 맞아버리니까…."
- B 씨 아버지

최근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당정은 협의회를 열고 범죄피해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총액 5천만 원보다 더 지원하기 위해 경제적지원심의위원회 특별결의를 활성화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심의위원회가 열리고 결의가 진행될 때까지 일반적으로 1-2개월 가량 소요됩니다.

지금 당장 치료비가 필요한 이들에게 1~2달을 더 기다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운영비로 더 많이 쓰이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범죄피해자 경제적 지원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나옵니다.

2011년 도입됐는데, 납부된 벌금의 8%를 떼 내 보호기금으로 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보호기금 대부분은 운영비와 인건비 등 간접지원비로 쓰입니다.


올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약 1,133억 원 중 치료비 등 직접 지원비로 쓰인 건 25% 내외인 283억 원가량.

직접 지원비의 두 배에 가까운 543억 원가량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아동보호기관 등의 운영비로 쓰였습니다.

기금이 만들어지면서 아동학대, 여성 보호 등과 관련된 기관 운영비도 기금에서 사용하도록 정했기 때문입니다.

기금 부족 우려 등으로 그나마 아동학대 예산은 일반 예산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고정비용인 인건비와 운영비 대부분이 기금에서 사용된다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피해자 지원) 상한을 정해놓는다는 것 자체가 완벽한 원상회복이 아닌거죠.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는 것만 좀 기금으로 남겨서 운용하면…."
- 김지선/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치료비 지원 상한은 1년간 1천5백만 원, 총액 5천만 원.

인건비와 운영비로 대부분 사용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범죄피해자를 대하는 현실입니다.

■이제 남은 건 처벌뿐

괴한은 경찰에 붙잡혀 강간살인 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 전부터 관련 단어들을 검색하고 흉기를 미리 준비하는 등 범죄를 계획한 정황도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지난 7월부터 재판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첫 공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던 괴한은 얼마 전 열린 공판에서 갑자기 말을 뒤집습니다.

"살인 고의는 없었다"는 겁니다.

"판사님도 '사람을 그렇게 찔러놓고 살인 고의가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 A 씨

여느 평범한 날처럼, 집에서 함께 치킨을 시켜 먹으려고 했다는 한 커플.

갑자기 나타난 괴한 때문에 평화롭던 일상은 깨져버렸습니다.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피해자들,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그래픽: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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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친 구하려다 병원비만 2천 3백만 원…‘범죄피해자보호기금’ 유명무실
    • 입력 2023-09-19 14:36:38
    심층K
지난 5월, 대구시 북구의 한 원룸으로 귀가하던 20대 여성 A 씨,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던 그 순간.

갑자기 웬 괴한이 한 손에 흉기를 든 채 뒤따라 들어갑니다.

"(괴한이) 칼을 제 목 쪽에 갖다 대더니 '자기 인생 어차피 망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해라.' 이렇게 얘기를 했고, 저는 그런 상황을 처음 겪다 보니까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 A 씨

배달 기사인 척 위장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뒤따라 들어가 성폭행을 시도한 겁니다.

괴한은 저항하는 A 씨의 이마를 가격하고 몇 차례 밟는 등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때마침 A 씨의 남자친구인 B 씨도 도착해 비명 소리를 듣고 급히 원룸에 들어갔습니다.

B 씨는 괴한과 몸싸움을 벌였는데, 괴한은 B 씨의 목과 얼굴 등을 흉기로 몇 차례 찌른 뒤 달아났습니다.


괴한은 금방 붙잡혔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립니다.

A 씨는 양손을 크게 다쳤는데, 특히 왼손은 1년가량 재활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 심리적 트라우마도 크게 겪어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괴한에게서 급소를 찔린 B 씨는 상태가 더 심각합니다.


아들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B 씨의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곧 사망하니 가족들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 번이나 심정지가 왔고, 이틀에 걸쳐 20시간 넘게 수술해 겨우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 인지능력은 중학생 수준으로 떨어졌고, 재활치료는 얼마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병원비만 이미 2천3백만 원….

병원비도 큰 문제입니다.


B 씨는 넉 달간 입원했는데, 병원비와 간병비 등을 합쳐 2300만 원 가량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하는 재활치료와 흉터를 지우는 성형외과 수술까지 생각하면 추가로 들어갈 병원비만 2천만 원이 넘습니다.

이 같은 범죄피해자를 위해, 국가는 경제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헌법 30조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범죄피해구조금과 범죄피해자 경제적 지원제도입니다.

하지만 범죄피해구조금은 2020년 기준으로 인정된 것이 장해구조금 27건, 중상해 구조금 34건으로 총 61건뿐입니다. 그만큼,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급액도 장해구조금이 1건당 평균 3천198만 원, 중상해 구조금이 1천80만 원에 불과한데 대부분 평생 치료를 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려 사회 생활을 하기 어려운 피해자가 많다는 것에 비춰보면 충분하지 않은 금액입니다.

범죄피해자 경제적 지원제도는 심사를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요.

이마저도 연 1천500만 원에 5년간 총 5천만 원에 그칩니다.

B 씨의 아버지는 떼야 할 서류도 너무 많고, 지원도 부실하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사람이 적게 다쳤을 때는 1,500(만원)하면 돼요. (아들처럼) 심정지가 두 번 오고 이러면 아예 첫 병원비가 한 1,500만 원 가까이 나와버리는데…."
"다쳤으면 거기에만 집중하게 해주면 좋은데 행정하고 사람하고 이게 너무 안 맞아버리니까…."
- B 씨 아버지

최근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당정은 협의회를 열고 범죄피해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총액 5천만 원보다 더 지원하기 위해 경제적지원심의위원회 특별결의를 활성화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심의위원회가 열리고 결의가 진행될 때까지 일반적으로 1-2개월 가량 소요됩니다.

지금 당장 치료비가 필요한 이들에게 1~2달을 더 기다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운영비로 더 많이 쓰이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범죄피해자 경제적 지원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나옵니다.

2011년 도입됐는데, 납부된 벌금의 8%를 떼 내 보호기금으로 씁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보호기금 대부분은 운영비와 인건비 등 간접지원비로 쓰입니다.


올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약 1,133억 원 중 치료비 등 직접 지원비로 쓰인 건 25% 내외인 283억 원가량.

직접 지원비의 두 배에 가까운 543억 원가량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아동보호기관 등의 운영비로 쓰였습니다.

기금이 만들어지면서 아동학대, 여성 보호 등과 관련된 기관 운영비도 기금에서 사용하도록 정했기 때문입니다.

기금 부족 우려 등으로 그나마 아동학대 예산은 일반 예산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고정비용인 인건비와 운영비 대부분이 기금에서 사용된다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피해자 지원) 상한을 정해놓는다는 것 자체가 완벽한 원상회복이 아닌거죠.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는 것만 좀 기금으로 남겨서 운용하면…."
- 김지선/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치료비 지원 상한은 1년간 1천5백만 원, 총액 5천만 원.

인건비와 운영비로 대부분 사용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범죄피해자를 대하는 현실입니다.

■이제 남은 건 처벌뿐

괴한은 경찰에 붙잡혀 강간살인 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 전부터 관련 단어들을 검색하고 흉기를 미리 준비하는 등 범죄를 계획한 정황도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지난 7월부터 재판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첫 공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던 괴한은 얼마 전 열린 공판에서 갑자기 말을 뒤집습니다.

"살인 고의는 없었다"는 겁니다.

"판사님도 '사람을 그렇게 찔러놓고 살인 고의가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 A 씨

여느 평범한 날처럼, 집에서 함께 치킨을 시켜 먹으려고 했다는 한 커플.

갑자기 나타난 괴한 때문에 평화롭던 일상은 깨져버렸습니다.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피해자들,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그래픽: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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