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학생 내버려 두라”…‘35년 숙련 교사’도 감당 못해

입력 2023.09.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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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다솔그래픽/윤다솔

■ "북대전 IC. X"…'35년 숙련 교사'도 감당 어려워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대전의 한 초등교사 A씨의 '고통'을 간접 증명할
새로운 정황이 나왔습니다. 2019년 11월, A씨의 병가를 대신해 근무했던 기간제 교사 B씨의 증언입니다.

B씨는 교직에 35년이나 몸담은 '숙련자'로, 퇴직 전 5년 동안은 연달아 1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거쳐 간 학생만 어림잡아 천 명, 그런 B씨에게도 기간제로 맡은 해당 아이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B씨는 대전교사노조와의 대화에서 "교직 생활을 통틀어 이런 1학년은 처음 봤다"고 했습니다.
"1학년 학급 특유의 맑고 명랑한 분위기 대신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어 "문제가 되고 있는 4명의 아이가 너무 세 다른 아이들이 주눅이 들어있었다"고도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계속 복도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거나 친구를 괴롭혔다는 게 B씨의 증언입니다.

B씨는 특히 이 중 한 아이가 수업에 자주 빠지고, 입이 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수업 공백이 많고 가정 지도가 부족한 탓에 학업이 크게 쳐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은 이 아이에게 학습지도를 하다 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설명을 듣는 대신
B씨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반복적으로 욕설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욕을 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는 "'북대전 IC'를 계속 말한 것 뿐"이라고 둘러댔습니다.

■ 친구 괴롭혀 지도한 것 뿐인데…'악성 민원'에 사의

문제가 된 아이 중 하나는 짝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발로 계속 차고 잡아당기고,
꾸짖는 말을 했다는 게 B씨의 주장입니다. 발길질하지 말라며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이 아이가 짝의 손등을 심하게 꼬집어 짝인 여자 아이가 우는 일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B씨는 계속된 주의도 소용이 없자 아이를 따로 불러 1대1로 대화를 나눴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지만 교육 과정을 통해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오후 B씨는 관리자로부터 "학부모가 기분 나빠한다"는 얘기를 전달받았고, 더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져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습니다.

■ "문제 학생 내버려 두라"…교사 사인은 '사회적 죽음'

B씨는 기간제로 출근한 첫날, 학교 관리자를 포함한 부장급 고참 교사들이 '이상한' 말을 건넸다고 말합니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특히 한 아이는 뭘 해도 내버려 두라는 말이었습니다. '사회'의 첫 단추인 학교, 그 중에도 무려 1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말입니다.

이윤경 대전교사노조 위원장은 이를 두고 "대전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은 선생님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교권침해 사례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며, "35년 차 선생님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고통을 혼자 감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교권침해로부터 보호받을 장치가 없고, 선생님 혼자 싸우고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안타깝고 비통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수경 초등교사노조 위원장 역시 "이 사건은 선생님 개인의 일로 치부하면 안 된다"면서,
"교사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 보호 장치가 전혀 없었고, 이는 교육 현장이
선생님을 극단으로 몰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내일(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숨진 교사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더는 이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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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20 07: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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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다솔
■ "북대전 IC. X"…'35년 숙련 교사'도 감당 어려워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대전의 한 초등교사 A씨의 '고통'을 간접 증명할
새로운 정황이 나왔습니다. 2019년 11월, A씨의 병가를 대신해 근무했던 기간제 교사 B씨의 증언입니다.

B씨는 교직에 35년이나 몸담은 '숙련자'로, 퇴직 전 5년 동안은 연달아 1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거쳐 간 학생만 어림잡아 천 명, 그런 B씨에게도 기간제로 맡은 해당 아이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B씨는 대전교사노조와의 대화에서 "교직 생활을 통틀어 이런 1학년은 처음 봤다"고 했습니다.
"1학년 학급 특유의 맑고 명랑한 분위기 대신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어 "문제가 되고 있는 4명의 아이가 너무 세 다른 아이들이 주눅이 들어있었다"고도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계속 복도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거나 친구를 괴롭혔다는 게 B씨의 증언입니다.

B씨는 특히 이 중 한 아이가 수업에 자주 빠지고, 입이 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수업 공백이 많고 가정 지도가 부족한 탓에 학업이 크게 쳐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은 이 아이에게 학습지도를 하다 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설명을 듣는 대신
B씨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반복적으로 욕설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욕을 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는 "'북대전 IC'를 계속 말한 것 뿐"이라고 둘러댔습니다.

■ 친구 괴롭혀 지도한 것 뿐인데…'악성 민원'에 사의

문제가 된 아이 중 하나는 짝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발로 계속 차고 잡아당기고,
꾸짖는 말을 했다는 게 B씨의 주장입니다. 발길질하지 말라며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이 아이가 짝의 손등을 심하게 꼬집어 짝인 여자 아이가 우는 일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B씨는 계속된 주의도 소용이 없자 아이를 따로 불러 1대1로 대화를 나눴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지만 교육 과정을 통해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오후 B씨는 관리자로부터 "학부모가 기분 나빠한다"는 얘기를 전달받았고, 더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져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습니다.

■ "문제 학생 내버려 두라"…교사 사인은 '사회적 죽음'

B씨는 기간제로 출근한 첫날, 학교 관리자를 포함한 부장급 고참 교사들이 '이상한' 말을 건넸다고 말합니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특히 한 아이는 뭘 해도 내버려 두라는 말이었습니다. '사회'의 첫 단추인 학교, 그 중에도 무려 1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말입니다.

이윤경 대전교사노조 위원장은 이를 두고 "대전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은 선생님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교권침해 사례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며, "35년 차 선생님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고통을 혼자 감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교권침해로부터 보호받을 장치가 없고, 선생님 혼자 싸우고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안타깝고 비통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수경 초등교사노조 위원장 역시 "이 사건은 선생님 개인의 일로 치부하면 안 된다"면서,
"교사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 보호 장치가 전혀 없었고, 이는 교육 현장이
선생님을 극단으로 몰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내일(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숨진 교사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더는 이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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