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 못 지나가” 도로 막은 굴착기에 닭 줄폐사

입력 2023.09.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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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홍천의 한 마을에서 마을 안길 통행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도로에 자신의 땅이 포함돼 있다며 땅 주인이 굴착기로 길 일부를 막아선 건데요. 마을 안쪽에 있던 양계장은 3일 동안 사료를 받지 못해 닭 수백 마리가 폐사하기도 했습니다. 양계장 주인이 직접 나서 길을 막아선 굴착기를 치웠는데, 이로 인해 갈등은 오히려 더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달 20일 오후,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의 한 마을 안길. 도로 한켠을 막고 있던 굴착기 옆으로 또다른 굴착기 한 대가 다가섰습니다. 기사가 장비에서 내리더니, 원래 있던 굴착기 팔에 줄을 걸었고, 이내 굴착기를 들어올립니다. 길을 막고 있던 굴착기가 대롱대롱 딸려올라가 도로 가장자리로 옮겨졌습니다.

길이 열리자 사료를 실은 20톤 트럭이 힘겹게 비탈길을 올랐습니다. 계란 배송을 하는 3톤짜리 트럭도 뒤따랐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양계장 주인 박중철 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선 급한대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길을 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런 상황의 발단은 나흘전 전인 지난 1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닭 13만 마리를 키우는 양계장으로 가는 유일한 마을 안 길에 난데 없이 굴착기가 세워져 길을 막은 것입니다.

마을 안길을 포크레인이 막아서면서, 사료 차량이 양계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사흘을 서 있을수밖에 없었다.마을 안길을 포크레인이 막아서면서, 사료 차량이 양계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사흘을 서 있을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곤경을 겪은 건 사료 배달 차량기사였습니다. 이날 양계장에 사료 배달을 하러 가던 정진환 씨는 경사길 중간에 세워진 굴착기를 보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료를 실은 트럭은 20톤 짜리 대형 트럭이었습니다. 트럭 덩치가 큰 탓에 급경사에 길까지 심하게 꺾인 이 길에선 후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이 트럭은 오도가도 못하고 이 길 아래쪽에 사흘 동안 발이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정 씨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입장인데 지금 일도 못하고, 민원이 들어와 가지고 차를 빼 줘야 하는데. 차를 지금 빼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라면서 담배만 연신 피웠습니다.

사료를 공급받지 못한 양계장에선 닭 200마리가 폐사하고, 산란율도 30% 줄었다.사료를 공급받지 못한 양계장에선 닭 200마리가 폐사하고, 산란율도 30% 줄었다.

양계농장도 그동안 피가 말랐다고 호소합니다. 매일 사료를 받아 닭에게 줘야 하는데 사료 공급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닭 200여 마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산란율도 30% 줄었습니다. 양계장 주인 박중철 씨는 "보통 하루에 달걀 10만 개 정도가 생산이 되는데, 7만 개 정도도 생산이 안 됐다"라면서 "너무 황당하다. 법이 너무 멀리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답해했습니다.

이런 갈등이 빚어진 건 지난해부터였습니다. 마을 안길 주변에 사유지를 가진 땅 주인 가운데 한 명이, 길에 자신의 땅 160㎡가 포함됐다며 사료차가 오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겁니다. 양계장 주인 박씨와 땅 주인은 이 문제를 놓고 도로 사용료를 지불할지도 논의해 봤지만, 각자 이견이 커 흐지부지됐습니다. 박 씨는 "갈등이 깊어지자 땅 주인이 지난해에만 수 차례 이렇게 도로를 막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갈등은 민사소송으로까지 번졌습니다. 1심 재판부는 땅 주인에게 "통행을 막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불복한 땅 주인은 항소했습니다. 항소심의 결과도 같았지만, 올해 또 이런 갈등은 반복된 것입니다.

홍천군은 “땅 주인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보상도 거부한 상황”이라고 난감해했다.홍천군은 “땅 주인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보상도 거부한 상황”이라고 난감해했다.

도로를 만든 홍천군도 이런 문제를 알고있었습니다. 홍천군청의 담당 팀장은 "마을 안길 조성 사업의 경우 보통 면 단위에서 시행하는데, 이렇게 분쟁이 심한 곳에 대해선 2년 정도 전부터 보상을 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도로의 경우 땅 주인에게 "보상을 해 드릴 테니까 보상 협의를 해주실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땅 주인이 보상 자체도 거부한 상황"이라며 난감해했습니다. "향후에 보상 제안을 추가로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보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재판에선 길을 막지 말라고 했고, 공공기관에선 보상을 해 주겠다는데도 거절한 상황.
KBS는 땅 주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땅 주인이 종종 묵는다는 농막을 찾아가 봤지만 인기척은 없었습니다.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땅 주인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땅 주인의 입장은 완강했습니다. "도로에 내 땅이 들어가 있는 것이고, 내 땅에 장비를 세워둔 게 뭐가 문제냐"라고 취재진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차들 통행을 막은 것도 아니지 않냐" 라며, 굴착기를 치울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양계장 주인은 길이 막힌지 사흘째, 더 큰 굴착기를 동원해 길을 막은 굴착기를 치운 뒤에야 닭에게 줄 사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양계장 주인 박 씨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씨의 어깨 너머로는 폐사해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닭들이 큼지막한 수레 3대에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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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땅 못 지나가” 도로 막은 굴착기에 닭 줄폐사
    • 입력 2023-09-22 0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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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의 한 마을에서 마을 안길 통행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도로에 자신의 땅이 포함돼 있다며 땅 주인이 굴착기로 길 일부를 막아선 건데요. 마을 안쪽에 있던 양계장은 3일 동안 사료를 받지 못해 닭 수백 마리가 폐사하기도 했습니다. 양계장 주인이 직접 나서 길을 막아선 굴착기를 치웠는데, 이로 인해 갈등은 오히려 더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br />

이달 20일 오후,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의 한 마을 안길. 도로 한켠을 막고 있던 굴착기 옆으로 또다른 굴착기 한 대가 다가섰습니다. 기사가 장비에서 내리더니, 원래 있던 굴착기 팔에 줄을 걸었고, 이내 굴착기를 들어올립니다. 길을 막고 있던 굴착기가 대롱대롱 딸려올라가 도로 가장자리로 옮겨졌습니다.

길이 열리자 사료를 실은 20톤 트럭이 힘겹게 비탈길을 올랐습니다. 계란 배송을 하는 3톤짜리 트럭도 뒤따랐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양계장 주인 박중철 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선 급한대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길을 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런 상황의 발단은 나흘전 전인 지난 1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닭 13만 마리를 키우는 양계장으로 가는 유일한 마을 안 길에 난데 없이 굴착기가 세워져 길을 막은 것입니다.

마을 안길을 포크레인이 막아서면서, 사료 차량이 양계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사흘을 서 있을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곤경을 겪은 건 사료 배달 차량기사였습니다. 이날 양계장에 사료 배달을 하러 가던 정진환 씨는 경사길 중간에 세워진 굴착기를 보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료를 실은 트럭은 20톤 짜리 대형 트럭이었습니다. 트럭 덩치가 큰 탓에 급경사에 길까지 심하게 꺾인 이 길에선 후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이 트럭은 오도가도 못하고 이 길 아래쪽에 사흘 동안 발이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정 씨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입장인데 지금 일도 못하고, 민원이 들어와 가지고 차를 빼 줘야 하는데. 차를 지금 빼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라면서 담배만 연신 피웠습니다.

사료를 공급받지 못한 양계장에선 닭 200마리가 폐사하고, 산란율도 30% 줄었다.
양계농장도 그동안 피가 말랐다고 호소합니다. 매일 사료를 받아 닭에게 줘야 하는데 사료 공급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닭 200여 마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산란율도 30% 줄었습니다. 양계장 주인 박중철 씨는 "보통 하루에 달걀 10만 개 정도가 생산이 되는데, 7만 개 정도도 생산이 안 됐다"라면서 "너무 황당하다. 법이 너무 멀리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답해했습니다.

이런 갈등이 빚어진 건 지난해부터였습니다. 마을 안길 주변에 사유지를 가진 땅 주인 가운데 한 명이, 길에 자신의 땅 160㎡가 포함됐다며 사료차가 오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겁니다. 양계장 주인 박씨와 땅 주인은 이 문제를 놓고 도로 사용료를 지불할지도 논의해 봤지만, 각자 이견이 커 흐지부지됐습니다. 박 씨는 "갈등이 깊어지자 땅 주인이 지난해에만 수 차례 이렇게 도로를 막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갈등은 민사소송으로까지 번졌습니다. 1심 재판부는 땅 주인에게 "통행을 막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불복한 땅 주인은 항소했습니다. 항소심의 결과도 같았지만, 올해 또 이런 갈등은 반복된 것입니다.

홍천군은 “땅 주인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보상도 거부한 상황”이라고 난감해했다.
도로를 만든 홍천군도 이런 문제를 알고있었습니다. 홍천군청의 담당 팀장은 "마을 안길 조성 사업의 경우 보통 면 단위에서 시행하는데, 이렇게 분쟁이 심한 곳에 대해선 2년 정도 전부터 보상을 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도로의 경우 땅 주인에게 "보상을 해 드릴 테니까 보상 협의를 해주실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땅 주인이 보상 자체도 거부한 상황"이라며 난감해했습니다. "향후에 보상 제안을 추가로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보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재판에선 길을 막지 말라고 했고, 공공기관에선 보상을 해 주겠다는데도 거절한 상황.
KBS는 땅 주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땅 주인이 종종 묵는다는 농막을 찾아가 봤지만 인기척은 없었습니다.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땅 주인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땅 주인의 입장은 완강했습니다. "도로에 내 땅이 들어가 있는 것이고, 내 땅에 장비를 세워둔 게 뭐가 문제냐"라고 취재진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차들 통행을 막은 것도 아니지 않냐" 라며, 굴착기를 치울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양계장 주인은 길이 막힌지 사흘째, 더 큰 굴착기를 동원해 길을 막은 굴착기를 치운 뒤에야 닭에게 줄 사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양계장 주인 박 씨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씨의 어깨 너머로는 폐사해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닭들이 큼지막한 수레 3대에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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