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뉴스K] 강제추행 판단 기준 완화…“저항 곤란하지 않아도”

입력 2023.09.22 (12:52) 수정 2023.09.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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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법원은 그동안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때, 피해자가 저항이 곤란할 정도로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를 따졌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 판례를 40년 만에 바꾸고 새로운 기준을 세웠습니다.

친절한뉴스에서 자세한 내용, 설명해드립니다.

오승목 기자입니다.

[리포트]

'강제추행'.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성적 수치심, 혐오감을 느끼게 신체를 접촉하는 행위는 엄연히 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가해자, 피해자 모두 될 수 있습니다.

법에서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의사를 무시한다', '원치 않는다'의 성립 요건이 폭행이나 협박입니다.

그런데, 이 폭행과 협박의 판단은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까요?

9년 전, 15살 사촌 동생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인 A 씨.

사촌 동생을 양팔로 안고 쓰러뜨린 후 몸 위에 올라타고,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을 하며 신체를 만진 혐의였습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폭행과 협박을 인정하는 판단 기준을 '상대방에게 저항하는 것이 곤란한 정도'로 설정한, 1983년의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겁니다.

그런데, 40년 만이죠.

어제 대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심리 5년 만에 군사법원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는데요.

대법원 판단은 이렇습니다.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 신체에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이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위협한다면 인정된다는 거죠.

여기서 유형력은 '신체적 고통을 주는 물리력의 작용'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판단 기준인, 상대방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해야 한다는 기준은 아예 삭제했습니다.

판례가 바뀐 거죠.

'저항이 곤란할 정도'.

강제추행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는 거죠.

대법원은 구시대적 생각이고, '피해자 다움'을 요구해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강제추행죄는 1995년 형법 개정 이전 '정조에 관한 죄'였다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삼는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습니다.

법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법 적용은 정조 관념을 기반으로 해, 성범죄 재판에서 가해자의 처벌 범위를 축소해왔다는 지적이 이어졌는데요.

이미 수사기관과 법원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우려해 '저항이 곤란하다'는 기존 법리를 엄격히 따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것과는 다른 얘기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비동의추행죄'는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성적 불쾌감을 야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법원은 이번 계기로, 강제추행죄 성립 여부를 상대방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는 취지는 아니라는 거죠.

강제추행죄는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하는 '폭행·협박 선행형'과 폭행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기습추행형'으로 나뉘는데, 대법원은 이번 판례 변경이 폭행·협박 선행형 강제추행죄에 한해 '폭행 또는 협박'을 형법에서 정한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KBS 뉴스 오승목입니다.

영상편집:신선미/그래픽:민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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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절한 뉴스K] 강제추행 판단 기준 완화…“저항 곤란하지 않아도”
    • 입력 2023-09-22 12:52:45
    • 수정2023-09-22 13:25:57
    뉴스 12
[앵커]

법원은 그동안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때, 피해자가 저항이 곤란할 정도로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를 따졌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 판례를 40년 만에 바꾸고 새로운 기준을 세웠습니다.

친절한뉴스에서 자세한 내용, 설명해드립니다.

오승목 기자입니다.

[리포트]

'강제추행'.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성적 수치심, 혐오감을 느끼게 신체를 접촉하는 행위는 엄연히 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가해자, 피해자 모두 될 수 있습니다.

법에서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의사를 무시한다', '원치 않는다'의 성립 요건이 폭행이나 협박입니다.

그런데, 이 폭행과 협박의 판단은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까요?

9년 전, 15살 사촌 동생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인 A 씨.

사촌 동생을 양팔로 안고 쓰러뜨린 후 몸 위에 올라타고,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을 하며 신체를 만진 혐의였습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폭행과 협박을 인정하는 판단 기준을 '상대방에게 저항하는 것이 곤란한 정도'로 설정한, 1983년의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겁니다.

그런데, 40년 만이죠.

어제 대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심리 5년 만에 군사법원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는데요.

대법원 판단은 이렇습니다.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 신체에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이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위협한다면 인정된다는 거죠.

여기서 유형력은 '신체적 고통을 주는 물리력의 작용'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판단 기준인, 상대방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해야 한다는 기준은 아예 삭제했습니다.

판례가 바뀐 거죠.

'저항이 곤란할 정도'.

강제추행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는 거죠.

대법원은 구시대적 생각이고, '피해자 다움'을 요구해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강제추행죄는 1995년 형법 개정 이전 '정조에 관한 죄'였다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삼는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습니다.

법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법 적용은 정조 관념을 기반으로 해, 성범죄 재판에서 가해자의 처벌 범위를 축소해왔다는 지적이 이어졌는데요.

이미 수사기관과 법원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우려해 '저항이 곤란하다'는 기존 법리를 엄격히 따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것과는 다른 얘기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비동의추행죄'는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성적 불쾌감을 야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법원은 이번 계기로, 강제추행죄 성립 여부를 상대방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는 취지는 아니라는 거죠.

강제추행죄는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하는 '폭행·협박 선행형'과 폭행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기습추행형'으로 나뉘는데, 대법원은 이번 판례 변경이 폭행·협박 선행형 강제추행죄에 한해 '폭행 또는 협박'을 형법에서 정한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KBS 뉴스 오승목입니다.

영상편집:신선미/그래픽:민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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